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세속 안에 존재하면서도 일반 속계와는 다른 성계(聖界)로서의 권위를 갖는다. 그래서 같은 형상의 인간이지만 속인은 성직자를 높이 존경하고 따른다.

성직자의 권위는 높은 도덕성과 양심, 또는 돈오에 바탕한 고매한 인격으로부터 생겨난다. 종교 신앙의 사회적 표현은 ‘인격’이다. 속인들은 일단 종교계 고위직 소임을 맡은 성직자들의 종교적, 사회적 인격을 거의 절대 신뢰한다. 그런데 고위 성직자의 인격과 권위를 짓밟는 무례한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이 종단 본산(本山)이며 자신의 집무실이 있기도 한 서울 조계사를 나오다가 경찰들로부터 수모감을 일으키는 검문 검색을 받았다. 참으로 어이 없는 성직의 권위 훼손이었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무례’였다.

총무원장 지관 스님은 차창을 열어 얼굴을 보여주었고 수행하던 시자승이 “총무원장 스님에 대한 예의를 지켜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사복 경찰 4명은 “총무원장일수록 검문 해야 한다”며 트렁크까지 열어보는 무례한 검색을 했다. 이유는 “조계사에서 천막농성 중인 체포영장이 발부된 촛불시위 주동자들을 체포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참으로 어이가 없다. 조계종 총무원장은 사실상으로 한국 불교 최고 지도자다.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최고위 성직자 ‘인격’이 체포영장이 발부된 시위 주동자들을 동승시키거나 그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자신의 승용차에 실어 나를 정도로 몰상식하단 말인가. 그렇게 의심(?)을 했다면 이 나라 경찰의 수준은 아프리카 미개국에도 못 미치는 ‘원시 경찰’이다.

1970· 80년대 온갖 데모대들의 천막농성 아지트였던 서울 명동 성당을 주야로 에워싸고 있던 경찰도 성당을 출입하는 서울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의 차량을 검문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이 점에서 한국 경찰은 분명 30, 40년전으로 퇴보한 폭력 경찰이다.

경찰의 지관 총무원장 인격에 대한 모독은 시위 군중을 무차별 구타하고 짓밟는 폭력 이상의 ‘야만적 폭력’이다. 전·의경도 아닌 경위 계급의 경찰관이 조계종 총무원장을 범죄자 취급한 것은 어떠한 변명으로도 그 ‘무례’와 ‘야만’을 용서받기 어렵다. 새로 배치된 직원이 “총무원장 스님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해서” 빚어진 촌극(해프닝)이라는 경찰의 해명은 정말 한심스럽기까지 한다.

사회 기강의 해이고 이명박 정권의 무능이 빚어내고 있는 혼란이다. 치안총수의 문책까지 고려돼야 할 중대 사인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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