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아마존 등
오지에서 만난
기후 재난 현장 기록

지구 온난화로 히말라야와 극지방의 빙하가 줄어들며 인류의 생존에도 위협이 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우리의 지구를 살리는데 모두가 나서야 한다. 〈사진=서울국제환경영화제〉
지구 온난화로 히말라야와 극지방의 빙하가 줄어들며 인류의 생존에도 위협이 되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우리의 지구를 살리는데 모두가 나서야 한다. 〈사진=서울국제환경영화제〉

한 환경예술가가 10여 년간 전 세계를 여행하며 플라스틱으로 오염된 바다 등 환경오염 지역, 가뭄과 물 부족 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기후 재난 지역, 멸종 위기에 처한 생물종 등을 렌즈에 생생하게 담아냈다. 지난 호에 소개한 ‘제자리에 없는 물질’과 함께 제20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지구를 지켜라!:액셔니스트의 삶’ 부문에 출품된 환경다큐멘터리 ‘지구보호단(EARTH PROTECTORS)’이다.

감독이자 주인공은 프랑스계 미국인 여류 사진작가 앤 드 카르부치아(Anne de Carbuccia, 이하 앤)다. 그녀는 ‘인간이 활동하거나 상품을 생산·소비하는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의 총량’인 ‘탄소 발자국(Carbon Footprints)’을 대폭 줄이고자 제작진을 최소화했다. 그리고 전 세계를 다니느라 소비할 수밖에 없었던 탄소 발자국은 재조림 사업으로 보상했고, 촬영 과정에서 파생된 예술작품을 판매해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지역과 공동체를 지원했다. 환경예술가에 걸맞은 발상과 실천이다.

자크 쿠스토 영향 예술가 꿈꿔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예술가를 꿈꿨다. 프랑스 해군 장교 출신의 해양탐험가·환경운동가로 영화감독·사진가이기도 한 자크 쿠스토(Jacques Cousteau, 1910~1997)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자크 쿠스토는 아버지의 친한 친구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자크 쿠스토의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 덕분에 아버지를 만나러 집에 온 자크 쿠스토로부터 모험담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쿠스토 씨가 어느 날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실험 중인 조명을 들고 어두운 동굴 안으로 들어가 잠수했대요. 수중 촬영 품질을 높이기 위한 연습이었죠. 캄캄한 심해에서 촬영한 바다 생명체의 모습은 어두운 회색 그림자로만 보였는데, (동굴에서) 조명을 켜자 이제껏 본 적 없는 놀라운 색을 발견했다고 했어요. 당시 전 꼬마였지만, 그 경험이 쿠스토 씨에게 큰 영향을 줬을 거라고 느낀 건 기억나요. 쿠스토 씨는 그때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이 얼마나 크게 변할지 이미 안거죠. 그리고 그날 제 마음 깊은 곳에서 뭔가 변화가 있었어요. 아마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한 게 그때일 거예요.”

앤은 히말라야·부탄·아마존·시베리아·파타고니아·칠레 산티아고 등지에서 지구 환경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들을 만나 환경 훼손 현황·보존 방안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시간과 선택을 나타내는 강렬한 상징물을 가는 곳마다 제작했어요. 이 작품으로 지금 우리가 가진 것 중에서 곧 잃을 것, 무엇보다 이미 잃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 여정에서 정말 많은 세계를 발견했죠.”

앤은 히말라야 고봉(高峰)·심해(深海)·아마존 열대우림·거대 도시 등 자신이 가는 곳마다 이야기를 발견하고 이를 설치작품으로 만들어냈다. 그 이야기는 점점 파괴돼 가고 있는 지구 환경에 관한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과학자들이 높은 산봉우리부터 해저까지 지구 어디도 기후 위기를 피하지 못한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리고 ‘가디언’·‘타임지’ 등 유력 언론과 기상캐스터의 말을 인용, 지구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일러준다.

가디언 “태풍이 지구를 휩쓸고, 인간은 전부 불볕더위로 죽을 것이다.”

타임지 “약 100만 종이 멸종 위기에 처했다.”

파이어스 리처드 코빈(Piers Richard Corbyn) “어느 시기든 이산화탄소가 기온이나 기후를 통제하지는 않는다.”

앤은 고산지대를 트레킹하면서 쓰레기를 태우는 장면을 목격하고 “어릴 때는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내가 아는 세상이 20년 후엔 어떻게 달라질까?”라고 우려했다. 또 쓰레기 가득한 바다를 보곤 “이 여정에 나서면서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변하는지 깨달았다. 최악으로는 2050년이면 10억 인구가 피해를 본다는 예측도 있다. 태풍은 잦아지고 파괴력도 늘고 동시에 가뭄과 기근도 예측된다.”고 걱정 섞인 목소리를 냈다.

