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청수 경찰청장이 10일 저녁 불현듯 대구 동화사에 나타났다. 불교계 사태와 관련한 사과를 하기 위해서였다. 이날 동화사에서는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을 비롯한 100여명의 스님이 참석한 대구·경북지역 범불교도대회 대표자 간담회가 열리고 있었다.

갈등 지속, 양측 모두 상처

어 청장은 지관 스님 면담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저녁 공양 시간 공양간으로까지 찾아갔으나 스님과 신도들이 몸으로 막아내며 제지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되돌아갔다. 정말 모양이 좋지 않았던 이 촌극은 TV뉴스 화면과 신문들의 보도 사진을 통해 널리 전파됐다. 스님들과 경찰청장의 몸싸움 사진은 많은 국민들에게 신·불신을 떠나 결코 개운치 못한 씁쓸한 뒷맛을 안겨주었다.

한 소식한 불가의 입장에서 보면 ‘대통령의 사과’나 ‘경찰청장 퇴진’ 같은 중대 세속사도 한낱 ‘허공꽃’에 불과할 뿐이다. 세속 대권(大權) 또한 3대 권력의 하나라고는 하지만 경찰청장 한 사람을 지키고 만인을 잃는 ‘뺄셈의 정치’야 말로 하근기(下根機)가 아닐 수 없다.

지난 7월 3일 본격화한 불교와 정부간 갈등이 두 달 이상 계속되고 있다. 많은 국민들이 염증을 느끼고 얼굴을 찌푸린다. 이제 승자와 패자가 가름난다 하더라도 양측 모두 ‘상처뿐인 영광’일 수밖에 없다. 갈등이 더 이상 계속되면 불교도 지탄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정부는 쇠고기 촛불시위 이상의 ‘난국’에 처할 수도 있다. 이런 시절인연(時節因緣)을 제발 만나지 말아야 한다.

어청수 자진사퇴 바람직

불교계가 공직자들의 종교편향 근절을 위해 요구한 4개항 중 3개항은 8월8일 이명박 대통령의 국무회의 유감 표명으로 사실상 타결이 됐다. 요구사항의 ‘핵’이기도 한 경찰청장 퇴진만 현안으로 남아 있다.

지역별 범불교도대회 강행이라는 사태 진전의 큰 변수였던 ‘대구·경북 불교지도자 간담회’도 뇌관인 대회 일자 확정을 미루는 등 냉철한 자세를 보였다. 지역대회는 자칫하면 사회·종교 진보 세력과 연대돼 큰 파장을 몰고 올 수도 있는 폭발성을 지나고 있다.

경찰청장의 퇴진 문제는 결론부터 말한다면 ‘자진 사퇴’가 바람직하다. 그의 원죄는 무례한 조계종 총무원장 차량 과잉 검색이 아니라 대형 보수 교회의 정치 세력화라는 비판이 없지 않은 순복음 교회라는 개 교회의 경찰선교회가 주최하는 경찰복음화 성회 포스터에 등장한 것이다. 물론 성회가 관행이었고 ‘경찰청 경목실’ 주관으로 돼있긴 하지만 포스터만으론 순복음교회가 주역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고위 정무직 공직자는 때론 엄격한 법률적 책임 보다도 비중이 더 큰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진다. 1982년 말단 순경의 의령 총기난동 사건 당시 경찰의 총수인 내무장관이 법률적으론 하등의 문제가 없지만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어청수 경찰청장은 불교 사태가 이렇게까지 불거진 이상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직접 유감을 표하고 인정한 공직자의 종교 편향에 누군가 책임을 지는 구체적 확인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희생양’이라는 다소 억울한 감이 있더라도 대통령과 정권의 부담을 덜어주는 십자가를 누군가는 져야 하는 지경이다.

갈등 종식이 국민통합의 길

정부가 초기에 신속히 대응했으면 사태가 이렇게 꼬이지도 않았고 경찰청장도 ‘사과’로서 끝날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실기(失機)했다. 바로 개각·쇠고기 촛불시위 등에서도 보여주었던 이 정권의 병폐고 미숙이다.

불교계에 지지와 동정 일변도였던 여론도 달라지고 있다. 또 개신교 보수세력을 대표하는 한국기독교 총연합회가 종교편항 금지 법제화를 반대하고 나섰고 보수 단체인 국민행동본부·경우회 등이 조계사의 촛불시위자 보호와 경찰청장 사퇴 요구에 대한 반대 성명을 일간지 광고로 게재했다. 불교와 정부의 갈등이 종교간 대립과 사회단체와의 갈등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국민통합을 원력으로 세운 불교계의 궐기가 혹여라도 ‘분열’로 회향돼서는 결코 안된다. 정부는 여당 일각에서까지 ‘퇴진’을 주장하는 경찰청장의 진퇴문제를 재고해야 한다.

김정일이 쓰러졌다. 보통의 시국이 아니다. 불교와 정부의 갈등은 하루 속히 종식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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