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은 ‘NO’ 속은 ‘YES’ 상호 관계 재정립 필요


시대가 변하면 사람의 사고와 생활방식도 바뀝니다. 종교도 이런 변화에 순응해야 합니다. 최근 길거리에 등장한 점(占)집과 사주카페 등을 볼 때마다 미신으로만 여기던 (무속을 제외한) 점을 대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변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이른 감이 없지 않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불교의 시각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특집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선입관을 버리고, 21세기 불교에 보탬이 되는 길을 모색하는 자리가 되길 기대해봅니다.  편집자


 


서울 종로나 인사동 거리를 거닐다보면 사주, 관상, 타로점 등의 단어를 적어놓고 호객을 하는 노점상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주로 젊은 층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는 이들은 3,000원에서 1만 원 정도의 복채를 받고, 애정·직업·재산운 따위를 봐준다. 서울 종로 1가, 강남역, 신촌 등 젊은 층이 많이 모이는 거리에서는 ‘사주카페’라는 간판도 쉽게 볼 수 있다. 차 한 잔 마시는 여가시간을 이용해 흥미삼아 사주 따위의 점(占)을 보는 젊은이들의 세태를 보여준다.

젊은이들만 점을 보는 것은 아니다. 점은 우리가 의식하지 않은 사이에 일상 속 깊숙이 파고들어 와있다. 신년을 맞아 한 해의 운수를 알아본다거나, 결혼을 앞두고 예비신랑신부의 사주로 궁합을 보는 행위, 아이를 낳은 후 이름을 짓고, 이사를 할 때 날을 잡는 행위도 넓은 의미에서는 점에 포함된다. 이를 감안할 때 어떤 종교를 신앙하는지를 떠나 우리 국민들 중에 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이는 몇이나 될까?

무속과 점(占)의 차이
우리 국민들이 선호하는 대표적인 점은 사주(四柱)다. 사주는 운명이나 궁합, 택일 등 다양한 형태로 적용되고 있다. 다음은 관상 및 수상. 최근에는 동양 점성술인 자미두수, 서양 점성술이 개량됐다는 타로점, 중국에서 유래돼 주역의 괘를 이용한 육효점 등이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들 점들은 종류에 따라 특징이 나눠진다. 사주나 관상을 주로 중·장년층이 선호한다면 이외 점들은 젊은 층에 인기가 높다. 마찬가지로 중·장년층은 사주와 관상에 삶의 방향을 의지하는 성향이 강한 반면 이외 점들은 흥미, 재미, 유희거리로 여길 뿐 미신적 색채는 약하다.

다만 무속은 예외다. 토속신앙의 지류에서 발전한 무속은 신내림을 받은 무당이 해당하는 신을 모시고 주술행위를 한다는 점(일종의 성직자)에서 낮은 단계지만 종교적 성향을 지니고 있다. 실제 신도에게 맹목적 믿음을 강요해 자칫 폐단이 발생할 소지가 다분하다. 또 앞서 언급한 점은 기본 지식(테크닉)만 익히면 누구나 점을 봐줄 수 있어(무속인과 달리 신의 대리자가 아니다) 종교성이 배제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본지의 이번 기획에서는 무속은 배제했음을 미리 밝혀둔다.

부처님은 경전 통해 부정
혹자는 산신각, 칠성각 등을 예로 들면서 불교가 한국에 전래된 초기 토속신앙을 포용한 사례가 있는 만큼 점을 불교로 인정할 수는 없더라도 불교 테두리 안으로 받아들일 수는 있지 않느냐고 말한다. 하지만 스님들과 불교학자(특히 초기불교 전공자)들은 불교와 점은 절대 함께 어우러져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여러 경전을 통해 이같이 강조하셨다는 게 그 이유다.

《아함경》을 보면 ‘점을 통해 사람을 속여 재물을 구했던 점쟁이가 활활 타는 쇠로 된 맷돌을 머리에 이고 고통을 받는다’며 점쟁이가 악업에 따른 과보를 받는다거나, ‘진리를 본 사람은 점치는 것을 믿지 않아야 하며, 굿하고 점치는 일을 버려야 참다운 부처님의 제자’라는 내용이 나온다.

그럼, 점을 치지 못하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함경》에는 전생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당부의 말씀도 나오는데 이를 통해 유추할 수 있다. “이치에 맞지 않고, 법(法)과 올바른 행실[梵行]에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지혜나 바른 깨달음도 아니며, 열반으로 향하지도 않기 때문”이라 언급하고 있다. 즉, 수행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삿된 견해로 빠지게 할 소지가 있기 때문에 금기시했다고 볼 수 있다.

