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헌을 통해 본

사찰 산불 피해와 대책

- 글 김동현 

〈2022년 산불통계연보〉(산림청 刊)에 따르면 2013년 이후 10년간 평균 537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연면적 3,560ha의 산림이 소실됐고, 약 2,008억 6,900만 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산중의 사찰 피해는 불가피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5년 낙산사 화재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1489년(성종 20년) 3월 양양에서 발생한 산불은 민가 205호와  낙산사 관음전을 불태웠다. 이외 영덕 장육사, 고성 화암사·건봉사·서산 개심사 등도 산불 피해를 겪었다. 사찰 화재는 소중한 문화적 가치와 역사성의 소실이다. 예방과 관리를 통해 화재의 위협으로부터 문화재를 보호하는 건 우리의 의무이다.

얼어 있던 땅과 나무에서 연두색 새싹들이 토양과 목피를 뚫고, 생명이 피어나는 따듯한 봄이 다가왔다. 산천초목이 푸르러지고 화사한 꽃이 만발해 아름다운 봄철은 또 다른 불청객인 산화(山火)가 찾아와 금수강산을 잿더미로 만드는 잿빛 계절이기도 하다.

산에 나는 불을 산불이라고 부르기에 우리는 산불 소식을 접하면 2005년 4월 5일 강원도 양양 낙산사(洛山寺)가 소실되는 장면을 떠올리게 돼 자연스레 산불이 난 곳에 사찰이 없는지 살피게 된다.

지금은 첨단 산불 감시카메라를 비롯해 산불 진화 헬기와 소방차가 있지만, 이런 장비가 없었던 조선시대에는 산불로 인한 사찰 피해가 어떠했고 어떤 현명한 대비책으로 화마에 대비했는지 역사서를 통해 ‘선현의 지혜를 배워 귀감을 삼고자[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한다. 이는 다산 정약용 선생께서 말씀하신 “기록하고 분류하고 재구성하며 실제에 적용하여 의미를 밝혀라.”라는 가르침과 상통한다.

조선시대 산불과 사찰 피해

조선시대 대표적인 역사기록서인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비변사등록〉, 〈각부청의서존안〉, 〈철종실록〉 및 〈철종행장〉을 토대로 산불에 대해 기록된 사실을 살펴보았다. 역사기록서에는 조선시대 518년간 총 63건의 산불이 발생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중 조선시대 산불과 관련된 사찰 기록은 〈조선왕조실록〉 4건, 〈승정원일기〉 1건이다. 조선시대 최대의 산불이자 사찰 피해는 순조 4년인 1804년 4월 12일 강원도 삼척 등 6개 지역에서 동시 발생한 대형산불이다. 이로 인해 사찰 6곳이 불타고 민가 2,600여 호와 61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지금의 강원도 동해안으로 대형산불이 자주 발생하는 지역이다.

산불로 인한 다른 사찰 피해사례는 먼저 성종 6년(1475년) 충남 서천지방의 금산(禁山, 벌목을 금지한 산)인 가야산 개심사(開心寺)다. 충청도 병마절도사인 김서형이 훈련을 핑계 삼아 사냥을 하면서 가야산에 불을 놓는 바람에 산불이 발생해 개심사까지 불태운 사례다.

능침사찰인 정인사(正因寺)에서는 연산군 10년(1504년)에, 봉선사(奉先寺)에서는 숙종 17년(1661년)에 각각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 임금이었던 연산군과 숙종은 크게 놀라 ‘영혼이 경동하거나 능침이 진경하였다.’고 하여 위안제(慰安祭)를 지내도록 하였다.

