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 잃은 후 출가해
물흐름으로 무상 깨달아

〈삽화=필몽〉
〈삽화=필몽〉

고타마 붓다 재세 시에 파타차라(Paṭācārā Therī)는 사밧티(Sāvatthi) 시에 살던 한 부자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성년이 되었을 때 막일을 하던 집안의 하인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녀의 부모가 부자집 아들과 약혼을 주선했을 때, 그녀는 약혼 전날 사랑하는 하인에게 함께 도망을 가자고 말했습니다. 하인은 함께 도망갈 것을 약속하고, 조금이나마 저축한 돈을 가져왔습니다. 두 연인은 살금살금 파타차라의 집에서 빠져나와 사밧티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마을로 피신했습니다.

남편과 두 아이를 잃다

부자의 딸이었던 파타차라는 곧 임신하여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남편이시여, 이곳은 우리가 아이를 낳기에 황량한 곳입니다. 나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갑시다.”

그녀의 남편은 소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감히 주인의 집으로 돌아갔을 때 초래될 결과를 직면할 수 없어서 차일피일 미루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남편이 아버지의 집에 돌아가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남편이 없는 동안 혼자 돌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밖에서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아내가 친정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알고 미안함을 느꼈습니다. 그는 “나 때문에 아내가 매우 고생한다.” 며 뉘우치고 바로 아내의 뒤를 쫓았습니다. 그는 도중에 그녀를 따라잡았지만, 그녀는 이미 아들을 출산한 뒤였습니다. 그들은 그녀의 부모에게 돌아가는 목적이 아이를 순산하기 위함이었는데 이미 순산했기 때문에 친정에 갈 의미가 없다는데 동의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집으로 되돌아왔습니다.

다시 임신했을 때 그녀는 남편에게 부모의 집으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남편은 예전처럼 또 미루었습니다. 그녀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첫째 아이를 데리고 예전처럼 남편 없이 집을 나섰습니다. 도중에 그녀는 무사히 둘째 아이를 낳았는데, 그제야 남편이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밤새 비를 피할 곳을 마련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남편은 찾을 수 있는 모든 나뭇가지를 주워 모아 엉성한 임시 처소를 만들었습니다. 그런 다음 작은 움막 주변에 제방을 쌓기 위해 풀뭉치를 찾으러 나갔습니다. 그는 나지막한 언덕배기에서 풀을 뽑기 시작했습니다. 나지막한 언덕배기 안에 누워 있던 코브라는 자신의 집을 파헤치는 남편을 물었고 남편은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습니다.

허름한 움막에서 밤새도록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는 남편이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남편을 찾으러 갔고 그가 나지막한 언덕배기에서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세상에, 정말이지. 내 남편은 나 때문에 죽었구나.”

그녀는 통곡했습니다. 그녀는 첫째 아이의 손을 잡고 갓난아기를 등에 업고 친정이 있는 사밧티로 출발했습니다. 도중에 그녀는 다소 깊은 개울을 건너야만 했습니다. 그녀는 두 아이와 함께 개울을 건너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큰아들을 개울 한 편에 남겨 두고 갓난아기를 포근하게 싸서 개울을 건너 언덕 다른 편에 눕혔습니다. 그녀는 큰아들을 위해 다시 개울을 건너갔습니다. 그녀가 개울의 중간쯤에 왔을 때 독수리 한 마리가 어린 아기를 먹잇감으로 삼으려고 급습했습니다.

어머니는 놀란 나머지 독수리를 쫓아내려 손을 위로 쳐들고 흔들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큰아들은 어머니가 자신에게 개울로 들어오라는 손짓으로 오인하게 되었습니다. 큰아들은 개울에서 미끄러져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파타차라가 갓난아이에게 다가가기도 전에 독수리가 아이를 낚아채 날아가 버렸습니다.

파타차라는 자신의 운명을 비탄하며 통곡하였습니다.

“내 두 아들이 모두 죽었다! 그리고 남편도 도중에 죽었다!”

