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훈은 시 ‘승무(僧舞)’에서 “빈 대(臺)에 황촉(黃燭) 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라는 말로 촛불을 노래했다. 이때 촛불은 차라리 고독해 보인다. 그러나 시제(詩題)에서 풍기는 이미지처럼 하염없는 법열(法悅)이 불법의 진리를 드러낸 승무라는 춤사위를 빌려 촛불을 신비롭게 승화시키고 있다.

이렇듯 촛불은 종교의 경계를 성스럽게 가꾸는 빛이다. 화톳불과 달리 순화된 불이거니와, 또 호롱불과도 구분되는 종교의 상징이 촛불인 것이다. 그래서 절집에서는 인간의 탐욕을 지우고, 불심을 심기 위해 밝히는 불이 바로 촛불이라고 말한다. 더구나 어두운 사바세계를 밝혀 중생을 제도하는 광명으로 여겼으니, 촛불은 위대한 빛이다.

그런데 촛불이 지난 6월 내내 서울 도심을 휩쓸고 지나갔다. 엄청난 대중이 저마다 촛불을 손에 든 이른바 6월의 광장 시위는 좀체로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이 땅을 사는 사람들에게 각별한 6월의 기억을 지운 채 쇠고기 수입과 맞물려 돋아난 온갖 저항이 세상을 흔들어 놓았다. 이 통에 동족상잔의 비극이 들이닥친 58년 전 6월 전쟁을 깡그리 망각했는지도 모른다.

지난날을 돌아보는 인간의 기억이 역사라고 한다. 지난 1950년 6월에 시작된 한국전쟁 희생자는 죽은 이와 다친 이 등을 포함하면, 99만 명에 이른다는 것이다. 전장에서 숨은 거두었지만, 어느 산야에 외롭게 묻혀 돌아오지 못한 전사자 유해가 13만여 구이고 보면, 아직도 전쟁은 살아있는 유족들 가슴에 슬픈 역사로 남아있다.

6월은 갔지만, 이들 망자에게 빛이 가득한 촛불을 불심으로 다시 밝히자. 그리하여 사바세계에서 먼 극락동문(極樂東門)에 드는 날을 기다리고 싶다.

황규호·‘한국의 고고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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