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권위·출세 상징…호법신장 역할도”

2024년 갑진년(甲辰年)은 푸른 용의 해다. 용은 십이지신 중 유일하게 실존하지 않는 동물로, 상상 속에서 탄생했다. 갑진년 새해를 맞아 ‘용’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

조선시대 운룡도(雲龍圖).〈사진=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운룡도(雲龍圖).〈사진=국립중앙박물관〉

 

‘검은 토끼의 해’인 계묘년(癸卯年)이 저물고 ‘푸른 용의 해’ 갑진년(甲辰年)이 시작됐다. 용은 십이지 중 다섯 번째에 해당하는 동물이다. 2024년은 육십간지의 41번째로 푸른색의 ‘갑’과 용을 의미하는 ‘진’이 만나 ‘청룡(靑龍)의 해’로 불린다. 용은 오전 7시에서 9시까지의 시간을 나타낸다. 방향은 동동남쪽을 의미하며, 이로 인해 동동남쪽의 수호신으로서의 의미도 갖는다.

낙타 얼굴에 호랑이 다리 형상

용은 비와 바람을 마음껏 부리는 상상의 동물로 주로 거대하게 묘사된다. 그 자체가 지닌 능력 또한 ‘으뜸’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예로부터 뛰어난 인물을 ‘용’에 비유했으며, 왕의 집무복인 곤룡포는 용을 새긴 보(補)로 장식됐다. 왕의 얼굴을 ‘용안’, 왕의 의자를 ‘용상’이라고 부르는 등 용은 과거부터 왕의 위엄과 권위를 나타내는 문양으로 쓰였다. 현대에서는 명예와 권력 또는 사업체·기관·단체 최고위직·유명 인물 등을 상징한다.

서양에서 용은 죽음·죄·악의 상징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뱀을 신격화해 ‘용신’으로 표현했으며,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왕과 같은 최고 권위의 상징으로서 용을 사용했다. 동양권에서 용은 상상의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생김새가 전한다. 용은 낙타의 얼굴에 사슴의 뿔, 소의 눈, 토끼의 귀를 가지고 있으며, 몸은 뱀을 닮았는데 81개의 잉어비늘이 있고, 네 개의 발에는 매의 발톱과 호랑이의 다리가 있다고 한다. 또 꼬리는 물고기를 닮았고 이빨은 개, 발바닥은 곰과 같다고 했다.

중국 전한(前漢) 시대 문헌인 <회남자(淮南子)〉에는 ‘깃털과 털, 비늘과 딱딱한 껍질을 가진 모든 것은 모두 용을 조상으로 두고 있다.’고 기록돼 있다. 후한(後漢) 시대 문헌인 <설문(說文)〉에서는 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용은 비늘을 가진 동물의 우두머리다. 어느 때는 눈에 보이지 않다가 보이기도 하며, 가늘거나 커질 수 있으며, 길거나 짧게 할 수 있다. 춘분에 하늘에 오르고 추분에 연못에 잠긴다.”

위의 기록을 통해 용은 기괴한 모습과 능력을 가지고 있고, 하늘·물과 연관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도 <삼국사기(三國史記)〉·<삼국유사(三國遺事)〉 등에서 공통적으로 ‘용’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농경사회서 풍요 상징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과 같이 용은 출세나 성취에 관련된 설화에 자주 등장한다. 이 중 “잉어가 중국 황하 상류에 물살이 가장 센 용문을 거슬러 올라 용이 된다.”는 ‘등용문(登龍門)’ 고사는 ‘사람이 출세하거나 영화를 얻기 위한 관문을 통과한다.’는 의미로 널리 쓰이고 있다. 유교의 윤리 덕목을 글과 그림으로 보여주는 ‘문자도’의 ‘충(忠)’ 자와 ‘약리도(躍鯉圖)’도 잉어가 해를 향해 물 위로 튀어 오르는 모습을 담아 등용문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용은 농경사회에서 ‘비를 부려 가뭄을 막고 농사를 돕는다.’고 하여 풍요를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졌다. 그렇기 때문에 농경사회에서는 마을을 대표하는 ‘농기(農旗)’에 용을 그려 넣기도 했다. 또한 물의 신으로 숭상해 화재를 예방하는 의미로 집의 대들보에 상량문과 함께 용을 그려 넣거나 ‘龍’자를 써넣었다.

우리 조상들은 용이 인간과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고 믿었다. 바다나 큰 강은 물론 집 안 우물이나 작은 개천, 큰 바위 아래, 치성을 드리는 샘터에도 용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토대로 용을 믿고 섬기는 신앙을 발전시켰다. 땅 위의 일은 산신령이 주관하고, 하늘이나 바다는 용이 지배한다고 생각했다. 하늘의 천재지변이나 뇌우를 관장하는 용은 ‘용신(龍神)’으로, 바다를 관장하는 용은 ‘용왕(龍王)’으로 부르며 신격화했다.

특히 바다를 끼고 있는 마을에서는 용왕단을 설치하고, 풍어제(豊漁祭)를 지내기도 했다. 이 풍습은 지금까지도 전승되는데, 고기잡이를 떠나기 전에 배 위에서 용왕에게 제물을 바치며 풍랑을 피하고 만선(滿船)이 되기를 기원했다. 조상들이 인식했던 용은 대개 풍어(豊漁)·풍농(豊農)·복락(福樂)·벽사(辟邪) 등의 성격을 띠고 있다.