절박한 말로 울부짖으며 그녀는 사밧티의 친정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녀가 사밧티에 도착했을 때 부모님의 집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가 사람들에게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하나 같았습니다.

“집을 찾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어젯밤 강풍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집 안에 있던 사람들은 집이 무너지면서 모두 사망했습니다. 그들은 장작더미에서 화장되었습니다. 그리고 저것이 그들의 화장터입니다.”

파타차라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은 “무엇이라고요? 무엇이라고 말했어요?”뿐이었습니다. 그녀는 혼잣말을 마치자마자 기절했습니다. 그녀가 기절에서 회복되었을 때 정신이 이상해졌습니다. 그녀는 예의에 신경을 쓸 수 없었습니다. 옷을 입지 않은 채 손을 사납게 치켜들고 타버린 장작더미 근처로 가서 통곡했습니다. “내 두 아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그리고 남편도 도중에 죽었습니다! 나의 어머니, 나의 아버지, 나의 형제가 함께 죽어서 하나의 장작더미 위에서 화장되었습니다.”

〈삽화=필몽〉

부끄러움 없는 여자의 출가

파타차라는 벌거벗은 채 시내를 돌아다녔습니다. 사람들이 그녀의 몸을 가리려고 하면 그녀는 옷을 찢곤 했습니다. 그녀는 가는 곳마다 놀란 군중들에게 둘러싸였습니다. 그녀는 ‘벌거벗은 여자(Paṭācārī, 부끄러움이 없는 여자)’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비극적 운명을 울부짖으며 벗은 채 돌아다니자 사람들은 “야, 미친 여자야! 여기서 떠나라, 여기에 오지 마라. 옷도 입지 않고 부끄럽지도 않느냐?”고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녀의 얼굴에 흙을 던지고, 어떤 사람은 그녀에게 돌을 던졌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제타바나(Jetavana) 승원에서 대중에게 설법하시던 중 파타차라가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녀가 승원에 들어가는 것을 막으려 하였지만, 부처님은 그들에게 “그녀를 막으려 하지 마십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녀가 가까이 다가가자 부처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파타차라여, 정신을 차려라.”

부처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파타차라는 정신을 차렸습니다. 자신의 벌거벗음을 알게 된 파타차라는 무릎을 꿇고 앉아 몸을 구부린 채 손으로 벌거벗은 몸을 가리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그녀에게 천 한 조각을 던졌고 그녀는 그것을 집어 들고 몸을 가리고 부처님께 다가갔습니다.

부처님께 인사를 하고 그녀는 자신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말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의 피난처가 되어 주십시오! 작은 아들은 독수리가 낚아채 가버렸습니다. 나의 큰아들은 개울물에 휩쓸려 빠져 죽었습니다. 남편은 도중에 독사에 물려 사망했습니다. 부모님과 형제들은 무너진 집에서 죽임을 당했고 그들은 한 장작더미 위에서 화장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슬퍼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이제 당신이 피신할 수 있는 여래에게 왔습니다. 당신이 이번 생애에 아들·남편·어머니·아버지·형제를 잃고 눈물을 흘린 것처럼, 전생에도 억겁의 윤회 동안에 4대양의 물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붓다의 설법을 듣고 파타차라의 슬픔이 가라앉았습니다. 부처님은 더 나아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들도, 남편도, 죽음의 여정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보호할 수 없기에 그 누구도 의지처가 될 수 없습니다. 아들이나 남편이 살아 있다 하더라도 생사윤회의 나그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현명한 사람은 자신의 업을 정화하고 열반에 이르는 성스러운 수행을 해야 합니다.”

법문이 끝날 때 파타차라는 예류과(豫流果)를 성취했고, 비구니로 출가하게 되었습니다.

