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저명론(271호)

역사에 눈먼<史盲> 이에게 비춰진 한줄기 등불
 

상현 이능화.

삼국시대에 불교가 전래된 뒤 원효 · 의상 · 의천 - 지눌을 비롯한 훌륭한 스님이 불교 역사를 빛냈고 ‘세계 역사상 가장 완벽한 대장경’이라는 평가를 받는 해인사 대장경판과 고려불화를 비롯한 찬란한 문화를 창출하였다고 하면서도, 한국 불교는 자신의 역사를 정리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 답답한 현실을 뚫어 보겠다고 서원한 인물이 근대 불교사에 빛나는 〈조선불교통사〉(이하에서는 〈통사〉로 표기)를 쓴 상현 이능화(尙玄 李能和)이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영어 · 프랑스어 · 일본어와 중국어 등 외국어에 능통하여 외국어학교 교사를 한 그가 왜 이 책을 쓰게 되었는지, 그 동기를 이능화는 이렇게 말한다.

답답한 유가의 성리학보다 광대원통(廣大圓通)한 불교의 심성설(心性說)을 매우 좋아했으나, 불경 · 선서(禪書)를 볼 기회를 얻지 못하다가 … 동대문 밖 원흥사(元興寺)의 불법연구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조선불교의 연혁에 대하여 물어보았지만 확실히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신라 · 고려 시대에는 국교였는데 지금은 어째서 스님들까지도 아는 이가 없단 말인가? 1,500년 역사가 없으니 어찌 한심하지 않으리오. 이에 〈통사〉를 저술하여 불충분하지만 세상에 내어 불교에 뜻을 둔 이들에게 참고자료가 되었으면 하였노라. (‘매일신보’, 1917. 7. 14.)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길을 가려면 크고 무거운 고통이 뒤따르는 법이다. 그래서 막상 큰 뜻을 품고 시작을 했지만,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뚫고 나가야 할지 막막하여 마음만 먹었다가 포기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능화는 자신이 세운 서원을 꺾지 않고 이 대작불사를 원만회향(圓滿回向)하였다.

내가 〈통사〉의 자료 수집에 착수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즉 융희(隆熙) 원년(1907) 경이다. 그때부터 나는 일본 · 중국 등지에서 불서와 기타 참고서적을 구한 뒤, 낮 근무를 마치면 심력(心力)을 다하여 불교를 연구하였다. 또 고승의 비문과 행장, 사찰의 기록, 종파(宗派)와 산문(山門)의 풍습 등을 막론하고 관련이 있는 것은 모두 모았다. 그리하여 시중에 보이는 것은 모두 불서요, 책상 위에 쌓이는 것도 불서요, 촛불 아래서 초록(抄錄)하는 것도 불서요, 누워 꿈꾸는 것도 불서였다. 오로지 밤낮으로 매달리는 것은 불서뿐이었다. 그래서 집사람에게 ‘10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조소(嘲笑)까지 들었다. (‘매일신보’, 1917. 7. 15.)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현 ‘서울신문’ 전신)가 왜 이틀 연속으로 이능화 인터뷰 기사를 실었는지 그 이유와 배경이 궁금하지만, 이 문제는 따로 살펴볼 일이다. 어쨌든 위 대목을 읽다보면 〈통사〉 저술의 전 과정이 눈에 그려진다. 책상 위에 뿐 아니라 집안 곳곳에 흩어져 있는 자료 속에 파묻혀 있는 모습, 한 단계 마무리할 때면 흐뭇해하던 얼굴, 잘 풀려나가지 않아서 머리를 싸매며 힘들어하던 장면, 펜으로 원고를 써내려가면서 나는 ‘사각사각’하는 소리, 아내에게 구박(?) 받으며 쩔쩔 매던 장면…….

김영태는 〈통사〉를 가리켜 ‘불교사맹시대(佛敎史盲時代)의 등불과도 같은 존재’라고 하였다. “눈먼 이에게 등불이 아무리 밝은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마는 역사에 눈먼 이(史盲)에게는 등불은 밝을수록 좋은 것이다. 사맹의 시대는 역사의 길을 밝히는 등불이 꺼져 온 천지가 캄캄한 암흑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불교 역사에도 등불이 꺼져 역사를 보는 눈을 잃어버린 암흑의 시대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그러한 불교사맹의 암흑기가 오래 계속되다가 … 불교역사의 등불을 밝히고 사맹의 두꺼운 장막을 열어젖히려고 노력한 선각자가 상현거사이다.”

