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의 눈(268호)

우리는 하루 중 죽음이라는 단어에 얼마나 많이 노출되어 있을까? 우리는 방송매체를 통해, 주변과 지인들의 죽음을 접하면서, 누구나 죽는 존재라는 것을 알지만 큰 두려움으로 마음 한편에 그 사실을 담아두고 있다. 그러나 죽음의 30% 정도는 교통사고 · 추락사 · 심장마비 등 갑작스럽게 다가와 예측을 할 수가 없다. 과거에는 자다가 그대로 임종하는 게 좋다는 개념도 있었지만 요즘에는 3~6개월 정도 삶을 정리할 시간이 주어지는 암이 오히려 축복 받았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이런 개념의 연결에 호스피스 완화의료(緩和醫療)가 있다. 호스피스는 완치가 불가능하여 죽음이 예견되는 환자와 가족의 신체적ㆍ정서적ㆍ사회적ㆍ영적 증상들을 돌봐주어 삶의 질을 높이는 것으로, 잘 죽기 위함이 아니라 죽기 직전까지 잘 살기 위한 돌봄이다.

왜 호스피스인가?

본래 ‘호스피스’는 ‘피로한 여행자들을 위한 휴식처’를 의미하는 용어로, 영국의 경우에는 11세기 수도원을 중심으로 확산되었다. 특히 대만은 증엄(證嚴) 스님의 자제공덕회(慈濟功德會) 봉사활동으로 우리 불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는데, 2000년부터 호스피스 완화의료가 국가보험으로 지정되어 탄탄하게 운영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65년 강릉 갈바리의원에서 마리아의 작은자매회가 호스피스를 처음 시작하였고, 이는 아시아 최초였다.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실행하는데 중요한 세 가지는 팀 구성 · 자율권 · 나쁜소식 전하기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죽음은 신체적인 죽음만이 아니기에 호스피스는 의료진뿐 아니라 사회복지사, 종교인, 자원봉사자 등의 팀으로 구성된다. 의료진은 그 동안 익숙해 왔던 환자를 살리기 위한 의료뿐 아니라, 잘 돌아가시게 하는 다각도의 연구(특히 통증조절)와 실행이 절실히 필요하다.

특히 호스피스 기관에 말기 환자가 왔을 때 죽음의 두려움에 대한 영적 돌봄과 통증조절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호스피스 기관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서는 말기환자 스스로의 결정, 즉 본인의 자율권도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가족의 연계성이 강한 편인데 특히 어머님들은 말기 환자가 되어서도 본인의 치료 계획을 가족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다.

호스피스 완화의료는 크게 대학병원 · 요양병원 등의 기관에서 하는 방법과 가정 호스피스로 나뉜다. 내년 2월에 호스피스와 연명의료법이 전체적으로 시행된다. 말기질환 중 암 · 후천성면역결핍증 · 만성폐쇄성 호흡기질환 · 만성간경화 등이 그 대상이다. 연명치료중단을 결정해도 통증완화 · 물과 영양분 공급 · 산소의 단순 공급 등은 중단하지 않는다. 연명치료중단결정에는 심폐소생술 · 호흡기사용 · 항암제 사용 등이 포함된다. 연명치료중단은 건강할 때 작성하는 ‘사전연명의향서’가 있고, 이것은 공공기관에 보관된다. 혹은 호스피스기관에 말기환자가 입원하여 의사가 작성하는 ‘연명의료계획서’가 있다.

