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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환경 파괴에 대한
원로 자연·동물학자의 증언

“이 영상은 데이비드 애튼버러의 증언입니다. 누구의 시선이 더 필요할까요?”

앞뒤 상황을 잘라 먹은 뜬금없는 표현이라 여길 수도 있겠다. 그래도 여러 번 읽고 의미를 곱씹어 보면 ‘아하~’ 하고 무릎을 치게 될 것이다. 무엇에 대한 표현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명확한 건 ‘데이비드 애튼버러(David Frederick Attenborough, 1926~)’라는 사람의 증언을 토대로 제작된 영상물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그의 시선이 큰 무게감을 지니고 있다.’는 분위기도 느낄 수 있다.

앞서 문구는 알래스테어 포더길·조니 휴스·키스숄리 세 사람이 감독을 맡아 제작해 2020년 개봉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환경 다큐멘터리 ‘데이비드 애튼버러: 우리의 지구를 위하여(A Life on Our Planet)’의 마지막 메시지다. 이 글에는 데이비드 애튼버러의 증언에 대한 ‘확신’이 묻어난다.

이 다큐멘터리는 증언자(證言者·데이비드 애튼버러)가 경험한 자연과 환경 그리고 인류의 환경 파괴 현황과 극복 방안에 대한 이야기다. 내용 중에는 그의 젊은 시절, 세계의 오지 자연을 경험하고 연구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도 나와 한 인물의 삶을 조명하는 인생 다큐멘터리라는 느낌도 든다. 하지만 증언자가 전하는 ‘훼손된 환경 복원을 통한 지구 살리기’라는 본질은 벗어나지는 않는다. 특히 플라스틱을 비롯한 일회용품 사용 등은 다루지 않고, 다양한 환경 파괴 요인을 분석하고 연구해 ‘자연 생태계 복원’과 ‘탄소 흡수’를 통한 지구 살리기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다른 환경 다큐멘터리와는 차별된다.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에서 촬영 중인 데이비드 애튼버러.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에서 촬영 중인 데이비드 애튼버러. 

체르노빌 원전 폭발사고

카메라의 시선은 폐허가 된 시멘트 건물 내부의 길을 따라 움직인다. 길 위에는 각종 책과 깨진 유리가 너저분하게 흐트러져 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우주비행사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이곳의 벽화를 둘러보는 것으로 다큐 ‘우리의 지구를 위하여’는 시작한다. 구순(九旬)의 노인은 다큐멘터리의 증언자이자 내레이터(Narrator) 데이비드 애튼버러이다. 애튼버러는 1926년 잉글랜드 미들섹스 아일스워스에서 출생,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지질학·동물학을 전공한 영국의 저명한 자연학자·동물학자이자 방송인이다.

애튼버러는 “우크라이나의 이 도시는 한때 거주자가 5만 명에 육박했다. 그러나 1986년 4월 26일, 인근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의 폭발사고로 48시간 내 도시 소개령(疏開令)이 내려졌다. 그후로 아무도 살지 않는 도시가 됐다.”고 말문을 연다.

당시 우크라이나(Ukraine) 소비에트(Soviet) 사회주의 공화국(현 우크라이나) 키이우(Kyiv) 주(州) 프리피야트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사고는 레벨 7등급에 달하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원자력 폭발사고였다. ‘가장 값비싼 대가를 치른 사고’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애튼버러는 이 사고도 “일회성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 시대의 진정한 비극은 눈에 띄지 않은 채로 매일 전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말이다. 그는 근거로 밀림 파괴, 어족 자원 고갈 등 육지와 바다 생태계 훼손으로 인한 생물 다양성 감소를 들었다. 그가 표면적으로 제시한 대안은 생물 다양성의 회복이다. ‘우리의 지구를 위하여’를 통해 실제 피력한 부분은 인류의 자연 훼손으로 배출된 탄소를 자연 생태계 복원으로 흡수해 지구 온난화를 막고, 인류의 삶의 터전인 지구를 살리자는 것이다.

보르네오섬의 우거진 우림(사진 내 오른쪽)과 우림을 개간한 팜유 농장. 개발로 인해 우림 지역이 줄어들고 있다.
보르네오섬의 우거진 우림(사진 내 오른쪽)과 우림을 개간한 팜유 농장. 개발로 인해 우림 지역이 줄어들고 있다.

육지와 바다의 생태계 파괴

다큐멘터리는 소년 애튼버러가 폐광에서 암모나이트 화석 등을 주우며 노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 젊은 시절 노란 뱀·초록뱀 등 특이한 색깔을 지닌 뱀과 천산갑·나무늘보 등 희귀 동물을 관찰하고, 오랑우탄을 비롯한 유인원과 시간을 보내며 자연의 경이로움을 몸소 체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그가 1960년대 ‘세렝게티(Serengeti, 끝없는 평원)’를 방문한 뒤 일부 과학자의 “동물 무리가 제대로 살려면 광활한 초원이 필요하다. 그런 공간이 없으면 동물 무리는 줄어들 것이고, 전체 생태계가 무너질 것”이란 주장을 듣는다. 그때 애튼버러는 자연이 절대로 무한하지 않으며, 인간은 유한한 자연계에 철저히 구속되고 의존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이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자연 생태계 복원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애튼버러는 인간의 자연 생태계 파괴가 전방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증언한다. 그 파괴 행위에는 상상을 뛰어넘는 잔혹함도 깃들어 있다. 새끼고릴라에 웃돈이 붙자 밀렵꾼들이 새끼를 데려가려고 성체 고릴라 여러 마리를 죽인 적도 있다. 1970년대에는 포경선이 고래를 학살, 고래 중에서 가장 큰 흰긴수염고래의 개체수는 당시 수천 마리까지 감소했다.

