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을 때 지혜 닦고
함께 있을 때 자비 실천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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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은 혼자 있는 시간과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시간으로 이루어진다. 혼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있고, 다른 사람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있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행복의 조건은 혼자서도 잘 지내고 다른 사람과 함께도 잘 지내는 것이다.

인생의 두 가지 지향성 : 자유와 사랑

우리 인생은 복잡한 듯하지만 두 가지 지향성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다른 사람의 통제를 받지 않는 독립적인 존재가 되어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여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두 가지 지향성을 자율성 대 관계성, 주체성 대 연대성, 독립성 대 상호의존성이라는 여러 가지 용어로 표현하고 있다.

자율성과 관계성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지향성으로서 개인의 성격과 인생을 이해하는 핵심적인 주제이기도 하다. 어떤 지향성을 더 강하게 지니는지에 따라 개인의 성격이 달라지고, 어떤 지향성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삶을 영위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인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자율성을 추구하는 사람은 독립적이고 유능한 존재가 되려고 노력하는 반면, 관계성을 추구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따뜻하고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려고 노력한다. 자유와 사랑은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가치다. 자율성이 높은 사람은 ‘자유’라는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반면, 관계성이 높은 사람은 ‘사랑’이라는 가치를 더 소중하게 여긴다.

자유와 사랑은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구 가지 가치다. 자율성이 높은 사람은 '자유'라는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반면, 관계성이 높은 사람은 '사랑'이라는 가치를 더 소중하게 여긴다. ⓒGettyimagesBank
자유와 사랑은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구 가지 가치다. 자율성이 높은 사람은 '자유'라는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반면, 관계성이 높은 사람은 '사랑'이라는 가치를 더 소중하게 여긴다. ⓒGettyimagesBank

홀로 자유를 추구하는 삶

인간의 삶은 의존적인 존재에서 독립적인 존재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인간은 무력한 상태로 태어나기 때문에 어린 시절에는 부모에게 전폭적으로 의존해야 한다. 부모로부터 돌봄을 받는 의존적인 삶은 안전하고 든든하지만, 부모의 간섭과 통제를 받기 때문에 부자유하고 답답하다. 부모는 사랑과 보호라는 명분으로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하고, 자녀는 부모의 통제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기 위해 투쟁한다.

부모의 품 안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부모의 품에서 벗어날 것인가? 부모의 품 안에서 답답하지만 안전한 삶을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부모에게서 벗어나 위험하지만 자유로운 삶을 추구할 것인가? 이러한 문제는 많은 사람이 청소년기부터 내면적으로 고민하는 심리적 갈등이다. 부모의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출(家出)을 꿈꾸어 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유사한 갈등을 겪은 듯하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국왕의 자리를 잇기 위해 왕자의 자리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나 대자유를 추구하는 수행자의 길로 나설 것인가? 이러한 선택의 기로에서 깊이 고민하며 갈등했을 것이다. 결국 결혼하여 아들까지 둔 29세의 나이에야 비로소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며 왕자의 자리를 박차고 출가(出家)한 것이다.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수행자의 길로 나서는 자율성의 삶을 선택한 것이다.

불교는 자유를 추구하는 종교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고독 속에서 6년간 치열하게 수행한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 깨달음을 통해 생로병사를 비롯한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 해탈의 대자유(大自由)를 얻은 것이다. 훗날 열반을 앞둔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제자 아난다가 “스승님이 열반에 드시면 우리 제자들은 무엇에 의지해야 합니까?”라고 물었을 때에도 “너 자신과 진리를 등불로 삼아서 그것에 의지하라.”는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의 뜻을 남겼다. 선불교의 임제(臨齊) 선사도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는 살불살조(殺佛殺祖)의 정신을 강조했다. 불교는 그 무엇에도 그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추구하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삶의 가치는 다른 사람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데에 있다. 동체대비의 마음으로 삶에서 접하게 되는 살함들에게 정성껏 자비를 베푸는 것이 바로 보살도(菩薩道)이고, 모든 사람이 서로에게 자비를 나누는 세상이 바로 극락(極樂)이다. ⓒGettyimagesBank
삶의 가치는 다른 사람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데에 있다. 동체대비의 마음으로 삶에서 접하게 되는 살함들에게 정성껏 자비를 베푸는 것이 바로 보살도(菩薩道)이고, 모든 사람이 서로에게 자비를 나누는 세상이 바로 극락(極樂)이다. ⓒGettyimagesBank

