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산·바다·계곡서
각종 쓰레기 처리하는
환경 액티비스트 이야기

히말라야의 거대한 협곡 아래로 맑은 물이 흘러내린다.
히말라야의 거대한 협곡 아래로 맑은 물이 흘러내린다.

2023년 6월 1~7일 열린 제20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여러 섹션 중 ‘지구를 지켜라! 액셔니스트의 삶’ 섹션에 나온 다큐멘터리다. 전 세계의 산·바다·계곡 등지에서 플라스틱을 비롯한 각종 쓰레기를 처리하는 액티비스트(Activist, 사회적·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캠페인이나 활동에 적극적인 사람)의 이야기를 다뤘다. 전체 상영시간은 110분으로, 장편 다큐멘터리에 해당한다. 상영 시간이 길다 보니 상업영화와 달리 다소 지루함을 느낄 수 있다.

감독은 20여 년간 장편 다큐멘터리와 TV 다큐멘터리 70여 편을 제작한 베테랑 니콜라우스 가이어할터(Nikolaus Geyrhalter)가 맡았다. 제목 ‘제자리에 없는 물질(Matter Out of Place)’의 약어는 ‘뭅(MOOP)’으로, ‘그 환경에서 비롯한 것이 아닌 물체나 영향’을 말한다.

스위스 알프스 지역의 쓰레기차는 곤돌라에 매달려 산 아래와 위를 오간다.
스위스 알프스 지역의 쓰레기차는 곤돌라에 매달려 산 아래와 위를 오간다.

옴니버스식 아홉 장면으로 구성

‘제자리에 없는 물질’은 완전한 옴니버스식 구성은 아니어도 옴니버스 형식에 가깝다. 스위스·알바니아·네팔·오스트레일리아·미국·몰디브·그리스 등 각 지역마다 쓰레기를 치우는 아홉 장면에는 각각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액티비스트는 ‘활동가’와 비슷한 용어로, 불교에서는 ‘환경 보살’로 부르기도 한다. 다큐멘터리의 특징은 출연자가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감독은 액티비스트를 따라 움직이며 그들의 활동, 그리고 자연과 쓰레기를 교차하며 보여준다.

첫 장면은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멋진 눈이 쌓인 협곡이다. 먼 시선으로 본 협곡은 누가 봐도 멋진 풍광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카메라 시선이 협곡 아래 물 가까이 갈수록 플라스틱·병·캔 등 쓰레기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좁은 범위의 영역과 넓은 범위의 영역을 번갈아 보여주는 화면에는 어느 순간 쓰레기와 더불어 눈에 뒤덮인 산의 모습이 들어온다.

다음 장면에선 스위스에서 한 굴착기가 선을 그어 놓은 구역을 파기 시작하자 타이어를 비롯한 각종 쓰레기가 쏟아져 나온다. 인근 지역에선 농부가 감자를 캐다가 유리병을 발견했다고 전한다.

“아직도 이 들판에서 농사를 짓는다니 할 말이 없죠. 사실 농사를 짓기 위해서 매립 폐기물을 파내는 거죠.”

이 지역에선 쓰레기와 함께 썩은 물이 함께 나왔다. 영상이었지만, 악취가 느껴질 정도다. 그곳에선 플라스틱·금속·유리·오일 캔 등 다양한 쓰레기가 쏟아졌다. 건물을 철거하면서 나온 철근·벽돌·잡쓰레기도 나왔다. 오염수가 가득한 곳에서 퍼낸 쓰레기는 다시 매립했다.

세 번째 장면은 드넓게 펼쳐진 푸른 바다. 누구나 동경하는 풍광이 뛰어난 곳이다. 그러나 카메라는 다시 해변의 쓰레기더미를 비춘다. 한 남자가 말을 타고 달려왔다. 거기에 수십 명이 모여 있었다. 책임자로 보이는 사람이 “모여 주셔서 감사하다. ‘깨끗한 조국 자원봉사단’의 2022년 첫 행사다. 저희는 2021년 코만 저수지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엔 페자·프리슈티나·페리자이 등지에서 봉사자들이 왔다. 그 다음엔 피에르자 저수지에서 모여 깨끗한 조국 자원봉사단을 설립했고, 코소보·알바니아·마케도니아·몬테네그로·세르비아 등지에서 온 봉사자들이 합류했다.”며 단체의 활동내용을 소개한다.

자원봉사자들은 각각 흩어져 해변의 쓰레기를 주워 검은 비닐봉지에 페트병을 담았다. 그후 트랙터가 끄는 짐차에 가득 쓰레기를 실어 보낸다. 멀리 설산이 보인다. 쓰레기와 청정한 자연의 모습을 대비시킨 감독의 의도는 무엇일까? 아마도 쓰레기가 가득한 해변도 인간에 의해 더럽혀지기 전까진 설산과 같이 청정한 곳이었고, 깨끗한 설산 또한 더럽혀질 수 있다고 경각심을 일깨우는 듯하다.

