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생로병사(269호)

현대사회에 있어서의 노화

대한민국이 늙어가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1년에 40만 명씩 새로 탄생하는데 출생아는 40만 명에 미치지 못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200~300년 뒤에 대한민국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있다. 여기에서는 인구학적 입장의 노인인구 증가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고, 노화(늙음)의 현상에 대하여 논의해보고자 한다.

세상만사는 출생(生)으로 시작하여 죽음(死)으로 끝맺음한다. 그 과정에서 성장과 늙음과 병듦의 과정을 겪는다. 이 라이프 사이클(life cycle)은 인간만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삼라만상의 현실적이고, 역사적 과정이다. ‘성주괴공(成住壞空)’의 유전(流轉)과 같다. 사람 · 짐승 · 식물을 비롯한 국가 · 단체 등의 조직도 이 범주 안에 든다.

우리사회는 젊음을 추구한다. 젊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 좋은 것으로 자리매김 한다. 그리하여 사회통념과 사회적 가치의 ‘정(正)’으로 둔다. 반대로 늙음은 ‘부(否)’ 개념의 범주에 둔다. 그러나 꽃피는 봄도 아름답지만 단풍이 바위와 어우러지는 가을의 모습도 또한 아름다운 것이다.

옛날 노인들은 학덕과 경험을 가진 위엄 있는 노인이었다. 그러나 산업사회에 진입하면서 노인의 상(像)은 빈곤한, 그리고 병약한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보더라도 국가 · 사회를 위한 전쟁수행, 가정을 지키기 위한 희생, 사회발전의 원동력 역할을 해 온 세대가 현재의 노인세대다. 우리는 이 세대를 칭하여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린 희생자로 평가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회는 이 위대한 세대를 백안시하거나 무관심으로 대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시대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개인의 늙음(노화)의 과정은 핵심인에서 주변인으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늙음(노화)에 관한 주장

우리는 통칭 늙음(노화)이라고 하면 ‘생리적 노화’와 ‘사회적 노화’로 구분한다.

생리적 노화에서의 관점을 살펴보면 노화한 인체의 모든 생리적 기능이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퇴화하는 현상을 말한다. 말하자면 노화란 생명의 활기가 줄고, 모든 기능이 저하되는 현상인데, 특히 면역 기능이 저하되어 질병에 잘 걸리는 현상을 말한다.

노화의 원인은 두 가지 가설이 있다. 첫째, 세포에 의해 이미 프로그램 된 것. 둘째, 세포 밖으로부터 받은 손상에 의한 것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학자들의 견해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으나 결국 인체를 구성하는 세포의 문제로 집약시킬 수 있다.

이를 좀 더 살펴보면 ①소모이론으로 세포의 혹사와 남용으로 세포가 손상된다는 설(꿀벌을 실험대상으로 8시간 일을 시킨 것과 3시간 일을 시킨 것을 비교해 봤더니 일을 많이 한 벌이 일찍 사망했다는 주장임). 이는 생명속도(Rate of Living) 이론과 유사한데 제한된 양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어 천천히 사용하면 노화의 속도가 느려지고, 빨리 소모되면 노화가 가속된다는 것이다. ②사망호르몬이론으로 120억 개의 신경세포가 사망호르몬에 의해 신경세포가 소실된다. ③DNA 과다이론으로 유전자 오류가 추적되어 노화를 일으킨다. ④자가면역이론으로 자신의 조직을 외부에서 들어온 침입자로 오해하여 스스로 파괴시킨다. ⑤유전자 돌연변이(Gene Mutation) 이론도 있다.

학자들은 이러한 노화현상을 방지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①음식 섭취량을 감소해야 한다. ②유전자조작(cloning)으로 젊은 조직이 분화하도록 유도한다. ③사망호르몬(Death Hormone)의 탐색으로 젊음을 유지한다. ④정신적 · 육체적 운동을 한다. ⑤적절한 영양소를 섭취한다. 등을 말하고 있다.

또 마음이 노화를 좌우한다는 주장도 있다. 런던대학(University college London)의 앤드류 스텝토(Andrew Steptoe) 교수의 연구는 6000여 명의 성인남녀를 조사· 분석하였는데 스스로 건강하고 젊다고 느낄 때 수명은 결국 이 인식을 따라 간다는 것이다. 이런류의 사람이 8년이나 더 살았다고 보고하고 있다.

다음에는 사회적 노화에 관하여 살펴본다.

사회적 노화란 사회속에 있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관계망의 상호작용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지위와 역할 변화를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가에 따라 늙음(노화)의 정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대개 퇴직과 소득의 감소문제, 심신의 약화와 질병의 정도, 가족의 보호기능의 정도, 부모와 자녀간의 별거, 연락 접촉 빈도 등 양적 · 질적 변화와 정서적 유대관계 정도, 빈둥지 증후기간(emptynest period)에 대한 대처 정도 등이다.

우리나라 노인들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예비적 사회화 없이 노년기에 진입한 사람들이라 노후 적응의 문제나 경험적 사회 소외 문제에 대한 접근을 못하고, 바로 늙음의 문제에 봉착한 것이다. 따라서 젊은이의 시각에서 보면 노인들은 나이 값 못하는 계층으로 취급되며, 사회적 비난과 차별을 받는다.

