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없는 폭우와 연이어 기승을 부린 폭염으로 힘들었던 여름이었습니다. 국토 곳곳을 할퀸 수마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더위 속에서도 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지구 전역을 휩쓸고 있는 기상 이변은 이제 우리들 삶에도 그늘을 드리우고 있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자연 재해로 모두들 힘겨워 하고 있을 때, 우리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만든 일이 있었습니다. 아프카니스탄에 선교 축제를 벌이겠다고 출국한 수천 명의 한국인들의 행동을 둘러싼 의견이 한 동안 분분하였습니다. 정부는 이슬람국가인 아프카니스탄에서 혹 불상사가 생길 것을 염려하여 출국 전부터 행사 취소를 요구하였으나, 선교 열정에 불타는 사람들은 정부의 우려를 종교 탄압이라면서 외면하였습니다. 급기야 행사 참가 한국인들의 짐 속에서 폭발물이 발견되는 등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자, 아프카니스탄 정부가 한국인들의 출국을 요구하여 급히 귀국시키는 소동으로 일단락 되었습니다.

이슬람국가에 이슬람교와 원수지간인 기독교를 전파하려는 선교 활동을 강행하고자 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두고 논란이 분분하였습니다. 정부가 안전을 위해 말리는 것을 ‘종교 탄압'이라고까지 항변하면서 이슬람국가에 기독교 선교 활동을 굳이 강행하려는 신앙심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해 많은 논란이 제기되었습니다.

자신의 종교야말로 절대적인 진리이며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고 확신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은 이 선교 열정을 높이 평가해 마지않습니다.

그들에게는 그 선교 열정이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펼치는 순교자적 진리 전파 행위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슬람국가에 선교하려는 것을, 아직 어둠 속에서 헤매는 죄인들에게 구원의 빛을 밝혀주는 성스러운 행위로 생각합니다.

이와는 달리 기독교 신앙심과 무관한 사람들의 생각은 대부분 비판적입니다. 이슬람교가 국교인 나라에 기독교를 전파하는 것은 곧 그 나라에 종교 전쟁의 씨앗을 뿌리는 것과도 같은데, 명백히 예견되는 다툼의 원인을 어째서 외면하고 그런 독선적인 선교 행위를 감행하려는 것인가 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비판입니다. 정부의 만류를 종교 탄압이라 항변하며 아프카니스탄에 선교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은, 사랑을 앞세우면서도 오히려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독선과 무지에 빠져 있다는 것이 대다수 여론의 합리적 비판입니다.

우리는 아프카니스탄 국민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려는 신앙인들의 종교 열정 속에서 한국 종교인들이 안고 있는 과제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유일신을 신앙하는 종교인들에게 항상 부여되는 과제는 ‘종교 독선과 배타심'의 극복입니다. 유일신 신앙은 그 교리로 볼 때 근본적으로 배타적 독선에 빠져들기 쉽습니다. 자신이 신봉하는 신에 대한 신앙심을 굳건히 한다는 것은 곧 오직 자기의 신만이 유일한 구원자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유일신 신앙이 깊어진다는 것은, 자기 신념에 대한 독선과 다른 가르침들에 대한 배타심이 강해지는 결과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흔들림 없는 신앙심은 곧 강한 독선과 배타심의 이면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정으로 인해 유일신 종교에 몸담은 사람들은 항상 신앙심과 배타적 독선의 결합에 대해 고민해 왔습니다. 양심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일수록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신앙심 깊은 종교인이 된다는 것이 곧 배타적 독선의 마음을 정당화시키거나 조장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상식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유일신 종교의 배타심과 독선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최근 종교 다원주의라는 이름으로 꾸준히 전개되고 있습니다. 다른 종교의 가르침에도 인간 구원의 길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정립하려는 종교 다원주의적 성찰은, 유일신 신앙의 배타적 독선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을 보여주고 있어 뜻 있는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종교 가르침에도 진리와 구원이 있을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전통 유일신 신앙 교리로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그다지 수용되지 못하고 그저 학문적 차원에서만 각광받고 있는 정도입니다.

무릇 인류가 추구해 온 진리는 보편적 가치를 그 특징으로 합니다. 독선이나 독단, 배타심과 같은 것은 그 보편적 가치를 훼손하는 결정적 장애물입니다. 따라서 유일신 신앙에 몰두하는 종교인들이 진정 온전한 진리를 추구하고자 한다면, 종교 독선에 오염되는 것을 스스로 경계하고 극복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진리라는 명분 뒤에 숨어 출몰하는 무지와 독선의 노예로 전락하고 맙니다.

부처님은 인간이 그 어떤 독선과 배타의 함정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는 지혜를 설하여 주셨습니다. ‘나' ‘나의 것' 이라는 생각을 놓을 수 있는 지혜가 바로 그것입니다. 신앙심 뒤에 숨어 있는 배타적 독선을 진정 극복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부처님이 일러주신 지혜를 경청해 보십시오. 실로 새로운 해방의 길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천태종 정산 총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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