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축칼럼(302호)

불기 2567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문득 떠오르는 한 가지 생각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느 날 한순간에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오랜 세월 발전하고 진화하는 과정을 거쳐 오늘날 세상이 이루어졌습니다. 때로는 누군가의 값진 발명품이 문명의 발전을 앞당겼고, 누군가의 헌신과 희생이 나쁜 관습을 깨뜨리는 데 기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세상이 있기까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바로 ‘화합과 질서’입니다.

화합과 질서는 인류가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공동가치입니다. 이것이 깨지면 전쟁이 발발했고, 이것이 무너지면 혼란과 암흑기가 찾아왔습니다. 그런 만큼 ‘화합과 질서’는 세상이 진화하고 발전하는데 가장 큰 동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부처님은 화합과 질서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 선각자입니다. 우리는 출가수행자를 일컫는 ‘승가’를 ‘화합된 수행공동체’라고 부릅니다. 화합은 수행의 일부이고 과정입니다. 보리심(菩提心)을 일으켜 출가한 이들의 화합은 불교에서 추구하는 자비와 지혜의 증장(增長)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으면 화합을 이뤄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질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잡다단한 사회일수록 질서가 요구되는데 이 역시 상대를 존중하는 자세를 견지할 때 원활히 자리 잡습니다. 공동선의 추구보다 개인의 이익에 치중하면 질서는 결코 유지될 수 없습니다.

화합과 질서는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전제될 때 가능합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불교 전통이 자자(自恣)와 포살(怖薩)입니다. 이는 자신의 언행을 살피고 대중 앞에서 참회하는 행위로 부처님 재세 시부터 행해졌습니다. 경전에서는 그 사례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이 사밧티의 동쪽 교외인 미가라마타[鹿子母]의 정사에 있을 때 일이다. 그해 7월 15일 안거가 끝나는 날 행해진 자자는 참으로 성대하고 감동에 넘쳤다. 해가 지고 달이 뜨자, 산과 들에 둘러앉은 비구의 수는 500명이 넘었다. 그중에는 부처님도 있었고, 사리불도 있었다. 자자는 가장 웃사람부터 하게 되는데, 먼저 부처님이 일어나 자자를 행했다. ‘대덕들이여, 나는 이제 내 언행을 스스로 참회하노니, 대덕들은 내 행위와 말에서 무엇인가 비난할 것을 보고 듣고 또는 미심쩍은 생각을 지니지 않았는지,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나를 가엾이 여겨 부디 지적해 주길 바라오.’ 부처님이 합장한 손을 높이 쳐들고 비구들 앞에서 이렇게 말씀을 하자, 엄숙한 침묵이 공간을 뒤덮었다. 그것은 곧 성대하고도 감동적인 광경을 연출했다.”

보름달이 높이 떠오른 밤, 500명이 넘는 비구 한 명 한 명이 자신의 언행을 대중 앞에서 참회하는 광경은 승가의 화합과 질서를 통해 자비와 지혜를 증장하는 위대한 장면입니다. 이러한 오롯한 수행 전통이 불교를 위대한 종교로 자리 잡게 했습니다.

소납은 3월 23일 총무원장 취임사에서 화합과 질서를 강조한 바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대립과 갈등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학교폭력을 비롯해 마약의 확산 등 아름답지 못한 사회적 문제가 적나라하게 노출되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은 화합과 질서의 실천입니다.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할 때 화합과 질서는 이루어집니다. 화합과 질서가 전제된다면 남을 해하는 폭력과 마약 등의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수 있습니다.

부처님오신날을 즈음해 화합과 질서를 말씀드리는 이유는 부처님이 중생들을 평화와 행복으로 이끌려 하신 그 빛의 길이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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