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 가는 아내 잔소리하다
포교 앞장서는 불제자 됐어요!”

박병욱(64) 포항 황해사(주지 유정 스님) 신도회부회장은 36년 간 공직(公職)에 몸담았다. 가족 부양을 위해 한평생 일에 파묻혀 살다보니 불교와 별다른 인연을 맺지는 못했다. 은퇴 후 뒤늦게 천태불자가 된 그의 불교 인연담을 들어봤다.

가난 싫어 공직생활 시작

그는 195812월 포항에서 4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부모님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셨는데,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다. 시골 생활이 너무 힘들었던 그는 1974년 중학교를 졸업한 후 차비만 챙겨 무작정 상경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서울 생활은 상상보다 더 힘들었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한 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일정한 거주지는 없었다. 부모님은 그가 서울에서 일을 하고 있는 줄 알고 있었다. 생활비를 마련하고자 지하철역에서 신문을 팔았고, 식당에서 일했다. 지방에서 종묘로 수학여행 온 학생들에게 껌도 팔았다. 잠은 지하철역에서 노숙을 하거나 일하던 식당 한편에서 잤다. 당연히 학교는 출석보다 결석이 많았다. 졸업이 목표였다.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여전히 서울 생활은 힘들었다. 그러다 군에 입대했고, 1983년 제대했다. 제대 후 막막한 미래에 대해 고민하던 그는 어렸을 적 장래희망이던 공무원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요즘과 달리 그 시절 공무원은 박봉으로 인해 그다지 선호되지 않던 직업이었다. 같은 해 경상북도 영일군청 공무원 채용에 합격해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 형제는 많고, 농사를 지었지만 집안 형편은 좋지 않았어요. 어렵게 살다 보니 돈 많은 사람’, 부자가 꿈이었죠. 어린 나이에 매달 월급이 들어오는 안정적인 공무원은 장래희망이었어요. 제대하자 나라를 위해 뭔가 해야겠다.’라는 의무감도 들었죠. 그래서 공무원 준비를 했는데 운 좋게도 바로 시험에 합격해 25살에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게 됐죠.”

2020년 포항금불대 4기생으로 입학한 박병욱 부회장(첫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은 2년 동안 회장직을 수행하며 동기들과 함께 불교공부를 했다. 그는 현재 금불대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부모님은 독실한 불자였다. 포항 남구 장기면에 위치한 천년고찰 고석사에 다녔다. 어린 시절 그도 삼짇날(음력 33)과 부처님오신날에는 부모님의 손을 잡고 고석사에 가곤 했다. 하지만 학교에 다니면서 자연스레 발길이 끊어졌다. 서울에서 돌아와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에도 하루하루가 너무 바빴다. 육지와 바다가 모두 있는 지역이다 보니 여름에는 태풍, 겨울에는 산불 등의 문제로 몸이 열 개라도 업무를 소화하기가 부족했다. 주말 없이 출근하다 보니 신행생활은 엄두를 낼 수 없었다.

아내 권유로 은퇴 후 불교 입문

그가 천태종 불자로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아내와의 결혼이었다. 아내는 결혼 전부터 신행생활을 해왔다. 처음에는 다른 종교를 믿었는데, 부처님 꿈을 꾼 걸 계기로 불교로 개종해 황해사 신도가 됐다. 아내는 종교가 없는 그에게 항상 절에 나가 보면 부부가 함께 신행생활을 하더라. 그 모습이 무척 보기가 좋더라. 당신도 나와 함께 절에 다니자.”고 권유하곤 했다. 하지만 공무에 바빴던 그는 신행생활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절에 자주 가는 아내를 말리기까지 했다. 그래도 아내가 합창단 활동을 하며, 포항금강불교대학을 졸업할 때는 사찰에 찾아가 축하를 해주곤 했다. 특히 금불대 졸업식 때 아내가 졸업가운과 학사모를 쓴 모습은 부럽기도 했다.

20196월 그는 포항 남구 장기면장을 끝으로 36년간의 공직생활을 마무리했다. 은퇴 후에는 일상이 무료했다. “절에 함께 가자.”는 아내의 끈질긴 설득에 마침내 나도 종교생활을 해봐야겠다.’고 결심하고 황해사에 첫발을 내디뎠다.

예전에 아내에게 왜 그렇게 절에 다니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그때 아내가 절에 가면 내 마음이 편안하고, 내가 절에서 한 다양한 활동으로 인해 복을 짓고, 우리 가족이 건강하게 지낼 수 있다.’고 말하더군요. 그때는 공무원 월급이 박봉이어서 등을 달 때마다 잔소리를 하곤 했죠. 그런데 저도 절에 다녀보니 아내의 말이 다 이해가 되더군요. 아내가 그동안 지은 복 덕분에 지금 우리 가족 모두가 특별한 일 없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사는 것 같아요. 저도 부처님 제자가 됐고요.”

