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호

 

상월원각대조사께서 단양 구인사 창건을 통해 한국 천태종을 중창한 이후 천태불교는 대한민국 방방곡곡으로 퍼져 나갔다. 뭍에서 꽃을 피운 천태의 법음은 바다 건너 외딴 섬에도 전해져 섬마을 사람들의 마음에 불심을 싹 틔웠다. 현재 일부 섬은 다리가 놓여 승용차로도 오갈 수 있고, 대부분의 사찰에서는 기도를 하거나 하룻밤 묵을 수도 있다. 여름바다가 있는 천태사찰을 울릉도-남해-제주도 순으로 소개한다.

1. 울릉도 삼도사·성인사·해도사
― 글 조용주 기자

신비의 섬 ‘울릉도’서
50년 간 천태법화 꽃피워

대한민국이지만 쉽게 갈 수 없고, 대부분 가고 싶다고 생각만 할 뿐 큰마음을 내지 않고는 갈수 없는 곳. 바로 울릉도다. 울릉도에는 이곳에 거주하는 천태불자에게 불법을 전하고, 그들의 귀의처가 되어 주는 천태도량 세 곳이 있다. 바로 태하 삼도사·남양 성인사·울릉 해도사(3개 사찰, 주지 동현 스님)다.

다른 나라인 듯한 울릉도

“울렁울렁 울렁대는 가슴 안고~ 연락선을 타고 가면 울릉도라~ 뱃머리도 신이 나서 트위스트~ 아름다운 울릉도~”

1966년 ‘이시스터즈’가 부른 ‘울릉도 트위스트’ 가사의 일부다. 울릉도를 주제로 한 대표적인 가요다. 울릉도는 경상북도에 편입된 군으로, 동해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다. 위치상으로는 강원도에 가까워 보이지만, 직선거리로 가장 가까운 곳은 130km 거리의 울진군 죽변이다. 군 대부분의 면적은 울릉도가 차지하며, 이외 부속 도서로 관음도·죽도 그리고 독도가 있다.

울릉군은 대한민국에서 유일무이하게 육로로는 갈 수 없는 기초자치단체다. 현재까지는 배를 타고만 갈 수 있는데 육지와 울릉도를 연결하는 노선은 △포항 영일만항-사동항 △포항항-도동항 △강릉항-저동항 △후포항-사동항 △묵호항-도동항 등이 있다. 평균적으로 크루즈를 타면 6시간 30분, 쾌속선을 타면 3~4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다. 단, 이동시간은 기상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다.

기자는 강릉항-저동항 노선을 선택했다. 강릉항에서 배를 타고 3시간 남짓 울릉도 저동항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들리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지만 신기하게도 우리나라와는 동떨어진 곳이라고 생각하며 방송에서만 보던 섬. 쾌속선을 타도 워낙 먼 뱃길을 달려야만 닿을 수 있는 곳이어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태하 삼도사는 다양한 볼거리를 가지고 있는 태하리에 위치해 있다. 삼도사 원통보존에 자리한 개화현불이 마을과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사진=조용주 기자〉
태하 삼도사는 다양한 볼거리를 가지고 있는 태하리에 위치해 있다. 삼도사 원통보존에 자리한 개화현불이 마을과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사진=조용주 기자〉

‘개화현불’ 조성된 삼도사

저동항에서 택시를 타고 태하 삼도사를 향했다. 울릉도는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이고 평지가 넓지 않아 상대적으로 교통이 발달하지 못했다. 해안 일주도로가 주간선도로인데, 도로 폭이 좁아 차량 운행에 어려움이 많고, 해마다 반복되는 산사태와 너울성 파도 등 자연재해로 인한 교통통제도 빈번하다. 운전에 정말 자신이 있지 않다면 렌트카 보다는 택시나 농어촌버스, 여행사를 이용하는 게 좋다. 버스는 배차시간을 미리 확인하지 않을 경우, 무한 대기를 할 수도 있다.

택시로 40분 정도 걸려 도착한 삼도사는 울릉군 서면 태하 2길 58-10에 위치하고 있다. 울릉도 지도를 보면 저동·도동 두 항구에서 거의 반대쪽에 자리 잡고 있다.

삼도사 역사는 1973년 7월 1일 박준용·김차수 불자가 구인사에서 상월원각대조사님의 진영을 모셔온 것을 계기로 시작한다. 당시 신도는 9명이었다. 이듬해 1월 1일 구인사로부터 태화분회로 지정됐고, 초대신도회장으로 박준용 불자가 임명됐다. 같은 해 7월 임시회관에 관세음보살 진영을 봉안했지만, 장소가 협소해 최영삼 불자의 집을 매입해 12월 이전했다. 이후 임원 개편과 함께 종단 스님을 모시며 용맹정진했으며, 이후 신도 수가 증가했다. 1981년 종단 대덕 스님을 모신 가운데 봉불식을 봉행했고, 천태종 2대 종정인 대충대종사님의 방문에 맞춰 특별대법회를 봉행했다. 2017년 6월 21일에는 423㎡(128평) 규모의 원통보전을 낙성하면서 개화현불(開化現佛)을 함께 조성했다. 개화현불은 좌대 가로·세로 각 10m, 높이 4.3m의 연꽃이 개화하면서 황동으로 조성된 해수관음보살상이 출현하는 형상이다.