현재 호스피스를 이용하는 기간은 약 3주로 의식이 없는 상태로 들어오는 경우도 많고, 어떤 경우는 돌아가시기 하루 전에 호스피스 기관에 오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사전연명의향서’를 써 놓지 않고 의식이 없는 상태로 호스피스 환자가 입원할 때는 환자의 자기결정에 문제가 생기고, 의사 2명과 보호자 전원의 일치된 의견이 필요하기에 복잡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러기에 인간존엄 · 자기결정을 위해서는 호스피스에 대한 공부뿐 아니라 건강할 때 작성하는 ‘사전연명의향서’의 작성이 중요하고, 의식이 있는 상태로 호스피스 기관에 들어 와서 삶을 정리하는 충분한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호스피스가 잘 정착하기 위해서는 ‘나쁜소식 전하기’도 중요하다. 환자 스스로가 말기암이란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임종하는 경우가 30% 이상인데, 이는 환자 보호자 입장에서 환자가 받을 충격과 실망으로 치료를 포기할까봐 환자에게 말기라는 점을 알리지 않기 때문이다. 말기임을 알리는 ‘나쁜소식 전하기’는 보통 담당의사가 하게 되기에 그 동안 미비했던, 의사에 대한 교육 또한 필요한 게 현실이다.

뒤쳐진 불교계 호스피스 활동

2010년 필자는 5개월 동안 7번을 입원한 바 있다. 이 기간 동안 수많은 환자를 보면서 정작 내 자신의 죽음에 대해 무지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생각보다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은 컸다. 특히 사회적인 죽음인 ‘내가 다시 의사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까?’하는 괴로움에 사로 잡혔다. 죽음의 최전선에 있는 의사이며, 열혈 불자라고 스스로 생각했지만, 큰 충격을 받게 되었다. 내가 또한 우리 불자가 평상시 죽음에 대한 공부, 불교적인 죽음관에 대한 공부와 준비를 너무나 하지 않았고, 어떤 불교적인 죽음의 가이드라인을 쉽게 찾아볼 수도, 물어 볼 수도 없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다행히 1년 뒤 쾌차해 강남성모병원의 호스피스연구소에서 호스피스 표준과 심화과정을 마쳤고, 불교계에서 웰다잉 강사를 양성하는 불교여성개발원의 웰다잉센터의 교육위원이 되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타종교의 호스피스기관에서 공부를 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되었는데, 어느 누구도 본인의 종교를 강요하지 않았고, 입원한 불교 환자에게 필자도 잘 모르는 찬불가를 기타를 치며 들려주는 모습을 보며 불자로서 큰 반성을 하게 되었다.

자원봉사를 위해 미용자격증을 따고, 말기환자의 보호자를 위해 점심을 지어 대접하고, 말기환자의 마지막 소원(바닷가 가기, 못한 결혼식 등)을 들어주기 위해 매달 기부하고, 환자의 장례식과 장지에서 보여주는 봉사자의 아름다운 행동을 보면서 마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특히 잊혀지지 않는 것은 각각의 기도문을 곳곳에 부착하고, 모든 회의와 환자에 대한 행동에 앞서 기도를 한다는 점이었다.

임종증상을 보이면 임종방에서 찬송가를 틀고, 임종 전후에 환자·보호자 · 수녀님과 봉사자가 함께 하는 기도와 찬송은 장엄하고 아름다웠다. 그들은 이미 많은 상황에 대한 기도와 찬송을 준비한 매뉴얼이 있어, 시기별로 적절하게 기도하고 찬송해 환자와 보호자에게 영적 안정을 주었다. 또한 믿음(주님과 천국에 태어남)을 주어서 환자와 보호자가 겪는 영적고통을 줄여주었다.

반면 불교의 경우는 스님들의 신도 병문안과 임종기도와 염불이 부족한 현실이고, 몇몇 불교단체와 사찰에서 염불회를 조직·운영하고 있지만 수적으로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필자가 입원했을 때도 스님 한 분과 도반 2명만이 병문안을 와 주었다. 6년 전 친할머니가 돌아가실 때는 돌아가시기 직전 어렵게 법명을 만들어 드리고, 시달림을 해드렸던 경험이 있다.(할머니는 매일 두 시간의 독경을 하셨던 분으로 법명이 없으셨다.)

