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등 여러 종교 기웃하다
이제 부처님 참 제자 됐어요!”

조월환(67) 대전 광수사 유성지회장은 고등학교 시절 교회(기독교)를, 청년 시절 성당(천주교)을, 은퇴 후에는 사찰(광수사)을 다니고 있다. 불교와 인연이 가장 늦었지만 현재 불자로써 신행생활을 활발히 하고 있다. 여러 종교의 신행생활 이력을 지닌 조월환 지회장을 삶과 신행 이야기를 광수사(주지 갈수 스님)에서 만나 들어봤다.

미션 스쿨 입학해 교회 만나

조월환 지회장은 1956년 1월 경북 영덕군 병곡면에서 아홉 남매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과수원을 운영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기에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첫째 형을 도와 봄에는 과일나무에 약을 치고, 여름에는 복숭아, 가을에는 사과 등을 수확해 읍내 장에 내다 파는 일을 도왔다. 중학교 때는 등굣길에 과일을 실은 리어카를 뒤에서 밀어줬는데, 땀에 젖은 모습을 친구들이 볼까 창피했던 기억도 있다. 어릴 적부터 과수원 일을 도우며 학업생활을 하다보니 특정 종교를 신앙하지는 않았다. 다만 어머니는 매일 새벽 집 뒤에 정화수를 떠 놓고 가족 건강을 발원하곤 하셨다. 또 부처님오신날에는 자식들을 데리고 논산 관촉사에 가곤 했는데, 관촉사에 갈 때마다 ‘은진미륵(恩津彌勒)’이라 불리던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앞에서 소원을 빌곤 했다.

어머니와 달리 그의 첫 종교는 기독교였다. 서울시 중구에 위치한 미션스쿨 균명고등학교(현 환일고등학교) 입학이 계기가 됐다.

“논산에서 중학교를 졸업할 때 친한 친구가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서울로 유학(遊學)을 간다고 해요.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속담처럼 저도 친구를 따라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에 가고 싶었어요. 과수원 일이 힘들기도 했고요. 처음에는 어머니와 첫째 형님이 반대했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 허락을 해주셨죠. 근데 웃기는 게 정작 학교에 가는 저도 입학하기 전까지 그 학교가 미션스쿨인지 몰랐다는 거예요.”

그가 입학한 고등학교는 개신교 계열 미션스쿨이라 매일 아침 예배활동을 해야 했다. 찬송가를 틀어준 후 선교부장이 성경을 읽어주고, 출석번호 순으로 기도를 하는 방식이다. 또 매주 월요일 한 시간 이상 대예배를 진행했고, 교내에 경배와 찬양이라는 동아리가 있어 선교부 주관으로 매주 목요일 점심때마다 대강당에서 찬양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특히 본인이 다니는 교회에서 발행하는 ‘주보(예배 안내 및 소식이 적혀있는 인쇄물)’를 매주 학교에 제출해야 했다. ‘주보’를 제출해야 성경 점수 50%를 받을 수 있었다. 그가 교회에 다니게 된 계기는 바로 성경 점수 때문이었다. 그렇게 둘째 형님 집에서 생활하며 교회에 나간 지 3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교회는 발걸음을 끊었다. 그의 첫 종교라고 할 수 있는 기독교와의 인연은 특별할 것 없이 그렇게 끝이 났다. 이후 대학 입시에 실패한 그에게 첫째 형은 재수를 권했지만 미안한 마음에 거절하고, 1975년 다시 논산으로 낙향했다.

조월환 지회장은 어렸을 적 어머니를 따라 논산 관촉사에 가곤 했다. 조월환 지회장(뒷줄 가운데)이 고등학교 졸업 후 친구들과 함께 속리산 법주사에서 찍은 기념사진.
조월환 지회장은 어렸을 적 어머니를 따라 논산 관촉사에 가곤 했다. 조월환 지회장(뒷줄 가운데)이 고등학교 졸업 후 친구들과 함께 속리산 법주사에서 찍은 기념사진.