삼도사가 위치한 태하리는 황토가 많이 났다고 전한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 초기부터 이곳의 황토를 조정에 진상했다. 또 조정에서는 3년에 한 번씩 삼척영장(三陟營將, 조선시대 무신 당상관)을 보내 섬을 순찰하게 했고, 그 순찰 여부를 알기 위해 황토와 향나무를 바치게 했다고 한다. 지금도 현포 쪽 바닷가와 인접한 산에는 황토를 파낸 흔적인 ‘황토굴’이 있다. 이 지역은 해안선이 아름답고 경관이 빼어나 군에서 경관교량으로 해안산책로를 준공하는 등 관광지로 조성해 놓은 상태다.

삼도사에서 200m 정도 걸어가면 조선시대 때 주기적으로 울릉도를 방문해 관리하던 수토사(搜討使)와 관련한 역사를 전시한 ‘울릉수토역사전시관’을 관람할 수 있다. 수토사는 섬에 몰래 들어가 고기를 잡는 주민을 수색하고, 일본인 어부를 토벌하던 수군이다. 전시관 외부에는 판옥선을 기반으로 만든 수토선을 복원·전시해 놓았고, 이곳에서는 격군(格軍) 체험도 할 수 있다. 도보로 2분 정도 가면 새 선박을 바다로 띄울 때나, 어민들의 무사안전을 위해 제사를 지내던 ‘성하신당’이 나온다.

짧은 취재 일정으로 모든 곳을 둘러 볼 수는 없었지만, 삼도사가 위치한 태하리에는 볼 것도 많고, 태하리만의 정취도 느낄 수 있다. 특히 이곳에서는 감동적인 해넘이를 볼 수 있는데, 기자는 시간관계상 일몰을 마주하지는 못했다. 차후 여유를 가지고 재방문할 때는 꼭 멋진 일몰을 보리라 다짐하며 다음 목적지로 이동했다.

남양 성인사는 남양마을과 인근 주민들에게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는 천태도량이다.〈사진=불교천태중앙박물관〉
남양 성인사는 남양마을과 인근 주민들에게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는 천태도량이다.〈사진=불교천태중앙박물관〉

대충대종사님 하명한 ‘성인사’

삼도사 참배 후 울릉군 서면 울릉순환로 1288-17에 위치한 남양 성인사로 향했다. 택시로 다시 20분을 달려 도착한 성인사의 역사는 1970년 6월 8일 서면 남서리 김일수 불자의 자택에서 신도 12명이 모여 신도회를 구성한 것으로 시작한다. 이후 1972년 3월 20일 임금분 불자의 집에서 신도 20명이 모인 가운데 남양분회 창립법회를 개최했고, 이듬해 3월 이태복 불자를 중심으로 신도 30명이 모여 남서리 629-14번지 대지 53평을 매입해 10평의 회관을 마련했다. 1981년 6월 대충대종사님께서 ‘盛(성할 성)’과 ‘仁(어질 인)’의 ‘성인사’로 사찰명을 내려주셨다. 신도가 증가함에 따라 현재 법당 자리인 남서리 19~24번지 약 200평을 본산에서 매입했으며, 1992년 5월 대충대종사님과 당시 총무원장 운덕 스님을 비롯한 종단스님, 수많은 천태불자가 동참한 가운데 법당 기공식을 봉행했다. 그리고 1999년 6월 20일 본산의 지원 아래 1층 요사채와 2층 법당을 낙성했다. 법당에는 관세음보살상과 상월원각대조사님 진영이 봉안돼 있으며, 현재 남양마을과 인근 주민들에게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성인사에서 5~10분 정도 걸으면 해안가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사자바위와 투구봉을 볼 수 있다. 사자바위와 투구봉에는 우산국(6세기 초까지 울릉도와 독도를 지배했던 고대 왕국)의 마지막 왕인 우해왕에 대한 전설이 깃들어 있다. 신라 이사부 장군이 가져온 사자목상 중 하나가 사자바위가 되었고, 우해왕이 벗은 투구가 투구봉으로 변했다는 내용이다. 현재는 주변에 공사가 한창이어서 어수선하다.

또 성인사에서 마을 방향으로 500m를 걸어가면 우산국박물관이 나온다. 고대국가 우산국에 대한 기록과 흔적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신라 이사부 장군으로 시작하는 역사기록과 발굴조사를 통한 유적·유물에 대한 정보도 만나볼 수 있다. 박물관 끝으로 이동하면 남서일몰전망대로 갈 수 있다. 10분 정도 계단을 오르면 도착하는데, 삼도사 일몰과는 또 다른 매력의 일몰을 볼 수 있다. 전망대는 모노레일(유료)로 이동할 수 있다.

