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저명론(270호)

불교미술을 철학적으로 탐구

 

종교는 신앙적, 추상적이지만 예술을 통하여 더욱 구상화, 구체화 된다. 그리고 예술은 종교를 통하여 한층 더 승화된다. 따라서 ‘종교미술’은 이 두 이상적 상태를 함께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삼국시대의 금동불상과 반가사유상 등 고대 한국의 불교 조각 예술인 불상에 대하여 미술사학적 연구는 물론이고, 더 나아가 종교적 · 철학적으로 그 원리를 탐구함으로써, 미술사학의 영역을 한층 확대 · 발전시킨 책이 강우방 선생의 대표작인 〈원융과 조화-한국 고대 조각사의 전개〉(1990년 열화당 刊)이다.

이 책은 각 불상 조각에 대하여 철학적 의미를 부여해 보고자 노력한 책이다. 또한 저자는 한국인의 시각에서 불상 조각에 대한 철저한 기초조사를 통해, 새롭고 독자적인 미술사학의 연구 방법을 모색했다.

강우방 선생은 동양 조각사와 한국 조각사의 종적 · 횡적인 연관성 아래, 불상을 개별적이고 심층적으로 분석함으로써 형식의 분석과 양식의 파악 그리고 제작기법 등을 규명했다. 그리고 다시 연대순으로 나열〔編年〕한 뒤, 이것을 바탕으로 예술적 · 종교적 · 역사적인 의미와 상징성에 대한 해석을 시도하였다. 아울러 중국 · 일본의 불상조각품들과의 공통점과 한국 불상조각만의 특징을 찾아내고자 했다.

이 책은 20년 이상 미술사를 전공한 저자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것이다. 미술사학의 영역과 수준을 예술의 테두리에 한정시키지 않고, 기존의 철학이나 문학, 종교학에 비견될 수 있도록 그 영역을 확대시켜 보자는 생각에서 쓴 책이다. 다시 말하자면 한 미술사학자의 학문적 도전과 모험이 깃든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시도는 아직은 시론적인 단계에 있지만, 분명 한국 미술사학을 한 단계 도약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특필해야 할 책이다.

강우방의 〈원융과 조화〉는 중수필(重隨筆) 형식의 시론(試論) 30여 편과 논문 10여 편, 그리고 600여 점의 도판이 수록되어 있는데, 주로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 즉 6세기에서 10세기 사이에 조성된 불교 조각(불상)에 대한 연구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 ‘한국미술사 방법론 서설’은 중수필로서 한국 고대 불상조각의 본질과 원리, 미술사학의 독자적인 연구 방법을 모색하였다. 그리고 2부 ‘삼국시대의 불교 조각’, 3부 ‘통일신라시대의 불교 조각’, 4부 ‘통일신라시대의 능묘 조각’, 5부 ‘통사적 시론’ 등은 모두 논문으로서, 삼국 · 통일신라시대 불상에 대한 개별적인 연구를 한 것이다. 미술적 고찰은 물론 교리적(종교학적) 해석까지 시도하고 있는 과감하고 대담한 책이다.

특히 1부 ‘한국미술사 방법론 서설’에 수록되어 있는 글 가운데, ‘미술사학의 독자적 방법론’, ‘불교 조각과 종교적 체험’, ‘불상조각의 원리’, ‘미술사학의 대상’, ‘본질과 현상’, ‘존재와 생성’, ‘상대의 탐구’, ‘불교와 예술 표현의 자유’, ‘실존적 자각과 정각(正覺)’, ‘자아의 탐구’ 등 중수필 형식의 글은 불상 연구에 대한 그의 관점과 삶, 학문세계를 잘 나타내 주고 있는 글이다.

이러한 글들은 문장도 매우 아름다운 데다가, 철학적 함의를 담고 있어서 독자로 하여금 경탄을 금치 못하게 하며, 그냥 한편의 수필로 읽어도 좋은 글이다. 더구나 불교예술에 대한 철학적 탐구는 저자가 추구하는 학문적 과제로서 이런 시도는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불상조각을 새로운 시각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불교 조각은 불교의 신앙과 사상의 구상화이다. 불교 조각의 양식 변화에서는 시대 양식이 가장 중요한 만큼, 그것은 불교의 신앙과 사상 및 사건의 전개, 즉 불교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나 양식 파악에 있어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일은 불교사상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것은 개인적 혹은 시대적인 종교 체험과 관련되며, 이것이 불교 조각의 형식과 양식에 근본적 영향을 끼쳐 왔기 때문에 미술사가도 불교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29쪽)

