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생로병사(271호)

우리는 죽음과 관련해 최소한 네 가지를 확실히 알고 있다. 첫째 누구나 죽는다, 둘째 언제나 죽을 수 있다, 셋째 어디서나 죽을 수 있다, 넷째 마지막으로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는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다. 이처럼 인간은 누구나 죽음 앞에서 평등하다.

하지만 죽음 자체는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해도, 사람이 죽어가는 마지막 모습은 똑같지 않다. 특히 죽음에 임했을 때 어떠한 태도를 가지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죽음은 값진 죽음이 될 수도 있고, 무의미한 죽음이 될 수도 있다.

불교, 그 중에서도 티베트불교는 죽는 순간 우리의 마음 상태가 매우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예를 들어 우리가 긍정적인 마음으로 죽는다면 부정적인 카르마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다음 삶은 개선될 수 있다. 만일 혼란스럽고 근심에 빠진 상태로 죽는다면, 우리가 그간의 삶을 잘 꾸려 왔을지라도 해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렇게 죽기 직전 우리가 지녔던 마지막 생각과 감정이 곧바로 이어질 미래의 행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이 교리는 가르친다.

이런 연유로 여러 스승들은 죽어가는 순간의 주변 분위기를 몹시 중요하게 여겼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모여 사랑 · 자비 · 헌신 등 긍정적인 감정과 성스러운 분위기를 고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또 죽어가는 사람이 집착 · 갈망 · 애착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가능한 한 모든 일을 다 해야 한다.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죽음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배우지 못하고 있다. 학교에서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래서 죽음과 관련된 책을 읽는 것은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또한 죽음을 일상 대화 주제로 올려 죽음에 대한 거부감을 희석시키는 것도 좋다. 가족과 친구 사이에 언제든지 허심탄회하게 죽음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난 사람은 헤어지기 마련)’라고 했지 않은가?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것은 아쉽고,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영원히 헤어지지 않을 수는 없다. 평소 죽음에 대해, 임종방식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느 순간 헤어질 시간을 맞이하게 됐다면, 평소와 마찬가지로 서로 마음 속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편안하게 작별인사를 나누고 다음 생의 만남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죽음에 대해 오랫동안 천착해오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기 위해 필요한 6가지를 선정해 보았다.

① 자기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죽음을 잘 알아야 한다. 달라이라마도 죽음은 육신이란 낡은 옷을 갈아입는 것이라고 말했다. 죽음은 육신의 죽음일 뿐이므로, 죽음은 끝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죽음을 정확히 알지 못하면 아름다운 마무리는 불가능하다. 과학 만능의 시대를 살다보니 학교와 사회에서는 죽음을 가르쳐 주지 않고, 죽음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을 찾아보기도 어렵다. 아름다운 마무리의 전제조건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사실의 확신에 있다. 그러나 죽음을 정확히 이해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언젠가 자신이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맞아야 하고, 죽음을 잘 이해해야 삶을 의미 있게 영위할 수 있으므로, 죽음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을 결코 포기할 수는 없다.

② 죽음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죽음을 보다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사전 의료의향서’, ‘사전 장례의향서’를 미리 준비하고 유서를 작성해 매년 연말연시에 읽어보고 수정한다.

③ 평소 죽음을 주제로 당사자와 가족 간의 대화가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 자신의 죽음에 대해 이해시키고, 자기가 원하는 임종방식을 가족에게 제시하고, 가족의 동의를 미리 받아 두는 게 좋다. 세 가지는 죽음이 임박해서 해서는 안 되고, 평소 생활에서 실천해야 하는 일이다.

④ 죽음이 갑자기 임박했을 때 자기가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앞에서 제시한 세 가지를 평소 준비하지 않았다면, 자기가 죽는다는 사실을 수용할 수 있을까? 만약 죽음을 앞둔 당사자가 자신에게 죽음이 임박했음을 수용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⑤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 역시 사랑하는 사람의 임종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당사자가 자신의 임종을 받아들였다고 해도, 남아있는 가족이 사랑하는 사람의 임종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에는 곤란한 상황이 일어나기도 한다.

⑥ 이처럼 다섯 가지가 전제되지 않으면, 서로 작별인사를 편하게 나눌 수 없게 되고, 임종을 맞는 당사자도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어렵게 된다.

평소에 ① ~ ③을 꾸준히 실천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임종에 임해서 죽음을 수용해야만, 당사자와 가족이 모두 편안하게 “이젠 떠나겠다.”, “편안히 떠나시라.”고 서로 마음 편하게 작별인사를 나눌 수 있고, 언젠가 다시 만나자고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① 죽음을 공부하지 않아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모른다면, ② 평소 죽음을 준비하지 않았다면, 또 ③ 가족 간에 죽음을 평소 충분히 대화하지 않았다면, ④ 임종 순간이 다가왔을 때 당사자가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리고 ⑤ 가족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면, ⑥ 어떻게 마음 편하게 떠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 주위에서는 당사자에게 임종의 시간이 임박했음을 알리지 않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결코 쉽게 되지 않는다. 매년 약 28만 명이 임종하는데, 아름답게 삶을 마무리하는 사례는 그 중 얼마나 될까? 우리 사회에서 사람들이 임종방식이 편안하지 않으면, 우리의 삶의 질이 높아질 수 있을까? 삶을 잘 마무리하는 사람이 늘어날 때, 삶의 질도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삶의 질과 죽음의 질은 서로 상통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운 현상 혹은 절망으로 여긴다. 하지만 죽음을 기꺼이 수용해 밝은 모습으로 미소 지으며 맞이한 사람도 있다. 2013년 7월 28일, 6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미국의 여성작가 제인 로터가 사후에 주목을 받는 이유는 죽기 직전 자신의 부고를 직접 써서 남겼기 때문이다. 미국의 시애틀타임스에는 2013년 7월 28일 그녀가 남긴 761단어의 부고가 실렸다. 유머 칼럼니스트였던 그녀는 죽음을 앞두고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았다. “내가 바꿀 수 없는 일로 슬퍼하지 말고 충만했던 삶에 기뻐하기로 했다. 태양, 달, 호숫가 산책, 아기가 내 손을 잡던 순간……. 신나는 세상에서 나는 이제 영원한 휴가를 떠난다. 아름다운 날, 여기 있어 행복했다.”

오진탁

한림대 철학과 교수 및 한국생사학협회장. 고려대 대학원에서 철학박사를 받았다. 동국대 역경원 역경위원, 일본 고마자와대학교 연구교수를 지냈다. 저서로 〈마지막 선물〉, 〈삶, 죽음에게 길을 묻다〉, 〈자살예방 해법은 있다 : 죽음이해가 삶을 바꾼다〉 등 다수, 번역서로 〈티베트의 지혜〉, 〈죽음으로부터 배우는 삶의 지혜〉, 〈능엄경〉, 〈한글세대를 위한 금강경〉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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