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화·단청과
인연 맺게 해준
잔치국수

잔치국수는 시장이나 길거리에서 자주 접하는 간단한 음식이다. 또한 국수 가닥은 물 흐르듯 걸림이 없어 만드는 사람에 따라 자유롭고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 명칭도 자유롭다. 스님을 미소 짓게 한다고 해서 승소(僧笑)라는 별칭을 얻었고, 혼례나 회갑연 때 즐겨 먹어 잔치국수란 이름을 얻었다. 재래시장에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잔치국수는 나에게도 소중한 인연을 맺어 주었다.

〈삽화=필몽〉

장엄등 만들고 먹은 연화사 국수

천태종 인천 연화사(현 황룡사)는 지금의 나를 키워준 사찰이다. 20대 초반에 연화사 청년회 활동을 열심히 했는데, 집안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매일 같이 절을 찾았다. 청년회원들은 주로 한겨울에 이듬해 부처님오신날 사용할 태극기와 금강저가 새겨진 장엄등을 만들었고, 노보살님들은 연꽃등을 만들었다. 신도들이 모여 등을 만들 때면 밤 11시쯤 큰방에 공양이 차려졌는데, 항상 잔치국수가 나왔다. 재가불자 한 달 동안거 기간에는 밤마다 잔치국수 한 그릇을 먹고 법당에 가서 새벽까지 기도를 했다. 그런 간절함 덕분인지 몇 년이 지나 집안이 편안해졌는데, 모든 게 부처님의 가피라고 생각했다.

장엄등을 만들고, 새벽까지 기도하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국수 공양을 하러 큰방에 갔는데 흰 천으로 쌓인 커다란 물건이 벽에 세워져 있었다. 노보살님들이 “이것은 탱화인데, 봉안식을 하기 전에는 절대 열어보거나 만져선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국수를 먹고 나서 법당에 기도를 하러 가 부처님 뒤에 모셔진 탱화를 자세히 올려 보았다. 그동안 나는 법당의 부처님 주변을 신성한 공간으로만 여겼기에 누군가 그린 그림이 그 자리에 모셔져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봉원사 국수와 오이지 김치

얼마 지나 나는 신촌 봉원사를 찾아갔다. 잡지에 소개된 글을 읽고, 불화(佛畫)를 그리던 단청장(丹靑匠) 만봉(萬奉, 1910~2006) 스님을 찾아간 것이다. 만봉 스님은 조선시대 도화서 화원이던 상겸(常兼) 스님의 맥을 이은 분이다. 봉원사를 처음 찾은 시기는 이른 봄이었는데 대웅전 앞에 있는 오래된 느티나무에 어린 순이 솟아나고 있었다. 절 뒤편 오솔길 따라 들어간 스님의 화실에서 엄격하면서도 자상한 가르침을 배웠다. 나 자신을 내려놓고 겸손과 인내심을 키우는 시왕초 그리기를 비롯해 도제식 위계질서 안에서의 모든 가르침은 장인을 키워내는 시간이었다.

봉원사에서는 부처님오신날 전날이나 중요한 행사를 준비할 때는 조왕탱이 모셔진 대방(大房) 공양간에서 잔치국수가 말아져 나왔다. 한겨울에는 오이지를 넣은 김장김치가 같이 나왔는데 맛이 기가 막혔다. 오이지가 들어간 김치는 여름에 담근 오이지를 김장하기 전에 물에 헹궈 며칠간 볕에 말렸다가 양념한 무채와 함께 김장배추에 넣어 만든 것이다. 잔치국수에 그 오이지 김치를 몇 조각 얹어 먹으면 오독오독한 식감과 감칠맛이 일품이었다. 사실 봉원사를 떠난 후에는 다시 먹어보지 못한 그리운 음식이다.

미국 불심사에서 먹은 국수

잔치국수를 내 인생의 절 음식으로 추천한 또 다른 이유는 몇 년 전 미국 시카고에 있는 불심사를 찾았을 때의 기억 때문이다. 불심사는 초창기에 해외 포교를 나선 법춘(法春) 스님이 오랫동안 일구신 작은 도량이다.