은둔의 왕국이었던 네팔 무스탕은 안나푸르나 북쪽 히말라야 산맥에 위치한 오지다. ⓒGettyimagesBank
은둔의 왕국이었던 네팔 무스탕은 안나푸르나 북쪽 히말라야 산맥에 위치한 오지다. ⓒGettyimagesBank

전문가 조언 구해 방향성 모색

지구 기후 위기 문제를 예술적 직관으로만 이해할 수 없음을 깨달은 앤은 제대로 된 자문을 구하고, 사실 확인을 위해 지구과학자이자 해양학자인 줄리 풀런(Julie Pullen) 박사를 찾아간다. 줄리 박사는 “기후 변화는 지구 전반에서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날 수 있다. 여행 중에 보고 기록하셨다시피 모든 곳이 폭우나 불볕더위를 겪진 않지만 이야기를 하나로 엮으면 다 연결돼 있다. 전 지구에 일어나는 일정한 형태인데, 지역마다 영향은 다르게 나타난다. 이건 아주 거대한 이야기다.”라고 말한다. 줄리 박사는 조언은 이어진다.

“히말라야 빙하는 그 지역 전체의 주요 수원지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강 10개가 히말라야에 수원지를 두고 있다. 그 물에 의존하는 사람이 13억 명이며, 빙하를 잃으면 그들의 삶도 확 바뀔 것이다. 탄소 배출을 제한해 어느 시점부터 줄어들면, 다른 궤적이 그려진다. 지금 극심한 변화를 겪는 사람들이 그 파수꾼인 셈이다. 그리고 그런 사회와 문명이야말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의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다. 우리는 아마존이 무한한 재생 능력을 갖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아주 강력한 이주 패턴이 예상되는 곳은 북아프리카다. 물 부족 문제로 수많은 사람이 강제로 떠나게 될 것이다. 기후 변화의 여파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세계적 이주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

앤은 경비행기를 타고 네팔에서도 가장 외딴 지역인 무스탕을 찾아간다. 무스탕으로 가는 길은 산이 너무 높아 비행기로 접근하기도 매우 어렵다. 네팔 무스탕(Mustang) 자치구의 수도인 로만탕(Lo Manthang)에 도착해 현지인 타시 비스타(Tashi Bista)를 만난다. 타시는 무스탕 지역의 문화와 예술을 보존하려는 청년 모임에서 활동하는 인도주의자로, 새로운 기회를 발굴해 젊은 세대가 도시로 떠나지 않고 지역에 머무르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타시는 자신이 어렸을 때 강에서 놀았던, 말이나 소를 타고 놀았던 기억을 소개한다. 또 1992년 관광 개방 후 첫 관광객이 왔을 때 누군가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자신들을 촬영해 준 기억, 그리고 폴라로이드 사진기 등 접하지 못했던 소소한 것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던 얘기도 들려줬다.

환경 파괴는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코로나19로 마스크는 일상용품이 돼 버렸다. 마스크를 쓰고 호숫가에 앉아있는 다섯 아이가 애처롭게 보인다. 미래 세대에 건강한 지구를 물려주는 일은 현 세대의 의무다. 〈사진=서울국제환경영화제〉
환경 파괴는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코로나19로 마스크는 일상용품이 돼 버렸다. 마스크를 쓰고 호숫가에 앉아있는 다섯 아이가 애처롭게 보인다. 미래 세대에 건강한 지구를 물려주는 일은 현 세대의 의무다. 〈사진=서울국제환경영화제〉

말라가는 히말라야 빙하 수원지

앤은 타시로부터 히말라야의 빙하 수원지가 말라가고 있고, 마르지는 않았지만 심하게 줄어들어 밭에 공급할 물도 충분하지 않다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마을 주민들이 물이 풍부한 곳으로 이동 중이고, 결국 전부 이주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한다. 히말라야 지역의 문화도 달라졌다. 소나 말을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이제 자전거를 탄다. 앤은 이곳에서 기후 변화 등을 기록했다. 그는 여기서 큰 충격을 받고 다음과 같이 털어놓는다.

“누구도 타시가 말한 것처럼 히말라야에서 물 부족 같은 사태가 일어난다고 믿지 않아요. 날씨가 춥고 빙하가 있으니 그런 생각을 못하는 거죠. 내가 생각하던 히말라야는 눈과 얼음과 물이라는 이미지였는데, 이런 드라마가 펼쳐질 줄은 몰랐어요. 이곳에는 고대 문화가 많이 남아 있어 빙하가 사라짐과 동시에 문화를 잃을 위험도 생길 겁니다. 이곳에 오자마자 이 사실을 바로 깨달았죠. 이 상실의 이야기를 하려면 문화상실도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앤은 페루의 아마존 지역에 있는 시피보 부족도 만났다, 그는 문화와 자연을 지키려는 시피보 부족을 ‘지구보호단’으로 불렀다. 시피보 부족의 일원인 자레드 카이루나(Jared Cairuna)는 부족의 전통에 따라 숲 지킴이가 됐고, 삼림감시인이 돼 현대의 숲을 지키고 있다. 앤은 자레드로부터 “여기는 인간이 벌채한 적이 없는 곳이에요. 하지만 이제는 도시 부근에선 큰 원시림을 볼 수 없죠. 이 거대한 나무들은 이제 존재하지 않아요. 인구가 증가하면서 계속 나무를 베어요. 이 자원이 사라질 때까지 벨 거에요.”라는 말을 듣는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청정 바다를 오염시키고 있다. 물고기가 플라스틱을 먹고, 그 물고기를 인간이 먹는다. 결국 인간이 버린 플라스틱을 인간이 먹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이 바다에 떠다니는 플라스틱을 줍고 있다. 〈사진=서울국제환경영화제〉

