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약국 운영, 틈틈이 기도
“은퇴하니 온종일
기도할 수 있어 행복해요!”

젊은 시절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 일만 하고 살았다. 하지만 가슴속 한켠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싶은 목마름이 항상 존재했다. 오늘의 주인공 허령자(80) 불자는 5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약사로 살다 천태종과 인연이 돼 은퇴 후 진정한 천태불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허령자 불자의 이야기를 부산 광명사에서 만나 들어봤다.

둘째 언니 따라 약학대학 입학

허령자 불자는 1943년 11월 부산에서 다섯 자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그녀가 여덟 살이 되던 해인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수많은 피난민이 부산으로 모여들었다. 남쪽 바다를 통해서도 인민군이 쳐들어올까 덜컥 겁이 난 부모님은 19살이던 둘째 딸과 넷째 딸을 조금 더 내륙 지방인 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으로 보냈다. 어린 시절 몸이 약했던 그녀는 미래에 대한 꿈을 꾸기조차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세균성 이질에 걸려 고생을 하고 있는데 아픈 동생이 걱정된 둘째 언니가 그녀를 업고 고개를 넘어 병원에 데려다주고, 데려왔다. 덕분에 무사히 몸이 회복된 그녀는 둘째 언니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들었고, 둘째 언니는 그녀의 롤모델(Role model)이 됐다. 둘째 언니와 그녀는 1952년 다시 부산으로 돌아왔다. 전쟁이 끝나고 가족들의 보살핌으로 건강을 되찾은 그녀는 남일국민학교(1998년 폐교), 부산여자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1961년 이화여자대학교 약학대학에 입학했다.

“서울대학교 미생물학과에 진학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여학생이 가기에는 너무 힘들다며, 가족이 반대했죠. 진로를 고민하던 차 롤모델인 둘째 언니가 이화여대 약학대학을 졸업한 게 생각났죠. 언니에게 이것저것 조언을 듣고 언니를 따라 저도 이화여대 약학대학을 선택했어요.”

그녀를 비롯해 가족은 둘째 언니를 뺀 모두가 불교를 종교로 하고 있었다. 모두 다 독실한 불자는 아니었고 부처님오신날이나 큰 행사가 있을 때 절을 찾곤 했다. 그녀는 부처님 가르침 중 하나인 ‘인연법(因緣法)’을 좋아했고, 마음속에 ‘복을 지으면 복을 받는다.’는 생각을 늘 지니며 살았다. 하지만 그녀가 입학한 이화여대는 개신교 미션스쿨이었다. 졸업하기 위해선 채플 수업을 의무적으로 들어야 했고, 개신교 문학에 대해 배워야 했다. 채플 수업을 들어보니 그녀는 개신교가 어떤 종교인지 궁금해졌고, 집 근처 교회를 몇 차례 다녔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개신교 교리와 성경이 전혀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그녀에게 개신교라는 종교는 ‘내가 평생 믿어야 하는 종교로 정해야겠다.’라는 감이 오지 않았다.

이화여대 약학대학 재학 시절의 허령자 불자(사진 맨 왼쪽). 동기들과 함께 졸업사진을 찍고 있다.
이화여대 약학대학 재학 시절의 허령자 불자(사진 맨 왼쪽). 동기들과 함께 졸업사진을 찍고 있다.

70대 후반 약사 은퇴

1965년 약학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부산으로 내려가 다음 해 결혼을 했다. 시어머니는 독실한 불자로 당시 대청동에 있는 대각사를 다녔다. 그녀도 시어머니를 따라 절에 다니며, 불교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1967년 무렵 금정구 장전동에 약국을 개업했고, 그 위치가 바로 현재 광명사(구 관음사) 밑이다.

약국을 운영하며 바쁜 일상을 지내다 보니 절에 가는 시간이 점점 뜸해졌다. 그러다 1974년 무렵부터 광명사로 가는 골목이 사람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골목을 찾는 사람들의 수는 늘어만 갔다. 그녀는 이 많은 사람이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건지 궁금해졌고, 마침내 골목 끝에 있는 광명사를 찾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도대체 광명사가 어떤 절이길래 매일같이 사람들이 찾아가는지 이유가 궁금해졌다.

“당시 저는 시어머니와 함께 조계종 사찰에 다녔기 때문에 천태종이라는 종단은 낯설고 생소했어요. 약국 문을 여는 시간에는 자리를 비울 수 없었기에 문을 닫고 광명사를 한번 찾아가 보자 마음먹었죠. 골목길을 따라 광명사에 올라갔는데, 수많은 사람이 법당 앞 공터에 앉아 관음정진을 하고 있었어요. 그때는 원통보전도 지어지기 전이었어요. 다들 바닥에 무언가를 깔고, 이불을 둘러쓰고 관음정진을 하고 있는 모습이 참 신기했죠.”

때마침 큰아들이 고등학교 3학년으로 학력고사를 앞두고 있었다. 그날 이후 그녀도 저녁마다 약국 문을 닫고 광명사에 가 관음정진을 시작하게 됐고, 이때부터 천태종과 인연을 맺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기도를 해야할지 방법을 몰라 옆 사람을 따라 ‘관세음보살을’ 되뇌었다. 그런데 자꾸 잡념이 생겨 힘들었고, ‘이렇게 잡념이 생기는데 절에 나와서 계속 관음정진을 해도 되나?’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그러다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니 “우리도 비슷하다. 하지만 꾸준히 열심히 하면 된다.”는 답을 들었고, 하루에 2시간씩 관음정진을 했다. 그땐 야간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라 자정이 넘도록 기도를 하고, 경찰 눈을 피해 집으로 가곤 했다.