불교미술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불상에 대한 미술적 탐구는 당연한 것이지만, 연구의 근저에 항상 종교적 체험과 불교사상의 본질에 대한 연구가 병행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종교에 대한 이해 없이 그 종교의 미술을 이해, 고찰한다는 것은 미술적 이해의 선을 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불상은 부처를 조각한 것이다. 여래를 조각한 것이다. ‘깨달은 자’를 형상화한 것이다. 그러므로 조각에 있어서의 양감(量感), 면(面), 표면 구조 등 조형언어를 통하여 부처가 무엇인지 그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고 믿는다. 조각이야말로 경전보다도 더 직접적인 불교사상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추상적인 개념이 가장 물질적인 것으로 구체화한 것이 불상이기 때문이다. 그 조형언어를 바로 읽을 줄 알게 되었을 때, 부처의 본질에도 닿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25쪽)

‘가장 추상적인 개념이 가장 물질적인 것으로 구체화한 것이 불상’이라는 말은, 불상에 대한 미술적 탐구의 영역을 뛰어넘어 종교적 · 철학적 탐구의 집약이 아닐 수 없다. 그는 또 예술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예술은 창조의 세계이다. 끊임없는 창조의 작업이다. 자연과 현실을 변형시켜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작업이다. 그러므로 이미 고정된 문자의 개념으로는 끊임없이 고정된 개념들을 깨뜨리고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려는 예술의 창조적 세계를 표현하기 어렵다. 그것은 선종(禪宗)이 문자로 엮는 개념을 부단히 거부하는 작업과 근본적으로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의 창작 행위는 끊임없이 개혁적이고 초극적이다.”(18쪽)

그는 종교예술의 본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동양에 있어서 관념의 형상화가 종교예술의 본질이다. 관념은 궁극에는 현실이 된다. 우리가 행복한 삶을 추구하면 노력에 따라 그것을 얻게 된다. 정신적인 자비심은 윤택한 생활을 가져온다. 천국을 늘 상상하고 염원하면 천국이 실현된다. 그처럼 관념들, 숭고하고 아름다운 관념들은 신(神)들이 되고, 그것은 인간의 형상을 띠고 만들어진다. 관세음보살은 자비이고, 문수보살은 지혜이고, 아미타여래는 무한한 생명이다…….

수많은 부처가 시대의 부침을 타고 무량하게 만들어졌다. 한 국가의 부처가, 한 마을의 부처가, 한 개인의 부처가 만들어졌다. 조그만 금동불은 개인의 부처님이다. 무량한 중생들은 제각기 다른 근기와 소원을 지녔으므로 거기에 맞는 무량한 부처를 만들었던 것이다. 결국 그 하나하나의 부처는 우리 개개의 반영이다. 마음의 반영이다. 거울이다. 바로 그 부처들은 우리들이다. 우리들은 부처들이다.”(24쪽,「자아의 탐구」에서)

이상의 글들은 문장으로서도 아름답지만, 예술과 철학의 일치성을 나타내고 있다. 예술의 본질은 바람(기대)에서 싹튼다. 예술은 희망과 기원(祈願)을 바탕으로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불교조각사 연구는 궁극적으로 인간사의 탐구이다.(24쪽)”

“불교미술의 연구는 자아의 탐구이다.(25쪽)”

“관념의 형상화가 종교예술의 본질이다.”

“예술은 창조의 세계이다. 끊임없는 창조의 작업이다.”

등 불교미술과 예술에 대한 그의 개성미 넘치는 독특한 정의는 마치 한 구(句)의 명언을 감상하는 느낌이다.

또한 그는 불교에 대한 이해, 교리 사상적인 이해도 매우 높다. 불상에 투영된 불교 교의(敎義)에 대한 해석도 매우 명확하고 분명하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이해가 아니라 구체적인 이해이다. 특히 이 책 5부에 수록된 「경주 남산론」과 「한국 비로자나불상의 성립과 전개」는 아주 뛰어난 논문으로서 그의 학문적 업적을 대표하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강우방 선생은 1941년 만주 안동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독문학과를 졸업(1967년)한 이듬해 서울대 고고인류학과에 학사 편입하여 한 학기를 수학하고 중퇴했다. 그 후 일본 교토와 도쿄국립박물관에서 동양미술사를 공부하고, 미국 하버드대학 미술사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 문화재위원, 국립경주박물관장 등을 지냈다.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정년퇴임 후 ‘일향미술사 연구원’을 만들어 후학들에게 한국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근래에는 불교미술의 오류를 바로 잡고 그 가치의 재발견과 정체성 확립을 통해서 선도적으로 불교문화의 본질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저서로는 이 책 외에도 〈불교의 사리장엄〉, 〈한국 불상조각의 흐름〉, 〈미(美)의 순례〉 등이 있다. 특히 미술사학을 주제로 한 중수필집 〈미(美)의 순례 – 체험의 미술사〉는 이 책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책이기도 하다.

 

윤창화

민족사 대표이자 당송시대 선종사원 연구자. 1972년 해인사 강원 졸업(13회).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 졸업(1999). 저서로는 〈왕초보, 禪박사 되다〉, 〈근현대 한국불교명저 58선〉이 있다.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