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호

흥분도 침체도 없는
고요한 마음의 유지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그러나 행복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행복해지는지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 과연 행복이란 어떤 것일까? 어떻게 해야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까? 2,600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이 왕자의 자리를 버리고 출가한 것은 이러한 물음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6년간의 수행 끝에 체험적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 부처님은 고해(苦海)에서 벗어나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을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불교는 이렇게 석가모니 부처님의 행복론에 근거하고 있다.

행복에 대한 견해가 인생을 결정한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론을 지니고 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지, 어떤 조건을 갖춰야 행복해질 수 있는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에 대해서 나름대로 생각을 지니고 있다. 다만 자신의 행복론을 체계적이고 명료하게 말이나 글로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이 사람마다 다를 뿐이다.

사람마다 삶의 방식이 다른 이유는 각기 다른 행복론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이 지닌 행복론은 인생의 방향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매일 매 순간의 선택에도 영향을 미친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만약 오늘이 휴일이라면 집에서 TV를 보며 편안히 쉴 것인지, 배우자와 함께 맛집을 찾아갈 것인지, 친구를 만나 술을 마실 것인지, 아니면 사찰에 가서 기도나 명상을 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과정에 각자의 행복론이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어떤 행복론을 지니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일까? 과연 행복은 무엇일까? 편안하고 즐겁게 사는 것이 행복일까? 그런 삶을 살려면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할까? 대다수 한국인이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은 좋은 대학을 나와 연봉이 높은 직장을 얻고 좋은 조건을 갖춘 배우자와 결혼해서 다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이런 조건을 갖추기 위해서 바쁘게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녀의 행복을 위해 많은 사교육비를 투자하고 있다. 사찰을 찾아 부처님의 가피를 갈구하는 불자들의 주된 기도 주제는 시험 합격, 사업 성공, 가정 화목이다.

한국인이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행복의 조건

현대사회는 돈 세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세상을 움직인다. 돈은 단순한 교환수단이 아니라 모든 소망을 이룰 수 있는 만능수단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돈이 가장 중요한 행복의 조건이라고 믿는다. 돈이 많을수록 더 수준 높은 의식주를 누릴 수 있고, 타인으로부터 더 많은 인정을 받을 수 있으며, 사람들에게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더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재물욕은 가장 보편적이고 집요한 욕망이다. 물질문명이 현란하게 발전한 현대사회에서는 돈의 위력이 훨씬 더 강해졌기 때문에 현대인의 재물욕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 “피는 물보다 진하고, 돈은 피보다 진하다.”는 말이 회자되듯이 한국인의 돈 욕심은 유난히 강하다.

한국심리학회는 2010년 한국인이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행복하지 못한 이유를 논의하는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한 바 있다. 저명한 긍정심리학자인 에드 디너(Ed Diener)는 이 심포지엄의 발표를 위해서 한국을 포함한 5개국(미국·일본·덴마크·짐바브웨) 국민을 대상으로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한국인은 5개국 중 물질주의(Materialism) 성향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물질주의는 돈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돈을 벌기 위해서 다른 가치를 희생하며, 인간관계와 같은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여 생각하는 태도를 의미하며 행복을 저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디너에 따르면, 한국인이 행복하지 못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높은 물질주의 때문이다.

심리학의 행복론: 긍정심리학

1990년대부터 심리학자들은 행복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심리학의 연구 분야를 긍정심리학(Positive Psychology)이라고 한다. 긍정심리학자들은 행복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서 행복을 정의하고 그 정의에 따라 개인의 행복 정도를 측정하는 도구를 개발했다. 긍정심리학자들이 행복을 정의할 때 가장 중요한 근거로 삼는 것은 안락주의(安樂主義) 행복관이다.