박병욱 부회장이 황해사 4층 대웅보전에서 부처님전에 합장을 하며 기도를 하고 있다.

 

은퇴 후 천태불자가 된 그는 2019년 아내의 권유로 구인사 45일 기도를 신청해 기도하는 방법을 배웠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관음정진을 하는 모습을 보고 이상한 느낌도 들었다. 누구는 노래를 부르고, 누구는 고함을 지르는 모습에 왜 이러나?’ 싶었지만 2~3일이 지난 후에는 주변 사람들의 소리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스스로 삼매에 빠져들었다. 삼매에 든 순간 어릴 적 기억부터 청년·중년 시절 기억이 한 편의 영화처럼 흘러갔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는 새 눈물을 쏟아냈다. 그때 , 이래서 관음정진을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45일 기도가 끝난 후 8월에 결제한 117회 기해년 하안거에도 동참해 용맹정진했다. 일과시간에는 광명전·화장실·계단 등 청소 봉사를 했고, 기도 시간에는 열심히 관음정진을 했다. 첫 일주일은 너무 힘들었지만, 시간이 흐르자 봉사와 관음정진이 즐거웠고 보람찼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마침내 무사히 한 달 안거를 끝마쳤다. 이후 일곱 번의 지역 안거에도 동참했다.

박병욱 부회장이 은퇴 전 아내의 포항금강불교대학 졸업식에 참석해 축하를 해주고 있다.

한 달 안거를 마치고 어엿한 천태불자가 된 그는 2020년 포항금불대 4기생으로 입학했다. 당시 주지 도원 스님은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신행활동을 하는 그를 4기 회장으로 임명했다. 2년 동안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동기들을 이끌며 함께 불교공부를 했다. 그는 금불대를 졸업한 후 신도회 교무위원을 역임하고, 현재 신도회 부회장·금불대 사무국장·사보 편집위원 등의 직책을 겸직하고 있다.

공직생활을 하면서 포항시장 우수공무원 표창(1992·1998)·경북도지사 표창(1993·2005)·행정안전부장관 표창(2013)·대통령 훈장(2019)을 받았던 그는 신행생활을 하면서도 천태종총무원장 표창(2022)을 수상했다.

박병욱 회장은 바쁜 신행생활 속에서도 틈틈이 집에서 〈묘법연화경〉 사경을 하며 신심 깊은 불제자가 되기 위 해 노력하고 있다.
박병욱 회장은 바쁜 신행생활 속에서도 틈틈이 집에서 〈묘법연화경〉 사경을 하며 신심 깊은 불제자가 되기 위 해 노력하고 있다.

 

천태불자 포교에 앞장

은퇴 후 그의 하루는 여전히 바쁘다. 장기유배문화체험촌 명예관장과 함께 흥해읍 초곡3리 이장을 맡고 있고, 자율방재단 활동도 하고 있다. 틈틈이 고향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님도 돕고 있다. 특히 황해사 간부를 맡은 후에는 사찰 일정을 챙기고, 금불대 신입생 모집에 나서는 등 포교활동에도 전념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사찰 기도주간에 늘 관음정진을 하고, 집에서도 시간이 날 때마다 묘법연화경사경을 하며 신심 깊은 불제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박병욱 부회장은 은퇴 후 신행활동의 장점에 대해 시간에 쫓기지 않고 내 생활을 하면서 수행에 집중할 수 있는 점이라고 말했다. 공직생활을 하면서 수동적이었던 성격이 포교활동을 하면서 처음 보는 사람과도 주저 없이 대화를 하고, 행사 진행에 나서는 등 능동적으로 변한 것도 좋은 점이라고 덧붙였다.

박병욱 부회장은 은퇴 후 장기유배문화체험촌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2021년 이강덕 포항시장이 박 부회장에 게 명예관장 위촉장을 전달하고 있다.

 

제가 생각하는 불교는 처음이나 끝이나 내 마음공부를 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불교공부를 하기 전에는 종교의 행복을 믿지 않았는데, 5년 정도 신행생활을 하다 보니 좋은 일이 많이 생기고, 삶이 행복해지고 즐거워지더군요. 아직 불교를 접하지 못하신 분들, 특히 은퇴 후 시간에 여유가 생긴 분들이 저와 같은 감정을 느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저를 천태불자로 이끌어준 아내에게 이 자리를 빌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천태불자가 된 지 이제 겨우 5년밖에 안 된 박병욱 부회장.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기간이지만, 인터뷰 중에도 이따금 지인들과 전화통화를 하며 이번 주 절에 한 번 나와봐.” 하며 자연스레 권유하는 그의 모습이 부처님께 귀의한지 몇십 년 된 천태불자의 모습 같아 보여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박병욱 부회장이 사찰 행사에 사용될 등표를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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