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주요 도시 순회하며
등(燈)·불꽃으로 무사태평 기원

대만 신베이 핑시는 천등축제가 유명하다. 소원을 적은 수천 개의 천등이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다. ⓒGettyimagesBank
대만 신베이 핑시는 천등축제가 유명하다. 소원을 적은 수천 개의 천등이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다. ⓒGettyimagesBank

새해가 시작하는 음력 정월은 중화권에서 가장 큰 명절입니다. 춘절(春節)이라고 부르는 설날은 연휴가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이고 거의 한 달 내내 새해의 들뜬 분위기가 이어집니다. 그 전통은 대만에서도 이어져 사람들은 섣달그믐날 밤인 ‘추시[除夕, 음력 12월 말일]’에 조상님께 제사를 올리고 가족들이 다 함께 모여 식사하는데, 이를 ‘웨이루[圍爐]’라고 부릅니다.

대만인들은 설날인 정월 초하루에 절에 가서 새해 첫 참배를 한 후 친가의 부모님과 지내고, 초이틀에는 외가에 가서 인사를 드리고, 초사흘은 가족과 외출을 하거나 사찰을 참배합니다. 또 초나흘엔 조상신께 기도를 올리며 광명등을 밝히고, 초닷새가 되면 ‘카이스[開市]’라고 하여 새해 첫 일을 시작합니다. 어른들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면, 어른들은 붉은 봉투에 세뱃돈[红包, 홍빠오]을 담아 나누어줍니다. 중화권에서 춘절은 이렇게 민속적인 의미와 함께 종교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녀 많은 사람이 불교 사찰이나 도교 사원을 찾아 기도를 올리고 등을 밝힙니다.

등불축제의 유래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부처님오신날(음력 4월 8일) 연등을 밝히지만, 대만을 포함한 중화권에서는 정월초하루부터 보름 사이에 등불을 밝힙니다. 전통적으로 사찰에서는 정월대보름에 상등법회를 열어 광명등기도 입제를 하고, 도교 사원에서도 새해 참배와 정월 기도·광명등기도 등을 엽니다. 등을 밝힐 때 낸 시주금은 주로 자선 기부금으로 사용됩니다. 등불을 밝힌 불자가 공덕을 쌓아 선업선과(善業善果)로 이어지게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원소절(元宵節)은 ‘정월대보름날 밤’을 의미하는데, 중화권에서는 오래전부터 이즈음 축제를 즐겼습니다. 이 기간에는 사찰은 물론 집집마다 등불을 내다 걸었기 때문에 ‘등절(燈節)’·‘등화절(燈火節)’·‘등롱절(燈籠節)’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원소절에 등불을 밝히게 된 기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습니다. 첫째는 한(漢)나라 문제(文帝)의 즉위를 기념해 이날을 원소절이라 명했고, 이후 당나라 조정에서 매년 등불을 켜고 국태민안을 기원한 게 등불놀이가 됐다는 설입니다. 둘째는 한나라의 어느 불심 깊은 황제가 음력 정월대보름에 등불을 밝혀 부처님을 기린 것이 시초란 설입니다.

민간에서도 등불놀이의 유래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옥황상제가 아끼던 신조(神鳥) 한 마리가 인간세계에 내려왔다가 사냥꾼에게 잡혀 죽었고, 이를 알게 된 옥황상제가 크게 노해 인간 세상을 불 질러 멸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에 옥황상제의 딸이 몰래 내려와 인간들에게 전했고, 현명한 노인이 붉은 등을 대문에 걸고 폭죽을 터뜨려 불꽃과 연기로 마치 인간 세상이 불바다가 된 것처럼 보이게 하자고 제안해 큰 화를 면한데서 비롯됐다는 게 줄거리입니다.

불광산사의 랜드마크인 금불상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청동 좌불이다. 기단을 포함하면 108m에 달하는 금불상 위로 불꽃축제가 펼쳐지고 있다. 사진은 2014년 등불축제 당시의 모습. 〈사진=불 광산사〉
불광산사의 랜드마크인 금불상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청동 좌불이다. 기단을 포함하면 108m에 달하는 금불상 위로 불꽃축제가 펼쳐지고 있다. 사진은 2014년 등불축제 당시의 모습. 〈사진=불 광산사〉

등불축제의 전승

결론적으로 원소절에 화려한 등롱을 내걸고 함께 구경하는 행사가 민간으로 확산되면서 ‘대만등회(臺灣燈會, 이하 등불축제)’가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대만인들은 다양한 모양의 등불을 밝히며 축제를 엽니다. 거리로 나가거나 천등을 띄워 소원을 빌거나 함께 수수께끼를 푸는 등 민속 신앙·역사·풍습·지역 특성에 따라 여러 주제와 방식으로 축제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당(唐)대에는 원소절 등회가 대보름을 전후로 3일(14~16일)간 열렸고, 당 현종은 “100척(30m)이나 되는 높은 나뭇가지에 등을 100개 밝혔다.”라는 기록이 전합니다. 북송대에는 5일(14~18일)간 열렸으며, 명(明)대에는 10일(8~17일)간 열렸습니다. 청(淸)대에는 황궁에서 7일, 민간에서 4일(13~16일)간 등을 밝혔습니다. 청대에 와서는 사자춤과 용춤을 추는 놀이판이 벌어졌고, 산락백희(散樂百戱) 같은 가무가 곁들여지기도 했습니다.