호국사찰인 낙산사에서는 산불에 대한 기록이 많이 전하는데 성종 20년(1489년)에는 양양지역에 산불이 발생하여 낙산사 관음전과 민가 205호가 소실되었고, 인조 21년(1643) 산불이 발생했을 때는 비화(飛火, 불똥)로 인해 낙산사 전각 등이 소실되었다. 이외에도 ‘양양 낙산사 화재 및 산불기록’ 표와 같이 낙산사는 화재와 산불 그리고 전란으로 피해를 많이 입었는데, 그 역사가 고스란히 기록으로 전한다.

사찰 산불 대책과 조치

조선시대에는 산불이 발생할 경우, 군사 행정조직과 중앙 및 지방의 행정조직이 함께 동원되었다. 또 도성을 중심으로 하는 사산(四山, 북악산·인왕산·남산·낙산)과 그 밖의 지역으로 나누어 관리하였다.

조선시대 산불정책은 병조·공조·예조와 지방관청에서 시행되었고, 국가에서 지방 관아에 연료용 땔감을 채취하도록 지정한 장소인 ‘시장(柴場)’을 두어 무단 벌목과 산불로 인한 벌채목을 규제하는 등 산불 예방에 힘썼다. 사찰 인근의 산림은 사찰에서 직접 예방 활동을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 사찰의 산불 대책을 자세히 살펴보면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산불 예방분야에서는 △산림 주변 화기 사용금지 △사냥을 위해 불을 지르는 행위 금지 △화전 경작이나 소각행위 금지 △산불 위험지역 주요로의 입산 및 통행금지 △숲 가꾸기를 통한 산림 밀도를 줄여나가는 예방 정책을 실시하였다.

실제 선운사(禪雲寺)를 살펴보면 산림과 사찰 사이에 이격을 두고 그곳에 차밭을 만들고 산불에 강한 수종을 식재하여 산불 위험을 낮추어 산불에 강한 사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낙산사에서는 통행금지 표식인 금표(禁標)를 설치하여 출입을 통제한 기록이 있다.

성종 9년(1478년)에는 관료를 보내 산불 예방에 특히 신경을 쓴 기록이 보이는데, 그 내용 중 하나는 “낙산사에 이르는 옛길[舊路]을 개방할 경우 사신들이 기생을 탐스럽게 여겨 야밤에 횃불을 들고 다니다가 불을 낼 염려가 있으니, 만약 개방할 계획이라면 기생들을 내쫓아서라도 낙산사 주변 산림을 산불로부터 보호하겠다.”는 내용이다. 또한 조선시대 사고(史庫)에서는 산불관리에 사찰 승려가 참여한 기록이 있는데, 조선 왕조에서 산불관리에 사찰이 직접적으로 기여한 부분으로 확인된다.

조선 태종은 짚으로 지붕을 올릴 경우, 불이 잘 번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기와 보급을 장려했다. 기와를 이어나가고, 흙 반죽을 달아 올리는 모습 등이 실감나게 그려진 김홍도의 풍속화첩 중 ‘기와이기’. 18세기 후반, 종이에 수묵담채, 국립중앙박물관.
조선 태종은 짚으로 지붕을 올릴 경우, 불이 잘 번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기와 보급을 장려했다. 기와를 이어나가고, 흙 반죽을 달아 올리는 모습 등이 실감나게 그려진 김홍도의 풍속화첩 중 ‘기와이기’. 18세기 후반, 종이에 수묵담채, 국립중앙박물관.

기타 조선시대 산불 관련 내용

조선시대 산불은 역사기록서에서 확인되는 바와 같이 지금의 산불 발생 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강원도 동해안 지역은 조선시대 역사기록서 대형산불의 60%에 해당하고 가장 큰 산불과 인명피해가 많이 발생한 산불 모두 동해안 지역에 걸쳐있다.