망향봉 중턱에 자리한 해도사는 해수관음상을 모신 사찰이다. 아담해 보이지만 울릉도에서 가장 큰 사찰이다.〈사진=불교천태중앙박물관〉
망향봉 중턱에 자리한 해도사는 해수관음상을 모신 사찰이다. 아담해 보이지만 울릉도에서 가장 큰 사찰이다.〈사진=불교천태중앙박물관〉

‘해수관음상’ 모신 해도사

울릉도 세 번째 천태도량은 울릉 해도사다. 울릉군 울릉읍 약수터길 63에 위치하고 있다. 저동항에서 차로 10분 정도 소요되며, 도동항에서 도보로 15분, 차로 5분이면 갈 수 있다. 해도사는 도동항에서 독도박물관 방향으로 길을 따라 걷다보면 왼쪽에 위치해 있다. 독도박물관과 독도일출전망대케이블카 승강장으로 가는 길목이므로 찾기에 어려움은 없다. 망향봉 중턱에 아담하게 자리한 해도사는 해수관음상을 모신 사찰이다. 아담해 보이지만 울릉도에서 가장 큰 사찰이다. ‘망향봉’은 고종 20년(1883년) 울릉도로 이주했던 16호 54명의 개척민들이 8월 보름이 되면 해도사 쪽으로 올라와 고향 땅을 향해 절을 올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해도사의 역사는 1970년 4월 8일 울릉도 도동에 위치한 구 삼림조합청사에서 불자 10여 명이 모여 창립법회를 개최한 것으로 시작한다. 이후 1972년 3월 24일 초대지회장에 김봉학 불자가 임명됐으며, 8월 울릉읍 도동 584-6번지 121평의 대지를 매입했다. 이듬해 8월 20평 규모의 요사채를 완공한 후 이전법회를 봉행했고, 9월에는 상월원각대조사께서 ‘해도사(海道寺)’란 사찰명을 내려주셨다. 이후 신도들이 사찰을 운영했으며, 1984년 초대 주지에 용문 스님이 임명됐다. 해도사는 불사를 위해 1984년 11월 14일 울릉읍 도동 116번지의 논 1,148평과 임야 5,249평을 매입했으며, 1987년 9월 19일 총무원 부원장 정산 스님을 증명법사로 법당 기공식을 봉행했다. 1992년 5월 19일 가건물 40평과 25평 규모의 전통 한식목조건물인 법당을 완공해 낙성식을 봉행하면서 관세음보살상을 봉안했다. 현재는 100평 규모의 전통양식 2층 건물인 요사채가 들어서 있다.

해도사 입구에는 문어·오징어·거북 등을 표현한 독특한 모양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울릉도의 대표적인 바다생물이다. 금방이라도 불을 내뿜을 것 같은 용과 꽃이 조각된 원형 석문을 지나 돌계단을 오르면 해수관음상이 불자들을 맞이한다. 해수관음상은 2008년 5월 21일 11m 높이로 조성됐으며, 해수관음상을 중심으로 앞뒤 20m, 좌우 13m 공간에는 연꽃 모양의 조각이 다양하게 장엄하고 있다. 해수관음상은 울릉도·독도·동해바다와 한반도 수호에 대한 염원이 담겨있다.

해도사는 주위의 꽃과 조각상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화려하지도, 수려하지도 않은 조용한 사찰이지만, 뒤로 산과 함께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펼쳐져 있어 거닐기에 좋다. 관음전에 들어가면 관세음보살 존상과 상월원각대조사 존영이 모셔져 있다. 관세음보살은 중생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염원을 이뤄주는 보살님이다. 그동안 수많은 천태불자와 관광객들의 소구소원을 들어줬을 관세음보살상은 이날도 기자 일행을 너그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해도사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도동항과 가깝고 독도박물관과 독도일출전망대케이블카, 독도전망대 등이 주변에 있어 앞서 소개한 두 사찰보다 볼거리가 풍성하고, 접근성도 좋다.

울릉도 천태도량 3곳은 다른 지역의 천태사찰과 비교할 때 규모나 신도 수는 부족할 수 있지만, 울릉도 거주 천태불자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기도도량이다. 울릉도를 여행할 기회가 생기는 불자라면 울릉도의 천태도량 삼사순례를 권해보고 싶다. 한반도 구석구석 뿌리를 내리고 있는 천태의 향기에 기분좋은 여행이 될 듯싶다.

2. 거제도 거광사·장흥사
― 글 이강식 기자

산·바다 멍때리기 좋은
남해 한가운데 천태도량

천태종 거제 거광사와 장흥사가 위치한 거제도는 경상남도 거제시에 속한 섬이다. 거제시의 본섬이며, 사실상 거제시 그 자체로 볼 수 있다. 국내에서 제주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섬이지만, 1위인 제주도가 4.8배나 커서 1·2위의 격차가 큰 편이다. 인구도 제주도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섬인데, 인구밀도는 제주도보다 높다. 대신 우리나라 섬 중에서 가장 긴 해안선(328km)을 가지고 있다.

지형도 변화무쌍해 거친 바위섬과 절벽이 많다. 마치 금강산을 연상케 한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해금강’을 비롯해 경치가 좋은 곳이 많아 사람들에게 알음알음 알려진 관광지기도 하다. 섬이지만 통영과 오가는 거제대교와 신거제대교, 부산-가덕도로 이어지는 거가대교가 놓여 있어 승용차로도 방문할 수 있다.