가족 권유로 성당 다녀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그는 관촉사 도로포장 공사에 참여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관촉사를 방문한 뒤 이남호 논산군수가 관촉사 진입로 포장공사를 진행했다. 그는 관촉사 인근 산에서 도로포장에 사용될 돌을 깬 후 트럭에 싣는 일을 했다. 돌이켜 보면 이 일로 인해 그의 인생이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날도 산에서 돌을 깨며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간이 화장실에서 용무를 보고 있던 찰나, 근처에 누군가 두고 간 신문지가 보였다. 별생각 없이 신문을 펼쳤는데 ‘공무원 공개모집’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요즘과 달리 1970년대 공무원은 박봉에 비해 높은 업무 강도로 그다지 선호되지 않던 직업이었다. 하지만 대학 입시 실패로 인해 뚜렷한 미래가 없던 그는 바로 공무원 시험에 응시했다. 다행히 경쟁률을 뚫고 충청남도 소속 9급 공무원에 합격했다. 이렇게 우연히 펼친 신문 덕분에 스무 살의 나이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듬해 군에 입대했고, 제대 후 복직해 논산에서 근무를 이어갔다.

평화로운 나날이 이어지던 어느 날,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셋째 형수가 그에게 성당에 다녀 볼 것을 권했다. 셋째 형수의 권유를 계속 거절했지만 셋째 누나까지 합세해 “성당에 한 번 나가보자.”고 설득했고, 결국 마지못해 논산 부창동성당에 다니게 됐다. 본의 아니게 고등학교에 이어 두 번째 종교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그는 성당에 다니면서 가장 기초적인 성사(聖事)이자 공식적인 입교의식인 ‘세례성사(성세성사)’를 받았다. 그리고 세례성사를 받은 사람이 신앙을 확고히 했음을 증명하는 ‘견진성사’도 받았다. 당시 현재의 아내와 연애하고 있었는데, 무교인 아내도 결혼 6개월 전부터 함께 성당에 다녔다. 결혼을 앞두고 있었기에 부부는 성당에서 신부님의 집전으로 ‘혼배성사(婚配聖事, 결혼 축복 의례)’도 받았다. 그렇게 부부는 결혼 후에도 강경성당을 함께 다니며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제 의지보다는 누나와 형수에 의해 다니게 된 성당이었지만, 목사님과 달리 신부님과 수녀님의 결혼을 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이 너무 고결하게 보였어요. 또 굉장히 훌륭하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성경 교리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교리반에 들어갔어요. 특히 ‘사랑’과 ‘봉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배웠는데, 그 점 때문에 천주교란 종교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아요.”

약 10년 동안 아내와 함께 강경성당에서 종교활동을 했다. 그러다 1990년 아내의 직장이 강경전화국에서 대전전화국으로 발령이 났다. 이듬해 조월환 지회장도 대전 서구청으로 발령받아 대전으로 이사를 했다. 기존 근무지보다 넓은 지역으로 옮기니 당연히 업무량도 많아졌다. 바쁘다는 핑계로 성당에 나가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실제로도 몸이 피곤하니 종교활동에 점점 소홀해졌다. 그리곤 어느 날부터 자연스럽게 ‘냉담자’가 됐다. ‘냉담자’란 세례는 받았으나 종교활동에 적극적이지 않은 신자를 가리키는 천주교 용어다. 그렇게 20여 년을 냉담자로 살았다. 중간에 처형이 교회에 다닐 것을 권유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조월환 지회장이 요양보호시설에서 어르신들을 위해 아코디언 연주를 하고 있다.
조월환 지회장이 요양보호시설에서 어르신들을 위해 아코디언 연주를 하고 있다.

아내 권유로 불교 입문

그렇게 종교가 있지만 사실상 종교가 없는 삶을 살아가던 중에 우연찮게 광수사를 방문한 아내의 권유로 세 번째이자 마지막 종교가 될 불교에 입문하게 됐다.

“공무원 아내들도 군인 아내와 비슷합니다. 남편의 직책이 곧 아내의 직책이죠. 당시 제가 서구청 총무과장을 맡고 있었는데, 아내가 제 직장 상사 부인들과 관내 사찰에 등(燈) 공양을 하러 다녔어요. 소위 ‘사모님’을 안내하는 역할을 한 거죠. 여러 사찰을 다녔는데 그중 광수사가 규모가 제일 컸어요. 그날 저녁 아내가 저한테 ‘광수사를 갔는데 나도 모르게 마음이 그렇게 편안할 수 없더라. 여러 사찰을 다녔는데 이런 기분은 처음이다.’라고 말하더군요. 그러면서 조심스레 ‘나 절에 다녀도 괜찮아?’라고 묻더군요. 아무리 냉담자라곤 하지만, 혼배성사까지 받았으니 조심스러웠겠죠. 그때 ‘당신이 좋으면 개의치 말고 절에 다녀.’라고 말해줬어요.”