강원도 동해안 지역이 특별히 산불에 취약한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지역적 특성상 봄철 편서풍에 의해 대기가 태백산맥을 타고 동해안으로 넘어오면서 건조해지고 강한 바람을 일으키는 푄 현상[높새바람]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강원 동해안 지역은 산불에 취약한 소나무림이 울창하게 분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조선시대에도 강원도 동해안 지역에서 산불 특별 예방 정책을 많이 펼쳤고, 피해지역에 ‘위유어사(慰諭御史)’를 파견하여 백성들의 고통을 위로하거나 세금 등을 감면해 주는 정책을 펼쳤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 강원특별자치도가 동해안산불센터를 강릉에 설치하여 동해안 지역 대형산불 발생을 막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는 점도 조선시대 조정과 지역 관청에서 펼친 정책과 맥락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 때는 산불을 낸 자에 대해 엄격하게 처벌했다. 일부러 불을 지른[放火] 자는 효시(梟示)나 신분 강등과 같은 엄한 처벌을 내렸다. 실화자의 경우에는 유배와 같은 처벌을 내렸고, 금산 지역에서 수렵을 위해 불을 지른 관리는 파직 등의 처벌을 내렸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음서제도를 이용해 고위 관직에 오른 아버지의 힘을 빌려서 과거시험을 거치지 않고 관직에 오르려 한 자식이 있었는데, 그는 아버지가 반대하자 홧김에 남산에 불을 질렀고, 결국 신분이 관노로 강등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조선시대 역사기록서에 나타나는 산불을 배경으로 한 다양한 정책과 삶의 모습은 지금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05년 4월 강원도 양양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은 낙산사를 뒤덮었다. 복원 불사 의지를 담은 포스터에 참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2005년 4월 강원도 양양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은 낙산사를 뒤덮었다. 복원 불사 의지를 담은 포스터에 참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찰 산불 피해
어떻게 예방해야 하나?

- 글 김동현

화재 예방을 위한 대책

지난 2005년 4월 5일 양양 지역에 발생한 산불로 인해 낙산사는 원통보전과 동종이 소실되는 등 전소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산불로부터 사찰 문화재를 보호하는 일이 왜 필요한지를 일깨워 주고 큰 경각심을 갖게 했다.

낙산사 소실 이후 산림청과 문화재청은 손을 맞잡고 다양한 예방 대책을 쏟아내고 헌신적으로 산불 피해를 줄이기 위한 정책을 펼쳐나갔다. 2005년 낙산사 화재 이후 문화재 주변 지역의 산불 위험성에 대해 전국적으로 조사했고, 산불에 강한 숲 가꾸기 사업과 문화재 주변 소화시설 설치 등의 활동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산불로부터 사찰을 지키기 위한 보다 자세한 예방책을 살펴보면 첫째, 산불에 강한 내화수림대 조성이다. 내화수림대 조성은 산불이 확산될 때 탈 수 있는 산림 연료를 제거하여 산불의 화세를 약하게 하고 확산 위험성을 낮추는 목적의 사업이다. 이는 조선시대에도 펼친 사찰 주변 연료 물질 제거 정책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 산불 예방적 차원의 숲 가꾸기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연료물질 자체를 줄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보호하고자 하는 사찰로부터 반경 수 미터마다 연료물질을 단계적으로 제거해 나가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선운사의 사찰 주변 숲 가꾸기가 모범사례라고 할 수 있다.

둘째는 산불이 났을 때 미리 주변에 물을 뿌려주는 방법이다. 이 방법에서 사람이 산불이 난 상황에서 연기와 화염에 대항하여 물을 뿌리는 것은 지극히 위험할 수 있다. 이에 자동으로 나무보다 높은 위치에서 반경 35m 정도를 360도 회전하며 물을 뿌려주는 설비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

이 설비는 필자가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에 재직 당시 개발한 ‘산불방지 수관수막설비’로 지금은 ‘산불소화설비’로 명칭이 변경되어 현재 전국 휴양림과 사찰 및 주요 시설물 보호를 위해 약 250곳에 설치되어 운영 중이다.

