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고기 촛불 시위 수배자들이 한국 불교의 총본산 격인 서울 조계사로 도피한지 40여 일이 지났다. 종교 관습에서 사찰과 성당은 세속 권력의 불가침적 성역(聖域)으로 범법자들의 ‘긴급 피난권’을 수용해 왔다.

그러나 성역으로의 긴급 피난은 어디까지나 한시적이고 범인을 참회시켜 거듭나게 하는 제도적(濟度的) 기능이 전제된 것이지 범인 은익이나 재범 활동무대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저지른 죄과를 백지화시켜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마치 종교의 성역으로 도피만 하면 죄가 사면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전혀 오해다. 중세 이후 종교와 정치를 분리한 체제에서 보편화돼 있는 상식이다.

제정일치(祭政一致) 시대에는 달랐다. 우리 역사에도 삼한(三韓) 시대의 제정일치에서는 ‘소도’라는 절대 성역이 있었다. 중대 범죄자일지라도 소도에 도피하면 그를 붙잡아 형벌을 가할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소도라는 제단에서 하늘에 올리는 제사가 부정을 타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소도는 범인이 도피해 들어와도 붙잡지 않는 구역이었다고 전해온다.

조계사는 고대 제정일치 시대의 소도가 아니다. 소도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시대착오적 행태다. 조계사는 하늘에 신성한 제사를 올리는 곳도 아니다.

지금 조계사에 도피해 있는 ‘촛불 수배자’들은 지지 매체를 불러들여 좌담회를 하고 인터넷 생중계로 밖의 행사에 연설을 하기도 한다. 초등학생들이 대통령을 욕하는 동영상을 만들어 유포하기도 했다. 사회 실정법을 조롱하는 또 다른 범죄다. 해괴망측한 일이다.

이렇게 되면 조계사는 성역으로서의 긴급 피난처가 아니라 이념 투쟁의 정치무대가 된다. 이제 조계사는 그동안의 피난처 제공을 끝내고 간곡히 설득해 자진 철수하도록 해야 한다. 과거 수많은 수배자들의 도피처였던 서울 명동 성당도 주임 신부의 강력한 의지로 종교적 성역으로서의 본령을 회복한 바 있다.

한국 불교는 오는 27일 이명박 정부의 ‘종교편향’을 규탄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 예정이라고 한다. 규탄대회의 요구와 논리는 헌법에 보장된 신앙의 자유와 정교분리를 준수하라는 것일 터다. 정부의 엄중한 준법을 요구하려면 자신도 ‘촛불 수배자’들을 무조건 끌어안고 있는 법적인 모순을 털어내야 한다. 그래야 떳떳한 요구가 되고 정의로운 규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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