또 1956년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섬은 4분의 3이 열대 우림지대였는데, 20세기 말에는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열대 우림은 육지에 서식하는 동물종 중 절반이 사는 동물들의 귀중한 서식지이다. 그렇기에 보르네오섬 우림 지대의 감소는 동물의 생태환경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세계 전역에서 3조 그루의 나무가 잘려나가면서 세계 우림의 절반이 개간됐다. 지속이 불가능한 일은 피해를 누적시키고 결국엔 전체 시스템을 무너지게 한다.

바다도 마찬가지다. 1950년대 들어 대규모 선단이 공해상으로 진출해 전 세계 바다에서 어획고를 올리기 시작하면서 잠깐 사이에 어족 자원을 고갈시켰다. 이로 인해 큰 물고기와 바다 포식자가 사라졌고, 바다의 영양소 순환에 제동이 걸렸다. 포식자가 사라지자 깊은 바다는 수백 년 간 생성하던 영양소를 잃게 되었고, 집중지역은 쇠퇴하기 시작한다. 바다가 죽기 시작한 것이다. 알록달록 아름다운 산호가 흰색으로 변한 사례가 많은데, 이는 산호가 공생하던 조류를 밖으로 내보냈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다. 신비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비극적인 모습이다. 신비로움으로 가득했던 산호초가 백골로 변했기 때문이다. 산호의 백화 이유를 찾지 못했던 과학자들은 여러 사례를 통해 바다의 경고란 걸 알아냈다.

이 같은 자연 생태계 파괴 모습에 ‘우리의 지구를 위하여’가 세계인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담긴 듯하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백화된 산호. 지구온난화로 남극과 북극의 얼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백화된 산호. 지구온난화로 남극과 북극의 얼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탄소 증가로 지구 온도 상승

또한 기상학자들은 상당 기간에 걸쳐 지구의 온도 상승[지구온난화]을 경고해왔다. 지구온난화는 석유·석탄 등 화석연료를 쓰면서 이산화탄소와 다른 온실가스를 배출한 게 주된 요인이다. 대기 중 탄소의 현저한 증가는 안정적인 지구와 절대 양립할 수 없다. 이는 다섯 차례의 대멸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멸종 후 화산 활동이 100만 년까지 지속된 끝에 대재앙의 촉발 원인인 지구 내부의 탄소를 충분히 걷어낼 수 있었다. 지난 200년간 석탄과 석유를 쓰면서 발생시킨 탄소 배출량은 살아있는 유기체를 수백만 년간 태워야 나올 양과 맞먹는다.

【 세계 인구·탄소함유량·미개척지 수치 】

•1937년 세계 인구 23억 명, 대기 중
탄소함유량 280ppm, 미개척지 66%

•1954년 세계 인구 27억 명, 대기 중
탄소함유량 310ppm, 미개척지 64%

•1960년 세계 인구 30억 명, 대기 중
탄소함유량 315ppm, 미개척지 62%

•1978년 세계 인구 43억 명, 대기 중
탄소함유량 335ppm, 미개척지 55%

•2020년 세계 인구 78억 명, 대기 중
탄소함유량 415ppm, 미개척지 35%

1990년대까지는 지구 대기 온도가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남는 열을 바다가 흡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지구는 균형을 잃기 시작했다. 극지방의 온도도 상승해 과거에는 갈 수 없었던 곳을 갈 수 있게 됐다. 이는 바다가 오래전부터 인류가 발생시킨 과도한 열을 흡수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그 결과 현재 지구의 평균 온도는 애튼버러가 태어났던 1920년대보다 섭씨 1도 상승했다. 또한 세계 인구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고, 대기 중 탄소함유랑도 늘고 있으며, 지구상의 미개척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북극의 여름바다 빙하는 40년 새 40% 감소했고, 어류 자원의 30%가 남획됐으며, 매년 150억 그루의 나무가 사라지고 있다. 강과 호수에 댐을 짓고 오염과 물 낭비를 일삼아 담수에 서식하는 개체수는 80% 이상 감소했다. 지상의 비옥한 땅 절반은 농지로 바뀌었다. 지구에 사는 포유류 전체 중량의 60%는 인간이 식용으로 키우는 동물이다. 이것이 오늘날 지구의 현주소다. 인간이 인간의 욕망 충족을 위해 지구를 갉아먹고 있는 셈이다. 올해 아흔일곱이 되는 원로 자연학자의 일생을 통해 지구가 파괴되어 가고 있음을 목도할 수 있다.

