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저명론(270호)

한국 고대 불상 연구에 남긴 큰 족적

 

초우(蕉雨) 황수영(黃壽永, 1918~2011) 박사는 우리나라 불교미술 연구의 초석을 닦은 분으로 동국대학교를 중심으로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셨다. 필자 역시 동국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에 재학 중일 때 강의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우리나라 불교미술의 선구자인 그는 1918년 개성에서 태어나 93세인 2011년 2월 1일에 작고하셨다. 황수영 박사의 스승은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사학자인 우현(又玄) 고유섭(高裕燮, 1905~1944) 선생으로 황 박사는 스승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강했다. 그는 스승이 남긴 유고를 정리하면서 본격적으로 미술사를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황수영 박사가 남긴 많은 학문적 업적 가운데 단연 독보적인 분야는 불상에 관한 연구인데, 1959년에 발표한 ‘서산 마애삼존불상 연구’가 그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불상 연구에 관심을 둔 것은 스승이었던 우현 고유섭 선생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고유섭 선생님께서 탑에 대해서는 많은 진전을 이루어 놓았기 때문에 나는 불상에 좀 더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국립부여박물관이 새로 발족하면서 고 홍사준(洪思俊, 1905~1980) 선생을 중심으로 백제 문물을 새로 조사했는데, 서산 ‘용현리(龍賢里) 마애불’과 ‘태안(泰安) 삼존불’을 발견해 불상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그 때마다 현장에서 함께 하며 수습과 보존 조치에 참여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일은 석굴암에 대한 연구와 보존, 그리고 문무대왕 유적의 발굴입니다. 고유섭 선생님에 의해 인도된 문무대왕 유적에 대한 관심은 능지탑(陵只塔)과 대왕암의 확인 보존,나아가 석굴암 본존 등 통일신라 불상에 대한 연구로 이어졌습니다.”

이 글에 황수영 박사의 불상 연구에 대한 내용이 잘 표현되어 있다. 평소 강의 때 전해들은 불상 연구에 관한 일화 가운데 특히 기억에 남는 것으로는 서산마애불 발견 소식을 듣고 현장에서 만났던 사람들과의 에피소드, 국보 제 83호 반가사유상의 원소재지를 파악하기 위해 경주에서 만났던 사람들과의 이야기, 연기군 비암사(碑巖寺) 불상의 발견 경위, 삼화령미륵삼존불(三化嶺彌勒三尊佛)과 〈삼국유사〉와의 관련성, 석굴암 불상과 문무왕릉과의 관계 등이다. 이때 선생님께서 직접 들려주었던 이야기들은 평생 동안 그가 이루었던 업적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1973년에 삼화출판사에서 발간한 〈한국불상의 연구〉는 우리나라 최초의 불상 연구서로 그의 불상 연구가 집약된 것이다. 그러나 이때까지 황수영 박사의 한국 불상에 대한 연구는 주로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에 한정되어 있었다. 이후 고려시대의 철불과 석불을 추가해 〈한국의 불상〉을 1989년에 문예출판사에서 다시 발간해 고려시대까지 연구 영역을 확장시켰다.

1998년에 80수를 기념해 〈황수영 전집〉 6권을 발행하였는데, 이 가운데 불상 관련 자료가 3권으로 묶여 있는 것을 통해서도 불상 연구에 얼마나 진력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유점사 53불, 반가사유상, 석굴암에 관한 저서를 별도로 출간하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한국 불상의 연구〉에 실린 연구를 분석해 보면 크게 네 가지 주제로 요약할 수 있는데, 백제의 미소로 알려진 서산마애삼존불상과 태안마애삼존불상을 비롯한 백제불상, 반가사유상, 삼화령 미륵삼존상, 토함산 석굴암 불상에 관한 연구이다.

첫째, 백제불상에 관한 연구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서산 마애삼존불상의 도상 해석이다. 학계에서 논쟁이 되는 것은 향좌측(向左側) 보주를 들고 있는 보살상의 존명으로, 과거불을 상징하는 제화갈라보살(提和竭羅菩薩)이라는 설과 관음보살이라는 설로 양분되어 있다. 황수영 박사는 서산 마애삼존불상의 본존불은 석가불, 향좌측의 보주를 든 보살상은 관음보살, 향우측의 반가사유상은 미륵보살로 파악하였다.