타 종교 신도의 장례를 도와주는 조직인 연령회의 헌신적인 활동과 장엄한 임종미사, 환자가 속한 교회와 성당에서 조직적으로 병문안을 와서 함께 기도하며, 보호자도 잘 만지지 않는 발을 만져 주면서 위로하는 모습은 불교와 대비되는데, 실제 이 과정에서 많은 불자들이 개종을 하고 있다.

실제 보호자 중에 누구 하나라도 다른 종교를 신앙하고 있을 경우, 불자인 말기 환자가 잠깐 의식이 깨끗하지 않을 때, ‘그분을 믿습니까?’하고 질문을 하고, 환자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떡여서 바로 개종이 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그리고 불자인 딸과 며느리는 가족의 화평을 위해 부모의 개종을 묵인하곤 했다.

불교는 죽음을 ‘돌아간다.’고 표현하면서 어떤 종교보다도 인과응보와 윤회를 통해 명확한 죽음관을 이야기하는 종교이다. 앞서 개종의 사례는 불자의 불교적인 죽음관에 대한 믿음과 공부의 부재 때문이고, 스님들의 관심 부족과 신도조직(특히 포교사, 염불회 조직 등)의 활동 역량의 부족이 원인이다. 무엇보다 종단과 스님들의 관심이 필요하다. 특히 말기 진단을 받을 때 병실과 임종실에서 말기 환자와 보호자가 보고, 지침 삼을 수 있는 표준화된 기도와 염불에 대한 책자와 영상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실제 호스피스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환자 · 보호자 혹은 봉사자로 호스피스를 경험한다면 말기 환자가 마지막 몇 주까지도 항암치료를 하면서 삶에 대해 집착하고, 삶을 정리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호스피스 완화 돌봄을 받으면서 주위를 차분히 정리하고, 용서하고 용서 받으며 가족과 ‘사랑하고 고맙다.’는 말을 나누고, 종교가 있다면 내세를 믿고 영적성숙을 이루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임을 확연히 알게 된다.

호스피스, 본인 · 가족에 포교효과 커

필자가 아플 때 감명 깊게 읽은 책이 인광대사의 〈임종삼대요〉다. 내용은 임종인을 안심시키는 말을 들려주고, 보호자들이 울지 말고 보호자와 도반들이 환자에게 연속으로 염불을 같이 해주고, 임종 후에도 일정 시간동안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책을 보며 이것이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고 ‘나와 내 주변 분이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때 위로되는 말과 염불을 해드려야 되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때 임종의 순간에 청각의 중요성을 알게 됐는데, 실제 인간의 감각 중에 가장 늦게까지 남는 게 청각이라고 한다. 타 종교에서는 임종 후 두 시간까지도 임종자에게 좋은 이야기(감사의 말, 안심의 말)를 들려주도록 격려하고 있다.

나이 쉰에 갑상선암으로 임종한 분은 남매의 나이도 20대 초반으로 젊었다. 남매는 울기만 할 뿐 어머님에게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못했다. 임종의 순간이 얼마나 힘들지, 그 순간 아름다운 마음을 먹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생각할 때 보호자의 위로의 말 “어머니 저를 너무 훌륭히 키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니 뜻에 따라 열심히 살겠습니다. 좀 있다 어머니 만나 뵐게요.”, “아미타부처님께서 맞이해 주실 거예요. 같이 ‘나무아미타불’ 염호하세요.” 등은 정말 소중하고 중요하다. 불자라면 나와 우리 주변을 위해 공부하고 준비해서 이런 순간에 기도와 염불, 안심의 말씀을 해드리고, 부처님의 자비광명 속에 돌아가시게 해 드려야 한다.

호스피스에서는 의료진 뿐 아니라 사회복지사, 스님, 봉사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70세의 노인이 직장암으로 호스피스 기관에 왔는데 부인과는 사별을 하고, 아들과는 관계가 좋지 않아 혼자 살고 계셨다. 환자는 혼자 살았기에 기관에 온 것을 절망하기보다 오히려 좋은 식사와 봉사자들의 따뜻한 대화에 잘 적응했는데, 그 모습이 안타까웠다.