부처님 법문으로 아라한과 얻어

어느 날 파타차라 비구니가 발을 씻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발에 물을 부으니 물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까지 흐르다가 멈추었고, 두 번째 물그릇을 부으니 물은 첫 번째 물보다 조금 더 먼 곳으로 흐르다가 멈추었고, 세 번째 물그릇을 부었을 때 물은 두 번째 물보다 약간 더 먼 곳으로 흘러가다가 멈추었습니다.

파타차라는 이 세 가지 물줄기의 현상에 대해 명상하고 그것을 삶의 세 기간에 적용했습니다.

“첫 번째 물이 조금 흐르다가 멈춘 것은 마치 어떤 중생은 이른 시기에 죽는 것과 같다. 두 번째 물은 첫 번째 물보다 조금 더 흐르다가 멈추었는데 이것은 마치 어떤 중생은 중년에 죽는 것과 같다. 그리고 세 번째 물이 두 번째 물보다 더 멀리 흐르다가 멈추었는데 이것은 마치 어떤 중생이 노년에 죽는 것과 같다.”

그녀는 더 나아가 세 가지 물의 흐름이 모두 끝나고 사라지는 것처럼 중생도 수명을 다하고 죽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물줄기의 사라짐은 그녀에게 모든 조건에 의해 형성된 현상에 대한 무상(無常)의 통찰을 제공했습니다. 무상에 대한 그 통찰로부터 모든 조건 지어진 현상의 고통의 실상이 그녀의 마음에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것의 공(空), 즉 무아(無我)도 지각(知覺)되었습니다.

세 가지 특성, 즉 삼법인(三法印)에 대해 깊이 생각하면서 그녀는 승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불이 켜진 등불을 원래 자리에 놓고 수행하다가 불을 끄고자 뾰족한 바늘로 심지를 기름 속으로 끌어 내렸습니다. 바로 그 순간, 부처님은 자신의 방에 앉아 계시면서 그녀에게 자신을 보이게 하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중생은 죽음에 처해 있다. 그러므로 오온(五蘊)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바르게 알지 못하고 백 년을 사는 것은 헛된 일이지만, 오온을 온전히 이해하고 하루라도 사는 것은 참으로 가치 있는 일이다.”

법문을 듣고 파타차라는 아라한과를 얻었습니다. 아라한과를 얻은 후 파타차라 장로 비구니는 부처님으로부터 율(律, Vinaya)을 광범위하게 배웠고, 율에 관한 문제에 대해 현명한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다음과 같이 칭송하며 말씀하셨습니다.

“율장에 능숙한 나의 비구니 제자 중에서 파타차라가 으뜸이다.”

파타차라는 짧은 기간에 잇따른 사고로 가족들이 모두 사망했습니다. 작은 아들은 독수리에게 잡혀 죽었고, 큰아들은 개울에 빠져 죽었으며, 남편은 독사에게 물려 죽었습니다. 부모님과 형제들은 무너진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가족들의 비극적인 죽음을 목격하면서 파타차라는 죽음은 모든 생명체에게 언제든지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체험했습니다.

물의 흐름이 인간의 수명과 같다는 것을 깊이 사유하고, 그것을 계기로 아라한과에 이르게 됩니다. 물 그룻에서 떠난 물이 조금 흐르다가 사라지기도 하고, 좀 더 멀리 흐르다가 땅속으로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물 흐름의 짧고 긴 것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 모두 사라지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린 두 아들의 죽음은 노년에 죽은 사람에 비해 짧은 것뿐이었습니다. 결국 모두 죽게 되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러한 엄연한 사실 앞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우리는 하게 됩니다. “죽기 전에 진정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안양규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불교학부 교수. 서울대 종교학과 졸업 후 동국대 불교학과에서 학사,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철학박사를 취득했다. 일본 동경대(東京大) 외국인연구원, 서울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특별연구원, 동국대 경주캠퍼스 불교문화대학장·불교문화대학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불교상담학회장을 맡고 있다. 주요 역·저서로 〈행복을 가져오는 붓다의 말씀〉·〈붓다의 입멸에 관한 연구〉·〈The Buddha’s Last Days〉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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