‘백제의 미소’로 일컬어지는 붓다의 자비를 한껏 발현한 환한 미소를 황수영 박사를 아는 이들은 불상의 미소를 통해 최초의 서산마애불상 연구자를 연결시켜 이야기한다. “이 불상의 얼굴 윤곽이 초우 황수영 선생님의 얼굴과 너무 흡사하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그리고 이 같은 사실을 선생님께 말씀드리면 본인 자신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서 이 백제미소상과 초우 선생님과의 깊은 인연을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고 홍윤식(洪潤植) 선생님은 회고한 바 있다.

둘째, 삼국시대 불상 연구의 중요한 주제인 반가사유상 연구에 매진하였다. 반가사유상 연구에서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반가사유상의 존명인데, 싯다르타 태자사유상이라는 설과 미륵보살상이라는 설로 압축된다. 이 가운데 황수영 박사는 반가사유상의 존명을 미륵보살로 해석하였는데, 그 근거를 김유신의 화랑을 ‘용화향도(龍華香徒)’라고 지칭했던 것에서 찾고 있다.

셋째, 경주 남산 삼화령 미륵삼존상에 대한 해석이다. ‘삼화령 미륵세존’으로 알려진 이 삼불상은 1925년 4월에 불상만 원위치로 추정되는 산 위의 석실에서 먼저 옮겨졌고, 두 보살상은 얼마 후 경주시 탑동 민가에서 발견되었다. 제각기 다른 장소에서 발견된 이 삼존상을 삼화령 미륵세존으로 명명하게 된 데에는 황수영 박사의 각고의 노력이 있었다. 경주 남산에서 옮겨온 불상을 〈삼국유사〉의 기록과 비교해 바로 충담 스님이 차 공양을 올렸다는 ‘삼화령 생의사 석미륵(生義寺 石彌勒)’으로 파악한 것은 그의 불상 연구에 기념비적인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넷째, 토함산 석굴암을 문무대왕릉과 감은사 등과 연계한 연구로 특히 토함산 석굴의 본존불상을 아미타불상으로 해석한 것이다. 현재 석굴암 연구에서 가장 주된 논쟁은 본존불상의 존명으로, 크게 석가불 · 아미타불 · 비로자나불이라는 세 가지 견해가 있는데 황수영 박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1891년에 쓰여진 ‘토함산석굴중수상량문’에 미타굴이라는 언급이 있고, 20세기 이전에 있던 유일한 건물에 아미타불상을 봉안한 전각을 뜻하는 수광전(壽光殿)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었던 점,석굴암 본존이 대왕암이 있는 동해구를 바라보고 있어 김 씨 왕족을 위한 원당(願堂)으로 삼았을 가능성이 큰 점,석굴암 본존이 석가여래 수인인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지만 이미 통일신라시대 불상 중에는 항마촉지인의 아미타불이 여러 점 있다는 것에서 서쪽을 향해 절을 하게 되어 있는 석굴암 본존불은 아미타불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황수영 박사의 〈한국 불상의 연구〉에 나타난 삼국 및 통일신라 불상에 관한 연구는 미륵신앙과 아미타신앙에 초점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륵신앙과 관련된 미술은 반가사유상을 비롯한 경주 남산 삼화령 석미륵삼존상이 대표적이고, 아미타신앙에 관련된 미술은 충남 연기 비암사 불상군, 군위 삼존석굴(軍威 三尊石窟), 경주 석굴암을 비롯한 불상들이다. 그는 삼국시대에 가장 유행하였던 신앙을 미륵신앙으로 파악했으며, 반가사유상의 유행은 미륵신앙의 반영으로 보았다. 특히 미륵신앙과 아미타신앙에 근거한 고대 불상 연구에 많은 족적을 남긴 황수영 박사의 업적은 후학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유근자

동국대학교 예술대학 겸임교수. 덕성여대 사학과를 졸업한 후 동국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강원도 문화재전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저서로 〈조선시대 불상의 복장기록 연구〉, 〈간다라에서 만난 부처〉 (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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