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호국 보훈의 달’입니다. 특히 6월 6일은 현충일이라서 온 국민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영령들을 추모하고 그 고귀한 뜻을 되새깁니다. 이는 모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이 이 땅에 사는 우리 국민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대승본생심지관경(大乘本生心地觀經)》은 “사람이 세간에 있건 출세간에 있건 누구나 네 가지 은혜를 입고 있으며 그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보살행”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네 가지 은혜는 부모의 은혜, 중생의 은혜, 국왕의 은혜, 삼보(三寶)의 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국왕의 은혜는 요즘 개념으로는 나라의 은혜가 될 것입니다. 나라와 나라의 법과 제도를 통해서 우리가 보호를 받고 이익을 얻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나라의 은혜라고 하며, 그 은혜에 보답하여 나라에 충성하는 것이 바로 불자가 행할 바른 도리라는 이야기이며 나라에 충성하여 목숨마저 바친다면 이를 ‘현충(顯忠)’이라고 할 것입니다.

옛날에는 국왕에 충성하고 국왕을 위해 죽는 것이 현충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대한민국처럼 나라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리와 의무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우리의 나라사랑은 국가와 국가를 구성하는 국민들 곧 ‘중생’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된다고 할 것입니다. 그 점에서는 우리 불교가 전통적으로 중시하였던 ‘호국불교(護國佛敎)’의 이념이 더욱 명분 있고, 타당성이 커졌다고 할 것입니다.

옛날에도 우리 선조들은 《인왕반야바라밀경(仁王般若波羅密經ㆍ인왕경)》을 앞세워 나라를 지키려고 하였습니다. 그 경에서 부처님은 “국토가 파괴되거나 문란해질 때 이를 지키는 사람이 바로 인왕(仁王)이며 국토를 지키기 위해서는 인왕경 같은 반야바라밀을 받들어 지니며 강설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신라의 원광법사(圓光法師)는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인왕경》에 근거한 ‘인왕호국법회’를 열었습니다. 그 법회는 ‘인왕호국반야바라밀경’을 강설하는 모임이었고 ‘인왕백고좌 법회’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 법회는 국왕에 의한 국토의 수호에 목적이 있었습니다. 국왕은 자연 ‘인왕’으로 격상되었습니다. 인왕은 정치적 군사적인 힘으로 나라를 지키기보다는 반야를 수행함으로써 올바른 업보를 받는 국토를 지키기를 지향합니다. 인왕은 바른 수행과 바른 생활로 만드는 나라의 지도자이기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인왕은 진심으로 바른 행을 닦음으로써 진심으로 백성을 위하여 애쓰는 지도자입니다.

천태대사 지의는 “은혜를 베풀고 덕을 넓히기 때문에 어질다고 한다. 백성을 교화함이 자재로워서 왕이라고 한다. 인왕은 주관이 되고 그가 다스리는 국토는 객관이 된다. 반야를 지님으로써 인왕은 국토를 안온하게 가꿀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국토와 그런 인왕이 있을 때 충성이 있으며 호국이 있게 됩니다. 불교의 충은 인왕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바른 지도자에 의해 다스려지는 국토, 진리가 머무는 국토에 대한 확신이 전제되어야 충성이 가능하고 호국이 가능한 것입니다. 부처님의 바른 법이 모든 중생을 위해 바르게 펼쳐지는 국토여야만 충성이 가능해지고 현충이 가능해진다는 말입니다.

고려시대 거란이나 몽골의 침략 앞에서 승군들은 나라와 백성을 위해 칼을 들고 싸웠습니다. 임진왜란 때도 수많은 승군들이 무기를 들고 국토를 지켰습니다. 인왕의 국토와 부처님의 정법이 보전되는 나라를 지키기 위한 호국의 충정으로 한 일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불국토를 지키고 인왕의 정치를 유지한다는 것은 무한히 힘든 일입니다. 다 알다시피 티베트의 달라이라마는 중국의 침공에 견디지 못하고 국토를 버리고 인도로 피신했습니다. 그가 더욱 힘든 것은 막강한 중국의 힘 앞에서 비폭력으로 대화를 통해 나라를 되찾으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이슬람권의 사람들은 자살폭탄 테러를 해서라도 자기의 주장을 관철하려 합니다. 하지만 티베트인들은 독립을 위해서조차 폭력적인 방법을 거부합니다. 부처님은 폭력을 거부하고 평화를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티베트인들은 힘으로 할 수 없는 한계를 안고 이제는 국토회복보다는 티베트인의 역사문화 종교전통만이라도 유지하기 위해 ‘독립’을 포기하고 ‘자치’라도 요구하고 있습니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호국하고 현충하는 일은 이렇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국토의 분단 상황 속에서 심각한 이념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권과 주권을 보장하는 나라, 부처님의 정법을 마음대로 펼 수 있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유민주주의 헌법에 충성을 바쳐야 합니다. 백성을 굶기며 인권을 억압하는 정권, 종교의 자유마저 허용되지 않는 체제의 선동선전에 놀아나지 말아야할 것입니다. 나라와 백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부처님의 국토, 정법이 제대로 살아날 수 있는 나라를 지키고 가꾸는 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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