안락주의 행복관에 따르면, 행복은 주관적인 것으로서 삶의 만족도가 높고 긍정 정서를 많이 경험하는 반면 부정 정서는 적게 경험하는 심리상태를 의미한다. 삶의 만족도는 머리로 하는 인지적 평가를 반영하고, 긍정 정서와 부정 정서는 가슴으로 느끼는 정서적 경험을 의미한다. 행복도가 높은 사람은 삶의 여러 측면(가정·직업·인간관계·여가·재정 상태 등)에 대해서 만족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긍정 정서(즐거움·자부심·성취감 등)를 많이 경험하는 반면 부정 정서(우울·불안·분노 등)는 덜 경험하는 사람이다.

긍정심리학의 연구에 따르면, 행복도는 나이·성별·사회계층·교육수준·소득수준과 같은 객관적 요인들과 관련성이 낮다. 예컨대 소득수준과 행복도의 상관은 그다지 높지 않다. 1인당 소득이 증가하여 2만 불에 도달할 때까지는 의식주가 안정되면서 행복도가 급격히 증가하지만, 그 이후에는 소득이 증가하더라도 행복도가 증가하지 않았다. 반면 행복도가 높은 사람들은 자신과 미래의 긍정적인 면에 주목하는 낙관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자기존중감, 직업 만족도, 인간관계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세속적 행복의 한계

심리학은 세계와 자아의 존재를 인정하는 세속의 학문이다. 긍정심리학자들은 사회 속에서 자아를 강화하려는 일반인들이 경험하는 세속적 행복을 연구하고 있다. 세속적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조사하고 세속적 행복의 증진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긍정심리학자의 주된 역할이다.

욕망 충족에 근거하고 있는 세속적 행복은 여러 가지 한계를 지닌다. 우선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쉽지 않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여러 가지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욕망 충족은 필연적으로 경쟁을 부추겨 갈등과 좌절을 초래하게 된다. 그래서 세상에는 구부득고(求不得苦), 즉 구하지만 얻지 못하는 괴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또한 욕망이 충족되더라도 그 만족감은 지속되지 않는다. 욕망이 충족되면 처음에는 만족감을 느끼지만 그러한 상황이 반복되면 둔감화가 일어나서 만족감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심리적 현상을 ‘적응(Adaptation)’이라고 한다. 따라서 만족감을 계속 느끼기 위해서는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추구하게 되고 그 결과 탐욕으로 이어지게 된다. 사람들이 더 맛있는 음식을 찾아 헤매고 많은 돈을 가진 재력가들이 더 많은 돈을 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현상은 금단현상을 유발하여 끊임없이 더 강한 자극을 추구하는 중독(Addiction)으로 이어져서 불행을 초래하게 된다.

인간의 욕망은 끊임없이 보채는 어린아이와 같다. 하나의 욕망이 충족되면 다른 욕망이 나타나서 충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저명한 인본주의 심리학자인 에이브러햄 매슬로(Abraham Maslow)는 여러 욕망이 단계적으로 발전한다는 욕구위계이론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욕망의 가장 밑바닥에는 생리적인 욕구(식욕·수면욕·성욕 등)가 존재한다. 이러한 욕구가 충족되면 여러 가지 위험으로부터 안전을 추구하는 욕구가 생겨나고, 이어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애정을 얻으려는 욕구가 떠오르며, 다음에는 자신을 가치있는 존재로 느끼고자 하는 자존감 욕구가 생겨나고, 잠재능력을 발휘하며 삶의 의미를 추구하려는 자기실현 욕구로 나아간다.

또한 욕망 충족의 만족감은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감소한다. 자신보다 더 좋은 조건을 지닌 사람과 비교하면 욕망 충족의 만족도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욕망 충족을 통한 세속적 행복은 상황에 따라서 변화하는 불안정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속적 행복의 가장 치명적인 한계는 죽음 앞에서 물거품처럼 사라진다는 점이다. 세속적 행복은 언젠가 반드시 허물어지는 괴로움, 즉 괴고(壞苦)를 피할 수 없는 것이다.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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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 부처님의 행복론

석가모니 부처님은 세속적 행복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끼고 더 나은 행복, 즉 생로병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더 완전한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출가했다. 2,600년 전 당시 인도 사회에는 여러 현자가 다양한 행복론을 주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만족하지 못한 석가모니 부처님은 몸소 여러 가지 방식의 수행과 체험을 통해 마침내 출가의 목적을 성취했다.

