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국정운영이나 민심수습을 위한 여론을 청취할 때 가장 먼저 만나는 게 종교 지도자들이다. 역대 정권의 관행처럼 굳어졌고 이명박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었다.

촛불 집회로 정국이 위기에 처하자 이 대통령은 지난 6일부터 9일까지 불교·개신교·천주교 지도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의견을 청취했다. 초청된 지도자들은 각계 원로의 앞줄에 설만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대통령과 종교 지도자들의 청와대 회동은 사태 해결에 별다른 영험이 없었다.

TV에 비친 회동 장면과 대화 내용은 희망도 감동도 안겨주지 못했다. 냉정하게 말한다면 실망스러웠다. 대화가 있은 후의 촛불 시위는 더 격렬해졌으니 말이다.

통계상의 한국 종교 인구는 국민의 절반인 2,500만명이다. 불교 신도가 총인구의 22.9%, 기독교 18.3%, 천주교가 10.9%다. 대통령이 종교 지도자들을 통해 이들 신자들을 설득할 수만 있다면 아주 훌륭한 민심수습 방법이다. 아마도 역대 대통령들이 원로와의 대화나 각계 지도자 의견 수렴에 성직자들을 우선시 하는 것도 이러한 기대 때문일 것이다.

종교 지도자들은 양심과 도덕·윤리측면에서 많은 국민의 존경과 신뢰를 받는다. 때문에 종교 지도자들과 대통령의 회동은 언제나 신선해 보이고 기대를 갖게 한다.

그러한 기대를 충족시켜준 사례들이 적지 않다. 1970~80년대 민주화 항쟁시절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한 종교 지도자들의 ‘역할’은 아직도 많은 국민들의 뇌리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 신심 깊은 신앙인들은 종교적 사명감을 위해서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순교(殉敎)’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미화되기까지 한다.

특정 신문사 사기(社旗)를 끌어내려 스티커를 붙이고 유리문을 걷어차며 스프레이로 낙서를 하는 반지성적 행패가 자행돼도 공권력은 팔짱만 끼고 있는 기막힌 현실이다. 진정한 종교 지도자라면 청와대 회동에서는 물론 이같은 법치의 실종을 ‘순교의 정신’으로 질책하고 직언을 서슴치 말아야 한다.

오찬이나 하고 뜰로 나가 등나무 의자에 둘러앉아 만면에 웃음 가득한 채 차나 마시는 부실한 청와대 회동은 더 이상 없어야겠다. 종교 지도자들의 위상이 새롭게 부각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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