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옛날, 북인도에 카시국이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왕은 나라를 잘 다스렸습니다. 왕실도, 신하도, 백성도 행복했습니다.

슬픔은 엉뚱한 데서 왔습니다. 왕비가 병으로 일찍 죽었습니다. 그때 첫째 왕자 마하사사가 열 살, 둘째 왕자 찬다는 일곱 살이었습니다. 왕과 두 왕자는 매일 눈물 밥을 먹었습니다. 백성들도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1년이 지났습니다.

“나라에는 왕비님이 계셔야 합니다.”

신하들은 왕에게 매일 간청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왕은 새 왕비를 맞이하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새 왕비는 아기를 낳았습니다. 왕은 막내 왕자를 안고 있을 때 모든 슬픔을 잊을 수 있었습니다. 왕은 막내 왕자 이름을 수리야라고 지었습니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왕비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에게 선물을 주고 싶소. 무엇이든 말해 보시오.”

“지금 당장은 생각이 안 납니다. 나중에 말씀드려도 되는지요?”

“그렇게 하시오.”

막내가 아홉 살이 되었습니다. 왕은 여전히 막내를 사랑했습니다. 두 형도 막내를 귀여워했습니다.

하루는 왕비가 왕에게 말했습니다.

“대왕님이시여, 수리야 왕자가 태어났을 때 제게 하신 약속이 기억나시는지요? 제가 원하는 선물을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기억하오. 이제 생각이 나시었소?”

“막내에게 왕위를 물려주시옵소서.”

왕은 깜짝 놀라 대답했습니다.

“왕위는 맏왕자 마하사사에게 줄 것이오. 신하들도, 백성들도 그렇게 믿고 있소.”

왕비는 뾰로통했습니다. 똑같은 말로 날마다 왕을 괴롭혔습니다. 왕비는 이런 말까지 했습니다.

“대왕님이 약속을 안 지키시면 하늘이 노하여 첫째와 둘째 왕자에게 벌을 줄까 걱정됩니다.”

왕은 왕비가 두 왕자를 해칠까 두려워졌습니다. 그래서 두 왕자를 불러서 그동안 있었던 일을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왕은 금과 은을 챙겨주며 두 왕자를 마지막으로 안았습니다.

“너희 둘은 몰래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서 살기 바란다. 내가 죽거든 왕궁으로 돌아와서 첫째가 왕위를 잇거라.”

왕은 통곡하면서 두 왕자를 내보냈습니다. 마침 막내 왕자가 왕궁 뜰에서 놀다가 두 왕자가 궁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냥꾼 옷차림이었습니다. 막내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습니다.

“형님들은 어디를 가십니까? 눈이 왜 빨갛습니까? 울었나요?”

〈삽화=필몽〉
〈삽화=필몽〉

막내는 두 형을 무척 따랐습니다. 맏형이 막내를 번쩍 들어서 안았습니다. 막내가 맏형의 목을 꼭 끌어안았습니다.

“막내야, 우린 왕궁을 멀리 떠난다. 너는 아바마마를 잘 도와드리거라. 그리고 아바마마가 돌아가시면 훌륭한 왕이 되어서 백성들을 행복하게 다스리거라.”

막내는 무슨 말인지 몰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둘째가 그동안의 일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막내는 점점 얼굴빛이 어두워졌습니다. 이야기가 끝나자 막내의 눈망울이 촉촉해졌습니다. 막내가 말했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사랑합니다만 이런 식으로 왕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두 형님을 따라가겠습니다.”

“막내야, 안 된다. 너는 너무 어리다.”

두 형이 말렸습니다. 그러나 막내가 앞서서 가는 바람에 할 수 없이 함께 왕궁을 나섰습니다. 며칠간 북쪽으로 걷자 히말라야 산맥이 나왔습니다. 산이 높고 험해서 아름답기도 했지만 무섭기도 했습니다. 다시 사흘을 살핀 끝에 살기 좋은 장소를 찾았습니다. 숲속 가운데 맑은 호수가 있고 호수에서 남쪽 비탈로 나오면 풀밭이 넓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아늑했습니다. 둘째가 말했습니다.

“형님, 땅을 일구면 농사도 잘 되겠어요. 저쪽에는 막내 놀이터도 만들어 줄게요.”

셋은 그 땅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맏형이 말했습니다.