인류가 지금과 같은 행보를 이어간다면, 2030년대에는 더 큰 환경 재앙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 메시지가 섬뜩하기만 하다. 2030년대 아마존 우림은 더 이상 수분을 생산하지 못하는 건조한 대평원으로 전락해 동·식물종의 대대적인 파멸을 초래할 것이다. 지구의 물 순환에도 변화가 생긴다. 그와 동시에 북극의 여름에는 얼음을 찾아볼 수 없게 되고, 하얀 빙원이 사라지면 태양에너지를 대기로 반사할 수 없어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된다.

2040년대에는 북극 전역에서 동토의 땅이 녹고, 이산화탄소보다 몇 배나 강력한 온실가스 메탄을 방출해 기후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게 한다. 2050년대에는 바다의 온도가 꾸준히 올라 더욱 산성화되면서 세계 전역의 산호초가 죽고, 어류 개체 수도 급감한다. 2080년대에는 토양이 고갈되면서 전 세계가 식량 위기를 맞는다. 꽃가루를 옮기던 곤충이 사라지고 날씨 예측도 점점 어려워진다. 2100년대에는 지구 온도가 섭씨 4도 상승, 넓은 면적이 살 수 없는 불모지로 변한다. 결국 사람 살 곳이 줄어드는 등 지구의 여섯 번째 대멸종이 진행될 것이라고 다큐멘터리는 경고한다.

극지방의 빙산. 
극지방의 빙산. 

재생 에너지 사용·탄소 흡수로 지구 살려야

그렇다면 인류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애튼버러가 제시하는 답은 다섯 가지다. 첫째, 지구의 안정성을 회복하기 위해 생물 다양성을 되살려야 한다. 둘째, 화석연료 사용을 단계적으로 중단하고 태양에너지 등 자연의 영구적 에너지로 세상을 운영해야 한다. 셋째, 건강한 바다를 만들어야 한다.(연해 3분의 1 이상 어획금지구역 설정) 넷째, 육지의 생태를 복원해야 한다.(농·축산업에 사용하는 토지 면적 축소) 다섯째, 숲을 회복해야 한다.

그는 세계 최대 태양광발전소를 운영하는 모로코, 면적 대비 생산량을 극대화한 농업을 하는 네덜란드, 파괴된 삼림(森林)을 25년 만에 복원한 코스타리카의 사례가 세계 각국에 적용될 때 탄소 흡수를 통해 지구온난화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바다는 대기 중 탄소를 줄이려는 인류의 노력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아군이며, 해양 생태계가 다양할수록 효과는 배가 된다는 게 애튼버러의 설명이다. 또한 바다는 인류의 중요한 식량 공급원이기에 제대로만 운영한다면 어업은 영원히 지속가능한 사업이다. 이를 위해 연해의 3분의 1 이상을 어획금지구역으로 지정하면 인류가 영원히 먹고도 남을 어류 자원이 확보된다고 주장한다.

육지의 생태 복원을 위해 농업에 사용하는 면적을 대대적으로 줄여야 한다고도 조언한다. 그래야 자연으로 복원할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는 식단 변화를 추천했다. 모든 사람이 채식 비중을 늘린다면 지금 사용하는 땅의 절반만으로도 인류는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숲은 탄소 배출을 막는 천혜의 기술을 갖고 있고, 생물 다양성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생물 다양성이 풍부한 숲일수록 대기에서 탄소를 흡수하는데 효과적이다. 그래서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삼림 파괴를 즉각 중단해야 하고, 오래전 파괴한 삼림에서만 기름야자와 콩을 키워야 한다는 게 이 다큐멘터리가 주는 교훈이다. 인류가 지구 생태계 복원을 위해 가장 우선시해야 할 원칙은 ‘자연은 인류의 가장 큰 동맹이고, 가장 위대한 영감’이란 점도 다큐멘터리는 일깨워준다. 아울러 ‘하나의 종이 번성하려면 주변의 모든 것이 함께 번성해야 한다.’, ‘인간이 자연을 보살피면 자연도 인간을 보살핀다.’는 메시지도 인류가 아로새겨야 할 진리다.

다큐멘터리의 큰 줄기는 △인간과 자연 △바다와 육지 △동물과 식물이 개별로 존재하지만,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이다. 상호 유기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어느 하나가 무너지면 다른 하나도 결국 무너지게 된다는 것을 일러준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도 없다.’는 불교의 연기법(緣起法)과도 다르지 않다. 또 〈화엄경(華嚴經)〉에 ‘세상의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돼 있다.’고 표현한 인드라망(因陀羅網)의 비유와도 맥을 같이 한다.

“마침내 우리는 자연에 맞서기보다 자연과 공생하는 길을 배울 것이다. 결론적으로 살아있는 세계의 탐구에 평생을 바친 후에야 한 가지 확신을 얻었다. 이건 우리의 지구를 구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구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지혜다.” 애튼버러가 다큐멘터리 말미에 언급한 이 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누구의 시선이 더 필요할까요?”
이 다큐멘터리를 끝까지 보았다면, 이에 대한 대답은 하나일 수밖에 없다.
“누구의 시선도 더 필요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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