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사카로 반출 등 10여 차례 해체 수난
문화재청 5년 간 보존처리, 8월 10일 귀향식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부재 포장 장면. 〈사진=국립문화재연구원〉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부재 포장 장면. 〈사진=국립문화재연구원〉

제자리를 떠나 112년 간 2,000여 km를 떠돌며 수난을 겪었던 국보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이 보존처리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문화재청(청장 최응천)은 2016년부터 5년여에 걸쳐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이하 지광국사탑)’ 부재의 보존처리를 마쳤다. 보존처리는 국립문화재연구원 문화재보존과학센터(센터장 정소영)가 맡아 진행했다. 문화재청은 8월 1일 보존처리한 부재들을 원래의 위치인 강원도 원주시로 이송한다. 지광국사탑이 제자리를 떠난지 112년 만이다. 문화재청은 원주시와 함께 10일 오후 2시 법천사지 유적전시관에서 지광국사탑의 귀향을 기념하는 귀향식을 개최한다.

앞서 문화재청은 2019년 6월 20일 건축문화재분과 문화재위원회 회의를 열고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이하 지광국사탑)이 원래 있었던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사지로 이전키로 결정한 바 있다.

문화재청은 지난 6월 원주 법천사지 유적전시관을 지광국사탑 부재의 임시 보관처로 지정했으며, 총 33개 부재 중 지속적인 점검이 필요한 옥개석과 탑신석을 제외한 31개 부재를 이송키로 결정했다. 지광국사탑 부재는 복원 위치가 확정될 때까지 기획전시 공간에 상설 전시, 원주 시민과 관람객들이 언제든지 찾아 볼 수 있도록 전시할 예정이다.

지광국사탑은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사지에 세워졌던 고려시대 국사(國師) 해린(海麟, 984~1070) 스님의 사리와 유골이 봉안된 승탑이다. 평면 사각의 전각 구조로 화려한 조각이 장식돼 있어 역대 가장 개성있고 화려한 승탑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인 1912년 일본 오사카로 국외반출되는 등 십여 차례나 해체돼 이리저리 옮겨지는 등 고난을 겪었으며, 한국전쟁 중에는 폭격으로 파손되기도 했다.

지광국사탑이 원래 있던 원주를 떠나 서울·오사카·경복궁·대전 국립문화재연구원 등 자리를 옮겨 다니다가 이번에 다시 원주로 돌아가는 여정은 직선거리로만 1,975km 가량 된다.

문화재보존과학센터는 2016년 지광국사탑을 완전 해체해 대전으로 이송한 뒤 2020년까지 과학적 조사와 보존처리를 진행했다. 없어진 부재는 산지(産地)를 과학적으로 조사해 탑이 조성될 당시와 가장 유사한 석재를 구해 새로 제작했고, 파손부재들을 접착하는 등 본래의 모습을 최대한 되찾고자 했다.

문화재청은 향후 원주시와 긴밀히 협의해 지광국사탑이 보존될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을 검토한 후 최종 복원위치를 결정할 예정이다.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상층기단갑석(북동쪽). 〈사진=국립문화재연구원〉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상층기단갑석(북동쪽). 〈사진=국립문화재연구원〉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보개 부분. 〈사진=국립문화재연구원〉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보개 부분. 〈사진=국립문화재연구원〉
원주 법천사지 유적전시관. 〈사진=문화재청〉
원주 법천사지 유적전시관. 〈사진=문화재청〉
한국전쟁 당시 파손된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사진=국가기록원〉
한국전쟁 당시 파손된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사진=국가기록원〉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유리건판_서울 명동 시절.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유리건판_서울 명동 시절. 〈사진=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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