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12일은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개신교, 가톨릭, 성공회, 불교, 원불교 등의 성직자들은 ‘종교인 생명·평화 100일 순례단’을 급히 꾸리고 김포 애기봉에서 출정식 첫걸음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동안 묵묵히 지켜보던 종교인들은 한반도 대운하라는 시대착오적 발상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날 성직자 19명과 순례 진행을 도모하기 위한 진행팀 10여 명은 한결 같이 비장한 각오로 출정기도에 임했습니다.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다. 한반도 생명의 젖줄인 4대강이 역사상 가장 큰 위기에 처해있다. 이 모든 사태는 우리 종교인의 탓이다’라고 하면서 스스로 성찰하고 반성하는 기도걸음을 모아 그 속에서 해답을 찾고자 했던 것입니다.

4대강을 기도걸음으로 걸어온 순례단은 예정보다 늦어진 5월 24일 보신각 마무리 행사까지 103일간 약 1,250km를 걸었고, 그동안 일반참가자들 포함 연인원 3만 여명도 함께하였습니다. 순례 중에는 익숙지 않은 천막생활에 몸살감기환자가 속출했고, 무리한 일정으로 성직자 한 분은 걷다가 졸도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연장자이신 문정현 신부님과 수경 스님의 고질적인 무릎 통증도 심각했지만 밤마다 끙끙 앓으시는 소리만 들릴 뿐 애써 숨기기를 고집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장애들은 오히려 서원을 굳건히 만들 뿐 결코 순례단의 행보를 멈추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4대종교의 성직자들이 모여 한 이불 덮고, 한 솥밥 먹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종교가 우월하며 최고의 진리라는 자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종교인들은 자신의 신앙대상을 마음속에 숨기며 서로의 종교를 배려했고 뭉쳤습니다. 생명은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공통된 가치가 이를 가능케 한 것입니다.

순례단이 건강하고 맑은 강 주변을 걸을 때면 행복함에 심신이 편안했지만, 오염되어 생명이 죽은 강을 끼고 돌면 모두 아파야 했습니다. 이렇게 순례단은 강과 함께하며 강과 내가 둘이 아님을 느끼며 걸었습니다. 그 중에서 기도걸음의 감흥은 새만금에 이르러 메아리 쳤던 것 같습니다.

3년 전 새만금 갯벌의 쓰라린 상처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 상처로 온통 메말라 사막화가 된 갯벌을 순례단은 7시간이나 걸었습니다. 하얗게 부서진 모래무지도 밟아야 했고 작고 큰 동전만한 구멍도 셀 수 없이 보았습니다. 나중에 ‘그 구멍은 수 많은 생명체의 보금자리 였다.’라는 말씀을 안내자에게 듣는 순간, ‘새만금 생명체는 전멸했다’는 소리가 귓가에 공허하게 메아리쳤습니다. 수많은 주검 위를 걸었으면서 발병도 나지 않은 우리 스스로가 너무도 원망스러웠습니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희생된 뭇 생명에게 어떤 식으로 참회해야 할지 답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대운하는 이보다 수천 배 수만 배의 희생이 따를 것입니다. 그래서 다짐했습니다.

‘한반도 대운하는 기필코 막아야 한다.’

이것이 100여 일의 순례기도걸음을 하면서 얻은 답입니다. 대운하를 막는 것이 새만금 생명의 넋을 위로하는 길이고, 나아가 한반도 뭇 생명이 자유롭게 상생할 수 있는 길입니다. 끝으로 순례에 참여한 도올 김용옥 선생님의 인터뷰 말씀을 남깁니다.

“운하는 기술적 문제가 아니고 당위의 문제입니다. 당연히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점령하면 분노하고 자국민이 우리나라 국토를 유린하는데 가만있는 것은 한심한 일입니다. 자칫하며 단군 건국이래 가장 우매한 국민이 될 것입니다.”

/ 명계환 불교환경연대 조직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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