조계종 총무원 기획국장 미등 스님은 “점은 주된 목적이 위로와 희망을 주기 위한 방편이 아니라 점을 봐주는 사람의 호구지책이 돼 문제”라며 “불자는 부처님 가르침대로 연기의 원리를 깨닫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전재성 한국빠알리성전협회장은 “사주는 시간이 운명을 결정한다는 타자원인설에 기인한 것으로, 자기 자신의 노력을 배제한 것으로 불교의 연기설 입장에서 보면 극단적으로 잘못된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무속은 미신, 신앙심 오염
사주 몰입도 경계 대상

동·서양 점, 젊은 층에 인기
“현대적 포교 활용” 주장도

금기 불구, 잔재 남아 있어


경전의 내용과 불교계의 현실은 차이가 있다. 실제 사찰에서는 신년에 신도들에게 삼재(三災)가 들었다며 등(燈)을 밝히라 권한다. 입춘이나 윤달에도 불공을 올린다며 신도들을 모은다. ‘삼재’란 단어는 불교에서 유래됐지만 도교적 성향과 결합한 후 왜곡돼 현재 역술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입춘, 윤달 등도 민속의 절기이지만 불교에 녹아든 사례다. 그럼에도 이런 명목으로 부적(도교적 영향)을 파는 사찰을 쉽게 볼 수 있다. 점이 불교에 얼마나 깊숙이 파고들어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불교종단협의회에 등록된 종단 중 일부는 무속행위를 통해 돈을 벌어서 사찰과 종단을 세운 경우도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무속인이 돈을 번 후 삭발염의를 하고, 법당을 짓고 염불을 외우며 불교 사찰 또는 종단으로 등록할 경우 기준이 모호해진다. 이들을 무속인으로 봐야할까, 스님으로 봐야할까. 상황이 이렇다보니 스님에게 점을 봐달라는 둥 불교와 점, 무속을 혼동하는 불자들마저 적지 않다.

여기에는 불교에 기대어 영업을 하고 있는 무속인들의 행태에 원인이 있다. 이들은 간판에 불교를 암시하는 ‘만(卍)’자를 써놓거나, 간판에 ‘xx암’ 등을 써놔 사찰로 오인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무속인들은 스님들과 불교에 대한 품위를 손상시키는 주된 원인이다. 이제는 무속과 점, 그리고 불교와의 관계성을 정확히 정립할 필요가 있다. 조계종을 중심으로 한 불교종단들이 오늘날 고민해야 할 화두다.

인식 변화 따라 공개 논의 필요
불교계 일각에서는 “시대가 변화하면서 주체성이 강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점을 대하는 성향이 크게 변하고 있는 만큼 불교계도 점을 바라보는 시각이 교정돼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불교가 인과법을 기본교리로 삼기 때문에 인과와 무관한 미래의 예측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논리는 지극히 옳다. 하지만 점에 관심을 갖는 젊은 층이 친불교적 성향을 지녔음을 감안할 때 재고의 여지가 있지 않느냐는 주장이다.

동방대학원대학교 신성수 교수는 “불교계에서도 법문 위주의 포교 방식에서 벗어나 현대적 포교 방법이 도입돼야 한다”면서 “‘점’을 대중교화의 한 방편으로 봐 달라”고 주장했다. ‘부처님을 현대식 상담학의 대가’라고 강조한 신 교수는 “낮은 근기의 방편이라고 버릴 경우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수도 있다”면서 “강압과 위압적인 방법으로 신도를 대하기보다 상담의 기법을 잘 활용해 영리가 아닌 선의의 목적으로 이끌수 있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동방대학원대학교 박상만 교수도 “불교계는 예로부터 솔개를 날린다던가, 연을 날리면서 절터를 정해왔다. 이는 길흉이 아니라 행위를 결정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점과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고 말하면서 “탄허 스님이 주역을 《주역선해》를 통해 강론했듯이 주장자를 들고 ‘할’을 외치는 구식 포교 방식에서 벗어나 근기가 낮은 중생을 위해 현대적 포교방식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교수의 주장은 점에 대해 충분한 검토없이 점을 비불교적 행위라고 단정짓지 말고, 선입관 없이 바라봐 달라는 것이다.

이후에도 비불교적이라 판단된다면 불자들이 향후 이런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적극 계몽하는 것은 종단과 스님들이 해야 할 역할이다. 태고종 대외교류협력실장 법현 스님은 “비난만하고 방치해 두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범불교적 차원에서 바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지도하고, 그렇지 못한 수행자나 신도들이 불교의 본질로 돌아오도록 기준과 지침, 프로그램과 교육 등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점은 21세기를 맞는 불교가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화두의 하나임에 분명하다.  . 힘들다면 그 이유를 찾아야지, 맹목적으로  점괘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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