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이른바 ‘묻지마 살인’ 사건이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7월에는 강원도 동해시에서 시청에 근무하는 여직원을 ‘아무 까닭 없이’ 살해하고 그 옆에 있던 다른 직원마저 칼로 상처를 입히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몇 달 전에는 강릉의 공원에서 산책하던 여학생을 아무 까닭 없이 살해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해시 민원실에서 대낮에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여직원을 칼로 살해한 30대의 범인은 “세상이 살기가 힘들었다. 세상이 싫다. 감옥에 가고 싶다”고 자신의 범행을 설명했습니다. 범인이 이렇게 말해도 기자들은 범인이 무슨 감춰진 이유가 있어서 원한이나 복수를 위해 이 여직원을 해친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그 어떤 원인을 말해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어떤 다른 원인이나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앞에서 범인이 이야기한 것처럼 ‘살기가 힘들어서 세상이 싫어서 누군가를 죽이고 감옥에 들어가 살겠다는 계산을 했을 뿐’인 것입니다. 참으로 끔직하고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자기가 사는 것이 힘들다고 자신과는 아무런 원한 관계가 없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죽여서 감옥에 가서 살고자하는 목적을 달성하겠다니 이기심도 이쯤 되면 도가 지나치다할 것입니다.

이런 류의 살인은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근래 자주 일어난다고 합니다. 지난 6월에 도쿄의 이끼하바라라는 전자상가 거리에서 아무런 까닭 없이 7명을 살해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오사카에서도 이런 칼부림으로 2명이 크게 다치는 일도 일어났습니다. 7월에는 도쿄의 하찌오지시의 한 서점에서 한 청년이 칼을 휘둘러 한 여종업원을 살해하고 여대생 한명을 다치게 한 사건도 일어났습니다. 범인은 “회사일이 잘 되지 않고 부모와도 이야기했는데 잘 되지 않아서 화가 났다. 그래서 아무나 죽이려고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일이 잘 되지 않아서 화가 났기 때문에 아무나 죽이려고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역시 황당하기 짝이 없는 살인사건이라 할 것입니다.

이들 ‘묻지마 살인범’의 공통점을 몇 가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이들이 어렵게 산다는 것입니다. 생활이 어렵다는 것도 있겠지만 세상의 삶이 고달프고 힘들어서 잘 안 되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는 것입니다. 돈이 없거나 생활이 어려워서 먹을 것을 얻으려고 혹은 쉽게 돈을 벌려고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강도를 하는 경우는 사람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절도나 강도의 예는 얼마든지 있었으니까요. 그러다가 저항에 부딪쳐 살인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범행의 확실한 원인과 경과를 못마땅하고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경과에 대해 이해는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들 ‘묻지마 살인’의 경우처럼 다만 자신의 삶이 고달프고 그래서 세상이 싫어서 화가 난다고 평소에 자기와 아무 관계도 없던 사람을 닥치는 대로 화풀이의 대상으로 삼거나, 자기가 감옥에 가기 위한 범행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해석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범행이니 답답할 뿐입니다.

하지만 불교적으로 해석하면 설명이 가능할 것입니다. 첫째로 부처님께서는 그런 류의 살인도 반드시 인과가 있다고 하십니다. 전생의 악인연이 현생의 악업이 되어 나타난 것이라고 합니다. 외형적으로 보아 아무 인과가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의 관계도 필연코 전생이나 과거세의 숙연의 결과라고 봅니다. 둘째로 부처님께서는 탐욕과 진에와 우치를 삼독이라 하여 깨달음의 근본장애로 들고 계십니다. 이 사바세계가 고해라는 것은 불자라면 누구나 아는 일입니다. 잘 안 되고 살기 힘들다는 것은 당연한 도리입니다. 그런데 화를 내는 것은 불교에서는 안 될 일입니다. 화가 나서 살인까지 저지른다면 이는 크나큰 죄악입니다. 삼독을 범한 것일 뿐 아니라 부처님의 근본 계율을 어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살생하지 말고, 도둑질하지 말며, 사음하지 말고, 거짓말하지 말며, 술에 취하지 말라는 것은 불교의 기본 계율인 5계입니다. 살인은 근본 계율 가운데서도 가장 우선인 ‘불살생계’를 어긴 것이니 말이 안 됩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이런 류의 ‘묻지마 살인’이 일어나는 것을 개인의 책임이라기보다 사회의 책임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류의 범죄가 생기지 않도록 하려면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는 사람이 생겨나지 않도록 정부가 이런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주고 잘 살게 해주며 화나게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른바 좌파적 이념에 물든 사람들은 그렇게 설명하면서 평등이 지배하는 사회주의 정치의 정당성을 찾습니다. 하지만 부처님도 말씀하셨지만 인생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책임이며 개인의 책임입니다. 삶의 고달픔을 남의 책임으로 돌리고 화를 내어 남을 해치려 할 것이 아니라 자등명 법등명의 부처님 가르침처럼 스스로 자신을 붙잡고 올곧게 계율을 지키며 사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 천태종 총무원장 정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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