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서예전시회에서 웃지 못 할 실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불교 경전의 원전을 잘못 오자로 쓴 이를 대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가 취소하는 소동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청주시가 그 지역에서 만들어진 문화재인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을 널리 홍보하기 위해 ‘직지세계서예대전’을 구성해 많은 출품작을 공모해 그 중 좋은 작품을 선정해 시상하고 전시회를 가진 것까지는 잘됐습니다. 그런데 막상 대상 수상자를 선정해 시상까지 했으나 전시과정에서 여러 개의 오자가 발견돼 수상자 취소조처가 생기는 등 큰 차질을 빚었다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작품을 낸 서예가나 작품을 심사한 사람이나, 전시품을 관람한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잘 모르고 지냈는데 불교 경전을 공부한 한 불자가 전시장을 방문했다가 작품의 오자를 발견하고 이를 지적해 문제가 바로 잡혔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발견한 이는 청주지검의 김진태 검사장으로 다년간 불교 경전공부에 심취하여 불교를 잘 아는 신심 깊은 불자가 됐다고 합니다.

주최 측은 “출품작이 무려 700여 점이나 되고 출품된 작품에 쓰인 불교용어가 일반적으로는 사용되지 않는 것이라서 서예를 하는 사람들도 실수를 저지르기 쉬웠고 심사위원들도 불교의 전문용어를 잘 알지 못해 오자를 찾아내지 못했다”고 고충을 밝혔다고 합니다. 주최 측은 “앞으로는 심사위원에 불교 전문가를 포함시키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늦게라도 주최 측이 불교 전문가를 심사위원에 포함시켜야겠다고 깨달은 것은 정말로 다행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이번에 5회 서예대전을 치르면서 비로소 그 필요성을 깨달았다는 것은 너무나 늦은 깨달음이라고 할 것이니 안타깝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청주시에 있는 흥덕사에서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을 인쇄한 것을 증명하는 자료가 ‘직지심체요절’이고 그 책이 비록 경전은 아니라도 참선의 요체를 설명하는 논서(論書)이니만치 불교를 전혀 모르거나 불교와 무관한 인물들로 심사위원을 구성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할 것입니다.

아무리 글씨를 잘 쓴다고 해도 또 기독교나 다른 종교를 잘 아는 사람이라고 해도 정작 이 서예대전이 불교의 논서를 주제로 한 것이라면 응당 불교전문가나 최소한 불교를 아는 이들을 심사위원에 포함했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 상식에 기초한다면 그동안 서예대전을 5회나 치르면서 불교인이나 불교전문가를 배제했었다는 이야기는 잘못된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어쩌면 이런 예는 우리 사회에서 빙산(氷山)의 일각(一角)일지 모릅니다. 불교가 꼭 필요한 곳에서 불교전문가나 불교 신자를 배제하고 우리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만 모여서 불교와 관련된 문제를 좌지우지하는 경우가 아주 많을 지도 모릅니다.

최근에 이명박 정부의 종교편향문제로 한동안 시끄러웠지만 종교편향의 근본문제는 이런 정부 구성에서 나타나는 불교소외에 있다고 할 것입니다. 최근 한 야당 국회의원은 “초기 청와대 수석가운데 50%가 기독교인이고 내각은 16명의 장관 가운데 10명이 기독교인인데 불교 신도 장관은 한 사람도 없고 차관은 25명 가운데 단 한 명뿐이라니 말이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 가운데 개신교인의 비율은 18%에 불과하고 가톨릭교인은 그보다 적은 11%인데도 내각이나 청와대의 요직은 이들 개신교인과 가톨릭인이 다 차지하고 불교인은 전 국민의 23%나 되는데도 그런 중요 직책에서는 철저히 소외되고 배제되고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사실 이런 중대한 문제를 배제한 채 불교인들이 단순한 행정적 절차적 문제에 국한해서 종교차별을 거론하는 불교인들의 문제의식이야말로 걱정되는 일면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유난히 똑똑한 것도 아니고 불교인이 유난히 어리석은 것도 아닐 터인데 왜 우리나라에서 기독교와 불교는 이렇게 차별적이고 편파적인 대우를 받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는 그동안 불교인들이 너무 권익수호문제에 소홀하였다는 측면도 있고 종단들과 스님들이 불자들의 사회적 이익에 대해 지나치게 무관심하였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종단들이 작은 이익을 위해 정권과 타협하고 거래하는 일은 있어도 정작 대승적으로 불교인의 권익과 국가인재의 균형배분의 문제는 거론조차 않은 결과이기도 합니다.

서예대전의 심사위원에서 불자전문가들이 배제되어 사회적인 낭비와 실수를 초래한 것은 자업자득의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서 불자 전문인들에 대한 대우와 등용의 문제를 종단들과 스님들이 심각하게 거론할 필요는 있다고 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평등과 평화를 최고의 덕으로 강조하셨는데 국가와 공공기관이 평등과 평화를 깨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천태종  정산 총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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