거제 거광사는 섬 속 산중사찰 느낌이 드는 곳이다. 올해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경내에 연등을 달아놓은 모습.〈사진=이강식 기자〉
거제 거광사는 섬 속 산중사찰 느낌이 드는 곳이다. 올해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경내에 연등을 달아놓은 모습.〈사진=이강식 기자〉

山寺 느낌 물씬 거광사

거광사는 섬에 위치했지만, 시골 사찰 또는 산사(山寺)의 느낌이다. 도심 사찰과 달리 마당이 넓고, 주변은 논밭이다. 사찰 뒤편은 산이다. 대나무가 사찰을 감싼 듯 무리지어 자라고 있다. 관음보전 위쪽에서 내려다보면 바다와 그 뒤의 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다와 어우러진 산, 산과 어우러진 바다를 바라보며 ‘산·바다 멍때리기’를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거광사의 역사는 1978년 채용호 불자 자택(거제시 거제면 서정리 197번지)에서 시작했다. 같은 해 8월 11일 형성 스님·덕수 스님(현 천태종총무원장)과 신도 25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제분회 창립법회를 개최했다. 1989년 2월 거제분회에서 거제지회로 승격했다. 승격 직후 천태종 2대 종정인 대충대종사께서 거제지회를 방문하기도 했다. 1989년 회관 건립 허가를 받고 1990년 1월 거제면 동상리 270-1번지에서 법당 기공식을 봉행했으며, 3월엔 회관 건립공사에 들어갔다.

이후 1995년 2월 도용 종정예하로부터 ‘거광사(巨光寺)’란 사찰명을 받았으며, 4월 24일 사부대중 2,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관음보전 낙성법회를 봉행했다. 2003년에는 도용 종정예하를 증명법주로 모시고 관음보전 개금불사 회향법회를 봉행했다. 이후 어린이법회를 창립하고, 관음정진 백만독 불사를 진행하는 등 불자들의 신행활동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거광사에는 방이 많지 않지만 소수의 인원이 하룻밤 정도 묵을 수는 있다. 사전에 종무소에 연락해야 하고, 해우소와 세면장이 숙소와 떨어져 있는 불편함은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기도와 수면을 병행해본 천태불자라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수준이다. 여름 시골 사찰에선 마당에 난 풀 뽑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일손이 부족한 사찰이므로 거광사에 머무른다면, 풀 한 포기 뽑는 울력에 동참해보길 권한다.

거광사 인근에는 식당이 별로 없기 때문에 먹거리를 준비하거나 사찰 공양간에서 식사를 해야 한다. 참고로 기자는 거광사에서 하루를 묵으며 공양주가 해 준 음식을 먹고, 그 맛에 매료됐다.

주지 원공 스님은 “시골 절이라 여러모로 불편한 게 많다.”면서 “그래도 조용한 도량에서 기도하면서 머무르면 힐링이 될 것이다. 천태불자가 미리 연락하고 방문하면 최대한 불편 없이 머물 수 있게 배려하겠다.”고 말했다.

하늘에서 본 거제 장흥사 대불보전 전경.〈사진=불교천태중앙박물관〉
하늘에서 본 거제 장흥사 대불보전 전경.〈사진=불교천태중앙박물관〉

입소문 난 천태불자 숙소, 장흥사

장흥사는 아주동 시내에 위치해 있는 도심 사찰이다. 장흥사를 향하다 보면 HD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과 함께 조선업 빅3로 불리는 한화오션(구 대우조선해양)의 거대한 골리앗크레인을 볼 수 있다. 무게가 5,000톤이 넘고 높이가 건물 30층 높이와 맞먹는 100m 규모다. 눈을 돌려 산 쪽을 바라보면 좌측에 아파트가 들어서 있고, 오른쪽으로 3층 높이 한옥건물이 산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곳이 장흥사다.

장흥사는 1984년 8월, 강도안·장홍재·이규홍·김종주·전근수·이난규·김화순 등 7명의 불자가 서원을 세워 분회를 설립한 게 출발점이다. 9월에는 총무원 지원금과 신도들의 시주금으로 거제시 능포동 소재 상가 3층을 임대했다. 10월에는 상월원각대조사 진영을 봉안하고, 덕수 스님(현 천태종총무원장)의 집전으로 창립법회를 봉행했다. 당시 신도 80여 명이 참석했다. 1987년 11월 창립 1주년을 맞아 관음존상을 모시고 봉안식을 봉행했다.

이후 1988년 거제시 능포동 687-4번지 100평을 매입했다. 10월 이곳으로 옮겨 이전법회와 불상 봉안식을 봉행했으며, 1989년 1월 분회에서 지회로 승격했다. 1995년 장승포동에 연건평 200평을 임대해 관음존상 봉안 및 이전법회를 봉행했다. 당시 도용 종정예하께서 사찰명을 ‘장흥사(長興寺)’로 내려주었다. 신도가 늘자 신현읍 수월리로 이전해 법당 낙성 및 개금불상 봉안법회를 봉행했다. 2000년 거제시 아주동 1250번지에 조립식 건물 100평을 건립해 관음존상 점안 및 이전법회를, 2001년 5월 아주동 1248번지에 대불보전 신축불사를 시작해 2003년 상량법회에 이어 2006년 낙성법회를 봉행하며 지역 천태불교 포교거점으로 자리매김했다. 2010년에는 부설 유치원을 낙성해 어린이 포교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9년에는 종각불사를 시작해 연내에 마쳤다. 최근에는 누구든지 와서 쉬며 여유를 즐길 수 있게 마당에 24시간 무인 ‘절카페’를 마련했다.

