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생로병사(269호)

지금 우리는 가을 중턱에 모여 있다. 가을은 고와서 마음까지 물들지만 머잖아 모두 겨울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가을은 생에 ‘노을이 내리는’ 시간이다. 풀벌레 소리가 떨어진 가을 산, 가을 숲으로 들어가 보자.

떨어지는 잎들. 저 잎들은 숲이 어디로 보내는 기별일까. 황홀하게 세상을 밝히고 떠나가는 저 잎들도 바람과 함께 부르던 지난 여름의 노래를 기억할 것이다.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보고 있으면 까닭 없이 눈물이 난다. 가을바람은 어디서 우러났기에 이리도 맑을까. 나를 벗기기에는 더 없이 좋은 시간들이다.

‘나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갈대들이 손을 흔든다. 저 흰 손들은 미소일까? 울음일까? 가을에는 사연을 지고 길 떠나는 사람들이 풍경이 된다. 모든 것이 간절해진다. 새들도 노래 한 섬 부려놓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낙엽을 밟으면 서늘한 기운이 올라온다. 누군가 등 뒤에서 나를 부르는 것 같다. 환청, 돌아보면 아무도 없다. 문득 누군가 부르고 싶다. 그래서 누군가를 부르면 목이 멘다. 가을에는 사람이 그립다.

‘많이 흘러왔구나.’

가을 햇살은 맑고 정직하다. 가을 햇살을 받으면 지난날이 보인다. 굽이침과 고요가 있고, 열정과 사랑과 미움이 섞여 있다. 돌아보면 지난날은 진정 무성했다. 태양은 뜨거웠고 젊음은 거침이 없었다. 하지만 가을은 ‘기어이, 마침내’ 오고야 만다.

잎을 떨구며 서있는 나무들, 그 사잇길을 걸어 외딴집에 가보자. 그 속에서 줄곧 쓰고 다니던 가면을 벗어보자. 문득 나를 있게 한 사람들, 그러나 지금은 내 곁에 없는 사람들이 떠오를 것이다. 기억을 뒤져 이름과 얼굴을 대조하다 보면 추억들이 몰려와 당신의 창을 두드릴 것이다. 껴안고 부비고 어루만졌던 것들은 어디로 흘러갔는가.

‘나는 정말 그 옛날의 나인가.’

사위에 서늘한 기운이 넘실대고 노을은 어느 때보다 차갑다. 머잖아 어둠이 쾌락의 끝자락을 덮을 것이다. 우리의 맥박은 결국 제 무덤을 파는 삽질 아니던가. 누가 늙음을 거부할 수 있단 말인가.

늙으면 가을 나뭇잎 같으니
어찌 누추한 처지로 푸름을 넘볼 것인가.
목숨은 죽음을 향해 내달리니
나중에 후회한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
목숨은 밤낮으로 줄어드니
때를 놓치지 말고 부지런히 힘써라.

- 〈법구경〉

어느 날 거울을 보니 ‘나’는 없고 늙은이 하나가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렇다, 우리는 서서히 늙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늙는다. 가을 산이 어느 순간 붉게 물들 듯이. 문득 살펴보니 외모 또한 형편없다. 삼단 복부, 이중 턱, 굽은 등, 흰 머리, 늘어진 피부, 처진 눈꺼풀…… 힘이 빠지고 기억은 달아나고 의욕은 감퇴한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반경이나 사색의 영역 속에 들어와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세상을 뜬다. 그렇다. 이제 진격보다는 철수를 준비해야 한다. 그렇다면 노년의 시간은 두렵고 잔인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 늙음에는 성찰이 들어있다. 혈기와 욕심을 다독거려 잠재우고 비로소 사물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 자신의 상처를 보듬거나 어루만질 수 있다. 추한 것, 비참한 것들도 익혀서 곁에 둘 수도 있다. 나이가 들면 서슬이 퍼랬던 분노와 미움에도 주름이 생겨난다. 가을햇살은 그래서 독하지 않다. 또 늙음에는 덕(德)이 들어있다. 덕은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쌓인다. 덕이 있는 사람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고맙게 여긴다. 젊은 날의 만용, 교만, 아집이 허물어진다. 사물과 사람을 보는 눈길에는 따스함이 스민다.

노년에는 삿되거나 날선 지식이 점차 빠져나간다. 그 자리에 지혜가 들어선다. 젊은 날 우리는 지식을 뽐내고 지식을 갈아서 무수히 남을 찔렀다. 그러나 정작 삶에는 무지했으니 자신을 찔렀음이었다. 지난날, ‘배움을 위해서 날마다 이것저것을 허겁지겁 섭취했지만 이제 도(道)를 위해서는 날마다 덜어내야 한다.(爲學日益 爲道日損)’ 지혜로운 늙은이는 세상을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본다.

비록 사람이 백년을 산다 해도
간교한 지식이 어지러이 날뛰면
지혜를 갖추고 조용히 생각하며
하루를 사는 것만 같지 못하다.

- 〈법구경〉

늙음의 시간은 짧지 않다. 어쩌면 생에서 가장 길수도 있다. 결코 잉여(剩餘)시간이 아니다. 무심하면 시간에 먹히고, 거부하면 삶이 곤궁하다. 무엇인가를 남기려 버둥거리면 세상에서 쫓겨나지만 겸손하게 자신을 지우는 사람은 스스로 세상을 떠날 수 있다. 그래서 정리하는 손길이 아름답다. 내가 없어도 세상이 무탈하게 잘 돌아가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세상에서 지워짐을 겁내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나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돌아보면 아슬아슬했다. 상처 주고 아픔을 받고, 슬픔 주고 눈물을 받고. 부질없이 많은 생각들을 키우고 그 생각 때문에 괴로워했다. 작은 바람에도 우리들 사랑은 흔들렸다. 우리들 믿음은 또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는가. 삶을 펼쳐놓으면 가슴이 먹먹하다.

삶이 추하다고, 못 낫다고 탓하지 말라. 모든 생은 나름의 향기가 있다. 자신의 삶을 남과 비교하지 말라. 저렇듯 곱게 물든 단풍처럼 지금 당신은 세상을 밝히는 빛이다. 그리고 당당히 사라질 것이다. 창조와 소멸은 서로의 꼬리를 물고 있다. 누군가가 미래인이듯이 우리도 누군가의 미래인이었다. 파도가 일었다 스러지듯이 우리도 그리 할 것이다. 모든 것을 삼킨 어둠, 그 어둠의 마음에 박혀 있다가 다시 탄생할 것이다.

떨어지는 나뭇잎 하나가 세상을 가라앉힌다. 귀 열면 노을의 노래가 들려온다. 평화로운 기운이 퍼져 나간다. 모든 수고가 발을 뻗는다. 부디 당신의 늙음에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하며 두 손 모은다.

 

김택근
시인, 작가이며 언론인.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경향신문 문화부장, 종합편집장, 경향닷컴 사장,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김대중 자서전〉 편집위원으로 자서전을 집필했다. 지은 책으로 산문집 〈뿔난 그리움〉, 동화집 〈벌거벗은 수박도둑〉, 〈새벽: 김대중 평전〉, 〈강아지똥별: 권정생 이야기〉 등이 있다. 최근 〈성철 평전〉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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