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생로병사(269호)

단풍이 아름다운 길을 걸었다. 바람이 불어 붉은 잎이 날릴 때마다 사람들은 운동경기장에 온 듯 환호했다. 누군가 말했다. 이때가 제일 좋을 때지, 그 말에 공감했지만 돌이켜보면 꽃 핀 봄도, 녹음 우거진 여름도, 눈 쌓인 설경도 아름다웠다. 그런데도 지금이 좋다고 감탄하는 것은 우리에겐 지난 시간보다, 앞으로 올 미래보다 지금이 소중하기 때문 아닐까.

생명은 태어난 자체로 아름답다. 존재성을 획득한 생명의 경이로움은 두 아이를 얻고 알았다. 곤궁한 생활이나 신체의 건강 여부를 떠나 무조건 기쁘고 즐거웠다. 살면서 느닷없이 가슴을 후벼 파는 아픔과 괴로운 순간도 있었다. 잠깐씩 선택에 대한 후회는 있었지만 새 생명을 잉태하고 세상에 있게 한 기쁨은 잊히지 않았다.

어느덧 대학생이 된 아이에게 과일을 깎아달라고 했다. 과도를 든 아이는 한동안 사과를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만유인력은 뉴턴이 벌써 발견했는데, 뭘 또 발견하려고. 아이의 답은 간단했다. 어떻게 깎는지 모르겠어.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넘겨짚었는데, 그 일 자체를 할 수 없다니. 기막히고 한심했지만 피식, 웃음이 났다. 아닌 척했지만 그 나이 때 나도 그랬으니까. 서른이 다되어 결혼할 때 할 줄 아는 것은 밥과 간단한 국끓이기 정도였다. 자기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능력으로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았다. 그랬던 내가 못하는 거 빼놓고 다하는 주부 9단이 되었다. 쉬었던 공부를 하고 글을 쓰고 가끔 남들 앞에서 강의도 한다. 이 세상 어디를 둘러보아도 처음부터 잘하는 것, 처음부터 완성된 것은 없다. 이십 대의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내 인생에 일어났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늙는다는 것은 어떤 일에 능숙해지고 또 다른 무엇을 완성할 가능성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쉰여덟의 친정어머니는 약간 흰머리, 가는 눈주름, 전전긍긍하며 낱말을 설명하던 모습으로 기억 속에 남아있다. 어머니가 임종하기 전 한 달을 병원에서 보냈다. 이십 대 초반 철없던 나는 보호자 침대에 앉아 어머니 이야기를 들었다.

“니가 벌써 스물둘이냐, 셋이냐? 한창 좋을 때다. 근데, 이렇게 병원에 있으니 어떡하니? 미안해서.” 어머니는 걱정돼서 하는 말이었지만 내겐 모두 의미 없는 말로 들려 이야기는 언제나 감정대립으로 끝났다. 서운함과 속상함에 한참을 말없이 앉았던 어머니가 침대에 몸을 눕히며 마지막으로 하던 말은 늘 같았다. “내 나이 돼 봐라, 이것아.”

그때는 잘 알지 못해 그 말이 참 서운했다. 나는 엄마와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온갖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내는데, 엄마는 ‘너는 아직도 내 마음을 알려면 멀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내가 뭘 몰라. 엄마야말로 내 맘 모르지.” 무뚝뚝하고 붙임성이 없던 나는 뾰족한 말로 엄마 마음을 긁었다. 한 마디만 참았더라면 엄마는 더 많은 말을 내게 풀어 놓았을 텐데, 그랬다면 더 많은 추억을 쌓을 수 있었을 텐데, 뒤늦게 후회할 때가 많다.

어머니가 계셨더라면 나이 든다는 것을 좀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았을까. 찜질방에 앉아 지난 이야기를 하고 팔순의 생신 상을 차리며 늙어가는 것에 대해 막연한 서글픔이나 두려움은 덜 갖게 되었을 것 같다. 어머니 몸에 각인된 삶의 역사를 찬찬히 새기며 내게 다가오는 시간을 여유 있게 받아들일 준비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친구들 모임에서 나온 말이다. “지금의 생물학적 나이는 과거보다 10년을 더 낮게 잡아야 한 대.” 그 말을 적용하면 내 나이는 겨우 마흔넷이다. 그뿐인가.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황당하면서도 위안이 되는 말도 있다. 그렇다고 양심 없이 십 년 세월을 거스르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늙는 것이 어떤 것의 중단이나 상실을 가져오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때, 어린 나를 앞에 둔 어머니는 당신에게 주어진 짧은 시간을 예감하셨는지 모르겠다. 해 주고 싶은 것, 알려주고 싶은 것이 너무 많은데, 화살처럼 지나가는 한 시간, 하루, 며칠의 병원 생활이 짧게만 느껴져 마음이 조급했는지도 모른다.

늙음은 느려지는 것이다. 젊어서는 눈만 뜨면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고 어머니는 이야기하곤 했다. 프로그램이 내장된 로봇처럼 일하고 아이들 돌보고 모든 의식주를 해결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손발의 움직임과 머리 회전이 둔해진다. 새로운 것 하나를 익히려면 몇 날 며칠을 씨름해야 겨우 알 듯 말 듯 한 단계에 이른다. 그때 병실에서 어머니가 느꼈던 서운함과 오십이 넘은 내가 간혹 아이들과 부딪치며 느끼는 서운함은 같은 맥락일까.

어머니 다음 생의 소원은 새가 되는 것이었다. “하늘에 나야지. 왜 축생계에 나고 싶어?” 하고 물으면, “이번 생에 못 했으니 다음 생에는 어디건 마음대로 다니는 새가 될 거다.” 라고 했다. 쉰여덟에서 정지된 엄마의 늙음은 쓸쓸함과 상실감으로 기억되지만 한편으로는 잘 늙어가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하게 한다. 늙음이 늙음을 이해할 때 노년은 행복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 몸은 달라졌는데 정신만 과거의 것으로 남겨두었다가는 금세 문제가 일어날 것이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좋든 싫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불필요한 갈등이나 마찰을 막을 수 있다.

어떤 고도의 과학이론으로 변수를 적용해도 우리는 늙는다. 심한 일교차, 강한 햇빛 등 험난한 외부환경을 겪은 잎이 화려한 빛깔을 만든다고 한다. 하지만 아름다운 정도는 달라도 모든 나뭇잎은 단풍 후에 지고 우리 삶 또한 그것과 다르지 않다.

이종숙
1964년 용인 출생. 2013년 계간 〈불교문예〉 소설부문 신인상 등단. 여행 에세이 〈오늘은 경주〉 출간. 불교문예 편집장 역임, 현재 (주)얘기꾼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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