하지만 이 설비는 최대 200m 거리밖에 살수가 되지 않는 단점이 있어 사찰 전체를 보호하거나 마을 단위로 보호하기에는 부족하다. 이에 2km까지 직경 70m로 살수가능한 지능형 사물인터넷(AIoT) 스마트 대면적 산불소화설비 시스템을 개발하여 올해부터 설치를 시작할 예정이다. 이 시스템은 사찰 경내 전체를 보호할 수 있고 수막으로 인한 피해도 방지할 수 있다.

또한 산불이 아닌 사찰 건축물 화재가 발생했을 때에도 화재를 지연시킬 수 있고, 인근으로 화재가 확산하지 않도록 활용할 수 있다. 살수반경 35~50m까지 이격하여 설치할 수 있어 사찰의 경관을 훼손하지 않고, 사람이 직접 조작하지 않아도 산불을 막을 수 있어 매우 간편하다. 이런 장점으로 인해 기존 소화시설 보다 매우 효과적인 시스템으로 평가된다. 많은 사찰 지역에서 이와 같은 설비를 통해 산불이나 화재에 대한 걱정을 덜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셋째는 사찰과 주변 산림에서 화기 자체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산불 원인의 99.99%는 사람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에 사람이 불을 내지 않는 게 그 어떤 예방 활동보다 확실한 예방책이다. 하지만 8km 떨어진 곳에서 발생한 산불도 몇 시간 내에 번지거나 비화로 인해 수십 분 내에 확산하는 점을 고려한다면 사찰 주변 산불 확산 예방은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화기 사용을 각별히 조심하고 첫 번째와 두 번째 방법을 함께 사용한다면 산불 피해를 막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대책이라 할 수 있다.

산불로부터 사찰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평소 체계적이고, 신속한 대응을 위한 소방 훈련이 필수적이다. 사진은 천태종 총본산 구인사와 소방당국의 합동훈련 모습.
산불로부터 사찰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평소 체계적이고, 신속한 대응을 위한 소방 훈련이 필수적이다. 사진은 천태종 총본산 구인사와 소방당국의 합동훈련 모습.

사찰 화재 발생 시 초기 대응법

사찰 화재는 산불 등 외부 화재로부터 확산과 사찰 건축물 자체의 화재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산불이 사찰로 번질 때 초기 대응은 피난할 수 있는 길의 확보, 이동 가능한 중요문화재의 안전한 대피, 사찰 주변의 연소 물질에 물을 뿌려 화재 확산을 지연하는 순이다.

하지만 거대한 화염은 물을 머금은 목재라 할지라도 단시간 내 수분을 증발시키고, 450℃ 이상의 지속된 열은 목재에 금방 불을 붙게 한다. 때문에 지속적으로 물을 뿌려 화재확산을 방지한다는 건 매우 어렵고 위험한 일이다. 자칫 화재를 막으려다 연기에 질식하거나 산소부족 또는 심장마비 등으로 목숨을 잃을 수 있는 만큼 절대 무리하게 화재진화에 나서서는 안 된다.

사찰 내부에서 화재가 발생한 경우, 일반적으로 초기 발화 후 7분이 지나면 더 이상 소화기로는 화재진압이 어렵다. 20분이 경과하면 소방차로 화재 진화를 하더라도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어 구조물 자체가 붕괴 위험에 이른다. 목조건축물 화재는 일반 콘크리트 내화구조물 화재보다 온도가 더 높다. 1,500℃까지 치솟아 순식간에 가연물들이 연소하기 때문에 7분 경과 후 화염을 잡지 못하면 진화가 어렵다고 봐야 한다. 이 경우도 산불의 경우처럼, 먼저 안전한 대피로를 확보한 상태에서 이동 가능한 문화재를 안전하게 옮긴 후 연소 물질을 적셔 화재 확산을 지연하는 방법을 병행해야 한다.

