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를 잉태한
어머니의 숨결

석가모니 부처님이 태어난 룸비니. 그 광활한 평원에 내리는 오후의 햇살이 순례자의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태어난 룸비니. 그 광활한 평원에 내리는 오후의 햇살이 순례자의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인도의 불교 성지를 순례하다 보면 글이나 그림 또는 영상으로는 접할 수 없는 감동과 강렬한 환희를 몸과 마음으로 경험하게 된다. 성지 곳곳에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는 부처님의 흔적과 켜켜이 쌓여 있는 수많은 구도자의 발자취 때문이다. 부처님의 흔적은 여전히 살아 숨쉬며 순례자를 맞이한다.

아시따 선인(仙人)은 선정에 들었을 때 도리천의 신들을 만났다.

“신들께서는 왜 그리 기뻐합니까? 깃발을 들고나와서 왜 저리 흔듭니까? 악마들과의 전투가 끝난 뒤 신들이 승리하고 악마들이 패배했다 하여도 이렇게까지 축하한 적은 없었습니다. 얼마나 경이로운 일을 보았기에 저리도 기뻐합니까? 보십시오, 신들은 노래하고 환호하며 악기를 연주하고 손뼉 치며 춤을 춥니다. 수미산의 높은 정상에 사는 신들이여, 부디 저의 의혹을 풀어주소서.”

“석가(釋迦, Sakyan)족의 땅 룸비니에 그분이 오셨으니, 깨달은 이가 될 보살, 귀하디귀하며 보배로운 분이 인간 세상에 안녕과 행복을 위해 오셨기에 우리는 굉장한 환희를 느끼는 것이라오. 위없는 분, 가장 숭고한 분, 살아있는 모든 존재를 이끄실 분, 인간 가운데 으뜸인 그분은 옛 선인의 숲에서 다르마의 바퀴를 굴릴 것이오. 백수의 왕 사자가 사자후를 토하듯이.”

룸비니는 인도-네팔 국경에 자리한 아주 작은 시골 마을이다. 고즈넉한 이곳은 여느 성지들과 달리 거칠고 투박한 도시의 소음 대신 정겨운 모습과 평화로운 속삭임으로 순례자를 맞는다. 길가의 수더분한 풀, 그 옆으로 한가로운 나무, 그리고 멀리 편하게 앉은 바위들은 룸비니 사람의 표정에도 그대로 묻어나 순례자를 미소 짓게 한다.

어머니의 품처럼 안온한 곳이 또 있을까? 룸비니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면 여행자는 두 손을 모으고 세상의 모든 어머니께 감사의 기도를 올리게 된다. 이 세상 모든 어머니가 룸비니에서 부처님을 출산하신 마야부인처럼 거룩하다는 걸 깨닫는 것이다. 이번에 맞이한 생에서 이곳을 여행할 수 있음에 감사를 전하는 것이다.

어둠이 내리면 순례자는 코발트빛 찬란한 밤의 풍경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시간을 되돌려 각자의 어머니 자궁으로 들어가 시공이 사라진 곳에서 평화로운 아기로 잠들어, 마야부인이 꿈에서 보았던 여섯 개의 이빨을 가진 하얀 코끼리를 타고 별빛 찬란한 하늘을 날아 도솔천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인파에 떠밀린 수메다(Sumedha, 善慧)가 되어 다섯 송이 연꽃을 던지며 부처님이 되기를 소망한다.

“내가 닿는 곳 어디에나 고통과 두려움이 사라져 모든 이들이 행복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들을 구할 지혜와 공덕 갖추기를 소망합니다.”

이른 새벽, 자전거에 올라 룸비니 동산을 향한다. 돌부리를 밀어내는 바퀴 소리가 은은한 만트라로 울려 퍼질 때 순례자는 부처님의 탄생지 룸비니가 전하는 부드럽고 강렬한 떨림의 근원을 마주하게 된다. 의식은 명료해지고 자신을 짓누르던 의심의 목소리는 잦아든다.

두려움이라는 어둠이 사라지자,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처럼 나 또한 지금 이곳의 삶을 만끽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다리에 힘을 준다. 룸비니가 간직한 어머니의 숨결이 순례자의 마음에 빛을 뿌리며 폭포수로 흘러내린다. 평화로운 어머니의 미소를 띠고서 세상의 모든 고귀한 존재를 맞이하는 마야데비 사원에서 순례자는 다짐한다.

