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초 다투는 현대인
명상 통해 깨어나
마음 근육 키워야

분초사회(分秒社會)는 최근에 만들어진 신조어로 아직은 생경한 개념이다. 이 말은 2024년 대한민국의 소비 트랜드를 전망하는 〈트랜드 코리아 2024〉에서 처음으로 제기된 용어이기 때문이다. 대만의 예능 프로그램의 명칭 중에 〈분초세계(分秒世界)〉가 있었는데 분초사회와는 의미가 다르게 사용되었다. 그렇지만 행위하는 데 있어서 시간이 중요하다는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분초사회는 ‘한 마디로 정신없이 바쁘게 산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급한 성향을 반영하는 ‘빨리빨리’라는 말도 이와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GettyimagesBank
분초사회는 ‘한 마디로 정신없이 바쁘게 산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급한 성향을 반영하는 ‘빨리빨리’라는 말도 이와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GettyimagesBank

현대인의 시간

이 책에서 분초사회는 ‘시간이 희소자원이 되면서 시간 효율성을 극도로 높이려는 트랜드를 모두가 분초(分秒)를 다투며 살게 됐다는 의미’로 정의했다. 이 말은 소비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돈보다는 시간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시간을 분초로 나누어 사용하거나 여러 가지 일을 함께 처리함으로써 시간의 효율을 높이려는 경향을 설명하고자 하는 개념이다.

이러한 표현에는 ‘한 마디로 정신없이 바쁘게 산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매사를 신속하게 처리하려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향을 반영하는 ‘빨리빨리’라는 말도 분초사회와 관련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빨리빨리’를 강조한 것이 언제부터인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농경사회에서는 절기별로 활동하기 때문에 분초를 다투어 일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산업사회에서 생산 공장이 돌아가면서 그것에 적응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분초를 다투는 ‘빨리빨리’ 문화가 형성된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매우 짧은 시간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촌각(寸刻), 촌음(寸陰) 등이 사용되었다. 하루를 100등분하여 1각(刻)이라고 하였고, 1각을 십등분하여 1촌각(寸刻)하였다. 1각은 15분이고, 촌각은 1분 30초에 해당한다. 1시간은 4각이고, 2시간에 해당하는 8각은 하루를 12등분한 것으로 1시진이라고도 하였다.

뜨거운 차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시간은 15분으로 1다경(茶頃)이라고 하고, 밥 한 끼 먹을 수 있는 시간은 한 식경(食頃)으로 2각, 30분에 해당한다.

불교에서는 아주 빠르게 지나가서 지극히 짧은 시간을 찰나(刹那)라고 하고, 계산할 수 없는 무한히 긴 시간을 겁(劫)이라고 한다. 그리고 순간순간 일어나고 사라지는 생멸의 현상을 ‘찰나생(刹那生) 찰나멸(刹那滅)’이라고도 한다. 분초를 다투는 현대인의 삶은 찰나생 찰나멸의 현상을 매우 잘 설명하는 모습이다. 찰나는 1/75초라고 하고, 반대로 무한히 긴 우주의 시간을 영겁(永劫)이라고 표현하는데 이것도 찰나가 모여서 만들어 가는 영원한 세월을 일컫는다.

찰나보다 다소 긴 시간을 순식간·별안간·삽시간 등이 있다. 순식간(瞬息間)은 눈 한 번 깜빡이고 숨 한 번 들이쉬는 시간이고, 별안간(瞥眼間)은 눈동자를 한 번 굴릴 수 있는 시간이고, 삽시간(霎時間)은 이슬비가 잠시 내리다 멈추는 시간을 말한다.

현대사회에서 촌각을 다투고, 분초를 나누어 소비해야 하는 현상이 등장한 것은 컴퓨터 중심의 고도 정보사회가 보편화 되면서 부터로 볼 수 있다. 컴퓨터가 인터넷으로 연결되면서 의사소통과 정보제공의 속도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 체계를 구축해 놓았기 때문에 분초를 다투는 삶이 더 빨리 다가왔다.

분초사회의 문제점

분초를 다투어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문제점도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첫째, 긴 글을 잘 읽지 않고, 말초적으로 자극하는 슬로건에 휘둘린다는 점이다. 각종 SNS를 통해서 많은 글이 배포되고 다양한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글들은 논리적이고 체계적이기 보다는 단편적이며 자극적인 것들로 도배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글을 생각 없이 읽게 되면 그 내용을 맹목적으로 추종할 수 있다.

둘째, 슬로우푸드 보다는 패스트푸드를 선호하는 경향이 많다. 천천히 조리된 음식을 먹기 보다는 빠르고 편리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는 사람은 비만을 비롯하여 대사증후군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것은 햄버거를 즐겨먹는 미국 사람들의 체형에서 이미 입증되고 있다.

