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이다. 세간 사람들은 ‘경제위기’라는 폭죽 소리 때문에 기가 죽어 있지만 불자들에겐 크나큰 희망이 있다.

올해는 몸과 마음이 자유로워 지자. 성불(成佛)이라는 게 별 것이 아니다. 욕심을 덜어내 마음이 자유롭고, 남을 속이거나 조작을 하지 않고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무위(無爲)의 삶을 사는 게 성불이다. 불교를 신앙하는 사람들에게 ‘성불’ 이상의 소망은 없다. 때문에 올 한 해 성불을 하겠다는 희망이 있으면 경제위기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1970년대의 석유 파동, 1990년대의 외환위기도 극복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 두 위기도 오늘의 경제위기 못지 않은 시련이었고 고난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 위기를 극복하고 선진국 문턱에까지 다가섰다.

오히려 우리는 미국발 금융 파탄에 기인한 세계적인 경제위기에서 불교의 가르침을 새삼 깨달았다. 세계 금융의 심장부인 월가 와해의 근본 원인은 불교가 그처럼 금기시하는 ‘탐욕’ 때문이었다. 이는 불교적 관점만이 아니다. 세계가 다같이 인정하는 바다. 아마도 월가의 금융인들이 불교 신앙에 투철했더라면 그 같은 탐욕의 금융 시스템을 개발하지 않았을 터다.

오늘의 경제위기는 탐욕을 경고하고 있다. 또 분수에 넘치는 풍요의 환상에서 깨어날 것을 촉구한다. 무한 성장 추구의 경제 정책과 부도덕한 경제 팽창은 탐욕일 뿐이다. 이는 한정된 자원으로는 불가능한 일이고 제한된 천연 자원의 미래 세대 몫까지를 빼앗을 수 밖에 없는 무모한 짓이다.

올해 상반기가 가장 어려우리라는 경제위기는 ‘탐욕을 버리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새삼 깨닫게 하는 현장학습의 장(場)이다. 많은 성현들이 탐욕을 경계했다. 인간 타락과 파멸의 원인이기 때문이었다. 이번 경제위기는 이를 우리의 뇌리 속에 선명하게 각인시켜준 귀중한 교훈이다.

신심이 자유로워지려면 우선 욕심을 줄여야 한다. 욕망 그 자체는 인간의 생명력을 북돋우는 활력소이면서 번뇌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동전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불교는 번뇌를 곧 보리로 승화시키는 변증법을 통해 이 욕망의 양면성을 극복한다. 마치 녹슨 칼(무명)을 갈아 머리카락도 단칼에 자르는 취모검(吹毛劒:지혜)이 되게 하는 것과 같다.

올해는 경제·사회·국제환경 등이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소비·투자·고용이 크게 위축되는 어려운 한해가 될 것이 뻔하다. 이런 때일수록 불교적 지혜가 필요하다. 2, 3년이라는 시간만 지나면 문제들은 풀린다. 우리 불교의 주류인 선종(禪宗)은 본래가 신심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낙관주의다.

올해의 좌우명은 욕심을 줄이는 것으로 삼자. 몸과 마음의 자유를 위해서.

욕심을 줄이고 일을 조작해 꾸미지 않으면 몸과 마음이 자유롭다.

少慾無爲 身心自在.
〈소욕무위 신심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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