사찰에서도 소방서·산림기관과 연계하여 정기적으로 산불이나 화재 대비 훈련을 병행하고, 부족한 소화시설을 보완하면서 사용법을 익히고, 숲 가꾸기를 통해 위험을 줄여나가는 실천을 지속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더 이상 낙산사 소실과 같은 사례가 일어나지 않도록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단 한 순간의 방심과 실수로 인해 역사적 사찰을 화마의 먹이로 내어주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우리는 평소 자연과 어우러진 사찰을 보면서 심신의 안정을 찾는다. 이것은 아름다운 자연과 종교적 건축예술과 주변 환경이 잘 어우러져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평화로움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가 다시 한 번 사찰 주변에 화재 위험요소가 없는지 확인하고, 화재예방을 위해 산림청에서 국책사업으로 시행하고 있는 수막타워 산불소화시설 설치와 연료물질 제거사업들을 사찰에서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

사찰의 아름다운 경관을 헤치지 않는 범위에서 이를 적극 활용한다면 산불에 대한 걱정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말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산불이 났을 때는 주변에 미리 물을 뿌려주는 게 중요하다. 사람이 직접 물을 뿌리는 건 위험하므로, 나무보다 높은 위치에서 반경 35m 정도를 360도 회전하며 물을 뿌려주는 설비를 갖추는 게 좋다.
산불이 났을 때는 주변에 미리 물을 뿌려주는 게 중요하다. 사람이 직접 물을 뿌리는 건 위험하므로, 나무보다 높은 위치에서 반경 35m 정도를 360도 회전하며 물을 뿌려주는 설비를 갖추는 게 좋다.

 

김동현
현 전주대학교 소방안전공학과 교수. 일본 교토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연구원·교토대학 방재연구소 국제연구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오스트리아 국제응용분석연구원 수석연구원·문화재방재연구소장·문화재청 재난안전위원회 위원·소방청 자체평가위원 등을 맡고 있다. 2023년 대한민국인물대상 등을 수상했다.

 


사찰 속 바다생물

‘海’·‘水’ 글자 화재비보책

- 글 이미령

 

“우리 집에 손님 한 분이 계시니(吾家有一客)
바닷속에 사시는 분이네.(定是海中人)
입에 하늘의 넘치는 물을 머금고(口呑天漲水)
능히 불의 신을 죽이네.(能殺火精神)”

통도사 대광명전에 걸린 게송이다. 1756년 화마를 입고 2년에 걸쳐 복구한 뒤 써서 걸어둔 것이다. 손님이 한 분 계시는데, 그분은 다름 아니라 바닷속의 인물이라고 한다. 어떤 이는 용왕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소금이라고도 한다. 통도사 대광명전에는 소금단지가 모셔져 있는 까닭에 이 귀한 손님을 소금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지만, 용왕이건 소금이건 둘 다 바다에서 유래하는 것이니, 그 어떤 불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굳은 마음이 느껴진다.

옛집들이 다 그렇듯 사찰은 목조건축물이어서 화재가 가장 무서운 적이다. 크고 작은 웬만한 사찰들은 화마의 공격을  받은 적이 있고, 그 일을 겪은 사찰 입장에서는 마음속 번뇌만큼이나 무서운 것이 불의 재난이다. ‘할 수 있는 한 화재로부터 사찰을 보호하라!’ 사찰의 대중이 짊어진 특명이다.

사찰 이곳저곳에 모셔져 있거나 새겨져 있는 장식물 중에는 바다와 관련된 것이 많이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용이 그렇고, 물고기·자라·게·거북이가 그렇다. 사찰은 생사의 괴로운 바다를 건너는 반야용선이기 때문에 수중생물을 많이 배치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장식물은 산사에 치명적인 화마를 처음부터 막겠다는 화재방지용 부적이라고 봐도 좋다.

