명저명론 (2018년 3-4월호)

고려불교사 인식과 연구방법 크게 진전시켜
 

허흥식 교수. 〈사진=현대불교신문〉

고려불교는 한국불교에서 고대와 조선의 불교와는 다른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불교학적으로는 고대불교를 계승하면서 각 종파의 교리를 심화 확충하는 추세였다. 또한 동 시대의 동북아 정세와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적 특성을 반영하면서 불교가 지닌 가치를 발휘하고 있었다. 특히 불교가 국가종교인 만큼 제도나 교단이 지닌 정체성이 고대보다 더욱 구체적이고 선명하게 드러나기도 하였다.

성리학(性理學)을 중심으로 한 유학(儒學)의 역할과 기여 역시 이 시대 불교를 이해하기 위해 고려할 만큼 정치와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결국 불교가 고려인의 사상과 도덕, 그리고 예술에 이르기까지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은 고대와 다르지 않지만, 이전보다 확대되고 세분화된 고려의 정치사회구조 속에서 일정한 영향을 주고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고려불교의 연구 가치는 당대 유행했던 교리나 주도적 인물중심의 불교계뿐만 아니라 고려 왕조를 유지했던 다양한 장면과 불교의 상관관계 속에 있다.

허흥식의 〈고려불교사연구〉가 출간된 것은 1986년이다. 이 해에는 민족사(民族社)가 불교학자와 불교사학자 13인의 개인 논문을 모아 〈고려초기불교사론〉 · 〈고려중후기불교사론〉 · 〈고려후기불교전개사연구〉를 출간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연구 성과는 일제강점기 이후 오랫동안 학계에서 진행되었던 사상과 인물중심의 고려불교 연구경향이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사실 일반사와 연계된 고려불교 연구보다는 특정 교리나 주요인물의 사상을 중심으로 연구되어 왔던 것이다.

더욱이 당시만 하더라도 신라를 중심으로 한 고대불교 연구와는 질적 양적 측면에서 미흡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그러한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비록 종파와 교단사 · 결사운동(結社運動) · 인물 등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연구 인식이나 방법론이 새롭게 제시되지는 못했다. 전문화되기보다는 밝혀지지 않았던 역사적 사실을 소개하는 경향이 강했다. 아울러 고문서나 금석문 등의 자료집이 출간되기 시작하여 연구지평을 넓히는 기반을 형성하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고려불교사연구〉는 저자의 연구논문 33편을 수록하고 있다. 전체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5장까지는 고려사회가 지닌 불교적 기반, 교종 5종파(宗派)설과 선종 9산파(山派)설의 비판, 고려의 사대종파(四大宗派)와 소속사원, 불교제도와 그 기능, 고려후기 불교계의 변동에 관한 연구 성과를 수록하였다. 예컨대 고려시대 불교의 국사-왕사제도, 승과제도, 행정제도, 불교의식 등 제도분야의 연구들이다. 특히 고려전기의 불교계를 오교구산(五敎九山)으로 이해했던 종래의 설을 비판하였다. 그는 “신라시대의 5교는 불교의 종파가 아니라 학파로 보아야 한다.”고 했으며, “고려시대 초에 이르러 실질적인 종파가 형성되기 시작하여 10세기경에 확립되었다.”고 주장했다. 종파에 대해서도 “4세기부터 8세기까지는 학파시대로 화엄학과 유가학 등이 공존했으며, 9세기부터 종파가 형성되기 시작해 선종 · 화엄종·유가종이 등장하고, 11세기 들어 천태종이 형성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6장과 7장은 금석문(金石文)과 서지(書誌) 및 고문서(古文書)에 관한 글을 수록하였다. 6장은 혜거국사(慧居國師) · 적연국사(寂然國師) 등 아직 소개되지 않았던 동시대 불교 인물들의 비문을 소개하였다. 7장은 〈동문선(東文選)〉에 수록된 불교사료와 본인이 수집 조사한 사지(寺志)류를 소개하여 향후 연구의 길잡이가 되기도 하였다. 결국 이 책의 구성과 내용은 고려불교의 특정분야만 국한시키지 않고 이전까지 소개되지 못했던 고려불교의 다양한 면모를 살필 수 있다. 한 개인이 한 시대의 다양한 불교사정을 전반적으로 파악하고자 했고, 연구공백을 메우고자 했으며, 체계화시키기 위해 노력한 것이다.

이 책은 대체로 두 가지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는 고려불교를 일반사의 범주에서 검토하고 있는 점이다. 허흥식은 책의 서문에서 “본서는 일반사(一般史)의 하나로 취급되었으면 한다.”고 하였다. 2007년 2월 ‘법보신문’아카데미에서도 ‘고려의 모든 사회구조와 문화의 근간은 불교를 토대로 이뤄지고 있는 만큼 불교에 대한 이해 없이는 고려사 자체를 성립시키기 어렵다.’고 하였다. 고려 왕조에서 불교가 차지한 위상을 고려한다면 고려시대사(高麗時代史)를 체계화하기 위해서는 불교교리나 인물중심의 연구로는 일정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는 “불교의 범세계적인 공통교리나 주장보다는 고려 사회에 존재한 종교집단으로서의 구조를 밝히고, 일반사회의 구조에 어떤 특성을 유지하게 하였는가?”에 초점을 두었다. 그는 고려불교가 특수하다거나 우수하다는 선입견을 버리고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하는 종교의 일반성에서 출발하여 어느 정도의 특성을 인정하는 데에서 벗어나야함을 주장한 것이다.