함께 온기를 나누는 따뜻한 삶

불교는 자율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종교다.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며 피곤하게 함께 살기보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롭게 홀로 살아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끌리는 종교다. 불교 수행자의 삶은 무소의 외뿔처럼 홀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불교 수행자 중에는 다른 사람의 삶에 무관심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우리는 왜 수행을 하는 것일까? 마음을 닦아 지혜를 얻으면 그 지혜를 어디에 쓰려는 것일까? 무소처럼 들판을 홀로 배회하기 위해서 수행하는 것일까? 지혜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지만 다른 사람과 관계에 활용될 때 그 진가가 드러나게 된다.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과 연결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친밀감을 느끼면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다. 어린아이가 자율성을 추구하며 부모의 구속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것은 또래와 대등한 위치에서 연결감을 형성하기 위함이다. 인간은 청소년기 이후부터 친구와 우정을 나누고 이성과의 사랑을 추구한다. 인간이 자율성을 추구하는 것은 새로운 형태의 관계성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6년간의 수행 끝에 깨달음을 얻고 나서 자신이 깨달은 바를 다른 사람에게 전할 것인지 고민했다고 한다. 과연 깨달음의 내용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깨달음을 전하는 수고를 해야만 하는지 깊이 고민한 끝에 비로소 전법(傳法)의 길을 나섰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전법의 가시밭길로 나선 것은 자비(慈悲)의 마음에 의한 것이다. 자신이 생로병사의 고통 속에서 방황했듯이,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 전법의 길을 나선 것이다.

삶의 가치는 다른 사람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데에 있다. 인간은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에 상관없이 누구나 생로병사의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가엾은 존재다. 같은 병을 지니고 살아가는 가엾은 존재라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이 자비의 씨앗이다. 지금은 너와 내가 분리되어 있지만 모든 인간은 하나에서 나와서 하나로 돌아가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중중무진(重重無盡)의 인연으로 한 몸처럼 연결되어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러한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마음으로 삶에서 접하게 되는 사람들에게 정성껏 자비를 베푸는 것이 바로 보살도(菩薩道)이고 모든 사람이 서로에게 자비를 나누는 세상이 바로 극락(極樂)이다.

성격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혼자 있기와 함꼐 있기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건강한 삶의 조건이다. ⓒGettyimagesBank

혼자 있기와 함께 있기의 균형과 조화

우리나라에는 1인 가구가 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체 가구 중 1인 가구 비중이 40%에 육박하고 있으며, 특히 20~30대의 1인 가구가 급증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1인 가구를 이루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부모의 통제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아 독립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비혼주의자들이 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매년 10만 쌍 이상의 부부가 이혼하고 있다. 전국의 산에서 혼자 살아가는 자연인이 무수하게 많고,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외롭게 홀로 맞이하는 고독사도 증가하고 있다. 부모든 배우자든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이 힘들고 괴로워서 혼자 살아가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이 일상생활에서 가장 행복감을 느끼는 순간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맛난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대화를 나눌 때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함께 마음을 나누며 위로를 주고받을 때 삶의 에너지를 얻는다. 다른 사람과 즐겁게 지낼 줄 알아야 혼자 있는 시간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 혼자 있는 시간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 속에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혼자 있을 때 외로움을 느끼고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해 다른 사람을 찾아 나선다. 이러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매달리고 집착하기 때문에 관계가 원만하게 유지되기 어렵다.

혼자 있음을 즐길 줄 알아야 다른 사람과도 잘 지낼 수 있고, 다른 사람과 잘 지낼 수 있어야 혼자 있음을 즐길 수 있다. 물론 성격에 따라 혼자 있는 시간과 함께 있는 시간의 비중이 다를 수 있다. 내향형은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외향형은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성격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혼자 있기와 함께 있기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건강한 삶의 조건이다.

불교는 지혜와 자비의 종교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성격·가치관·생활습관이 각기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게 되면 필연적으로 갈등과 다툼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함께 수행하던 공동체에서도 다양한 갈등과 다툼이 발생하여 수많은 계율(戒律)이 만들어졌다.

다른 사람과 잘 지내기 위해서는 자신과 상대방의 차이를 수용하고 상대방을 자신의 틀에 맞추려는 마음을 자제해야 한다. 또한 상대방의 긍정적 측면과 강점을 발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세상에는 미운 짓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른 사람들이 품지 못하는 사람을 너그럽게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도량(度量)이 넓고 ‘도력(道力)’이 높은 사람이다.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정성껏 경청하고 공감하며 지지해주는 사람이 보살이다. 인간은 누구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중과 사랑을 받고자 하는 존재다. 미운 짓을 하는 사람도 존중과 지지를 받으면 미운 짓이 줄어든다. 도(道)를 닦는 궁극적인 이유는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삶을 살기 위함이다.

불교는 지혜와 자비를 추구하는 종교다. 혼자 있을 때는 수행을 통해 지혜를 닦고,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자비를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의 삶이다. 인간은 혼자 있을 때 깊어지고,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넓어진다. 혼자 있을 때는 자유로움과 편안함을 즐기고,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따뜻함과 즐거움을 나누는 것이 행복한 삶이다. 지혜와 자비는 인생의 하늘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비행하기 위한 두 날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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