“나는 반드시 부처님이 되리라. 나는 반드시 부처님이 되리라. 어둠을 깨고 세상을 밝히는 태양처럼 나는 반드시 부처님이 되리라.”

룸비니를 방문한다면 긴 밤을 기도로 지새우라. 이른 새벽에 아무렇게나 펼쳐진 들판을 하염없이 걸으며 마주하는 사람이나 사람 아닌 것들을 향해 마음을 내밀어 보라. 샛별이 스러지기 전에 마야데비 사원을 찾아가 이승에서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들려오는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라. 풀 하나하나에 맺힌 이슬방울 속의 찬란한 환희를 마시고, 시간과 장소의 경계가 완전히 소멸하는 벼락같은 탄생의 순간을 맞이해 보라. 마음의 조각들을 낱낱이 관찰하는 동안 부처님의 탄생을 찬탄하던 노랫소리가 도솔천에 메아리쳐 들려올지 모르니.

해가 지는 카필라바스투에서 한 순례자가 명상에 잠겨 있다. 카필라는 기원전 6세기 어느 때에 현재의 네팔 남부와 인도의 국경 부근 히말라야 기슭에 위치한 석가족의 작은 나라였다. 싯다르타는 카필라의 왕 숫도다나와 마야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숫타니파타〉에는 석가모니 부처를 가리켜 ‘감자왕(甘蔗王)의 후예’라고 언급하며, 석가족의 시조로 받들어지는 감자왕으로부터 니구라 - 구로 - 구구로 - 사자협 - 정반(숫도다나)에 이르는 부계의 계보를 전하고 있다.
해가 지는 카필라바스투에서 한 순례자가 명상에 잠겨 있다. 카필라는 기원전 6세기 어느 때에 현재의 네팔 남부와 인도의 국경 부근 히말라야 기슭에 위치한 석가족의 작은 나라였다. 싯다르타는 카필라의 왕 숫도다나와 마야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숫타니파타〉에는 석가모니 부처를 가리켜 ‘감자왕(甘蔗王)의 후예’라고 언급하며, 석가족의 시조로 받들어지는 감자왕으로부터 니구라 - 구로 - 구구로 - 사자협 - 정반(숫도다나)에 이르는 부계의 계보를 전하고 있다.
성지를 찾아 헌화하는 사람들의 얼굴에 수메다에게 일곱 송이의 푸른 연꽃을 건네며 그중 두 송이는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던 여인 고삐의 모습을 본다. 수메다는 디빵까라 부처님을 향해 고삐를 위해 기도하며 약속을 지킨다.
성지를 찾아 헌화하는 사람들의 얼굴에 수메다에게 일곱 송이의 푸른 연꽃을 건네며 그중 두 송이는 자신을 위해 기도해 달라던 여인 고삐의 모습을 본다. 수메다는 디빵까라 부처님을 향해 고삐를 위해 기도하며 약속을 지킨다.
아소카 시대 사원의 배치가 이전의 목재 건축물의 배치와 매우 유사한데, 이것은 그 장소에서 예배가 지속됐음을 암시한다. 마우리아 시대 이전, 고대의 나무 기둥 구멍에서 나온 숯의 방사성 탄소연대측정과 토양에 있는 원소들의 발광연대측정 결과 기원전 1,000년경에도 사원이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이 장소는 기원전 6세기의 불교 유물로 인정되었다.
아소카 시대 사원의 배치가 이전의 목재 건축물의 배치와 매우 유사한데, 이것은 그 장소에서 예배가 지속됐음을 암시한다. 마우리아 시대 이전, 고대의 나무 기둥 구멍에서 나온 숯의 방사성 탄소연대측정과 토양에 있는 원소들의 발광연대측정 결과 기원전 1,000년경에도 사원이 존재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이 장소는 기원전 6세기의 불교 유물로 인정되었다.
룸비니 길거리에서 만난 아이들. 환하게 웃는 아이들의 얼굴을 마주하자, 우리들의 태어남도 부처님의 그것과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피어난다. 이렇게 소중하고 고귀한 삶을 알아채지 못한 채 살아온 것이 아닐까 돌아보게 된다.
룸비니 길거리에서 만난 아이들. 환하게 웃는 아이들의 얼굴을 마주하자, 우리들의 태어남도 부처님의 그것과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피어난다. 이렇게 소중하고 고귀한 삶을 알아채지 못한 채 살아온 것이 아닐까 돌아보게 된다.
