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 이탈 원인은 소통 부재와 불신, 쇄신으로 신뢰 회복해야

이명박 정부가 ‘촛불 정치’ 앞에 백기를 들었다. 인쇄까지 한 쇠고기 고시를 전격 연기하고 대운하 논의를 당분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한 달째 아고라(광장)에 모여든 민심의 촛불이 정권 차원의 위기를 가져오는 엄중한 상황을 전개했다. ‘고시 철회, 협상 무효’라는 아고라의 함성이 ‘이명박 퇴진, 독재타도’로 바뀌면서 청와대 코앞까지 밀어닥쳤다.

시위에 참가한 중고생·대학생·20~30대 직장인·주부·노인 등 각계 각층의 백성은 마침내 자신들이 이명박 대통령한테 무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이 대통령이 지난 달 22일 머리를 세 번씩이나 숙이며 사과를 했다. 그런데도 시위 인파는 날로 불어나 10만을 헤아렸고 행동과 구호는 더욱 격렬해졌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까? ‘쇠고기’가 민심 이반의 원인이라는 청와대나 내각의 협소한 시각부터가 잘못된 것이었다. 촛불 정치의 저변에 깔린 내심은 ‘미국 쇠고기보다도 MB(이명박)가 더 싫다’는 불신감이었다. 왜 싫어했는가? 국민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기업체 종업원으로 생각하는 개발 시대의 가부정적인 CEO형 리더십 때문이었다. MB의 대국민 사과는 소통 부재의 원인을 홍보 부족쯤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비쳤다. 그 밑바닥에는 ‘국민이 뭘 몰라서’라는 인식이 깔려 있었고.

여기서 인수위의 영어 몰입교욱, 장관 인사 실책, 정책 난맥 등으로 지지를 철회하던 민심은 가중되는 경제난이 겹쳐지자 급기야 폭발 직전에 다달았다. 오늘의 사태를 가져온 근본적인 원인은 당·정·청이 압도적 표차의 대선 승리에 도취해 민심을 무시한 ‘독선’에 취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외교·안보 등의 중대 국정과 일상적 국정 운영을 즉흥적이고 임기응변식으로 이끄는 아마추어 정권의 행태로 나타났다.

또 다시 MB 정권 5년의 실패를 봐야만 하는지 참담하다. ‘실패한 100일’을 겸허히 인정하고 전면적이고 과감한 국정 쇄신을 단행해 상실한 국민의 ‘신뢰’를 새롭게 회복해야 한다.

공자는 “백성의 신뢰가 없으면 나라가 설 수 없다(民無信不立)”고 했다. 국가의 안정 요소로 병력·식량·백성의 신뢰를 제시한 공자는 제자 자공이 “이 중 두 가지를 포기하고 하나만 남긴다면 무엇이냐?”고 묻자 “백성의 신뢰(民信)”라고 답했다. 백성의 신뢰야말로 정권에 대한 신임과 나라의 안정을 나타내는 중요한 기준인 것이다.

촛불이 청소년을 이용한 위험한 정치적 불장난이 돼서는 안된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촛불은 정부가 겉돌고, 청와대가 헛도는 이명박 정부의 어둠을 비춰준 ‘광명(光明)’이었다고 기꺼이 포용하자. 촛불은 밤에도 낮과 같이 활동할 수 있는 ‘횃불’의 발명에서 기원했다. 중국의 《서경잡기(西京雜記)》에 보면 “BC 3세기말 한 나라 고조 때 민월왕이 밀초 2백개를 바쳤다”는 구절이 나온다. 서구의 양초 역사도 비슷한 시기에 시작됐다.

종교적 의식에서 필수 용품으로 사용되는 초의 불빛은 신의 위광(威光)으로 세상과 사람의 영혼을 밝게 비치는 힘을 가졌다고 여겨왔다. 초는 또 연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 인간이 기원하는 바를 하늘과 신에게 전달한다고 믿었다. 이밖에도 촛불은 흔히 자신의 몸을 태워 어둠을 밝히는 희생과 자비를 상징하기도 한다. 한 달동안 이어진 광장의 ‘촛불 정치’는 국민이 바라는 바를 하늘에 전하고자 하는 민심의 상징이었다.

국민 여론은 45% 이상이 아직도 “이명박 정부가 앞으로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 희망은 있다. 촛불 정치의 와중에서도 많은 국민이 미래를 비관하기 보다는 낙관하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 다시 잘해 볼 수 있는 4년 9개월이라는 시간도 있다.

/ 이은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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