부처님이 추구한 행복은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어떤 변화에도 흔들리는 않는 지속가능한 행복이었다. 부처님에 따르면,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은 생로병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어떤 변화에도 흔들리는 않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음을 성취하는 것이다. 그러한 심리적 상태가 바로 열반(涅槃)이자 해탈(解脫)이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은 모든 고통과 번뇌로부터 해방된 청정부동심(淸淨不動心)을 성취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이 바로 멸성제(滅聖諦)다.

세속적 행복은 더 큰 만족과 더 강한 긍정 정서를 경험하는 것이다. 반면 부처님이 제시한 행복은 흔들리지 않는 청정한 평정심의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진수무향(眞水無香), ‘좋은 물은 향기가 없다.’는 말이 있듯이 최고의 행복은 긍정 정서와 부정 정서에 휩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흥분하거나 침체되지 않은 고요하고 안정된 맑은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다.

최고의 행복으로 나아가는 단계

인간이 경험하는 행복은 여러 수준으로 구분할 수 있다. 불교의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는 삼계(三界)는 인간이 행복으로 나아가는 심리적 단계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욕계(欲界)는 욕망 충족을 통해 세속적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상태를 의미하며 육도(六道), 즉 지옥·아귀·축생·수라·인간·천상의 여섯 수준으로 구분된다. 심리학의 관점에서 이해하자면, 지옥은 극심한 고통을 겪는 불행한 심리상태를 뜻하고, 아귀·축생·아수라·인간은 갈등 속에서 혼란과 불안을 경험하는 여러 심리적 수준을 의미하며, 천상은 삶의 만족도가 높은 행복한 심리상태라고 할 수 있다. 세속적 행복은 불안정한 것이기 때문에 욕계에 머무는 사람들은 상황의 변화에 따라 지옥과 천상 사이를 오가며 살게 된다.

세속적 욕망을 포기하고 수행자의 삶에 들어서면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로 나아가게 된다. 아래 그림과 같이, 수행이 깊어지면 색계의 초선(初禪)·이선(二禪)·삼선(三禪)·사선(四禪)의 경지를 거쳐 무색계의 공무변처(空無邊處)·식무변처(識無邊處)·무소유처(無所有處)·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로 나아가게 된다. 구차제정(九次第定)에서는 색계의 사선과 무색계의 사처를 넘어서 모든 마음 작용이 소멸한 상수멸정(想受滅定)을 최고의 경지로 여기기도 한다. 불교 경전에는 중생의 불안정한 마음에서 청정한 마음으로 나아가는 심리적 변화 단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묘사하고 있다.

심리학은 욕계의 세속적 행복을 탐구하는 학문인 반면, 불교는 세계와 자아의 공함을 깨달아 색계와 무색계의 초월적 행복을 추구하는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불안정한 세속적 행복을 넘어서 어떤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안정된 행복의 경지를 체득하고 그러한 이상적 경지로 나아가는 방법을 제시한 위대한 인간이다. 사성제(四聖諦)에 제시되어 있듯이 부처님의 가르침은 괴로움을 여의고 최고의 행복으로 나아가는 이고득락(離苦得樂)의 행복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권석만
현재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호주 퀸즐랜드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임상심리학 전공)를 받았으며, 심리적 장애의 원인을 밝히고 치료하는 일에 깊은 관심을 지니고 있다. 저서로 〈현대 이상심리학〉·〈현대 심리치료와 상담 이론〉·〈인간 이해를 위한 성격심리학〉·〈긍정심리학: 행복의 과학적 탐구〉·〈삶을 위한 죽음의 심리학: 죽음을 바라보는 인간의 마음〉·〈사랑의 심리학: 인간이 경험하는 세 종류의 사랑에 대하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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