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비는
고통스런 비 아닌
​​​​​​​‘택우’·‘감우’되길

예나 지금이나 여름비는 과하게 내리니, 길게 이어지는 장마를 궂은비ㆍ음우(陰雨)ㆍ고우(苦雨) 등이라 불렀다. 조선 중기 장유(張維)가 ‘고우’라는 시에서 “석 달 가뭄은 견디지만 비는 사흘만 내려도 당하기 어렵다.”고 했듯이, 장마는 삶에 크고 작은 고통을 준다.

7월은 소서ㆍ대서와 초복ㆍ중복이 들어 여름 더위가 절정에 이르는 때이기도 하다. 따라서 음양의 관점에서 보면 불과 물이 본격적으로 만나는 달인 셈이다. 양의 기운이 치솟는 계절이기에, 연중 가장 많은 비를 내려 이를 식혀주기 때문이다. 이렇듯 여름은 불[陽]과 물[陰]이 함께 성할 수밖에 없으니, 장마의 고통도 철저한 대비 속에 자연의 이치로 새겨야 할 듯하다.

옛사람들은 공부하기 좋은 세 가지 여가[讀書三餘]의 하나로 ‘한 해 중의 겨울’, ‘하루 중의 밤’과 함께 ‘시(時) 중의 비 오는 때’를 꼽았다. 에너지를 발산하는 여름철에 바깥으로만 돌기 쉬우나, 오히려 안으로 차분히 기운을 모으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또한 양기 충만한 여름에 음기의 비가 많은 이치와 통하는 듯하다.

여름비는 민폐가 커서 그리 환영받지 못하지만, 폐해를 잠시 접어둔다면 여름비만큼 빠져들게 하는 것이 드물다. 온 우주를 채우듯 줄기찬 기세로 내리는 빗줄기는 도무지 이 세상의 일 같지 않은 것이다. 이처럼 자연이 우리에게 내려준 귀한 시간이니, 한 걸음 떨어져서 나의 삶을 바라볼 수 있는 수행의 시간으로 삼으면 좋을 법하다.

그런가 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은 ‘법의 비’라 하여 법우(法雨)로 곧잘 비유된다. <법화경> ‘약초유품(藥草喩品)’에 이르기를, “부처님께서는 한 음성으로 일체중생에게 평등한 가르침을 베푼다. 근기와 지위와 성품이 다른 중생은 이러한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제각기 자신의 그릇만큼 성장하여 궁극에는 똑같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고 하였다.

아울러 이를 ‘삼초이목(三草二木)에 내리는 비’로 비유하니 더없이 명쾌하다. ‘삼초이목’이란 상초(上草)ㆍ중초(中草)ㆍ하초(下草)의 세 가지 약초, 대수(大樹)ㆍ소수(小樹)의 두 가지 나무를 뜻한다. 큰 구름이 비를 내리면 고루 대지를 적셔, 삼천대천세계의 많은 초목이 차별 없이 비를 맞는다. 그러나 초목은 종류와 성질에 따라 비를 흡수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한 구름에서 내리는 비라도 초목마다 분수대로 맞고 자라듯, 부처님 설법은 평등해도 중생은 자기 그릇대로 이를 받아들여 성장한다. 부처님은 저마다 성품과 욕망이 다른 중생의 근기를 꿰뚫어 보고 갖가지 방편으로 대기설법(對機說法)을 하지만, 그 설법은 큰 구름에서 같은 비가 내리듯 궁극적으로 하나다. 그렇게 모든 존재의 다양성을 품으면서 점차 깨달음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 부처님이 내리는 법우다.

“내가 이제 법우를 내려 세간을 충만케 했으니, 한 맛의 그 법에서 힘 따라 닦는 것이 숲속의 크고 작은 초목이 자기들 분수대로 자라남과 같으니라.” 부처님의 법우를 새기며, 올 여름비도 고통스러운 ‘고우’가 아니라 만물에 자양분이 되는 ‘택우(澤雨)’가 되기를, 가뭄 끝의 달고 단 ‘감우(甘雨)’가 되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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