또 현대화 이론에 의하여 젊은이들은 첨단기기와 전자제품에 대하여 능숙하게 다루는데 비해 노인들은 산업화 시대의 농사기술이나 방법에 정통할 뿐 현대사회에는 바로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노인의 사회화에 영향이 있다.

미국은퇴자협회가 밝힌 은퇴 후의 노화문제에 대하여 새로운 출발(re-tire)을 할 수 있고, 풍부한 여가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며, 친구를 사귈 기회가 많고, 호기심을 가지고 주위 일들을 관찰할 좋은 기회가 주어진다는 긍정적인 대안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노인들은 부정적인 측면의 사회적 스트레스를 가져오는 인생의 위기, 수입 감소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사회적 유대관계 상실로 인한 자존감 저하, 소외감 등이 더 크게 작용할 수도 있다.

성공적인 노화 그리고 장수

우리는 성공적인 노화를 경험하고 있는 분들을 만나게 되면 일반적으로 인생의 오복을 누리고 있는 분들을 말하는데 참고적으로 오복은 수(壽 : 오래 사는 것), 부(富 : 재산이 많은 것), 강녕(康寧 : 몸과 마음이 건강한 것), 유호덕(攸好德 : 마음이 덕이 있고 너그러운 것), 고종명(考終命 : 죽을 때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통 없이 숨을 거두는 것) 이라고 한다.

노인이 갖는 오복은 좀 다르다. 첫째 건강한 것(健), 둘째 배우자가 있는 것(配), 셋째 재산이 있는 것(財), 넷째 친구가 많은 것(友), 다섯째 일이 있는 것(事) 이라고 생각한다.

늙음(노화)의 문제를 다루다 보면 장수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몇 년 전 미국의 장수문제 전문가인 닥터 푼(Dr. Poon) 교수를 모셔다가 장수비결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는 장수하는 비결로 첫째, 기억력(good memory)이 좋아야 한다. 둘째, 긍정적인 사고(positive thinking). 셋째, 운동(sports). 넷째, 영양(nutrition)가 있는 식사. 다섯째, 일(works)을 들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노화학자인 유병팔 교수는 ‘소식다동(小食多動 : 적게 먹고 운동을 많이 하는 것)’을 강조한다.

닥터 푼은 우즈베키스탄의 타슈겐트 지방을 장수촌이라고 했는데, 그들은 우유 · 치즈 · 요구르트 등 유가공품을 즐겨 먹고 있었다. 특이한 점은 일평생 목욕을 3~4회 밖에 안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춥고 건조하기 때문일 것이라는 것이다.

일본인들이 세계 최고 장수를 누리는데 그들은 죽는 순간까지 일을 한다. 돼지고기 · 여주(수세미, 오이와 같은 박과의 식물) 등의 음식을 먹고, 소식을 한다. 또 낫토(納豆) 등의 콩음식을 즐겨 먹는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장수비결은 소식(小食)이었다. 집권층인 양반은 여색(女色)과 음주 등 사치풍조가 만연했지만 ‘내핍과 절약’을 생활화 하였다. 특이한 장수비결을 가진 퇴계 선생은 ‘활인심방’이라하여, 단전호흡 비슷한 수행방법을 즐겼고, 우암 송시열은 ‘요로법’이라하여 자신의 소변을 마셨다.

미국 스탠퍼드대 루이스 터먼(Lewis Madison Terman) 교수는 1,528명을 선정하여 80년간 직업, 결혼과 이혼, 자녀의 수, 사회적 성공, 직업적 성취도, 은퇴 후의 삶 만족도, 취미, 종교, 인간관계, 사망원인 등 총체적으로 조사를 했는데 그의 핵심적인 장수비결은 ‘성실성’이었다. 성실한 사람들은 책임감 있고,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쓰고, 건강을 지키기 위한 행동을 하고, 위험한 일은 자제하며, 술 · 담배 등을 멀리 한다는 것이다.

장소의 비결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 잠정적 결론을 내리자면 성실성을 분모로 하여 기억력, 편안한 생각, 운동, 영양, 일 등을 적절히 배분하면 될 것으로 보인다.

늙음(노화)이라는 것은 인생의 훈장이다. 늙으면 주름살도 생기고, 흰머리도 생기면서 인생의 연륜이 쌓이는 것이다. 거기에서 늙음(노화)의 존엄성이 생기며, 잘 늙는 것 자체가 인생의 원숙한 꽃을 피우는 것이다.

TV에 여가수가 나와서 노래를 부르는데 성형수술을 어떻게 했는지 자기 딸보다도 젊게 하고서 노래를 하는 걸 보면, 즐겁다기 보다 인생의 비애를 느낄 정도로 역겨운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늙음(노화)은 어쩔 수 없는 인생의 과정이다. 좀 더 자연스럽게 그리고 멋지게 늙는 사회를 만들었으면 한다.

황진수

한성대 명예교수. 동국대 법학과 행정학 박사, 대한노인회 중앙회 선임이사, (현)위덕대 석좌교수, 대통령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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