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도가 꽤나 높은 고승인데도 천화(遷化) 후의 다비에서 사리를 수습치 않았다. 지난 22일 법구가 다비된 불교 조계종 덕숭총림(수덕사) 방장 원담 진성 선사의 이야기다.

원담화상의 장례는 이명박 대통령이 친히 조문하는 등 불교계 안팎의 ‘무게’가 한껏 실린 대사(大事)였다. 그러나 운구와 다비부터가 ‘무게’에 비해 의외로 검소하고 초라하기까지(?) 했다.

마침 이 날은 불교 집안 절기의 하나인 열반절이기도 했다. 좋은 시절인연이었다. 근래 이름 있는 고승의 경우 화려한 운구 상여를 사용하고 다비장 화목(火木)주위에 꽃장식을 하는 등의 장엄을 하기도 한다. 원담 화상의 다비는 뒷산에서 채목한 소나무 토막과 청솔가지 만으로 연화대를 덮은 채 점화했다. 소박한 산중 전통의식 그대로였다.

화상의 천화는 다비 후 사리를 일체 수습치 않는데서 다시 한 번 불교계 안팎의 이목을 모으며 여법한 선승의 회화미학(灰化美學)을 보여주었다. 사리를 수습하지 않은 것은 만공선사 이래로 굳건히 전등(傳燈)되고 있는 덕숭문중의 가풍 때문이었다. 덕숭산 수덕사의 선풍(禪風)은 무상(無相)과 선농일치의 청규 정신에 남달리 투철하다.

한국 불교 선맥의 법원인 남종선 개산조 6조 혜능조사는 《단경(壇經)》을 통해 “무념과 무상·무주를 각각 종(宗)과 체(體)·본(本)으로 삼는다”는 종지를 밝혔다. 무상은 형상이 있는 중에서 형상을 떠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상(相)’에 일체의 집착이 없는 것이다. 사리도 구경 열반의 경계에서 보면 분명 부질 없는 ‘상’일 뿐이다. 그렇다면 사리를 수습치 않는 것이 여법한 선객의 다비가 아닌가.

6~7세기 두타행(頭陀行)의 고된 수행을 하던 선승들은 입적할 때가 되면 깊은 산 속의 양지 바른 잔디밭이나 너럭바위를 찾아 절을 떠났다. 어느 누구에도 가는 곳을 알리지 않고. 잔디밭에 앉아 입정한 채로 원적하면 법구가 그대로 썩어갔다. 후일 행각을 하는 운수납자들이 지나다가 썩은 시신 때문에 잔디나 풀이 유독 우거진 곳을 만나면 먼저 간 선승의 부도라 생각하고 삼배를 올렸다.

원담 화상의 ‘상’을 남기지 않은 다비을 보면서 두타행 시절 선승들의 ‘장례’를 회고한 것은 여여(如如)한 불법진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고자 해서이다. 무상과 청규 정신에 투철한 덕숭 가풍이 한국 불교 선림의 밀알로 하늘과 땅이 다하는 날에도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불생불멸의 불법진리가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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