장흥사에는 3~4명이 머물 수 있는 방이 여러 개 있다. 천태불자라면 누구든 묵을 수 있다. 다만 입소문이 나서 신청자가 많은 편이므로 사전 예약은 필수다. 장흥사 인근에는 신도가 운영하는 횟집 등 다양한 맛집이 있는데, 종무소에 문의하면 친절히 알려준다.

거제 장흥사 앞쪽에는 조선소와 바다가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파트에 가려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사진=덕중 스님〉
거제 장흥사 앞쪽에는 조선소와 바다가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파트에 가려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사진=덕중 스님〉

현재 장흥사가 위치한 아주동은 불연(佛緣)이 깊은 곳이다. 신라시대 사찰인 법률사가 있었던 곳으로 주변에 역사가 오래된 사찰과 탑의 흔적이 많아 ‘탑골’로 불린다. 아주동에는 ‘거제 아주동 삼층석탑(경상남도 문화재자료)’이 있는데, 1953년 탑골 주민이 밭을 갈다가 발견했다. 발견 당시에도 바닥돌부와 머리 장식부가 없었다. 신라시대 석탑이긴 하지만, 고려시대 석탑 양식도 띠고 있다. 거제에 남아 있는 유일한 통일신라시대 석탑인데, 현재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 내에 있다.

장흥사 주지 덕중 스님은 “탑골에 있었던 아주동 삼층석탑은 본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장흥사는 예전부터 삼층석탑을 사찰 경내로 이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삼층석탑이 환지본처(還地本處) 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3. 통영 욕지도 구룡사·진도 삼성사
― 글 이강식 기자

“천태불자 숙소 걱정없는
욕지도·진도로 오세요!”

경남 통영시의 욕지도(欲知島)에는 천태사찰 구룡사가 있다. 섬 이름도 참 불교적이다. 대표적인 불교 경전인 〈화엄경(華嚴經)〉에 ‘욕지연화장두미문세존(欲知蓮華藏頭尾問世尊)’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연화장세계를 알고자 하거든 세존께 여쭤보라.’는 뜻으로, 여기서 ‘욕지’를 따왔다. 욕지도는 통영시여객선터미널·중화항·삼덕항 등 세 곳에서 배를 타고 방문할 수 있다.

욕지도에서 서쪽으로 더 나아가면 만날 수 있는 섬, 진도에는 삼성사가 있다. 삼성사는 천태불심이 뿌리 내린지 50년이 넘는 사찰이다.

드론으로 촬영한 욕지 구룡사 전경.〈사진=경혜 스님〉
드론으로 촬영한 욕지 구룡사 전경.〈사진=경혜 스님〉

불연 깊은 섬 욕지도 구룡사

욕지도에는 천태사찰 구룡사가 천태법화의 기치를 내걸고 천태불교를 널리 알리고 있다. 1980년대 중반 섬에 살던 이부열 불자 등 여러 명이 뜻을 세워 종단의 허락을 얻어 욕지분회를 창립했다. 이부열 불자가 1~4대 욕지분회장, 배원숙 불자가 5대 분회장, 배원숙(6대)·이부열(7대)·구금돌(8~9대) 불자가 욕지분회 신도회장을 맡는 등 이후로도 여러 불자가 신도회를 이끌며 사찰 발전에 기여했다. 분회가 창립된 20여 년 전만 해도 욕지도는 어업의 전진기지로 호황을 누렸는데, 오늘에 이르러 어업이 침체되면서 신도 수도 많이 줄었다. 도용 종정예하는 2004년 4월 통영 서광사 낙성식 참석차 왔다가 욕지 구룡사에 들러 신도들을 격려한 바 있다.

주지 경혜 스님은 “구룡사에 오려면 배를 타야 한다. 그만큼 멀고 힘든 여정”이라며 “욕지도에 오시거든 꼭 구룡사를 참배하고 가시면 좋겠다. 사전에 연락을 주면 하룻밤 머물 수 있게 배려를 하겠다.”고 말했다.

욕지 구룡사는 1980년대 중반 창건됐다. 사찰은 마을 뒤쪽에 위치해 있다.〈사진=경혜 스님〉
욕지 구룡사는 1980년대 중반 창건됐다. 사찰은 마을 뒤쪽에 위치해 있다.〈사진=경혜 스님〉

욕지도 북쪽에는 덕동해수욕장을 비롯해 흰작살·덕동·고래머리해수욕장 등이 있다. 모두 까만 몽돌밭으로 이뤄져 있다. 바다가 갑자기 깊어지며 수중의 돌들이 날카롭기 때문에 관광객들은 안전사고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특히 2010년대 이후 KBS 예능프로그램인 ‘1박 2일’ 등 다수의 매체에 소개되면서 현재 관광객과 낚시꾼으로 붐비고 있다.

