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인재발굴과 연구 기반 마련이 불교 중흥 기틀이다

불교학결집대회를 개최하는 것도 여러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불교학을 발전시키려는 것이 지상명제일 것이다. 전쟁을 하려면 무기가 있어야 하듯 종교로서의 불교가 존재하려면 불교학이 있어야 한다. 불교학은 학자들이 끊임없이 자료를 발굴해서 연구하고 정리하여 발표해야 발전한다. 그들은 배가 고파도 책을 놓지 않는 근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삶은 어떻게든 보장되어야 한다. 최소한의 삶도 영위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어떻게 불교학의 진흥을 꾀할 수 있겠는가.

불교학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불교학회는 너무나 열악한 상황 속에서 헤매고 있다. 학술진흥재단에서는 선진국처럼 각종 학술단체가 발행하는 학술논문집을 질적으로 평가하여 등급을 매기고 있다. 한 편의 논문 속에는 많은 자료와 시간과 노력과 지력이 함축되어 있다. 연기의 법칙을 근본으로 하는 불교이면서도 사회를 연기의 법칙으로 보지 못하는 것이 불교학의 성장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불교학자도 다른 분야의 교수나 학자들과 똑같이 연구를 하고 논문을 써야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조건이 거의 갖추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가까운 일본의 일본인도학불교학회의 실상을 들여다보고 우리나라 불교학의 초석을 다지면 얼마나 좋을까. 순수한 불교학자들이 2천500명이 넘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대규모의 연구집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 년 예산이 2천500만(한화 2억5천만원)엔 정도이다. 그들은 매년 또박또박 6천엔씩 연회비를 낸다. 그리고 불교학과를 개설한 대학들이 특별회비를 갹출하여 500만엔 이상을 모아준다. 이쯤 되면 재가·출가로부터의 후원금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회비를 매년 또박또박 내는 진성회원이 얼마나 될까. 그대로 말해버리기에는 너무나 부끄러워서 화두로 남긴다.

또한 학술발표회에서 발표하려고 하는 학자들이 너무 많이 쇄도하여 한 번 발표를 하면 한 해를 걸러야 발표를 또 신청할 수 있다. 일 년에 250명씩 발표를 하는 데도 말이다. 우리나라는 매년 100명씩이라도 발표를 지속할 수 있는 조직과 재정을 갖출 수 있을까.

일본인도학불교학회는 학술대회를 치를 대학교에 개최비용을 제공하여 학술대회를 주관하도록 할 뿐, 직접 학술대회를 개최하지는 않는다. 불교학과를 개설한 대학들이 번갈아가면서 학술발표회를 개최하고 있다. 그러므로 장소와 인력동원은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이다. 어느 대학교가 학술발표대회의 개최를 수락하면, 그 대학교에서 대회장을 뽑고 교수·연구원·대학원생·학부생을 하나의 조직으로 묶어 일사분란하게 진행한다. 조직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2010년 제5차불교학결집대회를 자청하고 자원하는 학술단체가 선뜻 나서지 않는다. 왜 그럴까. 공급과 수요의 균형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불교학을 전공하는 사람은 마치 순교자의 길을 걷는 것과 같은 실정이다. 해방 이후에 현대식 교육을 받아 박사학위까지 받은 불교학자는 국내외를 모두 합하여 500명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고 하듯이 그들이 붓다의 정신을 먹고 살 수 있는 토양이 제공되어야 한다.

그들은 실제로 어느 한 분야에 전문지식을 가진 최고의 지성인이다. 그러나 그들이 설 자리가 너무나 모자란다. 연구물을 구입하여 연구에만 몰두한다는 것은 꿈과 같은 현실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나라에서는 왜 우수한 연구업적이 나오지 않느냐고 탄식을 한다.

/ 이평래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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