대만에서는 원소절에 타이베이의 용산사(龍山寺) 등 주요 사찰과 관도궁(關渡宮)·자우궁(慈祐宮) 등 도교 사원에서 화등(花燈)을 전시하기 시작했고, 이를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들었습니다. 1989년 9월경 대만의 교통부 관광국에서 불교와 도교 사원에서 전시하는 화등을 한곳에 모아 감상하자고 제안했고, 이듬해인 1990년 처음으로 집중된 등불축제가 개최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대만 등불축제는 정월대보름을 전후로 10여 일 동안 시민과 관광객이 함께 참여하는 축제로 발전하게 되었고, 미국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세계의 환상적인 축제들(Fantastic Festivals of the World)’에 소개되며 세계인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천등축제와 불꽃축제

등불축제는 2000년까지 타이베이에 있는 중정기념당에서 열렸습니다. 그런데 2001년부터 대만 전국을 순회하며 열리게 되었습니다. 축제 때 가장 눈길을 끄는 주등(主燈)은 10m 이상이 되는 대형등으로 십이지간(十二支間) 중 당해년도의 동물을 모티브로 삼습니다. 2019년부터는 지역적 특색이 담긴 동물 및 아이콘을 주제로 선정하기도 합니다.

축제 때는 테마음악이 선정되며 각종 예술공연과 전통 문화공연이 펼쳐집니다. 주등은 원소절 당일 저녁 정해진 시간마다 점등을 반복하며, 야간에는 유람선을 타고 바다에서 등불축제를 관람할 수도 있습니다.

대만의 유명한 지역 등불축제로는 신베이[新北] 핑시[平溪], 타이중[台中] 동스[東勢], 타이난[臺南]의 옌수이[鹽水], 가오슝[高雄] 아이허[愛河] 지역의 등불축제가 유명합니다. 이 중에서도 신베이시 핑시구에서 열리는 천등축제는 소원을 적은 아름다운 수천 개의 풍등을 날리는 행사로 전 세계인들이 즐겨 찾는 축제의 현장으로, 마을의 안전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풍등을 띄운 데서 기원했다고 합니다. 또 타이난시 옌수이 지역의 불꽃축제는 도교 계통의 우마오 사원에서 대규모의 폭죽을 터뜨리는 행사입니다. 참여하는 사람들은 떨어지는 폭죽을 맞으면 악운·질병·잡귀가 떠나간다고 믿는데, 위험하기 때문에 반드시 두꺼운 보호복과 안전모를 착용해야 합니다. 그래도 타박상이나 화상을 입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불광산사 일주문 앞 관음보살상과 연못을 장엄한 어류등(2011년). 〈사 진=불 광산사〉
불광산사 일주문 앞 관음보살상과 연못을 장엄한 어류등(2011년). 〈사 진=불 광산사〉

불광산사의 등불축제

제가 출가·수행하고 있는 불광산사도 등불축제를 열고 있는데, 바로 ‘춘절평안등법회’입니다. 50년 전 처음 열었고, 현재 대만의 대표적인 지역 등회의 하나로 자리매김해 매년 수백만 명의 인파가 몰리고 있습니다. 새해에 기도하러 온 신도들이 한 해의 평안을 기원하며 올리는 이 등불축제는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온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각종 체험행사를 엽니다. 어린 아이부터 어른까지 형형색색의 등을 꾸미는 창작대회를 열고, 교도소의 수감자들이 여러 종류의 등을 제작해 사찰 경내를 장엄하기도 합니다.

대만 사람들은 새해 첫날 사찰에 가서 첫 번째 향을 올리고[燒頭香] 첫 번째 종을 치는[敲頭鐘] 문화가 있습니다. “음력으로 새해 첫날 0시가 되어 산문이 열리자마자 처음 향을 올리거나 처음 종을 치는 사람은 큰 복을 받는다.”고 믿기 때문에 많은 인파가 몰립니다. 이로 인해 큰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불광산사의 개산조이신 성운대사께서는 “정월 기간 언제든지 절에 와서 자신이 그해 처음 올리는 향이 바로 첫 번째 향이고, 처음 울리는 종이 바로 첫 번째 종이다.”라고 말씀하며 사람들의 인식을 개선했습니다. 그 결과 새해 첫날 사람들이 사찰에 몰려서 다치는 사고는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불광산사는 여러 모양의 등을 사찰 곳곳에 밝히는 한편 여러 나라의 복장으로 가장행진을 합니다. 또 다양한 문화예술 공연과 전시회를 열고, 지역 사회와 함께 채식 야시장을 열어 채식을 홍보하고 먹거리 인식을 개선하는 행사도 마련해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불광산사는 이렇게 매년 새로운 창의성과 기술로 등불축제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어느 해는 사찰 전체에 레일을 깔고 하늘을 떠다니는 등을 달아 전국적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과거엔 새해 소원을 적어 하늘에 띄우는 천등도 날렸는데, 지금은 화재의 위험성 때문에 신북시 핑시구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에서는 천등을 날리는 행사를 하지 않습니다.