우리 일행이 뉴욕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시카고의 불심사를 찾아갔을 때는 눈이 많이 오는 늦은 밤이었다. 난방을 절약하느라 절은 무척 추웠다. 여든이 훨씬 넘은 법춘 스님은 오신채를 전혀 안 드셨는데, 양념 없는 따뜻한 잔치국수로 우리 일행의 몸을 녹여주시고 두꺼운 솜이불도 준비해 주셨다.

다음 날 스님께서는 어람관음도 한 폭을 꺼내서 건네주셨다. 먼 길을 떠나 포교하는데 큰 원을 성취하라며 만봉 스님께서 건네주셨는데, 그 제자를 만난 인연이 소중하다며 내게 주신 것이다. 그후 노스님과 연락이 안 닿아 마음이 애처롭다. 당시는 멋모르고 받아왔지만, 지금 작업실에 걸려있는 어림관음을 볼 때면 내게 건네주신 그 뜻이 무엇이었을지 생각하게 된다.

〈삽화=필몽〉
〈삽화=필몽〉

 

대만 화범대학의 쌀국수

국수와의 인연은 대만 화범대학(華梵大學)과도 이어진다. 화범대학은 1990년에 불교 종단에 의해 세워진 대학으로 초대 창건주 샤오윈(曉雲) 스님은 화가였고, 관세음보살을 잘 그리셨다고 한다. 나와 불화를 함께 공부했던 진명화 선생은 모국에 다시 돌아가 화범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와의 인연으로 2023년 여름 화범대학에 가서 한국의 대형불화와 사찰 단청을 특강으로 가르치게 되었다.

불화 수업은 학생들의 공동작업으로 진행했다. 봉원사 괘불을 모본으로 한 대형불화 두 점을 완성했는데, 한 점은 학교 개광식(開光式) 행사 후 학교에 걸었고, 다른 한 점은 다른 사찰의 야외 행사 때 빌려주었다. 단청 수업은 한국의 사찰 단청 대량머리초를 완성하는 개인 작업이었다. 학생들은 한국 전통문화에 관심이 높아 열정이 대단했다. 몇십 명이 머리를 맞대고 전통 불화의 제작과정을 재현했다. 바탕재를 손바느질한 후 배접해 건조하고, 채색하는 과정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수업하는 동안 작품을 끝내기 위해 나와 학생들은 실기실에서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열심히 작업했다.

당시 스승인 나를 향한 제자들의 정성스러운 마음을 알게 된 것은 특강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 더위와 바쁜 일정으로 모두 지쳐있을 무렵이었다. 한 달 동안 먹어왔던 저녁식사에는 늘 가는 면발의 쌀국수와 비건 중심의 두부, 야채볶음이 골고루 신경 써서 나왔다. 기숙사에 머물면서 배우는 학생들이 서로 돌아가면서 준비한 음식이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식탁에 차려진 음식은 유난히 정갈해서 눈에 확 들어왔다. 찰밥과 고구마, 콩나물무침, 청경채볶음, 김치, 가지볶음 등이 식탁에 곱게 차려져 있었다. 국그릇에는 쌀국수도 빠지지 않고 담겨 있었다. 그날은 한 제자가 들어와서 한 달 동안 저녁식사를 준비해왔다며 인사를 했는데, 비윈(碧雲)이란 이름의 학생이었다.

“선생님이 지치고 고향 생각이 나실 것 같아서 오늘은 한국식으로 특별히 준비했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식사하는 모습을 알고 싶어서 한국 드라마를 보니 예쁜 접시에 음식을 종류별로 조금씩 담아 놓고 식사를 하더군요. 대만에서는 커다란 그릇에 담아서 나눠 먹잖아요. 그래서 주말에 집에 있는 예쁜 접시를 가져왔습니다.”