“나와 둘째 형은 집 지을 나무를 베어야겠다. 막내는 호수에 가서 몸을 씻고 오너라.”

막내는 호수로 갔습니다. 호숫가에는 갖가지 신기한 나무들이 기둥을 맞대고 하늘 높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가지마다 다섯 색깔 새들이 앉아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수리야는 조심스레 호수로 내려가 손바닥으로 물을 떠 마셨습니다. 물이 목구멍을 보드랍게 넘어가자 온몸이 상쾌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런 물맛은 처음이야. 옳지! 저기 잎이 넓은 식물도 있네. 목욕은 잠시 후에 하고 잎에 물을 담아서 형님들께 드려야지.”

막내가 다시 허리를 굽히는 순간 물에서 귀신이 나왔습니다. 온몸의 뼈가 드러날 정도로 바싹 말랐고 헝클어진 머리를 가슴까지 늘어뜨리고 있었습니다. 맑은 물에서 나왔는데도 더러운 물이 온몸에서 줄줄 흘러내렸습니다. 막내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귀신이 말했습니다.

“나는 물귀신이다. 나는 최고의 진리를 구하고 있다. 최고의 진리를 알면 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네가 알고 있으면 살려주고 모르면 잡아먹을 것이다. 최고의 진리란 무엇이냐?”

막내는 떨렸지만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해와 달이 하루에 한 번씩 뜨고 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이 생긴 이후로 변함없는 진리입니다.”

귀신이 수라야 어깨를 덥석 움켜쥐며 말했습니다.

“변함없는 진리일 수는 있겠지. 그러나 그게 최고의 진리가 될 수 있겠느냐?.”

귀신은 막내를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서 자기 집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막내가 오지 않자, 맏형은 둘째를 보냈습니다. 귀신은 둘째에게도 물었습니다.

“나는 최고의 진리를 구하고 있다. 네가 알고 있으면 살려주고 모르면 잡아먹을 것이다. 최고의 진리란 무엇이냐?”

둘째도 떨렸습니다. 그래도 왕자답게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세상은 동서남북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어디든 동서남북이 있지요. 이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진리입니다.”

귀신이 둘째의 어깨를 덥석 움켜쥐며 말했습니다.

“확실한 진리일 수 있겠지. 그러나 그게 무슨 최고의 진리냐?.”

귀신은 둘째도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서 자기 집에 가두었습니다.

맏형은 둘째마저 오지 않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맏형은 칼을 차고 호숫가로 갔습니다. 나무 사이로 호수를 찬찬히 살폈습니다. 둘째와 막내는 보이지 않고 수상한 기색도 전혀 없었습니다.

‘이상하다. 어찌된 일일까?’

맏형이 호수로 내려오지 않자, 귀신은 나무꾼으로 변장해서 맏형에게 다가갔습니다. 물귀신이 말했습니다.

“보아하니 먼 길을 오셨군요. 이 호수는 신성합니다. 목욕을 하시면 금방 피곤이 사라질 것입니다.”

맏형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나무꾼의 신발 밖으로 튀어나온 발가락을 보았습니다. 살은 없고 뼈만 있었습니다. 사람의 발가락이 아니었습니다. 맏형은 재빨리 칼을 빼서 귀신의 목에 댔습니다. 맏형이 굵은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네가 나의 두 아우를 잡아갔느냐?”

“그렇다. 네 아우들은 최고의 진리를 모르고 있었다. 그걸 알아야 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맏형은 칼을 거두었습니다.

“사람이 될 수 있는 최고의 진리라? 좋다. 내가 말해주겠다. 그러나 내 몸이 더러우니 먼저 씻어야겠다.”

맏형은 목욕을 마치고 나무 밑에 앉았습니다. 맏형이 말했습니다.

“자, 무릎을 꿇고 최고의 진리를 들어라.”

귀신이 맏형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맏형이 노래하듯 말했습니다.

부끄러워하는 마음
깨끗한 마음
도덕을 지키는 착한 사람
이것이 최고의 진리이니라.

〈삽화=필몽〉
〈삽화=필몽〉

귀신의 얼굴에 미소가 돌았습니다. 귀신이 말했습니다.

“지혜로운 분이시여, 그 말씀을 들으니 내 안에서 깨끗한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최고의 진리가 맞습니다.”

