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한국 불교를 밝히는 부처님 광명이 찬란한 빛을 발했다. 지난 18일 봉행된 예산 수덕사 대웅전(국보 제49호) 건립 700주년 기념 법회의 ‘1천 승려 법화경 독경’이 바로 그 빛이었다.

우선 사진으로만 보아도 독경 모습이 아주 감동적이다. ‘줄 없는 거문고(無絃琴)’가 울리는 듯 하고 ‘소리 없는 소리’란 것이 바로 저 것이구나 싶다. 대웅전 정면의 계단 아래위로 가사 장삼을 갖추어 입고 도열해 정좌한 1천 승려의 《법화경》 독경은 바로 청량 법음(法音) 그것이었다.

법회에 참석한 신도 2천여 명 등 사부 대중 3천 명이 한글 번역 《법화경》을 들고 집전자의 독송을 따라 독경한 법회 장엄은 청정 불심을 그려낸 한 폭의 수채화 같기도 했다. 수덕사를 품은 덕숭산은 1400여 년 전 개산 당시의 간절했던 불심을 되새기며 환희했고 오늘의 한국 불교에는 ‘향상일로(向上一路)’를 제시했다.
사찰 법회가 법어-내빈축사-내빈소개-공지사항 등으로 도식화된 지 이미 오래다. 사찰의 풍아(風雅)보다는 세속 냄새가 짙게 풍기는 법회 진행은 이제 진부하다 못해 아무 감동도 주지 못하는 ‘사구(死句)’의 제식(制式)이 돼버렸다.

수덕사 교구 스님들의 집단 독송은 제식화한 사찰 법회에 하나의 신선한 ‘활구(活句)’를 던져주었다. 시간은 좀 걸리지만 사찰의 개산 전통과 관련된 경전의 한 품(品)을 참석자가 다 같이 독경해보는 법회는 언제나 새롭게 신심을 북돋을 수 있을 것이다. 반드시 몇 백, 몇 천 명의 스님일 필요는 없다. 절에 사는 대중 승려 모두가 동참하는 독경이면 된다.

독송하는 경전도 사찰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화엄 도량의 전통을 가지고 있으면 《화엄경》을, 관음 도량이면 《법화경》을, 미륵 도량이면 《미륵하생경》을 독송하면 된다. 이는 각 도량이 가지고 있는 신앙의 정체성을 드러내 보여주는 ‘장엄’일 수도 있다.

수덕사가 백제 법화 신앙의 전래지였다는 개산 연기(緣起)를 되새겨 봉행한 대규모 《법화경》 독경은 한국 불교 사찰 법회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참신하고 발전적인 시도였다. 근대 한국선의 중흥조인 경허-만공의 선맥을 잇고 있는 도량으로서 개산의 역사성을 밝힌 이번 수덕사 법회는 또 한번 ‘중흥’의 빛을 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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