선착장이 있는 동항리에는 천연기념물 제343호로 지정된 욕지면 모밀잣밤나무숲이 있으며, 이외에 경상남도 기념물 제27호인 욕지도 패총도 이 마을에서 발굴됐다.

특이하게 욕지도는 한국에서 손꼽히는 고양이섬이다. 1960~70년대 급속도로 늘어난 쥐를 잡고자 고양이를 들여왔는데, 개체수가 점점 늘어나면서 고양이섬이 됐다. 산책하다 보면 어렵지 않게 고양이를 만나볼 수 있고, 동네 주민과 관광객들이 워낙 먹이를 잘 주고 이뻐해 사람 손을 그다지 싫어하지 않는다.

진도대교는 울돌목 해협에 놓인 다리다. 이 다리를 지나야 진도에 이를 수 있다.
진도대교는 울돌목 해협에 놓인 다리다. 이 다리를 지나야 진도에 이를 수 있다.

흙돌담 매력적인 진도 삼성사

진돗개하면 떠오르는 섬, 바로 전라남도 서남부에 위치한 가장 큰 섬이자 군(郡)인 ‘진도’다. 과거에는 배를 타야만 입도가 가능했지만, 현재는 해남군과 진도대교로 연결돼 있어 사실상 육지에 준한다.

진도 삼성사의 역사는 1972년 2월 2일 뜻을 함께하는 불자들이 황학리 불자의 집에 모여 사찰 건립 계획을 논의한 것이 시작이다. 한 달 뒤인 3월 2일 다시 9명이 모여 창립법회를 봉행하고, 신도회를 구성했다. 이듬해 1월 7일 황학리 불자 집에서 회관 개관식과 불상 봉안식을 봉행했고, 1대 신도회장에 황학리 불자가 임명됐다. 사찰 연혁에 따르면 ‘삼성사’ 사찰명은 법당 건립 이전에 상월원각대조사께서 내려주었다고 한다.

사찰 부지는 1976년 5월 매입했으며, 면적은 1,117㎡다. 같은 해 8월 1대 주지로 덕산 스님(2012년 원적)이 취임해 사찰 불사를 이끌었다. 1977년 법당 기공식에 이어 1979년 제2대 종정 대충대종사님을 증명법주로 모시고 낙성식을 봉행했다. 이후 여러 스님이 주지로 취임해 삼성사의 발전을 일궈냈다.

이후 1989년 1월에는 진도읍 교동리 521-1번지 소재 건물을 매입했고, 같은 해 진도읍 교동리 522번지 대지 일부(58.8㎡)와 동외리 산 64-1번지(1만 7,851㎡)를 매입하며 사세를 확장했다. 1997년 현재 사찰터에 신축 법당 기공식을, 2000년 11월 법당 낙성식을 봉행한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 사찰 위치는 진도 첨찰산 수리봉과 철마산의 정기가 맞닿는 곳으로, 수령이 오래된 나무 수십 그루가 하늘을 가리고 있던 명당이다. 2대 종정 대충대종사님이 터를 잡아주셨는데, 조선시대 때는 명문가의 큰 기와집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전한다.

진도 삼성사 입구. 드른 사찰에서는 보기 드문 흙돌담이 정겹다.〈사진=이강식 기자〉
진도 삼성사 입구. 드른 사찰에서는 보기 드문 흙돌담이 정겹다.〈사진=이강식 기자〉

삼성사의 매력은 다른 사찰에서는 보기 드문 흙돌담이다. 비록 정문 왼쪽 일부만 흙돌담이지만, 지역 건축물의 옛 형태를 간직하고 있어 무척 정겹다. 또한 사찰 바로 옆 양옥 2층집을 매입해, 다른 지역 신도들이 머물다가 갈 수 있도록 수리해 놓았다. 원룸 형태로 개조해 불편함이 전혀 없다. 사찰에도 각 신행단체 방이 있는데, 이 또한 숙소로 활용할 수 있다.

주지 인산 스님은 “진도로 오실 일이 있는 천태불자들은 바쁘시더라도 삼성사에 들러 잠깐이라도 기도하고 쉬었다 가면 좋겠다.”면서 “혹 하룻밤 묵고 가고 싶은 천태불자들은 미리 종무소에 연락하시면 방을 내어 드리겠다.”고 말했다.

기자는 취재 당시 원룸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시골집에서 하룻밤을 보낸 듯 편안함을 만끽했다. 날씨만 좋으면 하늘을 수놓은 별들도 마음껏 볼 수 있다. 간간이 사찰에서 들려오는 염불소리는 세상사 찌든 잡념과 번뇌를 말끔히 씻겨 준다.

4. 제주도 문강사·해운사
― 글 문지연 기자

국내 최대의 섬 삼다도
“천태도량에 혼저옵서예~”

문강사와 해운사(2개 사찰, 주지 덕궁 스님)는 자연이 빚어낸 절경을 자랑하는 제주도에 위치한 천태도량이다. 문강사는 제주시에서, 해운사는 서귀포시에서 불자들의 수행을 독려하고 불교 홍포에 앞장서고 있다. 두 사찰은 거센 바람과 거친 파도, 현무암과 화산재로 뒤덮인 척박한 땅에서 굳세게 살아온 제주도민에게 위로와 안식을 주는 공간이다.