네팔의 쓰레기산과 청정한 푸른 산의 모습이 대비를 이룬다.
네팔의 쓰레기산과 청정한 푸른 산의 모습이 대비를 이룬다.

‘청정’ 히말라야·알프스도 쓰레기로 골머리

‘히말라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청정’이다. 흰 눈으로 뒤덮인 설산이 주는 이미지가 맑고 깨끗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함을 알게 된다. 네팔은 강마다 비닐을 비롯한 각종 쓰레기가 가득하다. 강의 가장자리에는 쓰레기가 잔뜩 쌓여있고, 중앙에는 페트병 하나가 물을 타고 정처 없이 흘러간다.

오토바이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마을을 질주한다. 매캐한 연기가 피어나고, 좁은 골목으로 한 남자가 리어카를 끌며 호루라기를 불어댄다. 동네 사람들에게 쓰레기가 있냐고 묻고, 동네 사람들은 그의 리어카에 쓰레기를 담는다. 음식물쓰레기 등 각종 쓰레기가 리어카에 가득 찼다. 혼자 감당하기엔 무거웠는지, 친구를 만나자 뒤에서 밀어 달라고 요청한다, 그의 리어카에 실린 쓰레기는 큰 쓰레기차로 옮겨졌다.

한적한 시골에 트럭이 줄지어 서 있다. 염소와 소는 그 진흙탕 길을 걸어 다닌다. 곧이어 자동차 시동 소리와 경적이 들리더니 트럭이 일제히 어디론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동한다. 요란한 경적을 내는 트럭들. 세 명의 남자가 가만히 서서 트럭이 올라가는 것을 지켜본다. 트럭이 진흙탕에 빠져 움직이지 못하자 대기하고 있던 불도저가 트럭을 밀어 옮기고, 트럭은 다시 언덕 위로 올라간다. 트럭이 올라간 곳은 쓰레기 매립장이다. 넓고 깊게 파놓은 쓰레기 매립장에는 쓰레기를 가득 실은 트럭이 쉼 없이 오가며 쓰레기를 부려놓았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일꾼들은 비닐과 포대를 분류하기 바쁘다.

쓰레기 매립장에서 썩은 물이 아래로 흘러내리고, 쓰레기 산과 푸른 산, 그 위로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새의 영상이 부조화를 이루며 스쳐 지나간다. 푸른 산과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새는 삶을, 썩은 물과 쓰레기 산은 죽음을 연상시킨다. 불가(佛家)에선 ‘생사일여(生死一如)’ 즉 ‘삶과 죽음은 하나’라고 말한다. 이 말은 ‘삶과 죽음에서 자유롭다.’는 의미다. 자연은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지금 남아있는 푸른 산마저 쓰레기 산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눈으로 뒤덮인 스위스 알프스의 한 마을. 감독은 이 마을을 한동안 화면정지 상태로 보여준다. 그 뒤로 뾰족한 설산이 시선을 압도한다. 곤돌라를 탄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려서 쓰레기를 줍는다. 주운 쓰레기는 분리수거통에 넣는다. 이렇게 모인 쓰레기를 가득 실은 쓰레기차는 곤돌라에 매달려 지상으로 내려가고, 도로를 달려 쓰레기장으로 간다. 곤돌라에 쓰레기차가 매달려 가는 모습은 처음 보는 광경이어서 다소 이채롭다. 쓰레기를 실은 트럭은 쓰레기장에 쓰레기를 비우고 다시 곤돌라를 타고 알프스 설산으로 향한다.

알프스도 히말라야와 함께 ‘청정’의 상징으로 꼽히는 지역이다. 하지만 이곳도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탓에 청정지역이 되긴 어려운 듯하다. 설산을 배경으로 터를 잡은 눈 덮인 집들이 평온해 보이지만, 쓰레기의 공포는 이곳에서도 진행형이다.

세계적인 휴양지인 몰디브도 플라스틱을 비롯한 각종 쓰레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야자수에 매달린 그네와 바다 풍경은 아름답지만, 해변으로 밀려오는 많은 양의 쓰레기는 전혀 아름답지 못하다. 야자수 아래엔 쓰레기가 널려 있다. ‘세상 어디에도 쓰레기 청정지역은 없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휴양지의 방갈로를 청소하는 사람들, 그리고 말없이 해변의 쓰레기를 줍고 백사장을 정리하는 사람들, 해류에 밀려온 페트병을 건져내는 이들.

말없이 영상만 노출된다. 마치 묵언 수행자처럼, 묵묵히 일만 한다. 들리는 건 파도 소리와 새소리 등 자연의 소리뿐. 배에 가득 실린 쓰레기는 바다를 가로질러 어디론가 향한다.