셋째,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분노의 감정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호르몬이 분비됨으로써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이런 호르몬은 30초만 지나도 혈액을 통해 흡수되기 때문에 일어난 화나 분노가 가라앉게 되는데 분초를 다투며 살아가는 사람은 그 짧은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화를 내거나 분노심이 폭발하게 된다.

넷째, 자신의 행위를 살펴보고 수정하거나 보완하기 어렵다. 지나치게 빠른 것만을 추구한다면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현혹되거나 실수를 해도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시간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는데 조바심을 내거나 돌이켜 보지 못하는 사람은 그것을 수정하거나 만회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지나치게 빠른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범할 수 있는 오류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도 정보사회에서 의사소통 방식이 매우 빨라지고, 빠르게 처리해야 할 일도 많아지기 때문에 분초를 다투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것이다. 때문에 분초를 다투며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어느 한 순간은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주변을 살펴보고, 변화를 조망하는 것도 필요하다.

느긋한 문화를 즐기던 우리사회가 갑자기 분초사회로 전환되기 시작한 것은 소유의 삶에서 체험의 삶으로 전환되면서부터라고 분석하는 견해가 있다. 재화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각고의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고, 지혜롭게 이를 잘 극복한 사람들이 성취할 수 있는 결과물이 재산의 증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소유의 삶은 향유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세월이 가면서 지식과 재화가 축적될 수 있다. 농경사회의 삶은 계절에 따라 움직이고 식물이 성장하는 데는 일정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는다.

반면에 현대사회에서는 단타 매매를 하는 주식시장을 비롯해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거래들이 매 순간 성공과 실패를 다투게 된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사람들은 빠른 의사결정과 선택, 그에 수반되는 행위들이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그리고 현대인들의 대다수는 분초를 다투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에 놓이게 된다.

분초사회에서는 이른바 ‘시성비(時性比)’, ‘디토소비’ 등의 새로운 개념들이 떠오르고 있다. 시성비는 가성비(價性比)에서 파생된 표현이다. 가성비는 ‘가격대 성능의 비’로 싼 가격에 좋은 성능을 추구하는 것인데 비하여, 시성비는 ‘시간대 성능의 비’로 제한된 시간을 활용하여 최대한 재미를 얻고자 하는 심리상태라고 할 수 있다.

시성비는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는 타이파(Time Performance의 준말)라는 표현과 유사하다. 짧은 시간에 핵심적인 메시지를 전달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드라마나 영화를 볼 경우에도 처음부터 끝까지 관람하기 보다는 요약본을 보거나 빨리 감기로 보는 경우들이 있다. 그리고 ‘쇼츠’라고 불리는 1분 이내의 영상을 보고 즐기는 사람들도 시성비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현상은 유튜브 영상이 일상화되고, 컴퓨터로 영상을 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서부터 나타났다.

압축된 영상을 보면 관람하는 시간을 줄이고 줄거리를 빨리 이해할 수는 있어도 작가의 숨겨진 의도나 디테일한 내용은 파악하기 어렵고, 작품에 출연한 연기자의 세밀한 내면 연기를 즐기기 어려운 단점도 있다. 그렇지만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시간을 쪼개어 틈틈이 자신의 취미생활을 하려고 하는 것을 나쁘게만 볼 수는 없다.

분초사회에서는 ‘시성비’, ‘디토소비’ 등의 새로운 개념이 등장한다. 시성비는 ‘시간대 성능의 비’로 제한된 시 간을 활용하여 최대한 재미를 얻고자 하는 심리상태라고 할 수 있다. 1분 이내의 ‘쇼츠’ 영상이 인기를 끄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GettyimagesBank
분초사회에서는 ‘시성비’, ‘디토소비’ 등의 새로운 개념이 등장한다. 시성비는 ‘시간대 성능의 비’로 제한된 시 간을 활용하여 최대한 재미를 얻고자 하는 심리상태라고 할 수 있다. 1분 이내의 ‘쇼츠’ 영상이 인기를 끄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GettyimagesBank

디깅 소비와 디토사회

시성비를 추구하는 경향과 상반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디깅(Digging) 소비’가 그것이다. 디깅은 본인의 관심사를 깊게 판다는 의미로 하나의 현상에 전문가처럼 깊이 파고드는 행위를 말한다. 일본에서는 한 분야에 지나치게 집중하고 집착하는 사람을 ‘오타쿠(御宅)’라고 하였다. 이 말이 우리나라에서는 특정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지닌 사람이라는 의미의 ‘덕후’라는 표현으로 변용되었다. SNS를 통한 다양한 1인 방송과 다양한 의사소통 도구가 등장하면서 특정한 분야에서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서는 자칭 전문가들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시성비를 추구하는 사람들과 연결되면서 ‘디토 소비’라는 경향을 만들어내고 있다. 디토(Ditto)는 ‘나도 그래’, ‘동감이야’라는 영어식 표현이다. 디토 소비는 사회적 인지도가 높은 유명 인사를 추종하는 사람 디토, 유행하는 콘텐츠를 함께 즐기는 콘텐츠 디토, 그리고 상업적으로 제시되는 상품을 따라서 소비하는 커머스 디토 등으로 구분한다.