이능화 자신도 “마치 하나의 등불이 천년의 어둠을 깨뜨릴 수 있듯이, 칠흑같이 어두운 방에 쌓인 보배를 환히 비추어 볼 수 있다면 만족할 것이다. 세상에서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나의 고충을 헤아려주기 바란다.”며 이 책의 편찬과 출간에 자부심을 드러낸다. 어찌 자부심을 갖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아무리 빛나는 보석이라도 깨끗하게 닦지 않으면 아무 쓸모없는 돌덩어리에 지나지 않고, 온 세상을 밝힐 수 있을 정도로 좋은 등잔에도 기름을 채워주지 않으면 고물에 지나지 않는 법이다. 우리 불교학계는 ‘보배 등잔’인 〈통사〉에 새로 기름을 채우지 않고 불을 붙이지 않은 채 깊은 어둠 속에 버려놓고 있었다. 어려운 한문으로 쓰인 ‘자료 모음’에 불과하다며 무시하거나, 학인들이 이 책을 가까이하며 연구에 안내지도로 삼을 수 있도록 ‘이 시대의 언어’로 옮기는 일도 오래도록 미루어왔다.

필자는 1990년대 말 몇 해 동안 강독을 하고 최근에는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에서 펴낸 번역본 읽기 모임을 하면서 ‘100년 전에 이런 자료들을 어디에서 어떻게 찾아냈을까? 전 세계에서 나오는 불교 관련 자료를 쉽게 구할 수 있고, 게다가 이제는 온 세상을 연결하는 인터넷이 발달했어도 어려운 일인데 …’ 하면서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특히 하편의 ‘이백품제(二百品題)’는 전통 사서의 기사본말 방식에 따라 쓴 것인데 여기에 중요한 내용이 많이 담겨 있고, 그 중에서 한글 창제와 불교의 관련성을 밝힌 ‘언문자법원출범천(諺文子法源出梵天)’은 그때까지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주제를 깊이 파고들어 밝힌 것으로 이 한 가지만으로도 이능화와 그의 〈통사〉의 가치를 빛나게 한다.

저자는 “한 권의 책으로 모아 엮어서 〈통사〉라 하였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 책은 ‘조선(한국)’과 ‘불교’의 틀에만 가둘 수 없다. 저자 스스로 이 책이 “조선 사람으로부터 나온 연구이지만 세계적인 철학이라 할 수 있다.”라고 밝히고 있듯이, 조선을 중심에 두면서도 실은 인도 · 중국 · 일본 등 세계를 대상으로 하고 있고, 불교를 넘어 유교 · 도교 · 이슬람 · 기독교 · 무교(巫敎)를 비롯한 세계의 모든 종교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12종파의 연혁과 900사찰의 유서由緖가 조각조각 난 채 파묻혀 있고, 먼지더미 속에 버려져 있었으므로, 귀가 있어도 들을 수 없고 눈이 있어도 볼 수 없었다. 재주가 없는 내가 이를 염려하여 어리석음을 무릅쓰고 일을 시작하였다. 글을 쓰는 데 쉴 틈이 전혀 없었고 많은 세월을 보냈다. 많은 서책을 고증하고 대가들에게 묻고 배웠다. 이렇게 하여 〈통사〉는 세 편의 책이 되었다. (〈조선불교통사〉 상편 ‘자서(自序)’)

한국 · 중국 · 일본의 정사와 고승전 등 불교 관련 기록뿐 아니라 문집 · 비문 · 야사(野史) 등에서 찾아낸 수많은 자료들, ‘귀가 있어도 들을 수 없고 눈이 있어도 볼 수 없었던’ 불교 역사의 구슬을 찾아내 실로 꿰어 멋진 보물로 재탄생시킨 이능화, 그가 펴낸 〈조선불교통사〉가 세상에 불을 밝힌 지 100년 세월이 흘렀어도 그 등불은 아직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여러 연구자들이 애써서 작업하고 역주(譯註)본을 세상에 내놓아 조금 나아지게 된 것은 다행이지만, ‘눈이 있어도 보기 어려운 점’에서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이것이 우리 불교학계의 현실이려니’ 하고 자위하면서도, 100년 전 이능화가 이 책을 집필할 때 세웠던 서원과 그가 겪은 어려움을 후학들이 가슴에 담고 ‘그가 남긴 자취를 따르면서 그를 넘어서 새로움을 이룩해내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을 살려냈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안타까운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통사〉가 아무리 훌륭한 업적이라고 칭찬을 들을지라도 대중들이 읽어 이해할 수 없으면, “뭇 귀머거리에게 천둥소리”이고 “뭇 소경에게 해와 달”이나 다를 바 없을 것이다.(〈통사〉 自序) 이능화도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하기를 바란다.”고 하였지만, 이 보물을 보물답게 쓸지 못 쓸지는 우리 선택에 달려있다.

이병두

한국외국어대학교 졸업 후 단국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석 ·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동방대학원대학교 불교문예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사단법인 파라미타 청소년연합 사무총장, 문화체육관광부 종무관을 역임하고, 불교계 여러 매체에 불교와 종교평화 칼럼 그리고 책을 소개하는 글을 오래 동안 연재하였으며, 현재 종교평화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다.

역· 저서로 〈담마난다 스님이 들려주는 불교이야기〉, 〈지혜로운 삶의 교훈 채근담〉, 〈북한산성과 팔도사찰〉, 〈한국종교를 컨설팅하다〉(공저), 〈향기로운 꽃잎〉, 〈오늘의 읽기: 이병두가 본 책 속의 세상 × 책 밖의 세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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