귀신은 맏형에게 감사하고 말을 이었습니다.

“그 보답으로 당신의 두 아우 중 한 명을 돌려드리겠습니다. 누구를 데려올까요?”

“막내를 데려오시오.”

귀신은 벌떡 일어나더니 맏형의 어깨를 움켜잡았습니다. 엄청난 힘이었습니다. 맏형은 꼼짝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귀신이 맏형의 어깨를 마구 흔들며 말했습니다.

“나이 먹은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은 옛날부터 전해오는 진리다. 귀신인 나도 알고 있는 진리다. 어찌하여 너는 그것도 모른단 말이냐? 아마도 네가 말한 최고의 진리도 거짓 같구나. 너부터 잡아먹어야겠다.”

맏형이 침착하게 말했습니다.

“물귀신아, 너는 방금 최고의 진리를 들었을 뿐 깨닫지는 못했다. 나는 최고의 진리를 오래전에 깨달았고 오랫동안 실천해 온 사람이다.”

맏형은 막내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를 귀신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덧붙였습니다.

“막내는 왕이 되는 것을 거절하고, 우리를 믿고 따라온 것이다.”

귀신은 감동해서 두 손을 공손히 모았습니다. 맏형이 말을 이었습니다.

“막내는 꼭 살려야 한다. 최고의 진리를 말로 표현하지 못해도 최고의 진리를 실천하며 살아온 착한 왕자이기 때문이다.”

귀신이 말했습니다.

“그렇군요. 당신의 지혜는 놀랍습니다.”

맏형이 말했습니다.

“그대는 전생에 나쁜 짓을 많이 해서 귀신이 된 것이오. 지금 또 나쁜 짓을 하면 다음에 또 귀신이 되거나 지옥으로 갈 것이오. 잘못한 일을 부끄러워하고, 항상 마음을 깨끗하게 닦으시오. 착하게 살면 다음 생에는 사람으로 태어날 것이오.”

귀신은 물속으로 들어가서 두 형제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두 아우를 모두 돌려드리겠습니다.”

둘째와 막내는 모두 멀쩡했습니다. 세 형제는 손을 맞잡고 기뻐했습니다. 귀신이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나쁜 짓을 많이 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최고의 진리를 지키며 살고 싶습니다.”

귀신은 맏형 앞에 무릎을 꿇고 말을 이었습니다.

“지혜로운 이여! 당신의 가르침에 제 마음이 환해졌습니다. 당신 형제들이 이 숲에 사는 동안 나는 당신들을 보호하겠습니다. 또한 당신 나라의 소식도 가끔 전해 주겠습니다.”

“고맙소. 우리 또한 당신과 함께 최고의 진리를 지키며 살 것이오.”

세 왕자는 꾸준히 마음을 닦았고, 또 귀신에게 착하게 사는 법을 잘 가르쳐주었습니다.

5년 후 왕이 죽었습니다. 물귀신이 재빠르게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세 형제는 왕궁으로 돌아갔습니다. 맏형이 왕위에 올랐고 두 아우가 맏형을 도와 나라를 잘 다스렸습니다. 셋의 우애는 평생 변함이 없었습니다. 가끔 셋은 호수에 놀러 가서 물귀신도 만났답니다. 그때마다 넷은 최고의 진리를 되풀이하여 새기고 잘 지킬 것을 다짐했습니다.

‐ 〈본생경〉 제6화 ‘천법의 전생 이야기’를 고쳐 씀.

뒷이야기

수억 년 뒤 첫째 마하사사는 부처님이 되었고, 둘째 찬다는 사리불로, 막내 수리야는 아난다로 태어납니다. 사리불과 아난다는 부처님의 으뜸 제자들입니다. 귀신은 사람, 그것도 부유한 사업가로 살게 됩니다. 마하사사는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을 최고의 진리로 꼽았습니다. 부처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모든 선을 행하라. 스스로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 그것이 부처님 가르침이다.” 불자 여러분! 착하게 살면 어떤 점이 좋은지 생각해 봅시다.

김일환
한국불교아동문학회 회장·동화작가. 건국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 소재 초등학교 교사·교감·교장으로 근무했으며, 주프랑스한국교육원장·서울시교육청연구사·서울동부교육지원청 교육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장편동화 〈고려보고의 비밀〉·〈홍사〉·〈예뻐지고 말 테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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