우리나라의 방탄소년단이나 블랙핑크 등과 같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가수들을 비롯하여 배우·운동선수 등은 이른바 ‘팬덤(Fandom)’이라고 하는 많은 팬층이 형성되어 있다. 이런 팬덤들은 좋아하는 사람의 말과 행동, 생각까지도 추종하는 ‘사람 디토’의 경향을 갖게 된다.

디깅 소비를 하는 사람들은 시간 절약을 위해서 유명인이나 유명한 콘텐츠, 상품 등을 추종 구매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상품의 가치를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소비되기 때문이다. 의사결정에 소요되는 시간을 줄이려면 이미 좋은 평판이 있는 상품을 구매하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의 조언을 따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경향은 취미·브랜드·음악 등 많은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현대사회는 지나치게 많은 제품과 정보가 홍수처럼 밀려오기 때문에 자신의 선택이 실패할까 두려워하는 심리상태와 연결되어 디깅 소비는 더욱 확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심화되면 주체적 의사결정 능력이 약화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부화뇌동하여 남의 의견을 맹목적으로 좇아가는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이것도 분초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이 직면하는 문제 중의 하나이다.

분초사회를 지혜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매 순간 깨어 있고,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깨어 있는 사람은 자신이나 남의 행동·말·생각을 관찰하고, 기억하고 반성할 수 있다. 그러나 매 순간 깨어 있지 못하고 삶에 매몰되어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상황이나 조건에 휩쓸리게 되고, 자신의 정체성까지도 잊게 된다. 이러한 현상 때문에 결정 장애 증후군을 경험하거나 끊임없이 인터넷을 검색하여 사용 후기를 읽는 데 집중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매 순간 깨어 있고, 자신을 돌아보며 현상을 있는 그대로 주시할 수 있는 능력은 명상을 통해서 향상될 수 있다. 불교에서 강조하는 호흡명상·관찰명상·지혜명상·생활명상 등은 바로 항상 자신을 깨어 있도록 해주고, 스스로 지혜롭게 판단하고,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다른 사람의 가치판단에 의존하지 않고도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명상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불교명상 중에서 사념처 명상은 자신의 몸, 느낌, 마음작용,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 등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흔들리고 동요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변화하는 현상을 관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해준다. 마음에 분노가 일어나거나 불안함이 엄습할 때 심호흡을 하면서 호흡 그 자체를 바라보면 번뇌와 망상이 일순간 사라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분초사회를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이 반드시 해야 할 하나의 훈련이 있다면 바로 스스로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명상을 배우는 일이다. 그리고 모든 명상의 출발점은 호흡관찰이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매우 짧은 시간을 ‘순식간(瞬息間)’이라고 하는 데 이 시간만 잘 활용해도 호흡명상은 가능해진다. 호흡명상은 길고 짧은 호흡, 미세하고 거친 호흡 등 네 가지의 관찰을 통해 자신의 몸과 마음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방법이다.

자신의 몸과 마음의 상태가 안정적이고 편안하면 호흡이 길고 미세해진다. 그렇지 않으면 호흡이 짧고 거칠어진다. 이러한 관찰이 이루어지는 사람이라면 느낌이나 감정을 관찰하는 것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분초를 쪼개어 살아가야만 하는 바쁜 현대인들이 템플스테이에 참여하여 잠시 쉬어가고, 돌이켜 보고,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지혜명상을 경험해보기를 바란다. 행복하고 평안해지는 자신만의 새로운 세계를 체험할 것이다.

분초사회를 지혜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불교에서 강조하는 호흡명상·관찰명상·지혜명상·생활명상 등을 통해 매 순간 깨어 있고,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매 순간 깨어 있지 못하고 삶에 매 몰되어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상황이나 조건에 휩쓸리게 되고, 자신의 정체성까지도 잊게 된다. ⓒGettyimagesBank
분초사회를 지혜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불교에서 강조하는 호흡명상·관찰명상·지혜명상·생활명상 등을 통해 매 순간 깨어 있고,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매 순간 깨어 있지 못하고 삶에 매 몰되어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상황이나 조건에 휩쓸리게 되고, 자신의 정체성까지도 잊게 된다. ⓒGettyimagesBank

 

김응철
중앙승가대학교 교수. 문화치유명상 단체 사단법인 동명 이사장, 불교신문 논설위원 등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재가불자가 되는 길〉·〈둥근 깨달음 천수경〉·〈10분 치유명상〉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 현재 수행포교방법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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