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2월 21일 불교문화재 6건

칠곡 송림사 석조삼장보살좌상 및 목조시왕상 일괄.  〈사진=문화재청〉
칠곡 송림사 석조삼장보살좌상 및 목조시왕상 일괄.  〈사진=문화재청〉

칠곡 송림사 석조삼장보살좌상 및 목조시왕상을 비롯한 불교문화재 6건이 보물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2월 21일 ‘칠곡 송림사 석조삼장보살좌상 및 목조시왕상 일괄(漆谷 松林寺 石造三藏菩薩坐像 및 木造十王像 一括)’, ‘천수원’명 청동북(‘薦壽院’銘 金鼓), 〈예념미타도량참법〉 권6~10(禮念彌陀道場懺法) 2건(조계종 총명사본, 법화종 선광사본), 〈협주석가여래성도기(夾註釋迦如來成道記)〉, 〈금강반야경소론찬요조현록(金剛般若經疏論纂要助顯錄)〉 등 총 6의 불교문화재를 보물로 지정했다. 조선 후기에 편찬된 관찬 지리지(관의 주도로 펴낸 지리지) ‘여지도서(輿地圖書)’ 1건도 보물로 지정됐다.

‘칠곡 송림사 석조삼장보살좌상 및 목조시왕상 일괄’은 조각승인 승일(勝一)·성조(性照) 등이 1665년(조선 현종 6) 완성해 송림사 명부전에 봉안한 것이다. 삼장보살은 천상(천장보살)·지상(지지보살)·지옥(지장보살)을 일컫는다. 삼장보살은 불화로는 많이 남아 있지만, 조각 작품으로는 현재까지 송림사 삼장보살상이 국내에선 유일하다. 천장보살상에서 발견된 중수발원문 등을 통해 처음 조성된 시기와 제작 장인, 조성 이후 1753년경 한차례 중수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일부 조각이 결실돼 근래에 새로 조성됐으나, 제작 당시의 모습에서 큰 손상이나 변형·결손 등이 없이 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높다.

온양민속박물관 소장 ‘천수원’명 청동북은 1162년(고려 의종 16)에 제작된 청동북이다. 표면을 굵고 가는 선을 통해 3구역으로 구획하고 각 구역을 문양으로 장식했다. 가운데 구역에는 꽃술들을 삼각 형태로 쌓아 삼각형과 역삼각형 형태로 교대로 반복시켰는데, 이같은 표현은 고려시대 청동북에서 처음 보이는 사례다. 몸체 측면에 제작 시기·무게·사찰명·주관 승려 이름이 적힌 글씨가 있어 12세기 중엽의 중요한 편년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출토지가 분명해 역사적 가치도 높다는 평가다.

〈협주석가여래성도기〉는 당나라 때 왕발(王勃)이 지은 〈석가여래성도기〉에 송나라 혜오대사(慧悟大師) 도성(道誠)이 본문의 뜻을 알기 쉽게 풀이한 주해서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대기를 담고 있다. 1253년(고려 고종 40) 분사대장도감에서 새긴 목판을 후일 인쇄한 것임을 알 수 있는 간행정보가 담겨 있고, 13세기 중엽 분사대장도감의 운영과 역할 변화 등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다.

〈금강반야경소론찬요조현록〉은 구마라집(鳩摩羅什)의 〈금강반야바라밀경〉 한역본에 남송 출신의 혜정(慧定) 스님이 본문의 뜻을 알기 쉽게 풀이한 것이다. 책 끝부분의 ‘발문’과 ‘간행기록’을 통해 1373년(고려 공민왕 22) 은봉 혜녕(隐峯慧寧) 스님의 주도하에 비구 정서(定西) 스님의 발원, 공덕주 배길만(裴吉萬) 등의 시주, 심정(心正) 등의 판각으로 조성된 사실을 알 수 있다. 기존에 보물로 지정된 판본보다 앞선 시기에 조성됐으며, 현재까지 국내에서 확인된 유일본으로 자료적 희소성과 가치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문화재다.

〈예념미타도량참법〉 권6~10은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참회하고 염불할 때 행하는 13편의 의례 절차가 수록된 10권 본의 불교 의식집으로, ‘정토문(淨土文)’으로 불리기도 한다. 1474년(조선 성종 5) 간경도감판본으로 기존에 보물로 지정된 해인사판본보다 앞선 시기에 조성됐다. ‘선광사(법화종) 소장본’은 끝부분에 초주갑인자(初鑄甲寅字)로 인출된 등곡 학조(燈谷學祖) 대사의 ‘발문(跋文)’이, ‘총명사(조계종) 소장본’은 김수온(金守溫)의 ‘발문’이 수록돼 있다. 이를 통해 1474년 성종 비 공혜왕후가 승하하자 명복을 빌기 위해 시할머니인 세조의 비 정희왕후의 발원으로 간경도감에서 목판을 조성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재)한국교회사연구소가 소장하고 있는 ‘여지도서(輿地圖書)’는 조선 영조대에 각 군현에서 작성한 자료를 각 도의 감영을 통해 모아 완성한 지리지다. 자료를 작성한 시기는 대체로 1760년대 전후로 추정하며, 각 읍지의 호구(戶口)·전결(田結) 등의 내용으로 볼 때 1759년(조선 영조 35)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추정한다.

 ‘천수원’명 청동북.  〈사진=문화재청〉
‘천수원’명 청동북.  〈사진=문화재청〉
〈협주석가여래성도기〉.  〈사진=문화재청〉
〈협주석가여래성도기〉.  〈사진=문화재청〉
〈금강반야경소론찬요조현록〉.  〈사진=문화재청〉
〈금강반야경소론찬요조현록〉.  〈사진=문화재청〉
〈예념미타도량참법〉  선광사 소장본.  〈사진=문화재청〉
〈예념미타도량참법〉  선광사 소장본.  〈사진=문화재청〉
〈예념미타도량참법〉 총명사 소장본.  〈사진=문화재청〉
〈예념미타도량참법〉 총명사 소장본.  〈사진=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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