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5일 하오 2시. 세계가 놀랐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당선자 버락 오바마는 이 시각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시카고 그랜트 공원에서 새로운 미국을 열 ‘변화(change)’를 역설하는 당선 연설을 했다.

세계 60억 인구의 이목을 집중시켜온 미국 대선의 포인트는 과연 ‘흑인 대통령’이 탄생할 것인가였다. 그래서 오바마의 당선은 미국은 물론 세계사적인 일대의 역사적 사건이었다. 미국 사회에서 200년 동안 흑인이 감내해온 사회적 지위를 되돌아볼 때 기적 같은 ‘아메리컨 드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불자들은 오바마의 당선에서 현상계의 긍정과 부정을 넘어선 절대 긍정의 “산은 산이고 물은 물(山只是山 水只是水)”인 미국 사회의 ‘유연성’에 놀란다. 미국은 나라 이름이 말해주듯이 흑·백·황색의 각종 인종이 섞여 만든 미합중국(美合衆國:U.S.A)이다. 오바마 당선은 미국 사회의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꿈이기도 한 인종차별 철폐라는 기나긴 여정의 대단원이기도 하다.

불교는 “산은 산(山是山)”이고 “산은 산이 아닌(山不是山)” 현상계의 긍정과 부정이라는 수행의 여정을 거쳐 “산은 산일 뿐(山只是山)”인 해탈의 경계에 도달한다. 여기서는 흑과 백, 높고 낮음이 없는 무분별의 순수의식이 열려 아집과 법집(法執)을 버리고 마음과 사물이 하나로 통일돼 세상만사에 자유자재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일찍이 중국 송대(宋代)의 청원유신 선사가 설파했던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 도리고 미국이 보여준 유연성이다.

대승 불교의 중흥조인 용수보살은 《중론》을 통해 공(空)과 가(假)를 버리고 다시 중도에 집착하는 견해마저 버리는 무소득(無所得)의 ‘중도’를 설파했다. 미국이 바로 이런 중도를 향해 자유주의 시대(1932-1968)와 신자유주의시대(1980-2008)를 넘어 새로운 시대를 열려한다.

세계를 풍미한 신자유주의가 남긴 사회 양극화는 미국은 물론 전세계적인 짐이고 쇄신돼야 할 시급한 과제다. 특히 빈부의 양극화는 최근의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신자유주의의 종말을 재촉하고 있다.

빈부·계층·세대·인종간의 갈등과 양극화는 흑과 백 같은 ‘양변(兩邊)’을 버리는 게 곧 해탈이라는 불법 진리를 따르는 것이 그 극복의 첩경이다. 부자와 가난한 자로 가르는 대립적인 분별심을 떠나야 안심입명할 수 있다.

미국 대선의 오바마 당선이 바로 흑백의 분별심을 버리는 인류의 불교적 수행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그래야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 진리의 세상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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