그렇게 아내는 2010년부터 광수사를 다니면서 신행활동을 했다. 초기부터 열정을 보이더니 〈반야심경〉·〈천수경〉 등 경전을 얼마 지나지 않아 외웠고, 대전 금강불교대학에 입학해 공부도 했다. 또 사찰에서 다양한 활동에 참여했고, 현재는 광수사 ‘학하 바라무’ 단장을 맡고 있다. 조 지회장도 처음에는 아내를 따라 광수사 법회에 가끔 참석하곤 했다. 2012년에는 아내와 함께 구인사 4박 5일 기도도 참여했지만 직장생활로 인해 적극적으로 신행활동에 참여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구인사 기도를 계기로 불자로써 부족함을 느꼈고, 2014년 대전 금불대에 입학해 불교교리를 배우게 됐다.

2016년 지방 서기관(4급)으로 정년퇴임한 그는 남들보다 늦은 만큼 더 열심히 불교 활동에 참여했다. 사찰 봉사활동은 물론 배움에 대한 갈증도 커서 2014년에 이어 2019·2023년에도 금불대에 입학해 부처님 가르침을 꾸준히 배우고 있다. 그런 열정을 인정받아 2017년 광수사 서구지회장을 맡았고, 현재 유성지회장 및 정토회장을 맡고 있다.

은퇴 후 자녀들을 모두 출가(出嫁)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바쁜 삶을 살고 있다. 매일 아침 기상 후 부처님이 계신 광수사 법당을 향해 삼배의 예를 올리고, 한 시간에 걸쳐 〈예불지송경〉을 비롯해 〈천수경〉·〈화엄경 약찬게〉와 〈법화경〉을 한 품씩 독송한다. 또 매주 목요일 정토회 법회에서 △목탁 수련 △시다림 독경 △분향의례 △회심곡 등을 배우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요양보호시설에서 어르신들의 근력 감소 예방을 위한 체조·운동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조월환 지회장은 은퇴 후 신행활동의 장점에 대해 “시간적 여유가 있기 때문에 내가 계획을 세워 활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도하고 싶을 때 법당에 찾아가 기도하고, 봉사활동에도 제약이 없다는 말이다.

“제가 어렸을 적부터 최근까지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겼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마다 부처님 제자가 될 수 있게끔 호법신장들이 지켜주지 않았나 싶어요. 또 교회와 성당에 다닐 때는 마음에 여유가 없었는데, 사찰에 다니는 지금은 마음이 여유로워졌고,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게 되더군요. 불법을 만나 행복합니다.”

조월환 지회장은 앞으로도 지금처럼 아내와 함께 광수사에서 꾸준히 신행활동을 하는 게 목표다. 또 수술 후 회복 중인 아내와 함께 전국 천태사찰과 한국 100대 사찰 순례도 계획하고 있다. ‘돌고 돌아 부처님 제자가 된’ 그는 자신에게 맞는 종교를 찾지 못한 수많은 사람이 사찰을 방문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불제자로써 새롭게 거듭나길 희망했다.

조월환 지회장은 남들보다 늦은 만큼 더 열심히 불교 교리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조 지회장(오른 쪽)이 2021년 대전금불대 6기 졸업식에서 도반들과 함께 웃어보이고 있다.
조월환 지회장은 남들보다 늦은 만큼 더 열심히 불교 교리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조 지회장(오른 쪽)이 2021년 대전금불대 6기 졸업식에서 도반들과 함께 웃어보이고 있다.
조월환 지회장은 현재 광수사 유성지회장 및 정토회장을 맡고 있다. 조 지회장이 정토회 법회에서 목탁 수련 을 하고 있다.
조월환 지회장은 현재 광수사 유성지회장 및 정토회장을 맡고 있다. 조 지회장이 정토회 법회에서 목탁 수련 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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