기도 덕분이었을까 큰아들은 자신이 바라던 대학교에 입학하게 됐다. 다음 해 학력고사를 본 둘째 아들을 위해서도 기도를 시작했다. 그녀는 약국 문을 닫고 삼광사까지 한 달 동안 택시를 타고 다니며 기도했다. 광명사가 아닌 삼광사로 가 기도를 하게 된 이유는 1986년 삼광사 대웅보전이 낙성되고, 삼존불이 봉안된 후 천태불자들의 수행처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었다.

1997년경 30여 년을 운영하던 약국 문을 닫았다. 약국 운영이 잘 안 된 이유도 있었지만, 오랜 세월 동안 매일 약국을 지키는 삶에 지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남편과 일찍 사별 한 탓에 가정을 돌봐야 했다. 그녀는 다시 약국에 취직해 약사로 근무를 했다. 약국을 운영할 때와 마찬가지로 일과시간에는 약국으로 출근했고, 퇴근 후에는 삼광사를 찾아 기도를 했다.

이렇게 20여 년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그녀의 나이는 70대 후반이 됐다. 어린 세 아들도 장성해 각자 가정을 꾸렸다. 허령자 불자는 미련 없이 약국을 그만뒀다.

허령자 불자가 부산 광명사 3층 지관전에서 합장을 하며 기도를 하고 있다.
허령자 불자가 부산 광명사 3층 지관전에서 합장을 하며 기도를 하고 있다.

구인사 안거 7회 성만 목표

약국을 그만두자 이제 온종일 절에 다닐 수 있게 됐다. 매일 광명사에서 관음정진을 하다 어느 날 광도 스님(금강대 교수)의 〈상월원각대조사 오도기략〉 강의를 듣게 됐다. 광도 스님의 강의를 듣다 보니 불교대학에 입학해 체계적으로 불교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나이 든 할머니가 불교대학에 가서 뭐하겠냐.’는 생각이 들어 주저했다. 그러나 광도 스님의 강의를 들을수록 열망은 커져 ‘포기하더라도 일단 한번 부딪혀 보자.’라는 생각으로 2019년 부산금강불교대학에 입학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약국 일을 하면서도 얼마든지 신행생활을 할 수 있었어요. 약국 업무 때문에 절에 나가기 힘들다는 생각은 변명일 뿐이었죠. 지금은 ‘10년만 더 일찍 절에 다니면서 공부할걸’이라고 후회해요. 나이를 먹으니 말도 잘 안 들리고, 한 번 들어서는 강사님 수업 내용도 잘 이해가 안 가거든요. 그래도 금불대를 다니면서 단 한번도 결석하지 않았고, 도반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어요.”

금불대를 다니며 열심히 수업에 임한 허령자 불자는 불교학과를 마친 후 교법사과에 입학해 부처님 가르침을 배웠으며 2022년 졸업했다.

그녀의 은퇴 일상은 아침 6시에 일어나 108배로 하루를 시작하고, 〈법화경〉 독송 및 사경을 한다. 또 광도 스님의 강의를 유튜브를 통해 보고, 오후에 광명사를 찾아 3~4시간씩 관음정진을 한다. 과거 자식들을 위해 기도를 했다면 지금은 손자·손녀 등 가족을 위해 기도를 한다.

허령자 불자의 앞으로 계획은 구인사 안거 7회 성만이다. 약사로 근무할 당시에는 시간이 없어 가끔 구인사를 방문해 1박 2일 기도밖에 하지 못했다. 그러던 2003년 9월 추석 연휴, 제사에 참여해야 하지만 구인사 4박 5일 기도를 하고 싶다는 염원으로 가족들에게 제사를 맡기고 무작정 구인사로 가 기도에 참여했다. 그때의 환희심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2021년 제122회 신축년 재가불자 한 달 동안거에 처음으로 참여했다. 그녀는 앞으로 총 일곱 번의 구인사 안거에 동참하고 싶다는 원을 세웠다.

“말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구인사가 ‘연화성지’다 보니 그곳에서 하는 기도와 사찰에서 하는 기도는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일곱 번이라는 목표를 세웠지만,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아무래도 제가 나이가 있다 보니 일곱 번까지 하면 딱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강원도 삼척에 있는 상월원각대조사님의 생가터를 생전에 꼭 한번 방문해 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108배 참회문에 나오는 매사에 겸손하고 최선을 다하며, 정직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갈 생각입니다.”

은퇴 후 늦깎이 불자가 된 후 내가 기도를 하고 싶을 때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게 가장 좋다고 말하는 허령자 불자. 늦게 시작한 만큼 앞으로 최선을 다해 수행에 매진하겠다며 오늘도 그녀는 관음정진을 하며 삼매에 빠져든다.

1990년대 미국 요세미티 공원에서. 허령자 불자는 50여 년간 약사로 일하며, 퇴근 후 사찰에서 기도를 했다.
1990년대 미국 요세미티 공원에서. 허령자 불자는 50여 년간 약사로 일하며, 퇴근 후 사찰에서 기도를 했다.
허령자 불자가 광명사에서 ‘법화산림대법회(아래 사진)’와 ‘광도 스님과 함께 배우는 관세음보살 법회’에서 신행활동을 하고 있다. 
허령자 불자가 광명사에서 ‘법화산림대법회(아래 사진)’와 ‘광도 스님과 함께 배우는 관세음보살 법회’에서 신행활동을 하고 있다. 
허령자 불자가 셋째 며느리와 광명사 5층 대광명전에서 관음정진을 하고 있다. 셋째 며느리는 그 영향으로 천태불자가 됐다.
허령자 불자가 셋째 며느리와 광명사 5층 대광명전에서 관음정진을 하고 있다. 셋째 며느리는 그 영향으로 천태불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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