멀리서 보면 예쁘고 여유로운 풍경이지만, 가까이선 그렇지 않다. 쓰레기를 가득 실은 트럭이 뿌려놓은 쓰레기 매립장. 섬 하나가 쓰레기 매립장이다. 까마귀 떼가 까~악 까~악 소리를 내며 쓰레기 산을 점령한다. 사람들은 차에 쓰레기를 싣고 와서 그곳에 버린다. 사람들은 다시 불로 태운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환경은 오염될 텐데, 어느 쪽이 나을까?

푸른 바다 사이에 둥둥 떠 있는 쓰레기 섬 같다. 액티비스트들이 쓰레기를 태운다. 매캐한 흰 연기가 자욱하다. 눈앞의 쓰레기는 없어지겠지만, 쓰레기를 태움으로 인해 생기는 매연은 얼마나 더 지구를 황폐화 시킬까? 모든 일은 양면이 있다. 다만 어느 쪽을 선택해야 인류에게, 지구에게, 후손들에게 더 이로운지를 깊이 고민하게 만드는 장면이다.

네팔의 한 쓰레기 매립장. 인부들이 쓰레기를 분리수거 하느라 여념이 없다.
네팔의 한 쓰레기 매립장. 인부들이 쓰레기를 분리수거 하느라 여념이 없다.

바다 밑에도 가득한 플라스틱 쓰레기

스쿠버 다이버 8명이 일제히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희뿌연 바닷속에는 물고기떼가 자유로이 유영한다. 그 아래 밑바닥엔 어김없이 인간이 버린 쓰레기가 널려 있다. 스쿠버다이버 한 명이 쓰레기더미를 헤쳐 건져보려 하지만 혼자선 역부족이다, 주변엔 각종 어류가 헤엄친다. 곧이어 동료들이 와서 쓰레기를 줍는다. 역시 말이 없다. 대형 타이어와 자루에 담긴 쓰레기는 부력장치에 매달려 바다 위로 올라가고, 크레인이 끌어올린다.

기차가 들어온다. 천둥 번개가 치는 와중에도 기차에 실린 쓰레기 컨테이너를 트럭에 옮겨 쓰레기장으로 이동한다. 대형 파쇄기 안에서 이리 뒹굴 저리 뒹굴거리다가 파쇄되는 쓰레기. ‘뼈도 못 추린다.’는 말이 있는데, 파쇄기 속의 쓰레기가 그렇다. 고화력으로 쓰레기를 태워 버리고, 파쇄기에 들어간 쓰레기는 가루가 된다. 쓰레기를 처리하는 과정, 즉 ‘쓰레기의 일생’을 보는 듯 상세히 보여준다.

마지막 장면은 사막이다. 먼지 자욱한 곳에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나타난다. 우주의 사막 같은 느낌이다. 먼지가 조금씩 걷히자 먼지에 가렸던 사람들이 등장한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 음악 소리에 춤을 추는 사람들. 축제장이 따로 없다. 디제이의 노래와 연주에 흥이 난 사람들이 몸을 흔들어댄다. 폭죽이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축제가 끝난 뒤 캠핑카가 줄을 이어 빠져나가고, 다수의 사람도 함께 사라졌다. 마치 피난행렬 같다.

우리나라는 어딜 가든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문구를 볼 수 있다. 이처럼 축제를 즐겼던 사람들 중에 환경활동가들이 남아 설치했던 무대를 해체·정리하고, 사막에 버려진 각종 쓰레기를 일일이 수거한다. 일부 사람들은 ‘사막 칠하기’를 하며 모래 속에 감춰진 쓰레기를 수거한다. 이쑤시개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수거하겠다는 그들의 의지에 감복하게 된다.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기란 매우 어렵다. 쓰레기를 줄여 지구를 살리고자 하는 환경 활동도 이처럼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지금 우리가 하지 않으면 안 될, 원래 그 자리에 없던 물질을 없애는 일이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제자리에 없는 물질’을 없애기 위한 노력이 진행 중이다. 쓰레기를 주워 없애는 액티비스트의 숭고한 희생정신에 경의를 표한다. 인간은 자연을 떠나 살 수 없고, 자연도 인간과 상호작용하며 공존한다. 액티비스트의 삶을 통해 보여준 건 인류가 나아갈 방향이다. 전 인류가 액티비스트로 활동해 지구를 살리는 일에 적극 동참하라는 메시지가 가슴 한구석을 콕콕 찌른다.

남태평양의 한 휴양지.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최근에는 해변으로 쓰레기가 밀려와 골머리를 앓고 있다.
남태평양의 한 휴양지.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최근에는 해변으로 쓰레기가 밀려와 골머리를 앓고 있다.
몰디브의 섬에서 쓰레기를 불태우고 있다.
몰디브의 섬에서 쓰레기를 불태우고 있다.
미국 네바다주의 사막에서 축제를 즐긴 이들이 모래 먼지 가 부는 상황에서도 청소를 하고 있다.
미국 네바다주의 사막에서 축제를 즐긴 이들이 모래 먼지 가 부는 상황에서도 청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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