워낙 큰불이 자주 일어난 순천 선암사는 1761년 상월 스님이 아예 절 이름을 해천사(海川寺)로 바꾸기도 했다. 바다와 하천을 이름으로 써서 화마가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대웅전 지붕 서까래마다 해(海)자를 써넣고, 심검당 연기 구멍 아래에 적어 넣은 해(海)자와 수(水)자 역시 화재로부터 절을 지키려는 마음을 잘 보여준다. 석등을 굳이 가람 바깥에 배치한 것도, 사찰 안팎에 연못을 많이 파놓은 것도 같은 이유다.

수행자는 언제나 제 발아래를 살펴야 하듯 작은 불씨라도 소홀히 하면 안 된다. 사찰 곳곳에 형상으로 남겨진 화재 비보책(裨補策)은 매 순간 방심해서는 안 된다는 삶의 지혜가 담긴 간절함이다.

사찰에서 찾아볼 수 있는 물고기 장식물이나 ‘해(海)’, ‘수(水)’ 등의 글자는 화재를 막기 위한 비보책이다. 백양사 전각에 걸려 있는 잉어 모양의 물고기(위)와 선암사의 옛 이름인 해천사 편액. ⓒGettyimagesBank
사찰에서 찾아볼 수 있는 물고기 장식물이나 ‘해(海)’, ‘수(水)’ 등의 글자는 화재를 막기 위한 비보책이다. 백양사 전각에 걸려 있는 잉어 모양의 물고기(위)와 선암사의 옛 이름인 해천사 편액. ⓒGettyimagesBank

 


경전에서 살펴본
화재 예방 설화

- 글 이미령

이 세상에는 아무리 작고 하찮아 보인다 해도 절대로 방심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것이 네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왕의 아들인 태자요, 둘째는 독사 새끼요, 셋째는 조그만 불씨며, 넷째는 수행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수행자(사미)입니다. 부처님은 이 가운데 불씨에 대해 “맹렬하게 타오르며 온 세상을 검은 잿더미로 만드는 불을 사소하다고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 태울 것을 만나면 불은 순식간에 세력을 키우며 남녀노소 누구든지 덮쳐서 단번에 태워버린다. 제 목숨 지키려거든 작은 불씨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쌍윳따니까야3:1〉).”라는 게송을 통해 꺼진 불도 다시 봐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삽시간에 태워버리는 성질로 인해 불은 늘 조심하고 경계해야 함을 비유할 때 경전에서 빠지지 않는 비유의 대상입니다. 이 세상은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이라는 세 가지 번뇌로 활활 타오르는 집[三界火宅]이라는 표현은 무척 유명합니다. ‘화내는 마음은 불과 같아서 그동안 열심히 지켜온 계율수행을 한 순간에 부순다.’(〈정법념처경〉)는 비유도 있지요. 애초부터 불이 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지만 살다 보면 큰불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관세음보살보문품〉에는 “큰불을 만날 때 한마음으로 관세음보살 명호를 크게 부르면 불이 그 사람을 해치지 못한다.”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도는 내 힘으로 도저히 어쩌하지 못할 때 하는 마지막 SOS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불이 났으면 꺼야 합니다. 무조건!

불교는 숲의 종교입니다. 사원은 숲에 있고 수행자는 숲에서 지냅니다. 그래서 자연과 동물을 들어서 다양한 이야기를 펼치고 있는데, 그중에는 큰불이 난 경우를 비유로 드는 법문도 있습니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은 비슷비슷한 내용이지만 그 지향점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는 점이지요.

첫 번째 이야기-어린 메추라기의 서원

큰 숲에서, 메추라기 한 마리가 이제 막 알을 깨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지역은 해마다 산불이 일어나는 곳이었지요. 산불은 맹렬한 기세로 타올라 온 산과 숲을 덮쳤습니다. 모든 동물과 새들이 겁에 질려 멀리 달아났습니다. 정성스레 새끼를 기르던 부모 메추라기도 새끼를 버려둔 채 날아가 버렸습니다. 태양을 가리고 온 숲을 태우는 검은 연기 속에서 어린 메추라기는 그저 보금자리에 누운 채 자기를 향해 다가오는 불을 바라보기만 할 뿐입니다. 겁이 났습니다.

