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 심취한 목사 아들의 명쾌한 대화체 종교 변증서

故 김일수/도피안사/각권 9500원~1만원

내가 이대로 가면, 형제들은 물론 홀로 언제나 나를 지지해주신 나의 어머니마저, 반드시 다음과 같은 견해를 지을 것이다. ‘보라, 일수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도중에 부처를 믿다가 벌을 받아 회개하지 않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어떤 것인가를 겪고 말았다.’ …… 이 보잘것없는 한 목숨에, 제가 무슨 거창하게 하나님이며, 부처님이며 개입을 하였겠습니까? 다만, 제가 업을 짓고, 지금 때가 되어 받는 것일 뿐.
 - 故 김일수 씨의 일기 중에서

제주 서귀포에서 3대째 독실한 개신교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저자는 청소년기까지 예수와 성경만 파고들었던 골수(?) 개신교인이었다. 아버지의 직업은 목사. 그는 우연히 친구를 따라 중문 광명사에 갔다가 서가에 꽂힌 책 한권에 빠져든다. 이기영 박사의 《대승기신론》 역본. 무당의 큰집쯤으로 여겼던 불교의 서적에서 성경에서 풀지 못했던 답을 찾게 된 그는 충격에 휩싸였다. 그리고 차츰 불교의 세계에 빠져든다.

이 책은 2002년 12월 마흔아홉의 나이로 급성 백혈병에 걸려 세상과 인연이 다해야했던 저자 김일수 씨가 인터넷을 통해 자신이 심취했던 부처님의 가르침을 문답형식과 에세이, 일기 형식으로 써낸 글의 모음이다. 인터넷 사이트 다음의 카페에 실린 글을 회원들이 3년 전 유고집으로 펴낸 바 있는데, 이를 접한 한 수좌 스님의 권유로 도피안사 주지 송암 스님이 《유마거사와 수자타의 대화》(전 4권, 도피안사 刊)로 펴내게 됐다.

책은 각 권마다 부제가 달려 있다. ‘위없이 심히 깊은 미묘법이여’란 부제가 달린 1권은 유마거사(저자의 ID)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기 직전 우유죽을 공양한 수자타를 가상인물로 내세워 나누는 삶과 수행에 대한 통찰을 문답 형태로 실었다. 군데군데 수자타의 입을 빌려 개신교에 대한 논박을 가하기도 하는데 이는 목사였던 아버지와의 대화다. 2권 ‘백천만겁인들 어찌 만나리’는 토론방에서 나눈 대화록이 실려 있고, 3권 ‘내 이제 보고 듣고 받아지니니’는 저자의 단상을 적은 에세이. 4권 ‘부처님의 진실한 뜻 알아지이다’는 유가족을 통해 건네받은 일기다.

저자는 신학적 기반이 부족해 오로지 ‘믿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하는 기독교는 불교의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배워야한다고 강조한 반면 불교 역시 기독교의 희생과 봉사정신을 본받아 실천적 측면을 키워나가야 한다며 양 종교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중앙승가대학 교수 미산 스님은 추천사에서 “진리의 근원인 마음을 찾아 헤맸던 한 인간의 행로는 어쩌면 현대인 모두의 행로일 것”이라면서 “최근 화제가 됐던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과 데이비드 A. 로버트슨의 《스스로 있는 신》과 함께 종교의 변증서로서 손색이 없을 정도로 명쾌하고 사색과 성찰이 담긴 역작”이라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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