아마존 우림 화재·벌채로 감소

아마존 열대우림은 화재와 벌채로 급속히 면적이 줄어들고 있다. 벌채는 페루에서 수익성이 좋은 사업이다. 주요 수출품이기 때문이다. 불을 내는 주범은 대부분 소규모 벌채업자나 농부들이다. 대다수가 암시장에 내다 팔 코카나무를 기르려고 숲을 벤다. 앤은 아마존의 이면, 즉 삼림 벌채를 설치 작품으로 제작하기도 했다.

앤은 시베리아 이르쿠츠크 지역도 방문한다. 이르쿠츠크에는 저수량 2만 2,000㎦로 세계 최대 규모의 담수호를 자랑하는 바이칼호가 있다. 과학자들은 “시베리아 전역에 걸쳐 이상 고온으로 발생하는 화재들이 지구 온난화의 원인이 된다.”고 말한다. 러시아에는 세계 삼림의 1/5이 있고, 러시아 숲이 불타면 그 여파가 전 세계에 미친다고 한다. 앤이 바이칼에 도착했을 때 가뭄이 심했고, 며칠 만에 큰불이 났다. 불길이 거세 기후에도 영향을 줬을 정도다. 시베리아에 발생한 화재는 지구온난화를 부추기고, 영구동토층 해빙을 가속화한다.

앤은 “각국 정부는 기후 변화에 따라 발생하는 다양한 위험 요소를 고려해 운영 방식을 바꿔야 한다. 인간의 행동 때문에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하고, 빙하가 말라 사람들이 이주한다. 네팔 삼종(Samjong) 사람들은 히말라야에서 보다 낮은 곳으로 기후 이민을 했다. 이유도 해결 방법도 모르는 세계적 위기다. 그들은 수천 년간 이어진 마을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고 주장한다.

앤은 해양식물학자인 마리아솔레 비앙코(Mariasole Bianco)를 만나 대화를 나눈다. 바다는 지구 표면의 71%를 차지하고 있고, 모든 살아있는 종 가운데 80%가 해양환경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해양생물은 지구 변화의 촉매제 될 수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수족관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이라는 게 그들이 내린 결론이다. 이들은 기후 위기와 쓰레기 문제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눈다.

“지구 기후를 생각하면 우리가 바뀌어야 합니다. 수많은 플라스틱과 쓰레기들이 인간이 살지도 않는 지구 곳곳을 채우고 있어요. 스트레스가 겹치면 해양 동물의 대량 멸종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플라스틱은 매년 800~1,000만 톤가량이다. 95%는 5개월 후 가라앉아 매년 수많은 해양생물이 플라스틱을 먹고 죽습니다.”

‘하나뿐인 지구’ 인식 확산해야

멕시코 이시칼라크에서는 달팽이·바닷가재·거북이·산호초 등 멸종 위기종을 관찰하고 분석 가능한 혈액을 채취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지구를 지키고 아이들에게 지식을 전해야 한다. 우리의 지구를 지키는 방법은 ‘지구는 하나밖에 없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계속 무지한 상태로 살면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고 강조한다.

스웨덴의 청소년들이 지구 환경지킴이에 나선 모습도 그에겐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세계 곳곳에서 지구의 환경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지구보호단’을 만난 뒤 미국으로 돌아온 앤은 자신의 재단을 통해 그들을 돕기로 결정한다.

“우리의 상황이 변할 수 있는 걸 봤죠. 실질적 해결책으로 ‘하나의 지구’, ‘하나의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위기가 너무 급하게 닥쳐서 이제는 다들 방법을 생각하게 될 거에요. 하나의 종으로서 생존하려면 인간이 한발 물러나야 합니다. 그리고 이 일을 다음 예술가 세대가 내가 생각 못한 방법으로 이어가길 바랍니다.”

다큐멘터리 한 편으로 지구 기후 위기나 환경 파괴의 심각성을 다 보여줄 수는 없다. 그러나 앤이 ‘지구보호단’을 통해 보여준 히말라야 빙하 감소로 인한 물 부족과 강제 이주, 플라스틱 쓰레기로 인한 해양 오염, 화재로 인한 지구 온난화 등은 인류에게 충분히 경각심을 심어준 것 같다. 환경오염 현황을 눈으로 직접 보고 이를 예술작품으로 승화해 인류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예술가의 안목과 노력에 감사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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