이와 같은 허흥식의 입장은 이전까지 학계에서 유지되고 있었던 고려불교사 인식과 그 연구방법에서 진전된 것이었다. 교리나 인물 중심의 편협한 연구범위에서 고려의 정치 · 사회 · 경제 · 문화와 결부된 불교사를 연구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또한 이제까지의 고려불교사 연구가 관념적인 교리를 포함하고, 호교론(護敎論)으로 지나치게 치우치는 경향을 객관적인 학문적 서술로 전환시키기도 하였다. 그는 이와 같은 학문적 서술자세를 견지하기 위해 종교학(宗敎學)은 물론 철학(哲學) · 법사학(法史學)분야까지 넘보았고, 연구와 집필에 직 · 간접적인 영향을 충분히 받았던 것이다.

결국 그의 〈고려불교사연구〉는 ‘불교를 위한 불교사보다는 불교에 대한 불교사’를 의도하였고, 그것이 넓은 의미의 종교사(宗敎史)연구에 더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하였다. 후속작인 〈한국중세불교사연구〉(1994) · 〈고려로 옮긴 인도의 등불:지공선현〉(1997) · 〈진정국사와 호산록〉(2007) 등은 이와 같은 허흥식의 고려불교사 인식을 더욱 구체적으로 살필 수 있다.

둘째는 광범위한 자료수집의 가치이다. 허흥식은 책의 서문에서 “(고려불교사에 대한 연구를) 착수한 지 20년 가까운 기간의 절반 이상은 논문의 서술에 쏟은 것이 아니라 금석문의 현장 확인, 탁본의 판독과 고문서, 문집을 발굴하기 위한 작업에 소요하였다.”고 술회하였다. 그의 이와 같은 자료에 대한 태도는 일제강점기 자료발굴과 수집에 심혈을 기울였던 이능화(李能和) · 권상로(權相老) · 박봉석(朴奉石)을 떠올리게 한다. 이능화는 한국불교가 그 역사만큼이나 유구하지만, 실상 1500여 년의 계통적 역사에 조선인들이 무지(無知)한 것에 통탄하여 10여 년 동안 일본과 상해 등지에서 자료를 구했고, 불교계의 승려와 교유를 통해 고승의 비문(碑文)  · 사지(寺誌) · 저술(著述)뿐만 아니라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구술(口述)까지도 수집하는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권상로는 총 466종의 고승석덕(高僧碩德)의 저술을 목록화하였고, 박봉석 역시 10여 년 동안 한국 고승의 전기를 모아 〈청구승전보람(靑丘僧傳寶覽)〉을 세상에 내놓기도 하였다.

허흥식의 노력 또한 일제강점기 불교지성들의 한국불교사 복원을 위한 자료수집의 노고와 다르지 않다. 그는 “고려불교사에 대한 자료는 아직 정리된 적이 없었다. 자료는 사서(史書)보다 문집(文集)이나 고문서가 중요하고 이보다는 금석문과 유물 · 유적이 좀 더 유용하다. …··· 필자가 서술에 앞서 금석문의 자료를 종합하기 위하여 소모한 시간과 노력은 말할 수 없이 길고 어려웠으나 본서를 위한 귀중한 토대가 되었다.”고 하였다.

그가 1984년에 펴낸 〈한국금석전문(韓國金石全文)〉은 신라와 고려의 금석문 총 689종을 3책(고대 1책, 중세 2책)으로 구분, 수록한 것으로 이전의 연구 성과인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 · 〈한국금석문추보(金石文追補)〉 · 〈한국금석유문(韓國金石遺文)〉 등을 총 망라하고 있다. 서울대 변태섭 명예교수는 〈한국금석전문〉을 두고 ‘현지에서 직접 금석문의 글자 하나하나를 검토하고 각 도서관에 보관된 탁본과 서첩(書帖)을 정확히 대조 확인한 금석학 연구의 획기적인 결실’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허흥식의 이와 같은 자료수집에 소모한 시간은 고려불교사를 복원하고 체계화를 위한 노력과 비례한 것이었다.

오경후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전임연구원, 동국대학교에서 한국불교사를 전공하였다. 조선후기 사지(寺志)와 승전(僧傳)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으로는 〈조선후기 〈대둔사지〉의 편찬〉, 〈조선후기 벽송사의 수행전통과 불교사적 가치〉가 있으며, 저서로는 〈조선후기불교동향사연구〉(2015)와 <사지와 승전으로 본 조선후기 불교사학사〉(2018)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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