나는 그 제자가 차려준 정성스러운 음식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 음식 덕분에 지쳐가던 몸도 다시 살아나는 듯했다. 스승의 마음을 알아준 배려심과 존경심을 표현한 제자에게 나는 환한 미소로 감동과 감사를 표했다.

여기서 화범대 이사장 우관(悟觀) 스님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우관 스님께서는 제 목소리가 물 흐르듯 좋았다고 하시며 수업에 많은 관심을 표했다. 또 제자들과 조성하는 불화가 원만하게 완성되기를 특별법회와 대중공양을 통해 기원해 주셨다. 학생과 학교 관계자들까지 초대해 성대한 음식을 준비해 주셨는데, 그때 직접 대만 음식의 하나인 루오보가오(蘿蔔糕, 기름에 무를 붙인 전)를 구워주셨다. 뿐만 아니라 이른 아침 산에서 용안이라는 과일을 따 오셨고, 직접 차를 내려 주시기도 했다. 그날 우관 스님은 직접 무전을 구워내시느라 대나무밭 뒤에서 얼굴의 땀을 식히고 계셨는데, 그 모습에서 나는 대나무숲 앞에 앉아계신 관세음보살님을 떠올렸다.

좌성사 연잎 간장과 국수

요즘도 작업실에서 한 번씩 잔치국수를 만들어 먹는다. 드시는 분들이 맛있다고 하는 걸 보면 이 비법은 아마 안성 좌성사의 연잎 간장 덕인 것 같다. 연잎과 연대를 달여 만든 국간장을 넣고 잔치국수를 끓이면 깔끔하면서 마음까지 맑아짐을 느낄 수 있다. 이곳에서는 한더위와 한겨울을 빼고는 일요일 점심마다 잔치국수로 공양을 한다. 지금도 아흔 넘은 노보살님이 장 담그기와 국수 끓이는 일을 총괄한다.

연잎과 연대를 삶아서 그 우려낸 물을 메주콩을 끓일 때부터 넣고 삶는다. 메주에 간장을 뺄 때도 연잎 끓인 물에 소금을 섞어서 만든다. 보통은 이 소금물을 끓여서 간장을 만드는데 좌성사는 간장을 끓이지 않는다. 간장을 종지에 담아보면 맑고 고운 빛이 마치 찻잔의 차와 같다. 연잎 간장을 넣고 끓여낸 좌성사 잔치국수는 입소문이 나서 드셔본 분들도 많을 것이다. 봄날 그리운 사람과 상춘(賞春, 봄나들이) 삼아 가 봐도 좋을 듯하다. 이제는 노보살님이 부르실 때만 찾아가선 안 된다. 자주 가서 연잎 장 담는 법도 배워야 한다. 내가 만난 이 분들은 남을 위해 헌신하고, 베풀고 자애로움을 펼치는 관세음보살님이다.

이렇듯 잔치국수는 내 인생의 절 음식이다. 인천 연화사 큰방의 잔치국수에서 시작해 만봉 스님과 인연으로 만난 봉원사 잔치국수까지 인연의 연결고리에는 늘 잔치국수가 있었다. 미국 시카고에서 법춘 스님이 눈 오는 날 밤 끓여주신 불심사 잔치국수와 대만의 제자가 만들어 준 정성 어린 쌀국수, 연잎 장맛을 내는 좌성사 잔치국수 역시 인연의 국수가 되어 한국 전통불화를 전승하는 내게 큰 격려와 지지를 해주는 음식이다.

양선희
국가무형문화재 단청장 전승교육사이며, 만봉 스님에게 불화와 단청을 배웠다. 동국대학교에서 불교미술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대한민국불교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현재 한국문화재재단에서 후학을 양성 중이고, 인천광역시 무형문화재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법화의 세계〉·〈손으로 쓰고 마음으로 그리는 지장기도〉(공저)와 〈손으로 쓰고 마음으로 그리는 관음기도〉(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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