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6일 귀환, 3월 13일 이후 백양사 봉안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백양사 주지 무공 스님 등이 도암당대사 진영을 친견하고 있다.  〈사진=조계종총무원〉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과 백양사 주지 무공 스님 등이 도암당대사 진영을 친견하고 있다.  〈사진=조계종총무원〉

한국전쟁 당시 국외로 유출된 것으로 추정하는 장성 백양사 ‘도암당 대사 진영’이 조계종과 백양사,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공동 노력으로 국내로 돌아왔다.

조계종(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3월 13일 “국외로 유출됐던 ‘도암당 대사 진영’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긴밀한 협조 및 원 봉안처인 백양사의 적극적인 노력을 통해 환수했다.”고 밝혔다. ‘도암당 대사 진영’이 국외로 유출된 시기와 경위는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략 한국전쟁 등 국내 혼란기에 유출된 것으로 추정한다.

도암당 대사의 진영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통해 지난해 11월 하순 출품 사실을 인지하고 협의해 12월 2일(현지시간) 백양사에서 경매를 통해 환수했다. 2월 16일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왔으며, 3월 13일 조계종에서 친견한 뒤 백양사(주지 무공 스님)에 봉안할 예정이다.

조계종은 “이번 환수는 원 봉안 사찰인 백양사의 적극적인 노력과 의지를 기반으로 우리 문화유산의 환수를 위한 종단·사찰·국외소재문화재재단 등 민·관의 유기적인 협력에 힘입은 것”이라며 “조계종 문화부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과거 운문사 ‘칠성도’, 봉은사 ‘시왕도’, 범어사 ‘신중도’, 송광사 ‘치성광여래도’ 등의 환수를 이끌어냈다. 이를 통해 구축한 긴밀한 협력체계를 바탕으로 향후에도 국외 유출 성보를 보다 체계적이고 다각적으로 환수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도암당 대사 진영’의 존재는 지난해 11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김정희)이 국외경매시장에 출품된 한국 문화유산을 모니터링 하던 중 확인됐다. 진영에 화기(畵記)가 남아있지 않아 원 봉안처가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도암당 인정(道巖堂 印正, 1805~1883) 스님이 1864년 수해로 큰 피해를 입은 백양사의 사격(寺格)을 복구해 현재의 사역으로 중창했고, 백양사  ‘백암산도암당대사행략’(1927) 현판에 행적이 전하는 점을 고려해 백양사에 봉안했던 진영으로 추정했다.

‘도암당 대사 진영’ 조성 시기는 19세기 말~20세기 초로 추정한다. 진영은 병풍 앞에 화문석에 정좌한 일반적인 19세기 진영의 일반적인 화면 구성이며, 크기는 115.8×78.4cm다. 진영 좌측 상단에는 성재학사 이면상(李冕相, 1846-?, 전주 출생의 관료로 1889년 급제 후 고종 대 고위 관직 역임)의 영찬(影讚)이 남아 있어 조성 시기 추정에 단서가 됐다.

도암당 인정 대사(1805-1883)는 19세기 백양사에 주석한 당대의 고승이다. 1849년 백양사 사적기를 편찬하고, 1864년 수해로 큰 피해를 입은 백양사를 중창했다. 백양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백암산도암당대사행략’ 현판에 그 행적이 기록돼 있다.

도암 인정 대사 
자료 출처=정호 스님(박한영) 저 〈석전문초〉 중 ‘백암산도암당대사행략’

어려서부터 파·마늘·고기 등을 먹지 않았고, 13세에 장성 백암산 정토사(淨土寺)로 출가해 심옥(心沃) 스님의 제자가 됐으며, 23세에 인월(印月) 스님로부터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하루 한 끼만 먹고 계율을 청정하게 지키는 한편 전국의 유명한 강백(講伯)을 찾아가 불경을 배웠으며, 1840년(헌종 6) 화월(華月) 스님의 법맥을 이어받았다. 그 때부터 정토사에 주석하면서 후학들을 지도하는 한편 계율을 엄중히 지키도록 해 그 사찰의 기강을 바로잡았다. 1864년(고종 1)에 정토사가 큰 홍수로 피해를 입자, 절을 중창해 백양사(白羊寺)로 사명을 바꿨다. 사명은 조선 전기 백양사였다가 정토사로 고쳐졌고, 이를 다시 백양사로 바꾼 것이다.

그 뒤 백학봉(白鶴峯) 아래에 있는 석실로 들어가 10여 년 동안 무자화두(無字話頭)를 참구하다가 오도(悟道)했고, 다시 천진암(天眞庵)으로 옮겨 수년 동안 머무르다가 입적했다. 뛰어난 제자로는 삼일(三日)·계환(桂煥)·보윤(普潤)·우봉(雨峰) 스님 등이 있다.

도암당 대사 진영. 
도암당 대사 진영. 〈사진=조계종총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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