제주 기층민의 안식처 ‘불교’

제주도는 뛰어난 자연경관으로 유명해 많은 관광객이 찾는 섬이다. 관광지에는 항상 사람이 북적이고, 제주도의 아름다움에 반해 ‘한 달 살이’·‘일 년 살이’를 하거나, 이주하는 사람들로 생활인구도 급증했다.

과거 제주도는 삶의 터전으로 삼기에는 척박한 땅이었다. 화산재로 뒤덮인 토양은 농사를 짓기에 부적합했고,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은 물을 저장하지 못해 식수를 구하기 어려웠다. 잠잠했던 바다는 금세 돌변해 거센 파도를 일으켜 사람을 집어삼켰다. 이 때문에 제주도 사람들은 평안과 안녕을 기원하고자 ‘한라산신’이나 ‘용왕’에게 제사를 지냈다.

불교가 제주도에 언제 어떤 방식으로 전래했는지는 불명확하다. 다만 제주불교는 기존의 토속신앙과 결합한 형태로 뿌리를 내렸다. 이 과정에서 제주도만의 독특한 불교문화를 형성했으리라 예상하지만, 4·3 사건 등을 겪으며 과거의 흔적이 많이 소실됐다.

천태종 문강사는 1973년, 해운사는 1975년부터 ‘주경야선(晝耕夜禪)’의 종풍을 바탕으로 신도들의 수행정진을 독려해왔다. 제주도에 부처님이 바닷길로 오셨는지, 하늘길로 오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척박한 환경 속에서 움튼 불연(佛緣)은 오늘날까지 계속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제주 문강사는 원당오름의 분화구에 자리잡았다. '거북못'이라 불리는 화구호에는 아름답게 피어날 때를 기다리는 연꽃봉우리가 가득하다.〈사진=문지연 기자〉
제주 문강사는 원당오름의 분화구에 자리잡았다. '거북못'이라 불리는 화구호에는 아름답게 피어날 때를 기다리는 연꽃봉우리가 가득하다.〈사진=문지연 기자〉

‘보시의 길’ 종착지 문강사

제주공항에 도착하니 청명한 하늘과 짙푸른 바다가 기자를 반겼다. 뭍에서부터 따라온 알량한 시름은 슬며시 불어온 바닷바람에 실려 어느새 사라졌다. 가벼운 마음으로 제주공항에서 30분 거리에 위치한 문강사로 향했다.

도로를 달리다 보면 중간중간 홀로 우뚝 선 언덕을 볼 수 있다. 모두 소화산체의 한 종류인 ‘오름’이다. 오름은 산·봉우리를 뜻하는 제주 방언이다. 제주 전역에 총 368개의 오름이 있다고 하니, 제주도는 ‘오름의 땅’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오름과 관련해 ‘설문대할망(제주도를 만들었다는 여신)이 육지와 섬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고 치마폭에 흙을 담아 나르는데, 치마 틈새로 한 줌씩 떨어진 흙덩이가 오름이 됐다.’는 전설이 전한다. 이 때문에 제주도 사람들은 오름을 민속신앙의 터전으로 신성시했다. 문강사가 위치한 원당오름도 과거 이 오름에 있던 당집인 ‘원당(元堂)’에서 이름을 따왔다.

삼양해수욕장에서 원당오름 방향으로 가다 보면 ‘보시의 길’ 이정표와 함께 문강사·원당사·불탑사의 표지석이 보인다. ‘보시의 길’은 제주시에서 조성한 불교역사테마 성지순례길이다. 애월읍에 위치한 대원정사를 시작으로 총 22개의 사찰을 둘러볼 수 있다. 문강사는 42.9km에 이르는 ‘보시의 길’의 종착지다.

입구에 도착하니 문강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문강사가 위치한 곳은 원당오름의 분화구다. 과거에는 습지였는데, 지금은 ‘거북못’이라 불리는 화구호(火口湖)의 흔적만 남아 있다.

문강사의 역사는 1973년, 임공록 불자의 자택에서 제주지역 신도회를 결성하면서 시작했다. 같은 해 김용운 거사가 ‘제주지역 신도회관’ 건립을 위해 약 1,500평(임야 4,959㎡) 부지를 희사하면서 지금 위치에 문강사가 자리하게 됐고, 이듬해 신도회가 제주지부로 승격됐다. 문강사 신도들이 법회를 봉행하고 수행하는 관음전(觀音殿)은 1975년 건립됐다. 55평 규모의 가건물로 시작해 1986년 요사채 준공과 함께 새롭게 단장했고, 1995년 관음전을 100평 규모로 확장해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문강사 관음전 뒤쪽 야트막한 언덕 위에는 대적광전(大寂光殿)이 자리하고 있는데, 2016년 60평 규모로 건립됐다.

기자가 방문했을 당시 문강사는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봉축행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문강사 신도들은 대부분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는데 틈틈이 사찰에 찾아와 수행하고, 울력에 참여한다.