다양한 불교설화에 등장

용은 종류도 많고 쓰임새도 다양하다. 명나라 진인석이 <잠확류서(潛確類書)>에 설명한 ‘용생구자설(龍生九子說)’에 따라 각기 역할이 다른 아홉 마리의 용을 볼 수 있다.

그 중 삼국시대 촉나라 장수인 관우가 사용한 청룡언월도에 새겨진 용은 ‘애자’로 살생을 좋아하는 용이다. 종에 새기는 용은 ‘포뢰’로 불리며 울기를 좋아해 타종할 때 종소리가 멀리 울려 퍼지라고 새겨 넣었다. 사자 모양을 한 ‘산예’는 연기를 좋아해 향로에 새겼고, 소라 모양을 한 ‘초도’는 닫기를 좋아한다 하여 문고리에 새겨 사용했다. ‘용생구자설’에 따르면 “포뢰는 바다에 사는 경어(고래)를 가장 무서워해 그를 만나면 크게 비명을 지른다.”고 했으며, 후한 역사가 반고(班固)의 <서도부주〉에서는 “바다에는 고래가 있고 바닷가에는 포뢰가 있다. 포뢰는 고래를 무서워해 보기만 하면 우는데 그 울음소리가 꼭 종소리와 같다.”고 했다. 이런 까닭으로 포뢰 모양을 만들어 종위에 앉히고[용뉴·용 모양의 고리], 경어 모양의 당으로 종을 치면 경어를 만난 포뢰가 놀라 큰 소리를 지르게 돼, 크고 우렁찬 종소리가 난다고 믿었다. 종소리를 ‘경음’이라 한 것도 여기서 유래한다.

불교경전에는 ‘구룡토수(九龍吐手)’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부처님이 탄생했을 때 연못에 있던 아홉 마리 용이 물을 뿜어 아기 부처님의 몸을 씻었다는 이야기다.

이밖에도 용이 등장하는 불교설화는 여러 가지가 있다. 부처님께서 사르나트 사슴동산에서 최초의 설법을 하고 카샤파 삼 형제를 교화하기 위해 그들이 머물고 있는 우루벨라에 찾아갔다. 삼 형제는 불을 신봉하는 배화교도로 베다 경전을 읽으며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지키고 있었다. 부처님이 하룻밤 자고 가기를 청하자 그들은 무서운 용이 있는 곳으로 부처님을 안내했다. 밤이 되자 사나운 용은 부처님을 향해 독기를 내뿜었는데, 부처님은 조금의 동요도 없이 신통력으로 용을 제압하고, 바릿대에 독룡을 넣어 다음날 아침 삼 형제에게 내보였다. 이를 본 삼 형제는 부처님께 귀의했다.

<불설인연승호경(佛說因緣僧護經)〉에도 ‘용이 사람으로 변해 석가모니 부처님이 머물고 있는 기원정사에 가서 비구가 됐고, 1만 4,000마리의 용이 일시에 불법에 귀의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제호법신(諸護法神) 중 하나이자 용왕의 딸인 용녀(龍女) 이야기가 <법화경〉 ‘제바달다품’에 나온다. 사갈라 용왕의 딸이 여덟 살이었을 때 문수보살의 법문을 듣고 나서 순식간에 남자의 몸으로 변신해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일화다.

불법 수호하는 호법신

용은 사악한 것을 물리치고 부처님의 주변을 지키며 불법을 수호하는 호법신으로 묘사된다. 사찰 입구의 다리 아래쪽에는 용머리를 조각해 개천을 타고 들어오는 사악한 무리가 청정한 공간인 절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 의미로 사용했다. 일주문 천장에 용머리를 조각하는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또 법당 안의 기둥이나 벽에 그려진 용은 부처님과 불법을 수호하는 신장이다. 아울러 불상 장식인 닫집에 조각된 용은 불법 수호의 의미와 함께 부처님의 권위를 상징한다.

이외에도 단청이나 벽화·탱화 등에 용을 응용했고, 불교의 영향을 받은 용신도, 또는 용왕도에서도 쉽게 용을 찾을 수 있다. 또한 불교의 향로 뚜껑에도 불과 연기를 좋아한다는 ‘산예’를 조각해 넣었다.

불가에서는 극락세계를 향해 가는 탈것을 주로 배에 비유했는데, 그 배는 일반적으로 용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이를 ‘반야용선’이라고 한다. 반야용선은 번뇌의 홍진(紅塵)에 싸인 이 세계에서 극락세계로 건너갈 때 타는 상상의 배다. 사찰 법당은 바로 부처님과 함께 극락세계로 가는 배와 같은 곳이다. 따라서 사찰건축에서는 법당 앞쪽의 기둥머리나 계단의 소맷돌에 용머리를 조각해 법당이 곧 피안의 세계로 가는 반야용선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냈다. 용은 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배와 같이 중요한 존재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물고기 모양으로 나무를 깎고 속을 비워 만든 ‘목어’는 차츰 머리모양이 용머리로 변해 ‘용두어신(龍頭魚身)’, 즉 용머리를 한 물고기 모양으로 바뀌었다. 용두어신은 물고기가 변해 용이 되는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앞서 언급한 ‘등용문’ 고사를 근거로 삼고 있다. 즉 용머리를 한 목어는 물고기라는 평범한 존재가 용이라는 깨달은 존재가 되어 가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이렇듯 불교에서 용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호법신장이자 중생을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배, 진리의 소리를 전하는 범종 등으로 등장하고 있다.

조선시대 청룡기.〈사진=국립고궁박물관〉
조선시대 청룡기.〈사진=국립고궁박물관〉

 

저작권자 © 금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