환자의 상태가 점점 나빠지면서 사회복지사와 스님이 아들에게 연락해 아버님을 아름답게 보내자고 설득했다. 그날 아들은 대답없이 돌아갔지만, 다음 날 가족을 모두 데리고 나타나 환자는 임종까지 한 달 동안 아들과 며느리, 손주의 방문과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이런 어긋난 가족관계를 호스피스 팀에서 풀려고 노력하고, 실제 풀어내고 있다.

불교도 자재병원 능행 스님을 비롯해 전국의 병원전법단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지만 규모면에서 미약한 게 현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부처님은 ‘대의왕(大醫王)’이라 불리시고, 부처님 당시에는 의사가 승려인 경우가 많았다. 아쇼카왕은 불교의 전도를 위해 의학을 인정하기도 했다.

또한 부처님께서는 고행을 통해 중생과 병, 비극적인 삶, 괴로움의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하는 길을 우리에게 알려주신 분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당연히 노병사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을 해야 한다. 이렇게 불교는 호스피스에도 원조이지만 우리는 부처님의 훌륭한 말씀을 보석으로 만드는데 소홀했다.

불자 인구 감소로 우려의 소리가 높다. 이럴 때일수록 각 사찰에서 아프거나 거동불편으로 사찰에 오지 못하는 노보살님에 대한 말벗봉사단을 조직하고, 지역의 중병과 말기환자를 파악해 적절한 문병과 기도 염불을 한다면 그 가족에 대한 포교효과가 크리라 생각한다.

무연고 사망에도 관심 가져야

불교호스피스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스님들의 관심과 활동이 제1순위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간병의 공덕을 강조하고, 봉사단을 조직해 49재를 지내는 가족까지도 위로할 때(49재 후 별도의 날을 정해 보호자들과의 차담은 큰 위안이 된다.) 불교호스피스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은 고독사와 무연고 사망이다. 무연고 사망은 작년에 1,200여 명으로 유가족 무연고 사망이 더 많다. 장례를 생략한 채 공영화장을 하고 무연고 추모의집(경기 파주)에 모셔진다. 서울시와 연계한 단체들이 장례를 지내주고, 불교계에서도 여러 스님과 사찰에서 무연고 장례와 49재를 지내고 있지만, 사회문제인 고독사 방지를 위한 활동까지는 힘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노령화, 고독사 문제가 우리보다 심각한데 쓰레기를 대신 치워 주고, 기척이 없을 경우 주민센터에 연락하는 시스템과 전기사용량 체크 등으로 고독사를 막기 위한 노력에 분주하다.

호스피스에 관한 정보는 인터넷에서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국립암센터(호스피스완화의료실), 국가암정보센터, 호스피스완화의료, 암성통증관리지침권고안 등을 검색하면 된다. 일반인을 위한 호스피스 표준교육도 있으며, 울산 자재병원과 불교여성개발원에서도 웰다잉과 호스피스, 병원봉사자 등을 교육을 하고 있다.

불교여성개발원이 2011년 진행한 웰다잉교육 심과화정에 참여한 참가자들.
호스피스 환자에게 이발을 해 주고 있는 서울북부병원 호스피스 봉사팀.
서울북부병원의 권영숙 봉사자가 일지를 작성하고 있다.
호스피스 봉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웰다잉 강의를 듣고 있다.
2017년 불교여성개발원 산하 생명존중운동본부 창립 발족식.
서울북부병원 호스피스병동 ‘세발봉사’ 팀.
봉사자가 환자의 손을 잡고 기도를 해주고 있다.

 

임정애

건국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 불교여성개발원 생명존중운동본부(웰다잉호스피스센터와 병원봉사자교육센터 포함) 본부장과 대한통증학회 호스피스완화연구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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