‘나의 두 날개를 펴서 허공을 가로질러 가는 힘이 있다면 날아서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을 텐데, 두 발로 일어서서 가는 힘이 있으면 걸어서라도 다른 곳으로 갈 텐데, 엄마와 아빠도 나를 홀로 버려두고 자신들을 지키려고 달아났어.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가 피신할 곳도 없고 나를 보호해 줄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순간입니다. 하지만 죽음의 공포에 자신을 버려두지 않았습니다. 이 작고 여린 새끼 새는 사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 몸이었지요. 일찍부터 붓다가 되어 온 세상에 행복의 메시지를 전하겠노라 다짐한 수행자입니다. 그런 까닭에 어린 메추라기는 그 급박한 상황에서도 가만히 생각을 모았습니다. 과거에 깨달음을 이룬 부처님들이 어떤 덕을 지녔는지, 얼마나 진실하고, 청정하며, 세상의 비극에 동정하고 공감했는지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자신도 이런 부처님을 닮겠노라 서원하고 쌓은 덕성이 하나씩 깃들어 가고 있음을 확인하면서 마침내 크게 우지졌습니다.

“불이여, 이제 여기에서 돌아가거라!”

어린 메추라기의 외침과 동시에 불이 물러갔습니다. 물러가면서 다른 숲을 태우지 않았고, 마치 물에 던져진 횃불처럼 산불은 그 자리에서 사그라졌습니다.

- 〈자타카〉 35번째 메추라기 본생 이야기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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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이야기-앵무새의 서원

앞서 〈자타카〉 이야기가 메추라기의 구도 열정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이번에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세상을 위해 산불 진화에 나선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느 마을에 축제가 열렸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몰려나와 술잔치를 벌였고, 모두 술에 취해 즐기느라 정신이 없었지요. 바로 그때 홀연히 불이 일어나더니 마을을 태우기 시작했습니다. 술에 취한 사람들은 겁에 질려 우왕좌왕하다가 부처님에게 달려갔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를 살려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 모든 생명은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라는 세 가지 불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그 불을 지혜의 물로 끕니다. 이 말이 진실하다면 저 불은 꺼질 것입니다.”

이 말씀이 끝나기 무섭게 불이 곧 꺼졌지요. 사람들은 기적 같은 일에 놀라워하며 부처님과 가르침에 더 큰 믿음을 냈습니다. 이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제자들이 감탄하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만 저들에게 이익을 준 것이 아니다. 지나간 세상에도 저들에게 큰 이익을 주었다. 지나간 세상에 히말라야 한쪽에 큰 대숲이 있었다. 많은 새와 짐승들이 그 숲을 의지해 살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환희수(歡喜首)라는 앵무새가 있었다.

어느 날 그 숲에 바람이 심하게 불어 대나무끼리 서로 마찰하여 큰불이 일어났다. 숲에 깃들어 살고 있던 새와 동물들은 도망갈 곳을 찾지 못하여 겁에 질려 의지할 곳을 찾았다.

그때 앵무새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새와 동물들을 보고 커다란 자비심이 일어났다. 앵무새는 곧장 호수로 날아가서 두 날개에 물을 적셔 불 위에 뿌렸다. 하지만 거대한 산불에 작은 앵무새 날개 끝의 물방울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앵무새는 수없이 날아서 물을 적셔와 뿌려대느라 죽을 지경이었지만 숲의 동료들이 가여워 멈추지 못했다. 그 마음에 감동을 받은 하늘의 제석천이 모습을 드러내 앵무새에게 물었다.

“이 숲은 넓고 크기가 수천만 리인데, 네 날개에 적셔 오는 물은 몇 방울에 지나지 않는다. 어떻게 그 큰불을 끌 수 있겠는가?”