제가 불광산사 강원을 다니던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법당 지붕에 올라가 천등을 날렸습니다. 한 해는 완전히 타지 않은 천등이 근처 오이밭에 떨어져 화재가 발생했는데, 불광산사는 오이밭 주인에게 배상을 하고 밭의 오이를 전부 매수해 주었습니다. 덕분에 며칠 동안 오이로 만든 반찬을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최근에는 과학기술을 응용한 드론쇼·레이저쇼·불꽃축제 등으로 대체해 새해의 소원을 빌고 관람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2010년과 2011년 불광산사에서 열린 등불축제 현장. 〈사진=불광산사〉
2010년과 2011년 불광산사에서 열린 등불축제 현장. 〈사진=불광산사〉

2024년은 타이난서 열려

대만 등불축제는 크게 민간 등불축제, 지역 등불축제, 전국 등불축제로 나눌 수 있습니다. 불교 사찰이나 도교 사원에서 많은 등을 밝히고 기도하는 것으로 등불축제가 시작했지만, 이후 점차 지역의 축제로 확대되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1990년부터 대만 관광국 주최로 타이페이에서 등불축제를 열기 시작했고, 2001년부터는 대만의 문화 소프트 파워와 국제교류의 홍보를 목적으로 전국으로 확대해 매년 도시를 바꿔가며 순회전을 열고 있습니다.

대만 등불축제는 현재 전국의 지자체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국가와 도시에서도 참석하고 있으며, 기업과 종교단체 등 민간단체도 참여하는 큰 축제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그해 등불축제를 어떻게 주최했는지는 민심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정치·사회·문화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행사가 되었습니다.

2020년에는 타이중, 2021년 신베이, 2022년 타이동[台東] 2023년엔 난토우[南投]에서 대만 등불축제가 열렸습니다. 2024년에는 16년 만에 타이난에서 열리는데, 기간은 양력으로 2월 2일부터 3월 10일까지 입니다. 2024년은 타이난이 도시로 설립된 지 40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에 ‘고대 수도 타이난의 웅장함’을 표현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대만 사람들에게 있어서 등불축제는 굉장히 큰 문화적 상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2010년 상하이 엑스포가 열렸을 때 대만을 소개하는 대만관을 하늘에 띄우는 천등 모양으로 만든 점에서 알 수 있듯 등불축제는 대만 문화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대만 국민의 삶과 신념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만인 모두가 소중히 간직하고 계승할 가치 있는 문화축제로 여기고 있습니다. 마치 대만을 대표하는 국제적 명함과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17년 가오슝 등불축제 때 선보인 용등. ⓒGettyimagesBank
2017년 가오슝 등불축제 때 선보인 용등. ⓒGettyimagesBank
대만 등불축제는 2001년부터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열리는데, 지역 등불축제도 여전히 활발하게 열리고 있다. 사진은 2015년·2017년·2018년·2020년 가오슝 등불축제에 선보인 등(燈). ⓒGettyimagesBank
대만 등불축제는 2001년부터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열리는데, 지역 등불축제도 여전히 활발하게 열리고 있다. 사진은 2015년·2017년·2018년·2020년 가오슝 등불축제에 선보인 등(燈). ⓒGettyimagesBank
2013년 타이베이 등불축제 때 용산사에 밝혀진 다양한 등(燈). ⓒGettyimagesBank
2013년 타이베이 등불축제 때 용산사에 밝혀진 다양한 등(燈). ⓒGettyimagesBank
2015년 양의 해를 맞아 타이베이 등불축제에 선보인 양등. ⓒGettyimagesBank
2015년 양의 해를 맞아 타이베이 등불축제에 선보인 양등. ⓒGettyimagesBank
불광산사는 2023년 등불축제 때 드론을 활용해 하늘에 관세음보살상을 그려내는 드론쇼를 펼치기도 했다. 〈사진=불광산사〉
불광산사는 2023년 등불축제 때 드론을 활용해 하늘에 관세음보살상을 그려내는 드론쇼를 펼치기도 했다. 〈사진=불광산사〉

 

혜호 스님
현재 대만 불광산사 사무감원 법무팀장, 서울 불광산사 주지를 맡고 있다. 15세 때 대만 불광산사에서 출가했으며, 대만 불광산사 도감원 서기와 불광산 총림학원 학무주임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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