붓다의 탄생 모습을 조각한 대리석 부조 작품으로 마야데비 사원 앞 작은 사원에 모셔져 있다. 마야부인은 상아가 여섯 개 달린 흰 코끼리가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꾼 뒤에 임신했다. 마야부인은 당시 풍습에 따라 친정으로 향했는데, 도중에 룸비니 동산에서 탐스러운 무우수(無憂樹) 나뭇가지를 잡고 오른쪽 겨드랑이 아래로 석가모니를 낳았다. 부처님이 겨드랑이 또는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부처님께서 무사와 왕족인 크샤트리아 계급 출신이라는 것을 상징한다. 그 걸음마다 연꽃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오른손은 하늘을, 왼손은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라고 외쳤다. “하늘 위 하늘 아래 나 홀로 존귀하도다. 삼계가 모두 고통 속에 헤매니 내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 강력한 인간 존중의 천명이 아닐 수 없다. 부처님이 걸은 일곱 걸음은 모든 중생이 육도(六道, 천상·아수라·인간·축생·아귀·지옥)의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을 이룸을 상징한다.
붓다의 탄생 모습을 조각한 대리석 부조 작품으로 마야데비 사원 앞 작은 사원에 모셔져 있다. 마야부인은 상아가 여섯 개 달린 흰 코끼리가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꾼 뒤에 임신했다. 마야부인은 당시 풍습에 따라 친정으로 향했는데, 도중에 룸비니 동산에서 탐스러운 무우수(無憂樹) 나뭇가지를 잡고 오른쪽 겨드랑이 아래로 석가모니를 낳았다. 부처님이 겨드랑이 또는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부처님께서 무사와 왕족인 크샤트리아 계급 출신이라는 것을 상징한다. 그 걸음마다 연꽃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오른손은 하늘을, 왼손은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天上天下 唯我獨尊 三界皆苦 我當安之)”라고 외쳤다. “하늘 위 하늘 아래 나 홀로 존귀하도다. 삼계가 모두 고통 속에 헤매니 내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 강력한 인간 존중의 천명이 아닐 수 없다. 부처님이 걸은 일곱 걸음은 모든 중생이 육도(六道, 천상·아수라·인간·축생·아귀·지옥)의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을 이룸을 상징한다.
마야데비 사원은 부처님의 탄생지로 여겨지는 곳으로 ‘정확한 부처님의 탄생지’라고 적혀 있다.
마야데비 사원은 부처님의 탄생지로 여겨지는 곳으로 ‘정확한 부처님의 탄생지’라고 적혀 있다.
룸비니의 아소카 석주에는 브라흐미 비문이 새겨져 있다. 비문을 통해 3세기 마우리아 제국의 황제 아소카가 이곳을 방문해 부처님의 탄생지로 인정했음을 알 수 있는데, 이 기둥이 발견되기 전까지 이 장소는 룸비니로 알려지지 않았다. 아소카 대왕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을 숭배하기 위해 직접 방문하고 돌기둥을 세우게 하였고, 축복받은 사람이 이곳에서 태어난 것을 기려 룸비니 마을 주민은 세금을 내지 않도록 배려했다고 전한다.
룸비니의 아소카 석주에는 브라흐미 비문이 새겨져 있다. 비문을 통해 3세기 마우리아 제국의 황제 아소카가 이곳을 방문해 부처님의 탄생지로 인정했음을 알 수 있는데, 이 기둥이 발견되기 전까지 이 장소는 룸비니로 알려지지 않았다. 아소카 대왕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을 숭배하기 위해 직접 방문하고 돌기둥을 세우게 하였고, 축복받은 사람이 이곳에서 태어난 것을 기려 룸비니 마을 주민은 세금을 내지 않도록 배려했다고 전한다.

 

오철만
사진가.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1997년 떠난 인도 여행 중 큰 사고를 당했다. 이를 계기로 사회적 성공의 길에서 방향을 틀어 사진과 함께 내면으로 향하는 시간을 살게 됐다. EBS 세계테마기행 스리랑카(2015)편과 인도(2018)편에 출연했다. 2009년 이후 수차례 개인전과 초대전을 열었고, 저서로 〈당신과 내가 좋은 나라에서 만난다면〉·〈길은 다시, 당신에게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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