앵무새가 대답하였다.

“내 마음은 크고 넓으므로 부지런히 힘써 게으르지 않으면 반드시 불을 끌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이 몸이 다하도록 불을 끄지 못하면 다시 내생의 몸을 받더라도 맹세코 불을 끄고야 말 것입니다.”

제석천이 크게 감동을 받아서 큰비를 내리니, 불은 곧 꺼졌다.

“비구들이여, 그때의 앵무새는 바로 지금의 내 몸이요, 숲속의 새와 동물들은 지금의 이 마을 사람들이다. 나는 그때도 불을 꺼서 그들을 편안하게 하였고, 지금도 불을 꺼서 이들을 편안하게 한 것이다.”

- 〈잡보장경〉 권 제2

내가 살아가는 세상은 나 혼자만의 공간이 아닙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명이 함께 머물고 있고, 우리는 모두 서로 의지처가 되고 벗이 되어 살아갑니다. 어딘가에 큰불이 일어나 이 벗들이 겁에 질려 있다면 죽을 힘을 다해 달려가 불을 꺼야 할 것이요, 죽어서 다음 생에라도 불을 끄겠노라 맹세하는 것이 불자다운 삶이라는 부처님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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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이야기-앵무새의 보은

역시 비슷한 내용입니다. 앵무새 한 마리가 큰 숲의 나무 한 그루에 의지해 살고 있는데, 바람이 심하게 불던 어느 날, 불이 일어났지요. 그 불이 점점 번져 온 산을 태울 지경에 이르자 앵무새는 생각했습니다.

‘어떤 새는 나무에 의지해 잠시 그 몸을 쉬었다고 해서 그 은혜 갚으려는 마음을 거듭 일으켰는데, 여기에 오랫동안 살아온 내가 이 불을 끄지 않을 수 있을까?’

앵무새는 곧 바다로 날아가 두 날개에 바닷물을 적시고 주둥이에 물을 머금고 돌아와 그 불 위에 뿌렸습니다. 쉬지 않고 날갯짓을 하면서 불을 끄려 애를 쓰는 앵무새를 본 어떤 선신(善神)이 그 노고에 감동하여 불을 꺼주었지요.(〈승가나찰소집경〉)

은혜를 잊지 않는 것은 참으로 귀한 마음이라는 경전 구절을 자주 만나는데, 나무 그늘에서 잠시 쉬었다 가더라도 그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하물며 그 숲이 불타오르는데 모른 척 할 수는 없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범망경〉의 48가지 가벼운 계(48輕戒)에서는 “불을 놓지 말라. 나쁜 생각으로 불을 놓아 산과 들을 태우거나, 생물이 번성할 때 땅 위에 불을 놓지 말라. 남의 집이나 절, 혹은 전답이나 숲에 불을 놓아 태우면 죄가 된다.”라는 대목이 있고, 〈정법념경〉에서는 “어떤 사람이 계율을 잘 지키다가 큰불이 일어나 중생들이 그 불에 타는 것을 보고 물로 불을 꺼서 구원하면, 그는 목숨을 마친 뒤에 행도천(行道天)에 태어나서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불을 꺼야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첫째는 세상을 향한 커다란 연민(대비심) 때문입니다. 둘째는 우리가 의지하고 있는 자연의 은혜를 갚는 마음(보은심)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맹렬한 기세의 불 앞에 당당히 맞서 끄려는 결의는 구도자의 정진하는 마음(정진심)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불을 끈다면 우리가 끄지 못할 불은 없다는 것이지요.

이미령
동국대학교에서 불교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경전번역가이자 불교대학 전임강사·북칼럼니스트이며, 경전이야기꾼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붓다 한 말씀〉·〈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이미령의 명작산책〉·〈시시한 인생은 없다〉 등이 있다. 또 〈직지〉·〈대당서역기〉 등 다수의 번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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