하늘에서 본 문강사 일대의 모습.〈사진=BTN〉
하늘에서 본 문강사 일대의 모습.〈사진=BTN〉

경내를 둘러보는데, 한 어르신이 “어디서 왔어요?”하며 말을 건넸다. 낯선 마음에 취재 중임을 밝히지 않고 “서울이요.”하고 짧게 대답하자 “아이고, 멀리서 왔네.”하는 다정한 답변이 돌아왔다. 19년째 문강사에 다니고 있다던 어르신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이후 어르신은 “이 옆길이 둘레길인데, 전망대에서 보이는 경치가 좋으니 꼭 올라가 봐요.”라는 조언을 남기고 떠났다.

잠시 고민하다 둘레길로 향했다. 원당오름 둘레길은 1.3km 가량의 짧은 코스다. 한 바퀴를 도는 데 약 1시간 정도 소요된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오가다 보니, 어느새 전망대다.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드넓은 바다와 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수면, 아담한 건물들이 모인 마을의 모습에 저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전망대에서 내려오니 어느덧 날이 어둑해졌다. 문강사 경내 곳곳에 설치된 오색연등과 장엄등이 불을 밝히자, 낮과는 또 다른 매력이 뿜어나온다. 어디선가 “와, 예쁘다!”하는 감탄사가 들렸다. 둘러보니 문강사의 봉축 분위기를 느끼려고 찾아온 불자들이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문강사를 찾는 불자들의 발걸음은 점점 늘어났다.

벙거지를 쓴 돌하르방이 해운사를 찾아오는 참배객을 맞이한다. 해운사 법당의 왼편에는 신도들의 울력으로 가꿔지는 감귤 밭이 있다.〈사진=문지연 기자〉
벙거지를 쓴 돌하르방이 해운사를 찾아오는 참배객을 맞이한다. 해운사 법당의 왼편에는 신도들의 울력으로 가꿔지는 감귤 밭이 있다.〈사진=문지연 기자〉

돌하르방이 맞아주는 해운사

서귀포 해운사는 문강사와 45km 정도 떨어져 있다. 차량으로는 1시간 남짓 소요된다. 한라산을 빙 둘러 난 99번 지방도를 달리는 동안 잘 가꿔진 녹차 밭과 각양각색의 오름, 휴양림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제주지부 소속이었던 해운사는 1975년 3월, 남제주읍 강무중 신도의 자택에서 ‘제주지부 산하 남군지회(서귀포지회)’를 조직한 뒤, 1984년 제주 동홍동에 법당을 처음 건립했다. 1986년에는 ‘해운사(海運寺)’라는 사찰명을 받아 제주지부 문강사에서 독립했다. 1993년 현 위치인 토평동에 자리 잡았고, 2006년 2,740평 대지에 연건평 322평·2층 규모의 대불보전(大佛寶殿)을 낙성했다.

해운사 바로 앞은 ‘보목천(甫木川)’이 흐르는데 ‘보리장나무가 많은 개천’이란 의미다. 그 위에는 일주문을 대신하는 서너 발걸음 길이의 다리가 놓여 있는데, 엄지기둥을 돌하르방이 대신하고 있다. 벙거지를 쓴 돌하르방은 투박하지만 정겨운 모습이다. 제주를 상징하는 돌하르방은 과거 성문이나 길 입구에 세워져 마을 수호신 역할을 담당했다. 명칭도 ‘벅수머리’·‘우성목’·‘옹중석’ 등 다양했고, ‘돌미륵’이라 불리며 예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해운사 마당에 들어섰는데, 평일 낮시간인 탓인지 사찰은 적막했다. 2층 규모의 도량 주변에는 봉축등이 설치돼 있었다. 문강사보다 규모는 작았지만, 꼼꼼하게 정돈된 모습이었다. 해운사의 1층에는 종무소와 대중공양간, 2층에는 대불보전이 있다. 법당 안으로 들어가니, 조용히 관음주송을 하는 불자가 한 명 앉아 있었다. 법당 천장에는 연꽃등 아래 달린 꼬리표가 불자들의 염원을 기원하는 듯 흔들렸다.

법당 옆은 감귤밭이다. 해운사가 위치한 토평동은 한라산이 차가운 북풍을 막아줘서 다른 지역에 비해 기후가 온화하다. 여기에 강수량도 많아 감귤 농사에 적합하다. 이 때문에 해운사의 신도 중에는 감귤 농업 종사자가 많다. 약 500평 규모의 해운사 감귤밭도 신도들의 울력으로 가꿔진다.

감귤밭에 가보니 허리춤만한 높이의 감귤나무 가지마다 초록색 귤이 올망졸망 매달려 있다. 해운사의 불자들은 감귤이 노랗게 익으면 함께 모여 열매를 수확한다. 정성스레 수확한 귤은 가장 먼저 부처님 전에 공양물로 올리고, 남은 것들은 이웃과 함께 나눈다.

어느덧 육지로 돌아갈 시간이다. 더 머물고 싶어 아쉬운 마음에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어우러져 색다른 매력을 자아내는 문강사와 해운사. 굳건한 신심으로 청정도량을 가꿔온 제주 천태불자들의 불심(佛心)은 부처님의 가피 아래 오늘 하루도 깊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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