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종교를 대표하는 불교·천주교·개신교의 진보적인 성직자들이 쇠고기 ‘촛불집회’ 전면에 나섰다. 결론부터 말해 심히 걱정스럽다.

첫째, 그 시점이 대단히 예민하고 건국 60년의 대한민국 국운(國運)을 가름할 수 있는 마디라는 점이다. 대의민주주의의 대들보인 법치가 흔들려 무정부 상태를 방불하는 혼란이 두 달 넘어 계속되고 있다. 밤이면 서울 한 복판에서 쇠파이프·각목·망치·낫·돌·물대포·경찰봉이 난무하는 시가전이 벌어진다. 이러한 시국 상황에서 평화를 우선시하는 종교의 역할이 과연 대결 맞수의 한 편을 지지하고 나서야 하는가?

둘째, 기도의 목적이다. 지난 6월 10일 이후 과격화, 조직화 한 촛불시위는 정권퇴진 운동으로 변질됐다. 집회에 나온 성직자들의 피켓 문구도 ‘고시철회 명박퇴진’이었다. 이는 진보 연합군의 총공세적 성격으로 변질된 촛불시위의 목표와 일치한다.

과연 쇠고기 문제가 국민이 선출한 헌법상의 임기를 가진 정권의 퇴진을 내걸고 항쟁할 만한 문제인가를 되짚어 보아야 한다. 쇠고기 문제는 절대권력 앞에 대안(代案) 세력이 부재하던 과거 독재와 반독재, 민주와 반민주 같은 통치구조나 인권 같은 중대 문제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때는 종교가 대안세력의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쇠고기 협상 과정의 실책에 대한 엄정한 비판과 시정 요구는 타당하다. 이명박 정권이 오만과 인사 실책 등으로 국민의 신망을 잃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래도 ‘시정’의 대상이지 ‘정권퇴진’의 대상은 아니다. 지금은 쇠고기 문제를 해결할 만한 야당·시민 단체 등 세속 대안권력이 당당히 존재한다.

셋째, 종교의 현실 참여가 과연 이렇게 진흙탕의 세속 정치에까지 뛰어들어야 하는가다. 중남미 일부 국가에서 해방신학을 신봉하는 성직자가 대통령·장관도 하고 인민전선의 해방군으로 총을 들고 나갔다가 전사한 예도 있긴 하다. 월남의 과거 독재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분신 자살했던 승려도 있다. 그러나 이런 극렬했던 신학사상과 정치 투쟁이 보편적 종교사명으로 권장되지는 않는다.

종교 행사는 법률상의 제약이 없기 때문에 잦아드는 촛불시위를 회생시키고자 종교계를 활용한 것 같다. 시점과 내건 구호로 보아 이 같은 추정이 가능하다. 이 시점의 종교계 역할은 촛불시위 앞에 나서기 보다는 ‘화해’를 내세워 광장정치를 의회정치로 이끌고 나라의 앞길을 밝히는 촛불을 켜야 한다. 진정 헌정 중단의 ‘민중혁명’을 원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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